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강물에도 순서가 있는가?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
'인간이란 실로 더러운 강물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이 강물을 삼켜 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썼다
요즈음, 한국 사회가 더러운 강물들로 범람한다. 조폭, 폭력이 범람하고, 사기,도박,살인을 벌이는 전통적인 범죄자들 뿐만아니라, 교육현장, 정치현장, 사회 각계각층에서 법을 예사로 어기고, 법의 잣대를 예사로 유린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이나라, 이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든,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내만 편하고, 내한테 유리할 것같으면 자기주장,이념, 자기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핏대를 세운다. 목숨까지 돌보지 않는 허수아비 투사들이 등장한다.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관료, 교육가, 정치가, 기업가, 이른바 사회지도층 모든 부분에서 돈과 권력과 이권에 관련된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정치세력이 좌우로 바뀌어도, 정치세대가 바뀌어도 세월의 흐름에 무관하게 더러운 강물은 역시 도도히 흘러간다.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셈이며, 국민스스로가 당사자인 셈이다.
실로 더러운 강물이다. 더러운 인간들이 세월의 강물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강물에도 순서가 있다지만, 이 넘의 사회의 강물에는 순서도 없다. 뒤죽박죽, 시간이 흐를 수록 나아지기 보다는 더욱 더러움이 진해진다. 강물의 상류원천뿐만아니라, 강물로 흘러들어오는 지류 마다 더러움의 근원에서 뿌릴 내리고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탐욕이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것인지, 무지가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갈되는 자원에 따른 인간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타락의 원인인지?
인간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가치들, 이를 테면, 대의(大義), 예의(禮義), 민의(民義), 정의(正義)같은 숭고한 가치들이 실종된지 오래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나아보이지만, 세월이 갈수록 사회는 황폐해지고 있다.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다는 많은 종교마저도, 인간의 영혼을 볼모로 잡고 돈벌이, 이권 챙기기에 급급한 세상이다. 인간의 더러운 탐욕의 강물은 넘쳐나서, 모름지기 바닷물마저 들여 마실기세다. 도대체 인간의 타락이 심지어 기세등등 하고, 끝이 없어 보인다. 예사일이 아니 것이다
공룡의 방귀!
과거 공룡시대가 1억여년 넘게 지속된 적이있었다. 전 지구에 걸쳐 번성하던 공룡이 멸종하고 수억년이 흘러 지금은 화석으로 그 존재를 알릴 뿐이다.
헌데 잘나가던 공룡시대가 실종하고 공룡이 멸종한 것은 것은 빙하시대의 도래가 원인이라한다. 빙하시대가 도래하자, 먹이사슬의 붕괴되고, 먹을 거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를 덮고있던 엄청난 덩치들에, 엄청난 숫자의 공룡 떼들이 별수 있었겠나? 떼죽음으로 내몰리는 수밖애. 끝까지 버티다가, 더러 얼어죽은 공룡도 있었을 것이다.
헌대, 아무리 비전문가의 잡지식에 상상력을 더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공룡시대에 왠 빙하시대의 도래?
수억년전의 자연의 조화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냐마는 전문가들의 깊은(?) 연구 끝에 나온 결론의 하나는 빙하시대가 도래한 요인중 하나는 당시의 공룡들의 '방귀'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귀? 메탄이 대부분인 공룡의 방귀!
[약 1억 5천만년전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공룡의 방귀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소의 소화기관과 공룡의 소화기관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연간 5억 2000만 톤의 가스가 아파토사우루스를 포함한 용각류에게서 발생한다고 했다. 이런 초식공룡은 장내에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소화를 시켰고 이 과정에서 메탄이 발생했다.
아파토사우루스(출처: 네이버)
연구진은 이는 “지구의 메커니즘이가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것인지 보여줄 뿐아니라 지구 기후에 미생물과 메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상기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또한 중생대의 지구온난화는 공룡의 방귀만으로 된것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또 다른 메탄 배출원에 의해 지금보다 메탄농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상출처: URL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8/2012050800736.html (조선일보기사)
셀수도 없이 번성하던 공룡들의 메탄방귀로, 이산화탄소의 수배의 온난화 악영향을 미친다는 메탄가스가 대기에 가득하게 되고, 이 때문에 지금의 현상처럼 지구온난화가 온 것이라 한다. 지구온난화는 급기야 남북 극지의 빙하를 녹여 냉기가 지구전체에 퍼지면서 그로 인해 지구온도나 내려가고, 빙하시대가 도래 했다는 학설이 있다.
