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火星)의 대지와 하늘>
1.
2005년 1월 초,
지체높은(?) 지인분의 집안에 초상이 있어,
공동묘지에 간 적이 있었다.
영남알프스 동쪽의 신불산기슭,
'신불산추모공원'.
주변의 무덤과 비석 하나하나를
쭈욱 들러보니, 사연도 가지가지.
비석마다 한세상 나서 남긴
족적과 이력이 기록되어 있는 데,
읽다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하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
못다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애절한 남편의 사연,
세월이 흘러, 옆자리에는
그 사연을 쓴 당사자도
영면에 들어 있고,
국가에 충성하고 장렬히 산화해간
어느 용사도 무용담과
용사인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父정이 알알이 새겨진 비석,
그 아래 용사는 잠들고 있었다
젊은 나이의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의 단장의 절절한 심정을
기록한 비석하며,
<이미지 출처: 신불산 추모공원 홈페이지>
사연사연이 예사롭지 않은 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셀 수도 없는 수 많은
한 두뼘 공간의 무덤들이,
무언가 우리 속에 갖힌(?)
답답한 모습으로 다가오네.
년초가 시작되는 정월초,
한 겨울의 하늘은
차겁고 시리도록 푸른 데,
이곳에 묻힌 이들은,
누은 자리가 이리도 좁은 공간인지
비가 오는 지, 눈이 오는지,
봄이면 바라다 보이는 저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은 진달래하며,
여름밤에 폭풍우가 천둥번개와 함께
어떻게 휘몰아치는 지 알리 없고,
가을날 밤의 만월이 고고한 공동묘지 야경이
얼마나 외롭고, 을씨년스러운지,
겨울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인적 끊어진 산정의
암울하고 고독함을 어찌 알리요!
이 모든 것이
산 자의 감정이고 단상이겠지!
묻힌 이들이 분별이야 할까만은,
결국은 이승에 남은 이들에 위안이 되고자,
그 애끊는 심정을 비석과 봉분에 담아
같이 묻어둔 것일 터
그리하여,
묘지는 그 좁은 공간은
묻힌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을 위한 공간 일 수밖에.
이곳이 묻힌 자의 보금자리도,
몇 년인가를 이곳에 묻혔다가
또 몇 년인가를 1차에 한해서 연장하되
그 다음에는 화장(火葬)하여
또 어디로 이사를 가리요?
그렇다면,
이 곳에 묻힌, 이 좁은 공간에 묻힌
이들의 미래의 운명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의 영원의 세월은?
긴 밤 지새운 햇살이,
묘지마다 꽂아둔 꽃잎에 맻힌
아침이슬에 빛나는 데,
산者들의 가슴속에
웬지 모를 서러움이
알알이 아려온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마음이 숙연해지고 심상(心傷)하네.
옆에서 산 자와 묻히는 자의
이별을 통곡하는 소리에
공명이라도 해서인지,
햇살이 가득 퍼진 묘지와,
묘지넘어 멀리 아스라한
산 자들의 세상을 바라보노라니,
산 자나 죽은 자의 보금자리,
세상을 거쳐가는 모든 이들의 족적이,
부질없음이라,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생사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산다는 것이
찰라에 흔적없이 사라져가는 한조각 구름이요,
이슬같은 것일 진저,
이리도 좁은 공간에
애써 묻고,
애써, 묻히고자 하며,
또,
저리도 슬프하다니
이 넓은 우주천지에,
우주의 흐름속에
훨훨 자유로이
비가 되고 눈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고,
…
흙으로 돌아가
만물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돌아가신 이들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고
남은 자들에 대한
진정한 위안은
'그리함으로써 永生을 얻는 다는 것'
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침마다
햇살이 퍼지면
소리없이 사라지지만,
또 다시 아침이 되면
새 이슬로 와서,
이곳 저곳 예쁜 꽃잎에,풀잎에,
세상 만물에 머무르는
그런 이슬',
‘천지간에
자유로이 그리고 영원히
이슬같은 생명을 얻는 다는 것!
생명이 이슬같다는 것'
이어야 하지 않을 까?
'아들아!
내 죽거든 활활 태워서,
거리에, 산기슭에, 강가에
발길닿는 대로, 손길가는 대로
뿌려 버려라.
그리고는 이후로
나에 대한 아무것도 기억하지 말라.
나는 천지간에 가득한 기운으로
모든 것의 곁에,
모든 것의 속에 머물게 되나니
세상 사람들이 때가 되면
이런 마음가짐으로,
우주의 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세를 가다듬는다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지고
스스로는 천지속에
살아있는 永生(?)을 얻을지니!.
2.
신불산 공동묘원
오늘 또 이곳에 섰다.
2005년초에
이곳에 올 기회가 있었는 데, 당시,
공기 좋고, 아늑한 묘원주변에서 종일 서성이니
머리도 맑아지는 것 같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일상사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지기에,
농담삼아
"혹시 또, 이곳에 오는 건수 없을랑가? " 했었는 데.
며칠이 못가서 또 이곳을 방문하다니!
이번에는 다시 오고 싶어도
감히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겠구나!
엊그제
40여년만의 폭설이라든가?
부산.울산지역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이곳 신불산 공원묘원에도…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사한 아침 햇살에 부셔지는,
묘원를 덮고 있는 잔설(殘雪)이
눈보라 휘몰아친 며칠 전의
을씨년스러웠을 이곳 풍광을
선연히 떠올리게 하는구나
개개인들이 임종(臨終)하는 순간이
개개인들의의 [末世]
어느 노랫말처럼
‘길어야 백년, 백년이요
길어도 백년’ 인데
철들자 불혹(不惑)이요,
정들자 쉰세대네
천기(天氣)가 두려워지니
이미 정년(停年)이요 환갑(還甲)이고나
사람답게 살라하니
이미 칠십(七十)이고
그런대로 살려하면 팔십년
사람다움 고사하고,
죽은 자보다 못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본전(本錢)
죽은 자와 같이 되면
그 또한 [말세(末世)]라
개개인들 임종하는 순간이
개개인의 [말세(末世)]
이곳에서
그 말세이후(末世以後)를 보도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이
엄연히 다르거늘
산 자는 굳이 죽은 자를
저 좁은 공간에 쑤셔(?)넣고
죽은 자를 위한
진혼(鎭魂)의 나팔(?)을 울린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차마 저 좁은 틈으로
혼백이 이승을 넘나들랴?
죽은 자가 활활 타올라
이 세상에 가득한 기운으로
펴져 머문다면,
죽은 자의 말세이후는
이 세상일 터인 인데...
그리하면,
이승과 저승의 분별이 없거늘,
저 좁디 좁은 공간에,
갖힌 육신이 되고자
애써 곡갱이질을 하게 하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산자여!
보아라! 들어라!
천지에 가득한
저 생명들의 기운을,
산 자가 죽은 자 되고,
죽은 자 또한 산 자로 돌아가는
저 천지간의 섭리를!
산 자여! 산 자여!
2006년 8월26일
靑野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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