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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동양철학/老子別義(上)

老子別義(上)_9장 功遂身退(공수신퇴)

by 靑野(청야) 2013. 7. 13.
     
     
    [도덕경 9장]
     
    持而盈之(지이영지) 가지고 있으면서, 더 가지려는 것은
    不如其已(불여기이)
     그만두느니만(현재수준을 지키는 것보다) 못하다
    揣而銳之(췌이예지) 날카로움을 너무 추구하면,
    不可長保(불가장보) 날카로움이 무디어 질 수 밖에 없다(날카로움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金玉滿堂(금옥만당) 집안에 금고 옥이 가득하면
    莫之能守(막지능수) 이를 지켜낼 수가 없다
    富貴而驕(부귀이교)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自遺其咎(자유기구)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
     
    功遂身退(공수신퇴)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天之道(천문도) 하늘의 도리이다.

    주) * 已 : 이미 이->1. 이미, 벌써. 2. 말다, 그치다, 그만두다. 3. 버리다...
                 참고로, 한정(限定)을 나타내는 종결사(終結詞)는 已, 而已, 而已矣, 耳, 爾등
         * 揣 : 헤아릴 췌, 때릴 추, 뭉칠 단-> 1. 헤아리다 2. 재다
         * 莫 : 없을 막, 저물목->1. 없다 2. 말다, ~하지 말라 3. 불가하다
         * 驕 : 교만할 ->교1. 교만(驕慢)하다 2. 경시(輕視)하다 3. 오만(傲慢)하다
         * 咎 : 허물 구, 큰북 고 ->1. 허물. 2. 잘못,과오
         * 遺 : 남길 유, 따를 수

     
     
    [가지고 있으면서  더 채워 가득하여 넘치는 것보다, 넘치도록 채우지 말고, 애초에 가지고 있던 수준으로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낫다.
     
    날카로운 데, 더욱 욕심을 내어 날카로움이 더하도록 다듬으면, 즉, 너무 날카롭게 할려다 보면, 오히려 애초의 그 날카로움이 쉽게 무디어 진다( 애초의 그 날카로움 마저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금과 옥은 집에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가지고 있어야지, 가득 넘쳐 나면, 그것마저 지킬 수가 없고, 부귀를 이루었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긴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도덕경 9장은 마지막에 하늘의 道, 道理가 언급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에 비해서, 함의가 그렇게 달리 해석될만한 문장과 단어가 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본 문장은 순리에 따르라는 인간의 처신을, 평이하고 교훈적으로 쓴 문장이라는데,하지만, 나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持而盈之(지이영지) 不如其已(불여기이)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불가장보)

    표의문자인 한자적 특성인지, 노자식 표현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한자로 쓴 해석(예: 왕필)의 번역 문제인지 모르지만,  
     
    '持而盈之(지이영지) 不如其已(불여기이)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불가장보)' 의 번역과 해석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그 원인은 持而, 揣而 와 그 댓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불가장보)' 에 대해, 위나라 왕필은 아래와 같이 주석을 달았다.
     
    '旣揣末令尖 又銳之令利 勢必衄 故 不可長保也 (기췌말령첨 우예지령리 세필최뉵 불가장보야)'
     
    '이미 끝을 다듬어서 뾰족하게 했는데 또 그것을 예리하게 하면 추세가 반드시 부러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길이 보전할 수 없다'

    * 摧: 꺾을 최, 꼴 좌-> 꺽다.
    * 衄: 코피 뉵(코피가 나다), 꺽일 뉵(꺾이다)
     
    왕필의 주석 역시 한문으로 되어 있으니, 그 정확한 뜻을 해석하는 데는,  조금더 세밀한 설명이 곁드릴 뿐, 도덕경해석이나 난이도가 대동소이 하다할 것이다. 나의 견해로는 왕필의 마지막 주석, '그러므로 길이 보전할 수 없다' 는 귀절은 사족과 같다는 생각이다. '~勢必衄 故不可長保也' 가 아니라 '~故 勢必衄' 라고 해야, 노자의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왕필의 '勢必衄' 속에는 노자의 '不可長保' 의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외 여러 사람들의 해석예들을 보면,

    '지니고 있음에도 더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느니만 못하고, 다듬어 뾰족하게 하면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자기가 유지하는 것이 가득 차는 것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단련시켜 예리하게 된 것은 오래도록 보전 될 수가 없다'
    '지니고서 그것을 채우는 것은 때에 그침만 못하다. 갈아 그것을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전 할 길이 없다'
    '넘치도록 가득 채워놓고 유지하기 위해 조바심 내느니 애초부터 가득히 담지 않는 것이 낫고 날카롭게 간 칼은 아무리 잘 간수하려고 애써도 그 날카로움을 오래도록 보전하기 어렵다'
     
    대부분  비슷한 해석이다. 모두 왕필이상으로 '不可長保'라는 字句의 해석에 빠져 있다. '不可長保' 가 결론이 아니라  앞의 상황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일 뿐인데, '故 不可長保' 의 '故' 때문에 그런지, 고로 '不可長保' 라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우(?)를 범한다. 그런 점이 있다하여도, 이 부분의 해석에서는 왕필의 해석이 그중 나은 것이라 생각된다.
     
    '(백성의 삶을 세밀히) 헤아려 예리하게 규제하면, (권세를) 오래 보전 할 수 없다' 
     
    이런 번역도 있는 데, 이것을 보면, 좀 오버한 해석이듯 싶다.
     