요즈음, 산업화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 메탄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여기저기 이상기온로 급격히 생태계의 파괴와 교란이 한참 진행중인 것이 예사로운 상황이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공룡의 방귀가 빙하시대의 도래에 기인했다면, 언젠가는 지구에도 산업화의 결과로 빙하시대의 도래로 인해, 인간들이 낭패를 보게되지 않을까? 당시에 비하면, 지능동물이고, 과학기술로 무장된 인간들이니, 공룡들보다 그런 극악한 환경을 타파해 갈지 모르지만, 어쩌면, 지구온난화에 이은 빙하시대의 도래, 여기에 더하여 자원고갈이 겹치면서, 아무리 고등하고 지능적인 인간이라 하드라도 대자연의 조화앞에서야 별 수 없지 싶다.
이로서 인간이 잘살고, 행복하게 살자고 죽자살자 산업화를 성취하는 것이, 결국은 스스로나 스스로의 터진을 멸망시키데 죽자살자 달려들은 불나방같은 존재에 다름아닌 게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고요많이 남겠지?'
양희은이 부른 '아름다운 것들'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요즈음처럼, 온난화, 이상기온에 환경이 파괴되고 자원이 고갈되면, 인간이 편히 득실거리며 살 수 없을 것은 당연지사, 언젠가는 인간의 종적이 묘연하리라. 인간들의 종적이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무성할까? 언젠가는 이 나무들도 사라지겠지!
요즈음의 세상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노라면, 어쩌면, 이 세상의 미래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노래말처럼, 모두가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아 있는 저 화성이나, 달과 같은 행성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오지않을까? .화성탐사선 오포튜니티가 보내온 화성의 대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황량한 심정보다 더 찹찹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최근 물이 물이 발견되었다는 화성의 모습, 그렇다면 생명이 살았을
수도.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모두가 사라진 황량한 세상>
아마도, 공룡시대 공룡들이 득실거리듯, 더러운 탐욕자들이 득실거리는 인간사회도 자원의 고갈과 빙하시대를 거쳐, 다소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인간의 종적을 묘연하게 할 것이다. 요즈음처럼 탐욕으로 더러운 인간들이 범람하는 인간의 강물이라면, 차라리 말라버려야 하리라.
대의(大義)의 실종!
대의명분이라는 말이 있다. 요즈음들어 사건사고는 무척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대의 명분이 뚜렷한 사건은 찾기 힘들어 져가고 있다. 오늘의 명분이 내일이면 사기로 밝혀지고, 사기꾼들의 농간에 놀아난 사실이 밝혀진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참으로 구분짓기 애매한 뒤죽박죽의 세상이다. 정치판도, 검찰도, 권력자도 그 장단의 주인공이고, 주연, 조연 배우들이다. 순진한 국민만이 항상 뒤통수를 맞는다. 이를 두고 '대의의 실종' 시대라 할 만하다.
윤봉길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은, 불법으로 강탈 당한 조선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게 한 대의(大義)의 거사였다. 요즈음엔 정치,사회에 그런 대의를 찾아 볼 수 없는 시대이다.
세상이 대양해지고 개개의 개성이 존중받다보니, 소집단들은 우후 죽순 처럼 늘어나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소의(小義)는 만발하다 할 것이지만, 전체 사회구성원의 염원을 반영하는 대의는 실종된 지 오래이다.
1인가구, 독신의 증가, 개인주의, 언론의 자유, 인권주의의 확산, 정당할동의 자유(?), 여기에 부채질한 인터넷등 IT환경등이 小義, 小利에 급급한 뭇 군상들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최근 이석기, 김재연 사태로 정치판이 시끄러웠다. 그들이, 종북 골수좌파란 이유다. 아닌게 아니라 .소문대로라면, 그네집단들은, 국가를 부정하고, 끼리끼리 집단들 대변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물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보다는 총선 비례대표 선정 투표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자체 보고로 촉발된 그네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태가 지금은 검찰의 수사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소속된 당이 갈자지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료 당원의 지적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국민의 눈총도 무시하는 배짱좋은 이들의 횡보에 대다수 국민들은 혀를 차고 있는 것이다.
<한 동안 종북꼴통좌파, 부정선거 논란의 중심에선 이석기.김재연>
'지놈들이 무슨 국회위원이냐?',' 종북 골통좌파가 국회에 까지?'
