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는 불사조(不死鳥) 인갑다'
우리집 어항속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금붕어 한마리를 두고 딸애가 하는 말이다.
어항이라 해봐야, 큰 도자기 그릇에 물을 넣고 여과기를 설치한 간이 어항이다. 우리 꼬맹이 어릴 때, 관상용으로 금붕어 몇마리 넣어 기르기 시작하다가, 벌써 10년 가까이 그 그릇에서 금붕어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금붕어를 기르다보면, 더러워지는 여과기를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주어야 한다. 여과기는, 먹다 남은 먹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필터에 축적되어, 막히기도 하고, 여과기를 통과한 물이라도 남은 먹이에서 녹아 나온 물질, 가라 앉은 먼지, 물고기 배설물등으로 오염되고, 무엇보다도 증발을 하여, 물이 줄어들기 때문에 청소와 물보충을 병행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이라 하지만, 수도물을 그대로 갈아 주면 금붕어는 잘 살지 못한다. 사람에게는 겉으로 당장의 영향이 없겠지만, 녀석은 한줌도 안되는 민감한 동물이니, 수도물 살균제 냄새만 남아 있어도 못사나 보다. (금붕어 파는 아지매 말만 들었지, 실제로 금붕어가 못사는 지, 얼마만에 죽는 지, 죽은 듯 있다 살아나는지 확인은 못했다)
'갈아줄 물을, 충분히 받아 하루를 그냥 두었다가 갈아 주세요'
물속에 남아있을 살균제 냄새가 증발하도록 그리하라는 말인 것 같다. 그동안, 10년가까이 처음 금붕어를 팔던 아지매의 당부를 기억하고, 여태까지, 철저히 지켜왔다.
꼬맹이가 유치원 때부터 얼마전까지, 주기적으로 금붕어 어항을 씻고, 여과기를 청소하고, 물을 갈아주는 것이 나의 작은 어항관리의무(?)였던 것이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날이나, 영상34~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이라도, 때가 되면, 이 작업을 계속해온 곳이다. 마누라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바쁜 출근시간에 금붕어 어항을 씻고 물을 갈아주었다. 물갈이 작업이, 출근시간에 걸리는 것은 전날 바께스에 받아둔 물을, 일하는 아줌마가 청소하다, 그냥 비워 버려서, 저녁에 집에 오면 다시 물을 받고 하루밤을 지내야 하니, 다음날이 되어야 물을 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 어항에 물 갈아줘, 금붕어가 비실거리는 것 같다... '
우리 딸래미, 꼬맹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금붕어 관리를 잘하라 체크한다. 그러니 내가 퇴근해서 물을 받아두고는, 하루밤을 지낸후 출근시간전 새벽에 물갈아준다고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다행히,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에 걸리는 날이면 출근시간에 쫒기지 않으니, 느긋이 몸을 움직여도 되겠지만.
꼬맹이나 딸래미 녀석들이, 내가 퇴근하기전에 시간날 때 물 좀 받아두면, 그로부터 한 7~8시간 지나서, 한밤중에라도 그 때 갈아주면, 출근시간을 피하고, 자고나서 출근에만 신경 쓰면 좋으련만, 녀석들이, 사전 준비작업에 절대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이 아빠에게만 모든 프로세스와 중노동(?)을 전가하였던 것이다.
이른 아침 출근전에, 시간에 쫓기면서, 화장실에 어항을 들고 가서 깨끗이 씻고, 물을 채워 거실에 가져오는 것이 예사 버거운 일이 아니다. 혼자 끙끙대기를 수년 째, 어느 날 문득, 이래 안되겠다 싶었다. 그 보다는 '때가 되었구나' 불현듯이 생각이 난 것이다.
'빈아, 아빠는 이제는 도저히 허리(?)가 아파 몬하겠다, 이제부터 니가해라, 아이모 금붕어 내다 버리고...'
'이리와봐, 내 청소하는 것을 잘 보고 이제 니가 청소하고 물갈아라...'
