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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아! 마지막 46초

by 靑野(청야) 2021. 10. 22.

2021년 10월21일, 정각17시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누리호가 3단로켓발사체에 실려 발사되었다. 발사체는 약 16분조금 넘게 수직상승하며, 3단 2단 1단 발사로 이어지면서 인공위성모사체를 우주로 보내, 원하는 괘도에 올려야 되는 데, 마지막 모사체의 위치정착에 실패했다고 전한다. 발사체의 제어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데, 마지막 고도로 상승시키기 위한 추력부족이 아니가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어제, 발사장면 중계를 지켜보다 막판에 1분정도 빨리 끝난다는 자막이 나오기에, 아차, 막판에 문제가 있는 갑다. 얼매나 정밀하게 계산하고 예측하고 제어한 시간인데, 1분정도? 무언가… ’ 했는데,

 

‘엔진연소마지막 46초모자라목표속도못 미쳐궤도진입못해’라는 기사가 떳다

역시 마지막 궤도 안착에 실패라는 결과로 가시화되었다. 이를 대비해 모사체 발사를 한 것이니, 이보다 더한 비싼 경험이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실패경험을 더욱 잘 대비해서 내년5월 실물발사시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는 데, 전화위복의 약이 되지 않을 까 싶다.

때문에, 이번에 발사된 누리호, 3단로켓을 발사체로 해서 위성모사체를 위성궤도에 올려 놓는 것을 100%가 아닌 아마도 95%정도의 거의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니. 세계가 놀랄 위대한 기술진보이다. 이만큼의 성과만으로도, 항공우주연구원과 관련 기관업체들의 엄청난 노력과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돌이켜보면, 항우연의 모태인 KIMM항공기계실 태동기 전후를 짐작할 수 조그마한 인연이 있있어 머나먼 과거의 회상 한조각을 꺼집어 내어 본다.

 

1982~3년경인가 보다.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근무당시이야기이다.

 

항공사업본부였던지, 대우항공으로 별도 법인이지 가물가물 하다만 F16 동체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방위산업부서에서 군복무대체 근무중에 개인적으로 공작기계사업본부의 과제중 하나에 도전을 한 기억이 난다. 이후 그 과제결과를 본부장 앞에서 발표 했을 때, 공작기계사업본부 선배로부터 꾸중을 들은 기억이 난다.

 

“니 때문에, 우리 구중 많이 들었다.”

“방위산업근무하는 놈이 아르바이트로 이런 연구를 했는데, 니들은 도데체 뭐하노?”

 

이러면서 조짐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차,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후 그 연구의 결과와 계속 연구를 위해 공작기계사업부서로 옮기게 된다. 아마도 그때가 1983년경?

 

그 연구는 구조물이나 회전체 동력학적 해석을 위해, 당시 서울공대 교수(뒤에 총장을 역임하였다)과 KAIST석사에 외국유학을 하고 막 돌아온 선배를 기술고문으로 모시고, 창원에 있던 KIMM의 CAD(아마도 ANVIL 4,000) 설계 용역을 주고 그 결과를 받아서 시제품을 만들고 검증을 하는 연구를 한 것이다. 그 시제품은 선반이라는 공작기계의 주축의 경이 80mm기준으로 회전수가 4,500rpm(revolutions per minute, 분당회전수)에 정체되어 있던 것을 6,000rpm 이상으로 높이는 연구였었다. 당시 일본, 독일등에서는 6,000rpm 이상의 선반이 출하하고 있있지만, 한국은 4,500rpm에서 수년체 정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반은 공작물을 회전시켜 원통형으로 만드는 장비로 회전이 빠르면 깎기는 공장물 표면이 거울면(mirror surface)에 가까워 져서 별도 연마공정을 생략할 수 있고, (초)정밀가공이 가능한 는 기술연구였다. 깎이는 부분이 거울면이 되기위해서는 고속회전이 되어야 하는 데, 회전축경이 클수록 회전에너지가 커서 흔들림이 발생하기 때문에, 직경이 80mm수준의 축의 고속회전에서도 흔들림이 없도록 설계아이디어와, 동력학적 해석과 설계대로 만들어 내는 가공기술이 핵심이였다.

 

이렇게 해서 개발한 고속회전체 땜에 군복무 대체근무를 끝내고 부서를 공작기계 연구부서로 옮겨, 연구를 마무리하고 그 공로로 부서장은 대한기계학회 백봉기술상을 받고, 본인과 같이 연구했던 부하직원과 같이 학술논문으로 등재된다.

 

검색해보니 당시 논문이, 타자로 치고, 미.적분 공식이 들어간 내용이던데, 지금은 그에 대해 가물가물정도를 넘어서서 머리속이 깡그리 공의 세계로 돌아가 있다.

 

그 때문인지, 이런 저런 사유로, 그 연구로 눈으로, 머리로 접해본 동력학적 해석과 CAD( Computer Aided Design)경험 밖에 없는 내가, 그나마, 그런 경험자가 내뿐이라니, 갑자기 항공기 만드는 공장으로 불려 가게 된다.

 

당시 현대자동차 연구소가 울산공장내에 있었는데, 당시 최신,최고급 CAD도구로서 CATIA 버전2.2아니면 2.3이 29대 있을 때였으니 얼마나 초창기인가? 현대차 울산연구소를 가 볼려고 같이, 연구하던 기술고문으로 모시고 그 고문의 빽(?)으로 울산연구소입구까지는 갔는데, 그분은 입장할 수 있었지만, 나는 거부당해, 주변구경만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때 연구소내부를 다녀온 그 고문한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현대차연구소가 운영하는 CATA 대수는 총 29대….지금은 CATIA Version이 6? 대수는 아마도 수천대 이지 싶고, 이를 구동하는 모니터나 PC는 또 어떤가? 제2차 산업혁명 말기나 3차산업혁명 태동기였을 당시와 제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이싯점에서 보니…

 

내가 근무하게 된 항공부서에서는 CATIA 4~5대인가 있었는가 보다. 졸지에 이 부서를 관장하는 이른바 CAD/CAM 부서 책임자가 된 것이다.