어디 그네들 종북좌파 뿐이라? 대다수 정당인들의 행태를 보면, 국리민복은 아랑곳 없다. 오로지 자기나 주변의 안녕을 도모하는 데 급급하다. 현정권창출의1등공신 정 모의원, 현임 대통령의 형으로, 실세중의 실세로 통하는 양반이, 권력남용,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쇠고랑을 찾다. 웃겨도 보통 우끼는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애써 잡은 권력을 한순간에 망친는 금력(金力)에 눈이 어두웠을까? 금력의 유혹인가 권력의 유혹인가?
어째, 역대 대통령 주변은 권력말이나 권력이 넘어가고 나면 하나같이 문제가 터진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은 본인이 쇠고량을 찾고, 그 후 김대중, 김영삼 전대통령은 주변인사 친인척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찬 것이다. 노무현 전임대통령 시대에는 주변의 小利적 처신에 분노한 것인지, 스스로의 약점 노출에 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는지 '죽음도 자연의 한조각'이란 의미심장한 글귀를 남기고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다.
<탐욕의 극한을 보여주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들>
한마디로 깨끗한 정권이 없었다 그말이다. 지저분하기는 이 정권 역시 더하다. 심지어, 대통령 임기도 끝나기 전에 친인척이 감옥을 가는 수난을 당했다. 하지만,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만한 식자들은 에견한다. 어째 그렇게 과거학습능력이 떨어지나? 과거로 부터 배우는 것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전임 정권들의 말로를 수차례나 겪어 오면서, 똑 같은 더러운 짓을 버리지 못하다니...하나같이 욕심이 과하거나 권력욕에 눈이 먼 멍충한 놈들임에 분명하다. 자신이 쇠고랑이를 차는 것이야 달게 받아야 할 이이지만, 자기로 인한 휴유증이 순진한 국민들을 골뱅을 들이는 단초가 될 터이다. 소인배들이 이런 단초를 그냥보고 지날 것인가? 늑대처럼 달겨 들어 넘어진 맹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리듯, 스스로의 하자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이 상황을 두고두고 씹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넘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모당의 경선룰 개정문제만 해도 역시 그렇다. 도대체, 대의은 실종하고 소리만 판을 치는 형국이다. 모 대통령예비후보 유력자를 두둔해서 하는 말이 절대아니다.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을 꿈꾼다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국면을 위해 규칙 변경을 하자고 떼를 쓴다. 원칙은 지켜질 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힘이 되는 것이다. 시류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것이야 말로,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게 룰을 정할 때는 언제고,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바꾸자고 난리다. 그리되면, 국가대의는 뉘집개짖는 소리정도로 치부하고, 소속집단의 보호에만 급급한 이석기, 김재연의 경기동북연합이라는 집단의 小利적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종북좌파집단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에 대해 비난의 핏대를 올리던 당에서 이번에는, 공천 불법후원금 파문이 불거져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공천헌금 제공의혹을 받는 그당 현영희 의원이 부산지역 몇몇 의원과 총선 출마자 5명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등 불법 후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진상파악에 나섰다는 것이다.
<공천불법헌금문제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나오는 현의원>
왜들이러나?
스그벌, 도데체, 믿을 넘들이 없다. 깨끗한 넘들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깨끗하고 믿을 만한 난 사람들이 나서지 않아서 그런가? 검찰이 손을 못대니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가?
진정으로 "봐라 나는 깨끗하지 않는가?" 자신할 자신이나 배포가 없는 것인가?
오늘(2012년 8월9일) 신문에 의하면, 대정전방지를 위해, 요 며칠 동안에 2,400억원이 날라 갔다한다. 불가마 더위가 가시기 전에 휴가가 끝나고 대기업들이 속속 조업에 복귀하다보니, 전력 수요가 늘어 조업정지대신 보상으로 지불되어야 할 돈이란다.만약 2,400억원이라도 처넣어 전력수요를 감소시키지 않으면 작년에 한차례겪은 대정전 사태나 그보다 심한 사태를 각오해야 하나니!
, 2012년 8월9일 현재, 우리나라 전력공급능력이 7,639만Kw, 2012년 8월 9일 17시 40분 현재부하가 7,138만 kw,전력 예비율이 7.8%이라 하다. 이 전력예비율이 바닥이 나는 순가간이 대정전의 시작이다. 전력의 Peak시에는 7.8%예비율이 별거 아닐 것이다.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국민은 더워 죽을 지경이니, 에어컨이고 뭐고 틀어제끼니, 정부와 한전은 이 대정전을 막으려고 필사적이라 한다. 오죽햇으면 2,400억원의 돈을 들여야 했겠는가?