꼬맹이 덩치가 내보다 커진 작년 여름부터, 허리핑게를 대며, 수차 녀석을 강요하고, 엄포를 놓아, 마침내 그 한 금붕어 관리권을 넘긴 것이다.
'아라따, 내가 하께'
드디어 녀석이, 자기가 금붕어를 관리 하겠다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관리권을 넘긴 이후, 이번에는 내가, 꺼꾸로
'한마리 남은 금붕어 죽겠다. 왜, 물 안갈아주나, 청소는 왜 않해 주니?...'
하고 수차 다그쳐, 녀석이 마지못해 관리를 하더니, 어느듯 자연스레 녀석이 관리를 전담하게 되고부터, 아마도 지난 겨울 부터, 나는 그 놈의 어항관리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한번에 금붕어 새끼 7마리를 사서, 좁은 간이 어항에 넣고 키웠는 데, 요놈들이 커면서 어항이 좁아 스트레스 받았던지, 저들끼리 싸웠던지, 한마리씩 한마리씩 죽어나가는 것이다. 4년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올 때는 꼬맹이 에미의 중병중인 사태속에서도, 그 정신속에, 그 때까지, 살아남은 4마리 금붕어를 챙겨 비닐봉지 속에 물과 같이 넣고, 지 누나랑 번갈아 안고 올라온 녀석이다. 한 4~5시간정도는 여과기 없이 물속에 용해된 산소만으로도 살 수 있다한다. 딸래미가 집부근의 E-마트 금붕어어와 어장매장에서 알아본 모양이다.
그리 키운 금붕어 4마리중, 2마리가 2년전에 죽고, 1년전에 또 한마리가 죽어 나가고, 이제 한 마리만이 살아 남아, 한 1년이 지난 것이다.
'일마가 외롭겠다, 한마리 짝을 지워져야 겠네'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도 한 마리가 외롭게 살고 있다. 그러니, 욜마는 벌써 7~8년이 넘게, 어쩌면 10년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바라보면, 선입감인지, 뱃가죽이 투명하여 핏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유달리 눈알이 튀어나와 보여 많이 늙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3월초부터 일이다. 꼬맹이와 딸래미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버리고, 다시 금붕어 관리권이 어영부영 내게로 넘어온 것이다. 그동안 녀석에게 관리권을 넘기고, 이후 신경도 안썼는데, 이제 내게 다시 그 탐탁잖은 관리권이 넘어왔으니, 한마리 남은 금붕어지만 생명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다시 챙겨 보는 수 밖에...
헌데, 그동안 꼬맹이녀석 얼매나 부실하게 관리 했던지, 어항의 오염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 더러워진 여과기, 필터청소는 않고, 물만을 보충해 주었나? 모처럼 어항을 청소하면서 꼬맹이 녀석의 부실한 어항관리가 한눈에 보인다. 녀석도 중학생이고 사춘기이니, 어항관리권을 넘겨받는 시점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처럼, 어항 속의 금붕어에 관심이 다소 줄어든 탓이리라.
해서, 내가 다시 팔을 걷어부치고 어항을 씻고 하루전에 받아둔 물을 갈아 주었다. 단, 한마리 남은 금붕어를 위해 수십분의 정성을 쏟은 것이다. 꼬맹이와 딸래미가 아빠를 만나러 오는 날이면, 꼬맹이의 부실한 금붕어 관리자세를 나무라야겠다. 나무란다기 보다는, 대화의 화두로 자연스레, 꺼집어 내야겠다. 요즈음 녀석과 대화 화두가 궁색하니....그보다는 어쩌면, 우리집 거실에서 10년 가까이 같이 살아온 생명이기 때문에 내가 정성을 더 드린 것이리라
헌데, 정승스레, 어항을 청소하고, 새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뿌려주고, 아침에 일어나니, 왠걸, 녀석에 여과기의 물흐름을 이기지 못해, 그 흐름에 몸을 맡기듯, 뒤집어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흐름에 휩쓸려 이런저런 어항내 거치물에 걸리기도 한다.