    고전의 해석을 풍부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 생각, 자기 철학으로 해석, 해설을 한답시고, 한 줄의 고전의 句節에  덧칠을 너무 하다보면, 고전에서 의도하는 메세지를 보다 잘 설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왜곡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한줄의 고전으로 철학시, 철학개론처럼 읊조리는 이도 있다. 도덕경의 句節,句節이 그렇게 활용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쩌면 그게 고전이 존재하는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내생각과 나보다 앞서 번역한 사람(先人)과 차이가 있다면,  내가 그사람들, 先人들의 해석을 잘못 이해한 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니면,그 차이는  '揣而銳之(췌이예지)귀절에 있다'고 생각한다. '揣而銳之' 의 해석에 따라 앞뒤 문장들의 해석이 달라질 정도로 중요한 키를 가진 句節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揣而銳之' 에 대해. 왕필의 해석이나 타인들의 해석을 보면 대부분,'날카롭게 하면, 또는 날카롭게 된 것은 오래 보전 할 길이 없다' 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물론 앞의 왕필주석(註釋)처럼, 그런 주석(註釋)마저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주석(註釋)의 번역에서 차이 일 수도 있지만. 주석(註釋)의 번역이 맞다면,  '揣而銳之'를 번역하는 패턴이, 더 앞의 持而盈之 해석패턴과 다소 차이가 난다는 것에 나는 주목하고자 한다,  
     
    '持而盈之' 해석패턴을 원용하여 ' '揣而銳之'을 해석하면,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더 날카롭게 하면(지니고 있는 날카로움에 날카로움을 더 채울려 하면) ....' 이라는 문장의 대응관계로 파악하면, 앞뒤가 무리없이 해석된다.
     
    그래서 나는 앞서와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불가장보) 해석한 것을  다시 소개하면,
     
    '날카로운 데, 더욱 욕심을 내어 날카로움이 더하도록 다듬으면, 즉, 너무 날카롭게 할려다 보면, 오히려 애초의 그 날카로움보다 쉽게 무디어 진다. 그래서 애초의 그 날카로움 마저 유지하지 못한다'
     
    揣而 즉, 날이 어느 정도 서 있는 데,  거기에 '銳之' 즉  날카로움을 더하는 것은 '持而'에, '盈之' 즉 채우는 행위에 대응하는 句節(댓귀)로 해석 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不可長保' 를 '오래 보전 할 길이 없다'하는 것보다, '쉽게 무디어져 애초의 그 날카로움을 유지하지 못한다' 로 해석하는 것이 전체 흐름에 부합한다는 것이 내생각이다.  이것은 '날카롭게 하면, 또는 날카롭게 된 것은 오래 보전 할 길이 없다' 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낫이나 칼을 직접 숫돌에 갈아본 사람들은 이러한 揣而銳之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느정도 날카로움이 있는 칼을 욕심을 내어 더 날카롭게 갈다보면, 어느 한 순간 그 날카로움(날세움)이 도를 넘어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날이 넘었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金玉滿堂(금옥만당) 莫之能守(막지능수) 富貴而驕(부귀이교) 自遺其咎(자유기구) 
     
    金玉滿堂, 富貴而驕도 持而, 揣而의 의미해석과 같은 유사방법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지 싶다. 즉, 현재의 金과 玉의 보유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수준을 넘어서,  이를 더욱 탐하고 채우면, 도둑이 들거나, 관리를 못해,  이를 지켜낼 수 없다. 또  富와 貴의 현재 이룬 수준을 넘어 더욱  부,귀를  추구하고, 이를 이용해 행세하며 더욱 교만해지면,   허물이나 과오를 스스로 남기게 될 것이다
     
    功遂身退(공수신퇴) 天之道(천문도) .

    '공을 이루면 물러 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 라는 것은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이때까지 문장의  마지막 귀절패턴으로 봐서, 뭔가 어색하다.
     
    이전의 글귀는 '앞의 어느수준을 넘어서면, 그 수준을 유지 하는 것만 못하다' 식의 형태로 보면,  '공을 이루었으면', 더이상 공을 쌓는 다고 설쳐, 무리하여 욕심을 내면, 시기도, 질투도, 의심도 생겨, 오히려 그 공을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그 쌓은 공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힘써야지 너무 무리하게 더욱 공을 세우기를 욕심내던가, 공을 내세우지 말라' 해야 되지 싶은 데, '물러나라' 하니, 더구나 '그것이 하늘의 도리'라니....
     
    이와같이, '持而盈之(지이영지)  不如其已(불여기이)', '揣而銳之(췌이예지) 不可長保(불가장보)' 와 '金玉滿堂(금옥만당) 莫之能守(막지능수)', '富貴而驕(부귀이교) 自遺其咎(자유기구)' 는  앞서의 해석상의 미묘한 차이를 두리 뭉실 같은 개념으로 볼 것 같으면, 비슷한 패턴으로 해석이 되지만,
     
    '功遂身退(공수신퇴) 天之道(천문도)' 와는 해석 패턴을 연결시키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天地不仁 으로 시작하여,'多言數窮 不如守中'으로 끝나는 4장에서 처럼, 의미의 불연속 보다는 덜하지만, 무언가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는 듯하여, 여기도 경전이 성립하고 전해지는 과정에서 무슨 곡절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句節마다로 볼 때는 매句節이 독립적으로 金科玉條이기 때문에, 앞서 번역하고 해석한 기라성같은 先人들이 이 차이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聖賢의 말씀에 감히 토를 다는  우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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