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때늦은 독감이 앓이

by 靑野(청야) 2014. 3. 12.

며칠 째 오락가락하던 감기 몸살 증세가 3월7일 금요일부터 상황이 점차 악화되었다. 일주일전 부산에 이사 나들이도 있었고, 일주내내 독수공방하면서 무질서한 생활(?),  토요일이라, 동생을 지 외사촌에게 보내고, 일주일만에 서울로 다시 올라온 딸래미랑, 이얘기 저애기 나누다, 그리 안해도 이사등으로  부산을 오가느라 컨디션이 말이 아니였던 몸이, 잠잘 때를 놓쳐, 잠을 설친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자다깨다 반복하던 몸이 일요일 아침이 되자, 전형적인 몸살감기 증세인  심한 오한과 근육통증이 업습했다. 아프지 않은 근육, 성한 몸이 한 곳도 없다.

 

그동안은 가벼운 몸살, 감기증세 때문에,  화성인근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조제한 약으로 며칠씩 버터온 터였는데, 금요일 오전에도, '토,일요일 약까지 3일분이니....그래도 낫지 않으면 큰병으로 가보세요'   하던 의사 선생님 말씀이 떠오른다. 무슨 무슨 검사를 해야 한다나? 그땐 뭔말인지 몰랐다.

 

이전의 예로, 이런 일로 병원으로, 약국으로,  다녀오고 하루쯤 지나면, 대부분 나았기 때문에, 두번 갈 일이 없었고, 먹다남은 약봉지만 언제나 책상 모서리위에 남아 뒹굴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는데, 이번만은 아닌 것 같다. 참을 수가 없다.  홀몸으로 버텨오다, 딸래미가 다니러 오니, 몸이 알아서, 긴장이 풀리고, 해이해졌나? 일요일이니 일반병원으로 갈 수도 없고, 그래.  

 

"딸아, 아빠, 가까운 삼성병원 응급실로 좀 가야겠다, 아파서 몬 살 것다" 

 

가기전에 억지로 밥술을 떠고, 시골의사가 처방한 약을 복용하고는, 딸래미가 차를 몰고, 삼성병원 응급실로 갔다. 왠 아픈사람이 그리도 많은 지, 한참을 기다려 엑스레이를 찍고, 피를  뽑아 갔다. 그러고는 결과를  한정없이 기다렸다. 무슨 검사기기가 고장이나서 검사가 지연된다나?  간호사가 중간에 전화는 말이였다. 뒤에 짐작해보니, 아마도, 뽑은 피로 독감 인플루엔자 감염여부 검사하는 장비에 이상이 있었나 보다.

 

다행히 그때까지, 병원에 오기전에 복용한 시골병원 약효가 남았는 지, 새벽처럼의 통증처럼은 아니라서 견딜만은 하다.  '거참, 이 좋은 병원에서 장비고장이라...? ' 내심 의아해 하면서, 기다리다 지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사부 없는 세상 외롭게 살아야 될 지도...'하고  오리에게 엄포를 놓았더니,  오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굳이 병문안 온다는 것을 말려, 병원이름을 알으켜 주지 않았는데, 귀찮게(?) 시리, 딸래미한테로 전화해서 병원을 알아 찾아 온 것이다. 평소에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사부가 응급실에 있다하니, 그동안 소홀히 한 사부 대접, 만회하고 싶었는 지, 기특하게도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그럭저럭 기다리다보니, 오후 5시가 다 되간다. 출발할 때  복용하고 온 약효가 떨어지는 지, 가라 앉았던 통증이 서서히 도져오기 시작한다. 꼬맹이 녀석을 마산 외사촌집에 보내고 올라온 딸래미는, 동생이  돌아오는 마중시간에 맞추어,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고, 오리가 영광(?) 스럽게 우리 딸래미가 가졌던 '보호자 출입증'  패찰을 이어받았다.  

 

도무지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다가, 통증의 신호가 온 몸을 읍습할려는 조짐이 느껴지는 때,

 

'인플루엔쟈 양성반응' 이라며, 간호사가 연략을 준다. 이어서, 의사의 간단한 진단과 처방을 끝으로  병원문을 나선 때가 거진 5시가 다 된 시각이였다.

 

약방을 거처, 집앞까지 태워준 오리랑 점심겸 저녁을 들고, 오리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니. 마침내 으실으실 몸이 떨려온다. 속을 채웠으니... 이제는 삼성병원에서 준 약을 입속으로 틀어 넣었다. 