세상에, 경제성장이 3%이하만 떨어져도 불황으로 실업자가 늘고, 세상이 파탄날 듯하는 데, 3%씩만 몇년 성장해도 전력수요는 그 만큼 늘어날 터, 17:40분이 아닌, 피크치에는 몇년이 아니라 당장에 문제가 되지 않겠는가? 요행이 이번여름은 돈으로 막았다, 여름보다 더 심하다는 겨울 Peak기간에는 또 어쩌리? 해마다 얼마나 대정전 방지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가?
전력공급능력 7,639만 kw의 예비율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성장 즉 지속적인 발전수요증가 1%에 대비할려면, 대략 원자력 발전소 1개의 발전요량에 해당하는발전소의 건설이 이루어 져야한다.
10%정도의 전력 소비량이 증가한다면 경제 성장률이 5%정도 오르게 됩니다. 역으로 보자면 5%의 경제 성장을 했다면 10% 정도의 전력 소비량이 증가 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이에 따라서, 5%의 전력 공급 여분으로는 2.5%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습니다.
7,639만 kw면, 영광원자력 발전소 100만 kw 76개가 필요하다. 현재는 우리나라는 21개의 원자력 발전소와 나머진ㄴ 화력, 수력이다. 예비율을 유지하면서
'원전밖에 대안이 앖다'
'원전은 죽어도 안된다'
차라리 성장을 하지말아야지. 저성장이나, 성장이 반토막나도, 큰 부담없이 살아가는 문명운동,'슬로우시티 운동'이 그것일까? 아니 경제규모가 반토막이 나도, 원시사회, 아수라세계로 회귀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문명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아ㅏ다 장기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 사회, 각게각층에서., 명분이 있다면, 명분이 훼손되지 않도록, 대의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 큰길을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가는 그런 처신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예의의 실종!
한국사회도, 1가구 1자녀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되었다. 언제인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는 맬더스 인구론을 언급하며, 산아제한에 거품을 물던 시대가 아직도 생생하다. 반세기, 한세대가 가기전에, 인구가 늘어나지 않아서 나라망쪼가 들었다고 난리이다. 인구수는 국력을 대변한다나?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의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인구의 감소를 지연시키기는 하는 데, 노인인구의 증가, 부양인구의 증가로 인해, 예사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닌 것으로 대두되고 있다. 더구나 , 독신가정이 늘어나면서. 이전의 대가족제도하에서는 상상도 못할일들이 지금일어 나고 있는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한자녀에 올인해 온 오래전부터의 자녀과잉보호, 이로 파생되는 교육문제등에, 겹쳐서, 얻듯 듣기에 대의명분이 뚜렷하게 느껴질 듯한 인권운운하는 세태로, 애들은 온실화초처럼 겉으론 멀쩡하나 나약한 심지의 주인공으로 훈육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운운하다보니, 참을성 없고 버릇없는 것도 개성이려니 하고 방치되고 잇는 것이다. 이러니, 누구의 자식이랄 것도 없이, 누구의 강의처럼 '좆'같이 버릇없는 넘들만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갈통에 피도 안마른 녀석들에게 무슨 인권이고, 개성이겠는가? 대갈통에 피가 마르고 제대로 철이 들때까지는 적절한 훈육과 체벌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소신이다.
'君師父一體' 라는 고래의 훈육방식은 내동댕이쳐진지 오래돠었다. 학생이 선생을 패도, 권력과 힘을 가진 부모 때문에 뒤에서 덮기에 급급한 망할 놈의 풍조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한다. 오죽 못났으면, 학생에게 맞을 까도? 도 싶지만, 사회전체, 나라의 미래 운명이 이런 교육에서 부터 좌우된다하여, 교육을 국가 백년대계로 접근하던 과거의 교육방식은 이제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배척되고, 오로지 배꼽에 피도 안마른 녀석들의 비위나 맞추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교육을 받은 젊은 넘들의 건방이 하늘을 찌르고, 주변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음식점 구석에, 태연히 담배꼬나물고 잇는 여고생, 어른들에게 삿대질 해대는 어린 넘들, 선생을 패는 학생,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정에서,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되어 가고 있다. 망조의 징조라 할 것이다. 그러니, '古來로 도덕적 기준이 되어온 예의', 부모간의 예의 친구간의 예의 스승과 제자간의 예의, 상하간의 예의 동료간의 예의, 사회 구성원등간의 예의, 그 예의라는 것은 일단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게된다. 예의가 없음이 드러나면, 인간성의 바탕을 보기 때문이다. 또 예의 없음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평생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예의의 사회일 수록, 그 불예의, 무례로부터 받은 상처는 깊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 예의가 실종되다보니, 불예의, 무례도 태연히 저질러진다. 이미, 누구에게나, 사회전체가 만성이 되어 간다. 그것고 개성과 다양성, 개개인권의 존중이라는 허울좋은 명분때문에. 가히 그 예의의 실종의 시대라 할 것이다.
