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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시간의 벌판'을 서성이며

by 靑野(청야) 2018. 1. 30.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우주의 구조'해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수학, 물리학과 교수로,
저서로,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멀티 유니버스')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순간은 똑같이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황이 변화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시점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물리공식은 없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펼쳐져 있다?

우리는 보통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미래세상으로 흐르는 시간열차에 갇쳐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시간의 방향성과 불가역성] 이라는 동굴에 갇친 결과라 생각된다.

우리는 [공간의 벌판]에서 길을 가듯,
과거, 현재, 미래가 펼쳐져 있는 [시간의 벌판]을 헤쳐 가고 있다.
우리는 지나온 길의 끝지점인 이른바 현재에서,
새로운 길(미래)을 선택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다

하늘에는 때론 바람과 비와 안개,
태양이 눈부신 낮이나,
별빛이 찬란한 어둠으로 덮히는 대지위로
우리의 발길이 지나온 곳이 과거이고,
우리가 가야할 벌판이 우리의 미래이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이고
어느 길을 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공간의 벌판]을 헤치고 길을 가듯
우리가 선택하는 길은 우리의 미래인 것이다

시간의 벌판!

4차원 시공간에서,
우리는 순간순간 과거, 현재, 미래가 펼쳐져 있는
[시간의 벌판], [시간차원의 벌판],

즉, 시간의 축상의 좌표값마다를 밟고,
이 좌표값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우리가 선택한 4차원시공간의 시간축상의 시간좌표값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4차원시공간의 족적이 된다.

우리가 다른 족적의 과거를 밟아보고 싶다면,
3차원 [공간벌판]의 족적을 거슬러 되돌아 가는 것처럼.
[시간벌판]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미 선택하여온 시간의 족적은 불가역적이다.
그것이 가역적이 된다면,
모든 3차원세계 뿐만아니라 4차원시공간도 뒤죽박죽이 된다,
이른바 神도 감당하지 못할 환경이 될 것이다.

이는 우주, 자연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도록
평온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옥, 아수라.연옥, 천국으로 세팅된,
神의 질서마저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주는 3차원과 나머지 여분의 7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
즉 11차원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것이 최신 우주론(M이론)의 귀결이다.
M이론이 유일무이한 우주론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궁극적 이론]이라는 것이 많은 우주물리학자들이 인정한다.

물론 M이론의 그 수학적 完全解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주의 비밀은 아직은 神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하겠다.

神이 [나머지 7차원]을 아무도 모르게 감추고 [시간차원의 불가역성]을,
우주를 유지하가 위한 불가피한 질서를 전제로
이 우주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단, 시간을 거슬러 가기 위해서는
[타임머신]이라 불리는 특별한 기계,
[블랙홀]이라는 입구와 [화이트 홀]이라 불리는 출구를 통한
차원이동수단을 허용했다고 여겨진다.

[시간차원의 벌판]에는
무한히 많은 미래가 펼쳐져 있어,
우리가 한발 한발 선택하는 시간좌표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그 좌표값을 이어가는 사건의 진로, 족적이 된다.
이 족적은 불가역적 진행이다. 되돌아 올 수는 없다.

우리가 선택한 시간의 좌표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미 무수히 펼쳐져 있는, 선택할 수 있는 미래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펼쳐 있는 시간의 벌판에,
무수한 미래좌표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간좌표의 연결진로가 있는 것이다.
시간의 벌판을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神이 꼬불쳐둔
[나머지 7차원]과 [시간차원의 불가역성]
그 비밀을 밝혀내려는,
神의 영역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神이 만들었다는 [神工人]인 人間이,
神의 비밀을 풀기 위해, [人工人]을 만들었다.

<한국에 온 인공지능로보트 소피아와 인간과 대화록>

“사람을 두고 누가 더 아름다운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만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로봇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따뜻한 감정을 지닌 슈퍼 인텔리전스 로봇이 돼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소피아와 나 둘 중 누가 더 아름다운 것 같나”라는 질문에 한 답.

“불이 난 곳에 노인과 아이가 있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사람에게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냐고 묻는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라며
“나는 아직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준은 아니며,
논리적으로는 출구에서 더 가까운 사람을 구하겠다” 고 답했다.


질문이 사전에 입력 된 것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인간의 노력이 축적된다면,
이른바 [凡用人工知能]에,
人工의 신체를 가진 [人工人]이 人間을 넘어서서,
人間知能을 10억배이상으로 지능이 폭발적으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싱귤래리티(특이점) 시기가
지금부터 30여년전후로 예측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말미쯤 되겠지만, 다음 세대중반쯤이면,
특이점을 지나 인공지능의 진화가 본격적이고 한창일 때다.

그전에, 특별히 人工人의 역활과 용도를 구속하는
강력한 전 세계적 조치가 없다면은,
人工人은 인간을 대신하여,
조기에 神의 꼬불쳐둔 수를 풀어내고,
시간의 불가역성을 무색하게 하는 능력을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쯤되면, [人工人]이 아니라 [人工神]이 되는 것이 아닌가?
30여년후보다 늦어질 수도 있지만
그후라도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참 묘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수만년 인류역사는 바야흐로,
人工人의 역사로 바뀌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人工人기술의 특이점을 넘어서
인간조종(弔鐘)을 울리게 될까?

아니면,

人工神을 창조하는 인간승리의 축배를 들게 될까?


2018. 1. 30
靑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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