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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철학.에세이.한시.기타자료/유익한 글모음

이상의 오감도

by 靑野(청야) 2021. 10. 14.

이상(李箱)

 

 

본명 : 김해경(金海卿)

 

1910년 서울 출생

1924년 보성 고보 졸업

1929년 경성 고등 공업 학교 건축과 졸업

1930년 [조선]에 소설 <12월 12일>을 발표

1931년 조선 미전(朝鮮美展)에서 <자화상> 입선

1934년 구인회에 가입

1936년 동경행

1937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일경에 체포, 감금됨

1937년 4월 17일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사망

 

시집 : [이상 선집](1949), [이상 시 전작집](1978)

 

 

 

141. 오감도(烏瞰圖) : 시 제1호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오.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조선중앙일보], 1934.7.24)

 

 

“모든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소리쳤던 이상. 만약 우리 문학사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땅의 문학은 참으로 무미건조하였을 것이다. 이상을 현대시의 기수(旗手)라며

천재적 시인으로 높이 평가하는 평자(評者)가 있는가 하면, 당시 일본 문단에 유행했던 시경향의 단순한 모방일 뿐이라며

낮게 평가하는 평자도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쪽의 평가를 받든지 간에 그는 분명 ‘이상(異常)한’ 시인이자 소설가요,

수필가로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20세기의 정신으로 19세기의 현실을 고민하던 그가 30회를 예정하고 2천 편이 넘는 작품에서 골라냈다는 30편을 당시

[조선중앙일보] 문화부장으로 있던 이태준에게 넘겨 발표하게 한 이 작품은 게재 첫날부터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와

비난 투서로 인해 결국 15회로 중단하고 말았다. 이렇게 발표시부터 문단 내외의 주목을 받아 온 그의 시에 대해 많은 문학

연구가들뿐 아니라 심지어 수학자나 정신과 전문의까지 연구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속시원히 설명해 주지 못할 만큼

그의 시는 난해하기만 하다. 어쩌면 정신병자의 장난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시는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등 기존

문법 질서의 파괴와 숫자, 기호, 도표의 사용으로 인해 더욱 그 의미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모든 시의 미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 형태를 취하는 일종의 초현실주의(sur-realism)*, 또는 다다이즘(dadaism)* 경향의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상태의 도면을 일러 ‘조감도(鳥瞰圖)’라

하지 ‘오감도(烏瞰圖)’라고는 하지 않는다. 연재시 신문 조판 과정에서의 실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이상한 시를

쓴 이상이고 보면 능히 제목부터 의도적으로 국어 사전에도 없는 이러한 단어를 시의 표제로 삼았을 성싶다.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조감하고 있는데, ‘조감도’를 ‘오감도’로 바꾼 의도가 무엇

이든지 간에 나타난 현상만으로만 보면, 풍경을 조감하는 시적 화자가 자신을 새가 아니라 까마귀와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이자 불길한 새의 표상인 까마귀가 아해들이 질주하는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이

작품은 곧 자기 풍자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내기란 매우 힘들지만, 표면적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전체의 내용은 크게 4단락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첫째 단락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한다.

둘째 단락 : 13인의 아해 모두가 무섭다고 한다.

셋째 단락 : 그 중의 어떤 아해가 무서운 아해든, 무서워하는 아해든 상관없다.

넷째 단락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서 먼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13’이라는 숫자이다. 이것의 의미는

(1)당시 우리 나라의 도(道)가 13도였다는 것으로 식민지 조국을 상징

(2)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를 상징

(3)무수(無數)의 상징

(4)‘13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로서의 상징

(5)일종의 국외적(局外的) 성격을 띤 사물을 상징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 작품에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오감도’의 까마귀의 불길함과 연관지어 볼 때, 이 13이라는 숫자도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13인의 아해 모두가 ‘무섭다’며 질주하는 것은 공포심 때문이다. 아해들이 질주하는 길이 막다른 골목이기에 그들이 공포에

떤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연에서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상관없다고 한 것을 보면 아해들의 공포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공포는 곧 불안에 가까운 것으로 도로를 질주하는 13인의 아해는 결국 불안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질주하는 행위는 자신들의 정체 모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불안감을 갖고 있는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까마귀가 내려다 보는 풍경이란 더욱 불안하고 음산한 느낌까지도

준다.