 

'비록 응급실 전문수련의 처방이겠지만, 대한민국 최일류병원의 처방이니, 요거 복용하면, 바로 통증이 가라 앉겠지?'  마음속으로 큰 기대를 하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리에 누었다. 그때가 오후 5시반경....

 

너무 빨리 잔 것일까? 아니면, 독감때문일까? 일어나니 밤 12시, 그때부터 3~4시간 최고조에 달한 오한과 근육 통증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x팔, 큰 병원약도 소용없네... 우와 이러다 돌아가시는 거 아이가? ....차라리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독수공방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따뜻한 물한잔 마시고 싶어도 직접오한으로 떨리는 뭄을 움직여야한다. 약을 한번 더 복용하자, 빈속은 아니된다 하니, 딸래미가 사다놓고 가서 식은 죽을  덥혀 먹을 생각을 못하고, 어서 빨리 속을 채워 약을 복용하자는 생각으로, 어기적어기적 식탁으로가서 냉냉해진 죽으로 속을 채웠다. 

 

'요건, 타미플루이니, 하루에 2번, 요거는 하루에 3번 식후 30분지나 드세요' 약사의 말이 생각난다.

 

<삼성병원에서 처방해준 타미플루>

 

30분은 무슨 30분, 빨리 복용하고 눞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그러고는. 옷을 겹겹히 껴 입고, 이불을 2중으로 하여 뒤집어 쓰고 누웠는 데, 언제 잠이들었는 지,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8시가 넘어 깨어났는 데,  온몸이 목욕한 듯 땀으로 범벅이다. 침대시트마저 축축하다. 덕분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다.아니,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삼성병원 처방약 복용 두번째만에 효과를 본 것이다. 목에서 가래가 끓는 것 외는 별 이상이 없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이 편안하다.

 

'흐흐, 역시.... 큰 병원 약이 좋기는 좋은 가 보다  오늘 하루 종일, 이 기분으로 누워지내자' 속으로 다짐하고는

 

'여차저차하여 오늘 쉬겠다' 하고, 회사에도 연락을 했다. 월요일 아침이기 때문이다.

 

딸래미한테도 '몸이 많이 좋아졌다' 고 메세지를 보냈다.

 

그런데, 딸래미에게서  청천벽력의 회신이 온 것이다

 

'빈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는 것이다

 

'왜?' 내심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더니, 딸래미가 들려준 전갈이다.

 

'빈이가 우울증이 있는 것 같다. 의사한테, 우울증 상담 좀 받아야 겠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적이 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달래서, 지나가는 청소년기의 증세려니 했는 데, 멀리 부산으로 이사가서 1주일도 안되어 그 증세라니! 물론 녀석의 50~60%는 녀석의 꾀병임을 안다. 전학을  간  학교가 마음에 안들고, 낯설어 마음을 다잡지 못한 것일 것이다. 아빠랑 지내기가 껄끄러우니, 이핑계저핑계로  마음대로 놀고 싶어,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도피성 전학을 갔는 데, 며칠 다녀보니 그게 아니였던 모양이다.

 

태어나서 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지내던 구서동 롯데캐슬인근의 생활이 나름대로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서울에서의 5학년, 6학년 중학교 1학년 생활을 거치면서도 머리속에,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싶은  감정과 겹쳐 그 때의 향수가 환상처럼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부산집으로 다시 이사가자',

'아빠가 2년 지나면 다시 온다고 했잖아?' 를 주문처럼되뇌이던 녀석이였다. 2년이 지나고 다시 전세를 2년 연장을 할 때, 온갖 투정을 다부렸다.

 

'왜 아빠는 약속을 안지켜?'  

'절대 그 집 팔지마라' 

 

그래서, 나보다, 시달리다 못한 딸래미가 결단을 내렸다.

 

'부산으로 이사가자'

'내가 직장을 부산에서 구해, 빈이 보살필께, 아빠는 천천히 은퇴하고 내려오소'

 

그래서, 학년이 시작되는 3월초에, 두 녀석을 먼저 부산으로 옮긴 것인데, 녀석이 학교를 다녀본지 1주일도 안되어, 나름대로 실망을 한 모양이다. 환상속의 그 동네, 어릴 때 친구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어, 반겨줄 줄 알았는데, 이전처럼 같이 놀아주는 친구들을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학원이다, 공부다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전에는 몰랐는 데, 지금까지 그 환상이 깨어지면서, 4년가까이 지낸 서울 가든파이브-잠실인근의 환경과 분위가가 차라리 좋았던 것이다.

