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꽃이 피고, 새순이 돋는다,
새 생명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자연의 질서이다
때가 되면
꽃이 지고 낙엽지는 것도
자연이 극도의 무질서로
향해가는 자연의 질서이다
'무질서한 질서'
우주 최상의 질서는
'무질서'
무질서의 극한은
태초이전, 태초의
우주의 모습 아닌가?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기전
물질과 에너지의 존재와 움직임에
아무런 구속과 한계가 없는 상태
시간과 공간이 태동하고
물질과 에너지가 발현되는 것은
무질서가 낳은 자연의 질서였다
태어난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무질서의 극한에 다가가는 것
역시, 자연의 질서일 뿐,
질서와 무질서를 반복하는 것
우주의 태동, 경과, 소멸
역시 무질서한 자연의 질서이다.
"우리는 왜 삶으로부터 죽음을 분리하여 왔나?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결코, 떼어내거나, 갈라 낼 수 없다"
힌두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그의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에서 말한다.
삶과 죽음은
질서와 무질서를 반복하는
자연의 질서에 다름아니다.
생명의 탄생, 생명의 삶은
극도의 질서로 나아가는 현상이고
생명의 죽음은 그 질서가 해체되고
극도의 무질서로 회귀하는 고정이다.
우리가
4차원 시공간이상의
세상을 볼 수없다하여
이 세상이 4차원의 시공간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4차원적 사고에
닫친 존재일 뿐이다.
삶과 죽음이
4차원 시공간 이상의
다차원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우리 존재의 일부'라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마지막 일기'에서 한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제
나이 칠십부근까지 살았으면
많이도 살았다.
얼마지 않아
인생의 황혼녘 노을이 걷히고
곧 밤이 오는 것은
꽃이 지고 낙엽지듯
시도때도 필요없는
극도의 무질서인 우주의 본원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 또한
자연의 엄중한 질서이니
언제 가더라도
아쉬워할 필요없고
굳이
살아있을 날이든,
부(富)든, 권력((權力))이든,
자존심이든, 자부심이든
아둥바둥,
웅켜지고, 웅켜질려고
살 필요는 더더욱 없다.
물흐르듯
사는 데로, 주어진 환경대로
살다가면 될 것을...
걸레 스님으로
알려진 중광스님
묘비명으로
"괜히 왔다간다"
했다하나
괜히 오고가는 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자연은 시간을 재단하지 않고,
꽃과 낙엽은 오고가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인간만이 구분할 뿐이다
애써
질서와 무질서를 구분하고
생과 사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만의 쓸데없고 부질없는
욕망의 넉두리에
다름아닌 것이다.
2022년 5월
靑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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