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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老子別義(上)

老子別義(上)_7장_天長地久(천장지구)

by 靑野(청야) 2013. 7. 13.
도덕경 7장

天長地久(천장지구) 하늘과 땅은 장구하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천지소이능장차구자) 하늘과 땅이 장구한 까닭은
以其不自生(이기불자생) 그것이, 스스로의 생(자기의 생)을 추구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다.
故能長生(고능장생) 그러므로 영원한 것이다
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이시성인후기신이신선) 그처럼, 성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나 나서게 되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나 드러내게 된다
非以其 無私耶(비이기무사야) 그것은 (성인에게)사사로움이 없기때문이 아니겠는가?
故 能成其私(고능성기사) 고로 도리어 사사로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주) * 長久 : 크고(공간적으로), 오래됨(시간적으로). 영구, 영원의 의미
     * 且 : 또차, 존경스러울 저, 또, 또한,
     * 所以 :~者 : ~하는 바, ~하는 까닭
     * 是以 : 이로인해, 이때문에, 그래서, 그러므로
     * 耶    : 어조사 '야'로 의문이나 반문의 어감, 간사할 사


[천지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즉 시공간이 장구한 우주이다. 이는 천지 즉, 대자연은 영원하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런 천지, 대자연이  영원한 것은, 천지, 대자연이 스스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 하는 일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역활을 다하는 자연의 爲無爲함이다. 그래서 만물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萬人은 有爲하고 作爲的이여서, 自生 즉 스스로 삶을 살고, 앞에 나서고, 자신을 드러내고, 사사로움을 구하지만, 聖人은 天地를 본받아 爲無爲하여, 그렇게 하지 않아도, 즉, 자신이 나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성인의 '私' 즉, '하고자 하는 바' 를 굳이 펼치지 않아도, 어느 듯 만인앞에 서게 되고, 만인앞에 드러나게 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 ]

 

'不自生' 이라는 것이 7장의 장의 핵심화두인 것같다.

'不自生' 에 대해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스스로 살려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생을 살려하지 않는다' 혹은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는다', '스스로 살리려 않는다' , '자기만 살려고 한다'등등

'自生則與物爭 不自生則物歸也'
'無私者 無爲於身也. 身先身存 故曰能成其私也.'

이것은 왕필의 주석이다. 왕필은 위나라 학자로, 위·진(魏晉)의 현학(玄學)의 시조로, 저서로, 노자주(老子註), 주역주(周易註)가 있다 한다

 

'천지가 '自生하면 만물과 다투게 되고, 不自生면 만물이 귀의한다'
'無私者는 자신에 無爲한 자이다. (그러면, 결국) 남의 앞에 서게 되고, 존재가 드러나서, 오히려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우선 왕필의 주석을 다시 내 식으로 해석하면,

 

'만물은 유,무생물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온 이래, 스스로의 생을 산다. (유)생물은 짧지만 생은 순환하고, 무생물도 장구한 우주적 역사로 볼 때, 짧은 생을 가지고 순환하는 것이다. 그런 만물이 스스로의 생을 살고 있는 것인데, 천지, 대자연은 그런 만물의 생의 터전이어야지, 그 터전이 만물과 같이 스스로가 생을 산다면, 뒤죽박죽 만물과 다투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천지, 대자연은 만물의 생의 터전의 역활로 족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만물은 그 터전위에서, 온전히, 자생할 것이며, 이것이 천지, 대자연에 만물이 귀의함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사사로움이 없는자(성인)은 자신의 삶을 살지 않지 않기 대문에, 즉,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사로움을 이룬다'

 

왕필의 주석을 번역하는 것 역시 어떤 의미로, 복잡도를 가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自生', '不自生' 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유추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잇다할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볼때, 自生은 '스스로의 삶을 산다' , 不自生은 '스스로의 삶을 살지 않는다'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다.

그런데, 성인이 '私(사사로움)' 이란 무슨 의미겠는가?

도덕경 7장은 自生과 不自生, 後와 先 , 外와 存, 無私와 私의 대립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萬物은 有爲하기 때문에 自生 즉 스스로 삶을 살지만, 천지는 爲無爲 즉, 아무하는 일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여, 스스로의 삶을 살지 않고, , 즉 不自生하고, 

 

萬人은 有爲하고 作爲的이여서, 自生 즉 스스로 삶을 살고, 앞에 나서고, 자신을 드러내고, 사사로움을 구하지만, 

 

聖人은 天地를 본받아 爲無爲하여, 그렇게 하지 않아도, 즉, 자신이 나서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성인의 '私' 즉, '하고자 하는 바' 를 굳이 펼치지 않아도, 어느 듯 만인앞에 서게 되고, 만인앞에 드러나게 되고,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 성인의'私'를 성인이  '하고자 하는 바'로 본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만인에게 무위자연의 도를 전하는 것'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무리가 없지 싶다.

 

도덕경 2장에서 이미, (是以)聖人 處無爲之事(시이성인 처무지위사)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라, (그러므로) 성인은 함이 없듯 일(無爲之事)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不言之敎)을 수행으로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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