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고나모, 마.. 묻어도 좋고 뿌려도 상관없따.
너거들 편한대로 조치해 다고-”
서토같은 경우는 자식을 비롯, 남아있는 자들에게
뚜렷히 남겨준 족적이나 반추할만한 추억이 별반 없으니
그들이 죽은 나를 발로 차서 굴리건, 태워서 강물에 뿌리건
그 어떠한 바램이나 이기심을 전할 자격이 부실한 사람이지만
옥자의 경우는 저와는 많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특히 빈이의 경우 어릴때부터 늦둥이로
아버지 혼자서 큰 사랑으로 키워온 자식 아니겠습니까.
그 정황상 아버지의 사랑과 정신을 많이 이어받은 인물이라 하겠지요.
따라서 최소 빈이가 마음이 내키면 언제라도 다가와서
돌아가신 아버님과 무언의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고저녘한 장소가 마련될 수 있다면 더 좋지않을까 합니다.
마치 서토가 때로 시골의 아버님 묘소로 발길을 돌리듯..
신앙인들에게 메카가 존재하듯 말이지요.
빈이에게 그런 선택권마저 박탈하는 일은..
암만 생각해봐도 너무 이기적인듯 하군요.
더군다나 곧 죽을 자가 말임미다.^^
내가 보내준 '어느공동묘지에서의 아침' 을 읽고
이처럼 서토거사가 심한(?) 나무람을 전해왔다.
그래서 내가 서토거사에게 변명비슷 답글을 보냈다
15년전의 내글에 서토거사가 깊이(?) 반응하고,
깨달음이 촉발되는 것 같아서 즈윽한 감동이 일고 있슴미다.
하지만,
석가가 예쁜 마누라가 미워서
마누라를 내팽개치고 출가를 했겠습니까?
깨달음은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현실의 집착에 머물면 그 깨달음마저 얻지 못하겠지요?
내가 그리 유언글을 남겨도 먼후일, 우리 빈이가
"아빠는 돌아갈때도, 잘랑척하네, 아빠 말대로 안해, 엄마옆에 묻을거야"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유언이나마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본 것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아즉도 글쓸 때 그 마음이 변치않고 있음이라...
지금도 언뜻언틋 마음의 갈등이 있는 것이,
나의 전 마누라가 받아줄지 모르지만,
전 마누라가 묻힌 곳 옆에, 내가 묻힐 자리가 있고,
지금의 마누라는 저거 전 남편 묻힌 곳 옆에 묻힐 자리가 있으니,
지금의 할매가 돌아가시면
할매의 전 남편 옆자리로 가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먼저 가서 내 전부인 옆에 묻히면,
지금의 우리 할매는?
공중에 붕 뜨지 않겠습니까?
그리되마
자식들이 알아서 전남편 옆에 묻어주겠지만,
얼마를 더 정들게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할매가 갈등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그건 내 부질없는 감상이고
내가 젙에 살아 있으마, 답하기 곤란하던 차에,
할배가 먼저 가삤으니
마음편히 나하고 '빠이빠이'하고
"전 남편묻힌 곧에 묻힐란다" 할란가?
어느날
이런저런 이바구끝에 슬그머니,
"할매야, 아무래도 니가 먼저 돌아가면, 전 남편한테 묻어줄께,
나가 먼저 돌아가모 ,
우짤래, 새로 우리둘이 보금자리 분양받아두었다가 그리로 갈까?
아니모 산에 들에 뿌려뿔래?
나는 화장해서 산에 들에 뿌려뿌라 하고 시픈데,
당신도 따라오던지, 전 남편옆에 묻히던지,
어느 쪽?"
하니,
"씰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밥이나 묵어라"
아아들이 알아서 할낀데,
그야말로 씰데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요
어영부영, 한 쿠사리 얻어먹고 그날은 넘어갔지만
그 숙제는 내 마음속에 미제로 남아있다.
전 할매랑 27년을 같이 살았고,
지금할매는 전 남편과 10여년 살고
나와는 4~5년정도 살고 있으니
두사람 밑에 자식들이 없으마,
'저동네 가서도 우리 둘이 살자' 하고
언약(?) 할 수 있겠지만,
각자 밑에 자식들이 있으니
그들이 알아서 할까?
그러기에는 무책임할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씰데없는 소리"가
"씰데없는 소리"가 아니 되도록
정리를 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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