 

당시 F16를 도입하면서 비행기 부품 일부를 한국에서 생산하는 조건으로 도입한 모양이다. 삼성항공, KAL, 대우항공(뒤에 대우항공으로 독립회사가 된다)이 나누어서 생산하게 되는 데, 대우는 동체를 생산.조립하였다. 그러니 CATIA같은 Design수단이 없으면 경험도 없는 한국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비행기 설계는 미국비행전문업체에서 설계한 것이지만, 이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이 설계치(CAD도면)에서 가공가 측정 정보를 추출하여야 한다. 이 수단으로 당시 CAM과 APT(Automatic Programing Tool) 과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이 사용되었다

 

항공부서로 끌려가서는 CAD/CAM은 몇몇의 유능한 직원들을 거느리고, 나도 죽을둥살둥 공부를 했지만, CMM은 또 뭔가? CAD로 설계된 자료에서 가공정보를 얻고, NC장비에 입력할 프로그래밍(CAM과APT)를 짜고, 이를 이용해 가공한 물건을 측정(CMM)하는 일련의 작업을 지금으로부터 약40년전에 수행하였으니…

 

지금의 비접촉 측정 수단(디지털카메라, 스캐너, 센서)들이 너무나 많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당시는 비접촉식 측정수단이 전무한 시절이다, CMM은 끝에 작은 구(Probe)로 물건의 표면을 접촉하여 측정하는 수단으로 당시 측정의 고속화나 데이터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였다. 특히 비행기 동체 표면은 유체역학적 해석에 기초하여 공기저항을 줄이는 형태로 이른바 자유곡면(Free Surface)나 자유곡면에 가깝다. 자유곡면은 다차방정식의 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하학적 도형의 중접으로는 정확한 도형을 그릴 수 없다. 근사적으로 정형화된 도형의 중첩면으로 이루어지는 형태를 이용할 ㅅ 있기는 하다. 그래서 일반 측정으로는 연속좌표측정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CMM이라는 수단을 이용했다.

 

어쩌다 항공기동체 만드는 CADM/CAM책임자가 되었다만, CMM은 어쩔 것인가? 품질부서원이 CMM기 도입해사로 가서 1달동안 연수를 받아야 운영이된다 해서 품질부서원만 보내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고 오지 못하면, CMM기를 사용못하거나, 다시 독일 기술자를 초빙하여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니도 같이 가서 교육받고 와라’ 명령을 해서, CMM연수를 가게 된다. 아마도 Obendorf라는 동네이지 싶은데, 시골동네라 저녁이면 맥주집에서 살고, 주말이면, 인근 스위스로 돌아다녔던 기억이난다.

 

어느 주말, 알프스의 융플라우와 Interlaken지역을 다녀 오다 만나서 밤늦게,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여 뒷골목에서 밤늦게 까지 술을 마신 기억이 난다. 그 일행 중 한명이 조선일보 만화연재하던 ‘나대로 선생’의 작가인 곱슬머리 이xx 만화가였다. 당시 사진과 이xx만화가의 사인이들어간 만화한장을 받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중, 갑자기 어디 다녀오겠다 하고 다녀오는데, 한참만에, 껌을 쩍쩍 씹으면서 돌아온다. 다른 일행중 누군가가 말했다. 이 주변이 유명한 취리히의 588같은동네라고…

 

같이 CMM교육을 받고 돌아온 품질 부서원, CMM을 다룰 줄 모른다. 그래서 졸지에 CMM운영자가 되었다. 당시아마 과장 급이였지 싶은데, CMM측정일을 3개월간 맡아 하면서 쌩고생을 하다 그 품질부서원을 교육시키고, CMM업무를 졸업한 셈이다. 본부장 입장에서는 나를 같이 보낸 것이 ‘신의 한수’ 택이였던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네, 당시 KIMM(아마 Korea Institute of Machine & Materials)은 재료부문 연구와 기계부문 연구가 같이 창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재료부문은 창원에, 기게부문은 대전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 KIMM에 ‘항공기계실’인가 ‘ 생겨 항공기계연구의 걸음마를 시작할 때이다. 인언은 수명정도? 그 때, 비행기 엔진의 앞에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면서 바람을 유입하여 냉각을 시키는 블레이드? 아마도 이걸 개발하는 데, 실물설계 전초연구로 아주 소형으로 만들어 실험적으로 유동현상을 해석, 측정하는 연구를 하였나보다. 그 실장(항공기계실)이 최oo박사였는 데, 어느 날, 날 찾아왔다,

 

‘요거 좀 측정해주소’

 

아주 작은 블레이드 축소형이다. 표면이 자유곡면이라 일반측정기로는 측정이 안된다. 요새 같으면, 3D 스캐너를 이용하면 간단히 측정하고., 설게치와 비교평가를 할 수 있지만, 당시로는 미지의 기술이였다. 그래서 날 찾아온 것이다. 하루내지는 밤을 세워 측정을 해준 기억이 새롭다.

 

90년대말 IMF를 거치면서, 대우항공, KAL, 삼성항공으로 나누어 져 있던 항공회사들이 KAI(한국 항공우주산업)으로 통폐합되고, KIMM의 항공기계실은 오늘날 항공우주연구원의 모태가 되어, 5.5세대급 4.5 세대 전투기인 K-21, 그리고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인공통신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쏘아 올리고 마침내 2021년 1021일 오후 4시 자체개발한 3단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발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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