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박종홍 존경과 배려 담아 비판 ‘자기 혁명’
유·불·도·기독교 섭렵, 세계적으로 ‘별난’ 학자
미주의 대표적인 한국불교 연구자인 박성배(76) 교수의 ‘학문적 사리’에 해당하는 불교학 논집이 나왔다. <한국사상과 불교>(혜안 펴냄)라는 책이다. ‘원효와 퇴계, 그리고 돈점 논쟁’이란 부제가 붙었다.
박 교수는 불교학자 가운데서도 세계적으로 ‘별난’ 학자다. 동국대에서 불교를 공부한 뒤 유·불·선에 통달한 대학자 탄허 스님의 문하에서 노장사상을 공부했고, 그 뒤 머리를 깎고 성철 스님의 문하에서 3년 간 참선 정진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한 데 이어 다시 ‘원효’로 박사학위를 받고, 197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종교학과 불교학 교수가 되어 지금은 한국학과장 및 한국학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어려서는 서원에서 유학을 공부했으니 유·불·도와 기독교를 섭렵한 셈이다. 불교에선 참선과 교학을 겸수했다.
“스승을 위하자니 글이 울고 글을 위하자니 스승이 우는 격”
1950년 대학 학부시절부터 최근까지 쓴 글 가운데 박 교수가 스스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글로 꼽는 것은 ‘박종홍 교수의 원효 사상 전개’와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 비판’이다. 그는 박종홍(1903~76) 교수와 성철(1911~93) 스님 모두 자신이 존경하는 은사였기 때문에 그 글들을 쓰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한국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사제지간의 정을 뛰어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승을 위하자니 글이 울고 글을 위하자니 스승이 우는 격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두 사람의 사상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을 비판하는 작업임을 직감한 그는 ‘자기 혁명’을 감행했다. 그가 쓴 필생의 역작들을 다시 살펴보면 글을 쓰는 내내 스승에 대한 존경과 배려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칼끝은 결국 스승의 심장을 관통함으로써 후학들에게 ‘학문’의 신기원을 열어주고 있다.
먼저 박종홍 교수에 대해 그는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해 언급한 현대학자들은 많지만 이를 논리라는 이름으로 세우려고 시도한 사람은 박종홍이 처음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원효의 화쟁이 승랑의 삼론과 원측의 유식사상을 화합시킨 것’이라는 박종홍의 주장에 대해 “원효가 승랑과 원측을 만났다는 기록도 없고, 그들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으며, 승랑과 원측은 둘 다 한 번 중국으로 건너간 뒤 그들의 조국에 돌아온 적이 없고, 그들이 조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상적 교류를 했다는 증거도 남아 있지 않는데 오직 그들이 한반도 출신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라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불교적 근본주의자들처럼 ‘학자들이 먼저 도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종홍이 원효사상의 논리와 형식 연구에만 치우친 채 ‘비합리의 합리, 비논리의 논리’와 같은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하에서 3년 간 참선 정진한 성철에겐 더욱 예리한 칼끝
성철 스님을 향한 그의 칼끝은 더욱 예리하다. 현대 한국 불교에서 보조 지눌(1158~1210)의 돈오점수설에 대한 성철 스님의 비판으로 촉발된 ‘돈오돈수(頓悟頓修·한번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것이 없음)-돈오점수(頓悟漸修·깨달은 후 점진적으로 닦아야 함)’논쟁 만큼 뜨거운 논쟁은 없었다. 저자는 논쟁의 두 당사자로부터 모두 은혜를 입은 몸이다. 불교를 알기 전 의학도였을 때 감화를 받은 책이 보조 지눌의 <보조어록>이었고, 1967년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으로부턴 자신의 수행병폐를 진단받고 직접 참선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성철 스님과 지눌은 상극이었다. 박종홍은 “나는 평생 보조 지눌이 지은 <절요>처럼 문제의식이 뚜렷하고 논리가 명쾌한 철학서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따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해인사 강원에서 <절요>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철 스님이 규봉종밀의 <도서>를 공부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했다”며 “<도서>나 <절요>나 돈오점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데 왜 중국 것은 가르치게 놔두고 한국 것은 못 가르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물었다.
저자는 “<보조어록>은 지금 읽어보아도 보조 스님의 인품이라 할까, 인격이랄까, 그 비슷한 것이 살이 있어 꽃의 향기처럼 나의 온몸에 스며드는 것 같다”면서 “성철 스님은 보조 스님의 돈오점수설이 깨달음에 대한 안이한 이해를 조장해 수행자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이론적 결함이 있다고 비판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아서는 교만과 나태는 온전히 나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이지 결코 보조 스님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수의 수행자들만을 위한 이론은 이론 아니라고 마지막 일침
저자는 또 지눌을 박살낸 성철 스님의 저서 <선문정로>가 ‘돈오점수를 주장하면 이단이고, 돈오돈수를 주장하면 정통’이라는 등의 이분법적 사고들이 종파주의라는 인상을 준다면서 “정통과 이단이라는 말은 종파주의자들에 의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구실로 악용되었다”며 “성철 스님이 정통이라고 내세우는 임제의현(?~866)은 원래 반역적인 이단아였고, 성철 스님이 이단으로 모는 규봉종밀은 그 당시엔 정통대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성철 스님이 보조스님의 글 원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구문상의 논리적인 관계를 무시하거나 일부 글자를 빼고 보조스님의 근본적인 주장도 무시하는 등 본래 의도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철 스님을 향한 그의 마지막 일침은, 소수의 수행자들만을 위한 이론은 이론이 아니며 그 시대와 수많은 중생을 위한 보살도를 행한 보조 스님에 필적하는 수행의 이론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 한겨레 090808
[출처] 한국불교 연구자 박성배 교수|작성자 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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