그런데 질주하는 13인의 아해 중, 무서운 아해나 무서워하는 아해가 몇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그것은 13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가 무섭고 누가 무서워하는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13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이자 무서워하는 아해라는 반어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무섭고, 무서워하는

사이가 되어 13인의 아해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는 존재요, 스스로가 불안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므로 질주하는 곳이 막다른 골목이건

뚫린 골목이건 간에 어디에서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도로로 질주해도 결국은 불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마지막 행에서는 13인의 아해가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건 불안에 떨며 절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그들. 이것이 바로 시인 이상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므로 바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고 상호 불신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안 의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13인의 아해는

맹목적인 자신의 삶을 향해 그저 질주할 뿐이다. 그 불안한 모습을 바라보는 까마귀 이상은 아마도 더욱 불안해하며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가슴 졸이며 살았을 것이다.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 고독을 막다른 골목으로 삼아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

상황을 보여 주고 있으며, 뚫린 골목으로 나타난 희미한 희망의 불꽃이라도 잡아 보려고 하는 현실의 위기 의식을 도식적으로

구도화한 이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참다운 인간 관계를 열망하는 시인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초현실주의 : 기성의 미학․도덕과는 관계없이 이성(理性)의 속박을 벗어나 비합리적인 것이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즐겨 표현하려는 예술 혁신 운동으로, 꿈과 현실, 지상과 천상, 의식과 무의식, 현상과 본질의 대립과 통일을 목표로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다다이즘에 이어서 일어났다.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쓰던 시의 기법에는 브르통(A.Breton)에서 시작된

자동기술법이 있으며, 그것은 꿈과 무의식의 내면 세계에서 들려오는 이미지를 그대로 기술하는 방법을 말한다.

* 다다이즘 :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루마니아 시인 차라(T.Tzara)가 중심이 되어 제창한 예술 사조로

기존의 모든 가치나 질서를 철저히 부정한 일종의 저항 운동이다.

 

 

 

142. 꽃나무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 꽃나무가 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 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 내었소.

 

([가톨릭 청년] 2호, 1933.7)

 

해설 생략

본 해설집의 완전한 내용은 [한국현대시 400선 1, 2](태학사) 참조.

 

 

143. 이런 시

 

 

역사(役事)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 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들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 처량한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가톨릭 청년』 2호, 1933.7)

 

 

이 시는 시인 특유의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표면적 주제 속에 시적 화자의 내면 세계를

감추고 싶은 욕망이라는 심층적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전편에서 제시되는 ‘커다란 돌’과 ‘어떤 돌’, 그리고 나의 관계를 바로 셋째 단락인 ‘작문’에서 나타나는 ‘그대’와 ‘나’의

관계를 통해 알레고리화한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다시피한 자아 분열 현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어도,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 분열의 형식적 반영물이라 할 수 있는 알레고리 수법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다.

먼저 첫 단락에서 화자는 ‘커다란 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셋째 단락의 ‘사랑하던 그대’를 알레고리화한 것이며, 그 돌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은 ‘그대’가 험난한 세파(世波)에 놓여져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단락의 ‘그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라는 구절은 연인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레 떠났음을 뜻하며,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

어갔을까’는 ‘그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음을 알려 준다. 셋째 단락의 ‘작문’은 이 시를 해석하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

한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에서 ‘커다란 돌’이 ‘그대’를, ‘내차례에 못올사랑

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에서 ‘어떤 돌’이 ‘그대’에게 생긴 새로운 애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마지막 단락

