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道無所不在, 道無時不在, 道在屎尿
(도 무소부재, 도 무시부재, 도재시뇨)
도는 없지 않는 곳이 없고, 없지 않은 때가 없다.
어디에나, 어느때나 존재한다.
똥오줌에도 존재한다.
노자, 장자의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똥오줌을 보더라도 그 속에서 도를 봅니다
평범한 인간은
똥오줌을 보면, 똥오줌을 볼 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도를 보더라도
똥오줌으로 밖에 보지 못합니다.
똥오줌을 보듯 크게 비웃습니다.
그래서, 이런 노자의 말씀이 있습니다
不笑不足以爲道
크게 비웃음이 없으면,
오히려 道로서 부족하다할 것입니다.
明道若昧; 進道若退
밝은 道는 어두워 보이고,
나아가는 道는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吏道若纇; 上德若谷, 大白若辱
평탄한 도는 울퉁불퉁한 것 같고,
큰덕은 골짜기와 같고,
결백함은 욕된 것과 같다.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큰덕은 부족한 것과 같고,
덕을 세우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크게 네모진 것은 모퉁이가 없는 것과 같고,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지고,
큰 소리는 듣기 힘들다,
큰 모습은 오히려 형상이 없다.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진다'.
우리가 잘아는 '大器晩成' 도 노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평범하고,
어리석은 지를
누가 굳이 구분하고 알리요?
무슨 기준으로 그리 구분하리요?
그저 스스로, 느낄 뿐?,
그저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
'그노티 세아우톤'
(gnothi seauton)
(γνῶθι σεαυτόν)
'너자신을 알라'
델포이 신전에 신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놀드 J. 토인비는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야 말로 모든 제대로 된 지식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세상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똑똑함만을 내세우려 합니다.
자신의 약점. 자신의 어리석음은 부끄러워하고 애써 감추려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똑똑한 지, 부끄러운 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도를 보고 똥오줌을 보듯 크게 비웃습니다.
도를 보더라도, 똥오줌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신탁을 내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너'가 아닌 '나' 에 대한 성찰이 절실합니다.
이제. 나에 대한 성찰의 각오를
저 깊이 자신의 내면의 거울 앞에 걸어 두어야겠습니다
'나 자신을 알라'
ㅡ山內에서 白潔
'수상잡록 > 자연으로돌아오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山內에서의 하루 (0) | 2016.09.17 |
---|---|
사서 고생을 바가지로 하다 (0) | 2016.09.17 |
태평농법 (0) | 2016.09.07 |
자연은 배려하지 않는다? (0) | 2016.07.17 |
진정한 삶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0) | 2016.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