정의의 실종!
제작년에 '정의란 무었인가?' 이런 제목으로,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 'JUSTICE(정의)'를 바탕으로 쓴『정의란 무엇인가』가 소개된 바가 있다. 대충 서평을 차용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샌델교수는 책을 통해서, 자유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인 때도 있는가, 도덕적으로 살인을 해야 하는 때도 있는가 등 우리가 시민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질문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면서 메세지를 던진다.
샌델의 강의는 미국의 이야기지만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도 크다. 미국이 겪은 민주주의의 진통을 한국사회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형 슈퍼마켓, 종교의 자유, 집단명예훼손, 애국가 부정 발언 등처럼 한국이 앓고 있는 민주주의의 진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샌델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미국식 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런 불만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공화주의'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부에서는 '본연의 모습을 잃은 민주주의'를 뜻하는 '절차적 공화정'의 헌법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미국 헌법 판례에 숨은 많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민주주의의 큰 흐름인 '공화주의'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왜 이 둘은 그토록 싸워왔는지 들려준다.
2부에서는 미국 정치와 경제의 역사를 살피면서 공화주의가 어떻게 쇠퇴하고 자유주의가 융성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이어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고 미래의 민주주의 방향을 제시하는 3부가 계속된다.
책의 제목에서 '불만'이란 단어는 본래의 민주주의의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자유주의로 치닫고 있는 시대에 대한 실망 또는 걱정을 의미한다. 샌델은 묻는다. "우리는 과연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가?"
이처럼, 애써 전문가의 강의를 듣지 않드라도, 정의는 인류문명을 지탱하고 발전시켜온 원동력임을 안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도덕.윤리적, 관습의바탕위에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법체계에 있다 할 것이다. 법치주의란 국가가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제한 하거나, 새로운 의무를 부과할 때, 객관적 기준으로서, 법에 의하거나, 그에대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이라 한다.
우리사회에 그런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다 할 수 있는가? 시도 때도 없이 터저나오는 사건사고들, 정치지도자, 권력자, 부와 권력을 모두 검어진 자들은 그런대로, 빈털털이들은 그런 대로 각계각층에서 법을 우습게 보는 현상이 다반사 일상화 되어 있는 것이 한국 현실이다. 심지어 법을 만든다는 나으리부터 돌아서면 법을 어긴다. 그러니 힘없이 법앞에 주눅들고 있는 서민들이, 그 법을 법답게 대접하겠는가? 눈치보고, 마지못해 법을 지키는 시늉만 할 뿐, 어쩔 수 없이 지킬 수밖에 없으니 지키는 것일 뿐. 꼬박꼬박 원천징수해가는 데, 세금안낼 수 없는 것 아닌가? 대신에, 자진신고하는 부류가 얼마이겠는가.더구나 제대로 신고하는 부류가 얼나나 되겠는가? 그러니,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면, 겉으로 지키는 척, 이미 그 정의는 실종된지 오래다. 정의는 무슨 얼어죽일 정의?
법 정의 보루라는 사법기관역시, 국민의 감정하고 동떨어진 결론을 내리기 부지기수다. 도대체 정의도 여러갈래, 코에걸면 코거리, 귀에걸면 귀걸이식 정의란 말인가? 나라의 법이 존재하고, 법의 잣대로 공정하게 처리하면 되었지, 또 무슨 특검이다, 국정조사다, 국정감사다, 동일 산에 두번, 세법 중복 조사을 한단 말인가? 제대로 된 결온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겟는가? 납득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니, 그 런 떼거지도 문제지만, 떼거지를 쓰는 빌미를 제공하는 측도 문제이다.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 그런 사고가 팽배한 한국사회다. 공정한 경쟁이 정의하면, 그런 정의라면, 정의는 애초부터 우리 사회에 없었다. 이권청탁, 선거부정등이 어제 오늘 일인가? 기존의 제도, 사회를 진보시킨다고 출범한 모당의 비례대표선발 부정사례에서 보듯이, 그 소수 또레집단의 이익을 위해, 전체 집단이 개피를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런 부류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민의의 실종
그러니 국민의 소박한 뜻이 반영이 되겠는가? 시끌벅적, 첨예 하게 대립하는 정쟁으로, 정작 국민들의 소박한 뜻을 법제화하고자 하는 다수의 선량들의 활동이, 가려진지 오래이다. 언제까지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구설수에 오르고, 쇠고랑을 차는 사례를 봐야사는가?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떠벌리는 넘들, '나도 그런 그런 좇같은 세상 한번 만들어 보고 싶소' 하는 것과 다름 아닌 식상한 구호로 들린다.