에서는 화자가, 떠난 연인에 대해 갖는 그리움의 마음을 자신의 연적(戀敵)에게 행여 들켜 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은 것으로 표출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들통날 것 같은 불안감

에 휩싸인 화자는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다며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시는 겉으로는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마지막 단락을 고려해 보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감추고 싶어하는 현대인들

의 자폐적 의식 세계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레고리(allegory): 풍유(諷喩), 우유(寓喩). 표면적인 이야기나 묘사 뒤에 어떤 정신적․도덕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비유로,

그 비유의 매개체로는 인물․동․식물 등 구체적인 사물이 이용되며, 이 때 일반적 사물도 모두가 인격적 의미를 내포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독재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은 대표적 작품이다.

 

 

 

144. 거 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가톨릭 청년] 5호, 1933.10)

 

 

 

이 시는 이상이 즐겨 사용한 거울 모티프가 그 중심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일상적 자아[현상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본질적 자아]

사이의 갈등, 즉 자의식(自意識)을 드러낸 대표적 작품이다(거울 모티프가 중심 구조를 이루고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는 이 시

외에도 <오감도 제15호>와 <명경>이 있다). 이 시에서는 자의식의 세계를 표상하는 거울을 매개로 하여 두 개의 ‘나’가 설정

되었는데, 이에 따라 전체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단락은 1~3연으로 거울 속의 자아를, 둘째 단락은 4~5연으로 거울

밖의 자아를 보여 주며, 셋째 단락은 마지막 6연으로 거울 밖의 자아와 거울 안의 자아의 관계를 드러내 준다.

이에 따르면,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거울에 의해 비추고 비치는 관계에 있으나, ‘내말을알아듣지못하거나’ ‘악수를모

르는왼손잡이’로 사사건건 반대며 서로 만나지 못한다. 모든 물체를 정반대로 비추는 거울의 본질상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는

두 자아의 공존과 함께 두 자아 사이의 단절과 분열, 갈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자아분열(自我分裂)의 모습

이다.

참된 자아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나는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 보고 ‘거울 속의 나’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가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고 악수도 받을 줄 모르는 자아임을 깨닫고 나서 그가 ‘진정한 의미의 자아’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

다. 그러나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또꽤닮았소’라 하며 두 자아 사이에 상대적 유사점을 발견하고나서 그 거울 속

의 자아가 참된 자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의식의 거울은 ‘거울 속의 나’를 만나 보게 해 주는 매체는 되지만,

참된 자아를 탐구하는 데에는 저해 요소임을 깨닫는다. 즉, 자의식의 거울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지만, 자의식의

거울 때문에 발견한 ‘나’가 참된 자아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지 못하는 갈등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때문에나는거

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라 하는 것이다.

정신 분석학적으로 본다면, 일상적 자아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자아관을 확보한다. 이때 자아의 통일성은

거울에 비친 상을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비로소 구성된 것이다. 즉, 자아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동일

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렇게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구성된 동일성은 자기 소외적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현상적 자아인 ‘나’와 자의식에 존재하는 본질적 자아인 ‘또 다른 나’의 대립과 모순을 통하여 참된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비극적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145. 지비(紙碑)*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작아서다리는짧고바른다리가아프니 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

사람처럼걸어가면아아이부부(夫婦)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무사(無事)한세상(世上)이병원(病院)이고꼭치료(治療)

를기다리는무병(無病)이끝끝내있다.

 

* 지비 : 이상(李箱)의 조어(造語)로서, 석비(石碑)의 돌을 ‘종이’로 환치한 것. 이로써 ‘기념(紀念)’에 대한 반어적 태도를 보여 준다.

 

 

([조선중앙일보], 1935.9.15)

 

 

해설 생략

본 해설집의 완전한 내용은 [한국현대시 400선 1, 2](태학사) 참조.

 

 

 

146. 가정(家庭)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

(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

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

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

듯매어달렸다. 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 제웅 : 짚으로 만든 모조 인형.