 

녀석이 나름대로 엄청 걱정을 한 모양이다. '내가 주장해서 예까지 왔는 데, 이게 아니다.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 아빠한테는 우찌 설명해야하나?'  뭐 이런 걱정, 저런 걱정으로,  이른 바 멘붕상태에 이른 것이리라.  그래 우울증세를 보인게 아닐까?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다.  3일째 세수도, 사워도 않고 지낸 몸을  추스러, 면도와 사워를 하고, 주섬주섬 약봉지와 주변을 챙겨,  아무 사전연락도 없이 부산으로 향했다. 이 아빠가,  아픈 몸을 일으키자마자 부산으로 출동할 정도로,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  사춘기 앓이를 하고 있는 녀석에게 보여주자는 다소 객기어린 행동이였다. 녀석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당장은 갑자기 나타나는 아빠가 두려울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아빠의 진심을 알게 되리라.

 

'딩동' 오피스텔의 별소리에, '누구세요' 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다'하고  도착을 알렸다.

 

'아빠가 왠 일로? ' 상당히 놀라는 눈치다.다른 친구들이 열심이 학교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에, 며칠전에 산 TV앞에 죽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소릴 하겠는가?

 

'왜 학교 안갔어?' 하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조용히 녀석의 곁에 앉아, 손을 잡아주고, 내려갈때 산 '경주 찰보리빵' 을 안겨주며, 어깨를 안아주고 다독그려 주었을 뿐이다.

 

어렵사리 아픈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내려가서는 한 행동이 그 뿐, 아마도 애들보다는 내자신의 위안을 위해, 서둘러 내려갔지 싶다. 애들보다 어쩌면 내마음이 더 우울한 것 아닌가?  몇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애들에게 저녁을 사먹이고는 애들곁으로 간지 서너시간만에, 다시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주무시고 가시라'는 딸애의 간곡한 청을 뿌리쳤다. 지금은 통증이 가라앉아 여기까지 오느라 객기를 부렸지만, 어제 저녁만해도 사경(?) 을 헤매지 않았던가? 이불도 변변찮은 이곳에서 통증과 오한이 도지면 어쩌나?  그리되면, 나는 그렇거니와 애들도 밤잠을 설칠게 뻔하다. 부산역까지 태워주겠다는 딸래미 청도 뿌리쳤다. 퇴근길 부산역을 다녀오는 길이 얼마나 복잡할지 알기 때문이다.  

 

부산역으로 가는 구서동전철역 플랫폼너머, 애들이 아빠를 바래다 주고  금정결찰서 앞 골목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멀어져가는 애들 모습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새삼 가슴이 아려온다.  꼬맹이 녀석의 힘든 시간이 수년동안 이어진 것을 안다. 일체 내색은 않지만, 딸래미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와중에 내마저 독감이라니... 

 

녀석들!, 우짜겠노?  스스로들 극복해야할 터인데.... 하지만, 몇마디 말로 극복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 하지만, 저 어린 녀석은 우찌 컨터롤 해야 하나?  인생살이가 한없이 서글퍼진다.

 

독감증세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독수공방의 쓸쓸하고 허전함은  오히려 사치스러워, 오래전에 실종하고. 어둑어둑해지던 때부터  서울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애들모습만이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아빠, 나 8월에 다시 올라오면 안되?"

 

저번 토요일날, 아빠를 만나러 온 애들을 데리고, 외식을 하고  돌아오다, 아들이랑 둘이서 모처럼 걷는기회가 있었는데, 녀석이 내게 다가와서 속삭인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마무리 하고, 여차저차 하리라 나름대로 계획하에 움직이던 나와 딸애의 스케쥴이 뒤죽박죽될 것같은  느낌이다.

 

'아직은 낯설어 그런 것일 터이니, 그 쪽 친구들 사기고 정이들면 달라지겠지?  하도 조변석개하니께... ' 딸애의 전망이다.

 

그럴란가? 녀석을 타일러 다시 부산시대를 열어야 할 낀데... 콜록콜록! 아직도 독감의 휴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독감회복이 늦어져서 그런지 어째 자신이 없어진다.

 

 

 

 

 

 

 

 

 

'수상잡록 > 수상록.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不死魚냐? 魚道士냐?  (0) 2014.03.24
어느 제조프로세스의 거대한(?) 착각  (0) 2014.03.21
어떤 씁쓸한 경험  (0) 2014.03.04
독도침공  (0) 2014.01.29
쓸데없는(?) 제안 2  (0) 2014.01.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