'국민의 깨끗한 한표' 를 행사 민의를 보여줍시다' 선관위의 독려 끝에, 뽑혀진 대표자들이 저지르는 사건사고는 민의를 악용한 악질적인 법죄아니겠는가? 국민혈세로, 그런 넘들을 뽑으라고 권장하고, 독려한 선관위는 책임안지나? 속되게 말해서, '선관위관계자양반, 귀하께서 이런이런 후보들들 중에서 우리 꼴리는 자를 선택하라매?, 그래 나 선택했어. 그런데, 그자들이 약속위반, 이러쿵저러쿠 사기를 쳐서 쇠고랑찼대, 그런께, 자판으 깔아준 당신 책임은 없어?' 이런 문책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일반 서민이, 오직 하소연할 데가 없어면 이러겠나?
선관위 당신도 할 말 있겠지, '그러니까, 4~5년 마다, 마음에 안들면, 표로서 응징하고, 바꿔주면되지, 선거는 하러 가도 않는 양반이, 따지기는 되게 따지네!' 라던지, '선거결과는 당신들 책임이지, 왜 자판 깔아준 네게 따져? 도장찍은 당신이 책임져야지'
아무리 고르고 골라 찍으면 뭣하나? 고르고 고를 인물도 없고. 어디 한번이라도 사건 안저지르는 자들이 있어야 말이지. 한두번 속았나?
하의의 실종
내가 시골서 다니던 초등학교 4~5학년이면 60년대중반이지 싶다. 당시에는 최 첨단 유행 복장중의 하나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이었다. 대부분 도회에서 공부께나 한 젊은 여선생들이나 다방의 아가씨들 복장으로, 이런 복장을 시골의 비포장 신작로를 몇걸음 뗄라해도 본인들도 예사 고역이 아니였을 터인데, 유행의 첨단에 선다는 자부심이였을까, 누구들 말마따라 아랬도리 바람들이고 싶어서였을까 온 시골동네에 신선한 기풍을 진작시킨 긍정적인 처신도 있었지만, 동네 어르신들로 부터 ' 처녀가 멀건 허벅지를 내놓고, 저런 싸가지 없는 화냥년봤나? ' 하며, 풍기 문란의 주범으로 대놓고는 말못해도 뒤공론이 분분하던 때였다.
화냥년은 환향여(還鄕女)의 변형으로, 병자호란시 떼놈들에게 잡혀간 처자들이 석방되어 조선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還鄕), 고루한 양반들은 이들을 떼놈들에게 몸을 버린 환향녀라 천대하던 풍습에서 화냥년으로 변질됐다하니, 미니스커드, 하이힐로 비포장 도로를 걸어가니 삐툴비툴 거리며 오죽 엉덩이를 본의 아니게 흔들었을까? 눈 앞으로 희멀건 다리에 방덩이를 흔들고 지나가는 모습에 시골의 고된 농사일에 열이 올라 있는 촌부들, 오죽 복장을 뒤비지게 하였겠는가? 당시도 이런 손가락질에는 아랑곳 않는 용감한 여성들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당시에는 방과후나 방학이면, 당번을 정해 마루바닥에 쌓이는 먼지를 걸레로 훔쳐내는데, x 만한 사내애들은 기를 쓰고 청소 당번을 자청한다. 왜냐? 엎드려서 마루훔치는 체 하며, 미니스커드 입은 젊은 여선생님 처마밑을 볼 수 있는 허가증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유행을 따르지 못해 안달이나는 것은 젊은 이의 특권이겠는데.이로 보건데, 당시부터 하의를 벗어던지고자 하는 노력들이 부단히 이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요즈음의 하의 실종은 이미 근대화 때부터 발전해온 터일터인데, 요즈음 내눈에는 하의실종의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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