* 식구 : 여기서는 아내의 호칭.

 

(『가톨릭 청년』34호, 1936.2)

 

 

이상의 시는 대부분 행과 연의 구분은 물론 띄어쓰기까지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문장의 전통적 기법이나 의식,

심지어는 인생에 대한 상식적인 질서까지도 거부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적 배려로서 이상은 실제 생활에서도 그와 같은

다다(dada)적 경향을 많이 보여준 문단의 기인(奇人)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철저한 독백으로 자의식의 내면을 토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자의식적 관념을 드러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일상적 삶에 대한 사색을 통해 고립되고 폐쇄된, 생활 부재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다른 시들과 구별된다. 자신의 현실적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제목

에서부터 생활적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가정>으로 되어 있어 시인이 겪던 생활의 아픔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화자는 자신의 삶이 도무지 사람 사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문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게 됨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된다. 그런 화자에게 ‘밤’은 ‘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르’는 대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생활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갖는 강박 관념과 자책의 표현이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문패’를 볼 때마다 가장

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참으로 무력해짐을 느끼는 화자는 그럴수록 ‘제웅처럼자꾸만감해가’는 부끄러움을 갖게 된다. 자신이

비록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다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한 가정의 당당한 일원으로 생활하고 싶은 욕구로 ‘봉한창호어데라도한구

석터놓아’ 달라고 아내에게 말하는 화자는 곧 이어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처럼월광이묻었다’라며 날카롭고 냉혹한

이미지인 ‘서리’와 ‘월광’을 통해 비정한 현실 속에서 겪는 여러 가지 갈등을 토로하게 된다. 그리고 ‘병을앓는’ 것같이 가난에

시달리는 자신의 가정 형편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집을 저당 잡히는 착각에 빠지는 고뇌의 심경을 밝히지만, 고통에 굴복하기

는커녕 생활이 없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안열리는문을열려고’ ‘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리’는 노력을

보여 주는 생활인으로서의 진지함이 나타난다. 이 작품의 내면에는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화자의 모습이 배어 있는데, 이것은 <꽃나무>, <거울> 등에서 줄기차게 보여 주던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분열 현상을

화자의 자의식 내부에서 경험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라 하겠다.

 

이 작품에서 보여 준 건전한 생활인으로의 의식 변화가 그로 하여금 1936년 6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끌어 준 것으로

보이며, 아울러 그 해 10월 새로운 문학을 위한 재충전과 건강한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위해 도일(渡日)하게 한 기틀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창작 시기를 보면 ‘금홍’과 헤어진

이후이며, ‘변동림’과 결혼하기 이전이므로 작품 속의 아내는 ‘권순옥’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

으로 살아가는 일상인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아내는 허구적 존재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상은 27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온몸으로 살아간 시인이었다. 백부(伯父)의 양자(養子)로 입양되어 겪은 유년 시절의 독특한

체험과 가정의 파산으로 인해 미술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포기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기술자의 길을 선택한 소년

시절의 번민과 좌절, 구인회 가입과 폐결핵으로 점철된 실의와 절망의 청년 시절, 요양차 배천 온천에 갔다가 이루어진 기생

‘금홍’과의 비정상적 부부 관계나 그녀와 헤어진 후 여급 출신 ‘권순옥’으로 이어진 이상스런 애정 행각, 그리고 자신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고 사랑해 준 이화 여전 출신의 ‘변동림’과의 짧았던 정상적인 결혼 생활 ― 이러한 27년의 생애를 살면서 그는

총 90여편의 시를 남겼다. 이 중 절반 가량은 일문(日文)으로 쓰여진 것으로, 그는 모국어 의식도 지니지 않은 채 단지 기호

(sign)적 장치로서의 문학만 추구하였다. 그것이 시에서는 지금까지 본 것과 같은 전통적 시 형식의 파괴와 언어적 유희로

나타나고, 소설에서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사소설(私小說)의 창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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