재 작년,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던 날, 베란다에 받아둔 물로 갈아 주었더니, 녀석이 헤까닥 디비지는 모습을 보고, 얼른 따스한 물을 부어 수온을 올려준 일이 있다. '아차, 방안 수온에 적응하다, 갑작스레 급격하게 저하된 물온도를 접하다 쇼크를 먹은 것 아닌가' 나름 짐작해서다. 그랬더니, 금방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때처럼 몸을 뒤집으며 허물거리는 데, 이것은 경우가 다른 것이리라. 한마디로 정말로 임종이 임박한 모습이다. 이전의 예를 보면, 이러다 한나절이나 하루가 지나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크, 전처럼 청소하고 물을 갈아졌는 데, 왜?' 속으로는 '이왕 이리되면, 깨끗이 어항을 치워버리고, 거실 정리나 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어항을 청소하고 물을 갈아줬더니, 여차저차하니, 곧 돌아가시겠다'
딸래미, 꼬맹이한테 금붕어 위독 상황을 알린 것이다. 지금은 그럭저럭, 시쿤둥 하겠지만, 몇년 전만해도 죽은 금붕어를 보며, 눈물까지 흘리며, 친구하게 금붕어를 보충해주라 하던 녀석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한 생명의 마감을 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 요놈이 언제 생을 마감하나 퇴근길에 눈여겨 보고 있는 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녀석이 유유히 헤엄을 치면서 오히려, 물길을 거슬러 쌩쌩히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꼬맹이 관리자 때문에, 하도 청소와 물갈이가 없이 불결한 환경속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전문가(?)인 내가 나서 청소와 물갈이를 해줬더니, 익숙해진 그 환경이 너무 바뀐 것이였던지? 그래, 돌아가실 때 보이든 그 모습으로 사람을 놀래키게 하더니, 얼마지 않아, Clean(?) 환경에 적응하여, 전보다 씩씩하게 어항을 돌아다니게 된 것이리라.
'유야, 빈아, 신기하네, 곧 죽을 것 같던 금붕어가 되살아 났다. 전보다는 더 씩씩한 것 같애'
미물이지만, 왕성한 생명력을 대하고는 기분이 좋아져, 달래미, 아들래미 한테 메세지를 보냈더니, 딸래미 한테서 앞서의 회신이 온 것이다.
'마자, 불사조(不死鳥)'라기 보다는 '불사어 (不死魚)' 라 할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금붕어는 보통 수명이 최대 20년이라 한다. 보통은 어항관리, 환경관리, 먹이관리등 키우는 사람 잘못으로 몇년내 죽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키우는 사람의 환경이 바뀌고 관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하루도 못살고 죽기도 한다.
우리집 욜마는 서울로 올라 온지도 4년 가까이, 부산 있을 때까지 생각하면, 아마 7~8년어쩌면 족히 10년. 그러니 많은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삶인 것이다. 딸래미 말대로, 거의 불사에 가까운 삶인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 해보니, 녀석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 먹이를 즐겨 먹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먹이 냄새만 풍겨도 물위으로 입을 쫑긋거리며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고, 먹이를 물위로 떨어떨이면, 먹이가 물에 닫자마자 잽싸게 낚아채더니, 지금은 먹이를 줄 때도 처다도 안본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다. 조용히 꼬리 지느러미를 살랑이며, 헤엄치는 본래 그 자세에 머물 뿐이다.
녀석이 연세가 많으셔서 힘이 없어, 그런지, 아니면, 내 안볼 때, 살짜기 먹이를 잡수시는 것인지? 정말로 연세가 많으셔서 '회광반조(回光返照) 현상?' 곧 돌아가실 징조인가?
그도 아니면, 자슥이, 오래 살다보니, 도를 통했나? 魚道士? 그렇다 하드라도, 생명체이니, 안 먹고는 살 수 없으 것이니.... 며칠을 더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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