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철학.에세이.한시.기타자료/한시모음

백거이(白居易)할배를 소환하다

by 靑野(청야) 2021. 2. 23.

<백거이(白居易) 당나라 중기의 시인>

言者不知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며

아는 사람은 침묵한다
이 말을 나는 노자에게 들었네
노자가 정말 아는 사람이라면
어찌하여 스스로 오천언을 지었나


백거이(白居易)는

 

아마도, 노자 도덕경 56장에서

知者不言 言者不知(지자불언 언자부지)라 한 것을 읽고,

노자가  이런 말을 해 놓고도

오천언 (오천여자의 도덕경)을 지은 것을 은근히 야유하는,

〈독노자(讀老子)〉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백거이 할배가 젙에 있었으마

한잔 술 받아드리고

따금히 한말씀 해주고 싶은 대목이다

 

백 할배는 詩에는 조예가 깊은 줄 알지만,

哲은 좀 덜 들었다 할 수 있겠네

백할배를 만나면, '철 좀 드소'하고 해주고 싶따

 

도덕경 1장은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항상) 그 도가 아니다  

로 시작한다

 

또, 37장에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함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는

無名之樸(무명지박), 도는 이름없는 통나무와 같은 것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름없는 통나무는 무한한 용도, 쓰임새를 내포하고 있다

통나무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용도를 정하는 것이다

용도가 정해지면, 그 통나무의 효용성은 그 용도로 제한된다

道도 이름없는 통나무와 같이 무한한 가능성,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름을 정하면, 용도를 정하면

즉, 통나무에 이름을 붙이면(용도를 정하면)

그 통나무는 그용도로 쓰임새가 제한되듯이

즉 '이것이 도다' 하는 순간 이미 그 도는 진정한 도라 말할 수 없다

 

이를테면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집밖으로 나와야 한다.

집안에서 이창문, 저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범위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노자가 

'지자불언 언자부지'이라 한 것은

(도리를) 아는 자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함부로) 말하는 자는 (도리를 제대로) 모른다.

라는 의미의 은유적 경구이다

도덕경 제5장에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중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제23장에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希言自然)`고

多言을 경계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은유와 경구에 시비를 거는 것은

본질을 이해못하고 곡해하거나

곡해하듯 논란을 유도하는 의도된

유머라 보아야 한다.

 

백할배는 어느쪽인가?

 

하기사 고도한 은유로

古來로 도덕경을 해석하는 데

여러 버전(1,600가지이상)이 존재한단다

 

몇몇 버전들은 상당한

불편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도덕경22장에

 

曲則全(곡즉전),

枉則直(왕즉직),

窪則盈(와즉영), 

蔽則新(폐즉신), .

少則得(소즉득),

多則惑(다즉혹),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

 

직역하면 아래와 같다

 

휜 것이 곧 온전한 것이며,

굽은 것이 곧 곧은 것이다.

움푹 패인 것이 곧, 충만한 것이며,

낡은 것이 곧 새로운 것이다

적게 가지는 것이, 곧 더 얻는 것이요,

많이 가지는 것이 곧 미혹을 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인은 천하를 하나로 품는 방식이다.

 

직역대로는 노자의 뜻을 제대로 표현했다 할 수 없다

이것을 풀어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曲則全(곡즉전)을  즉 굽은 것이 온전(굽지 않은 상태)로 되는 것'

'枉則直(왕즉직)을 구부린 것이 곧게 펴지고',

'窪則盈(와즉영)을 움푹패인 것이 충만해지는 것'

으로 해석하는 해설서도 있다

 

제대로의 해석은

노자는 곡 즉 굽고, 왕 즉 구부러지고 , 폐 즉 움푹폐인 상태를

온전(全)한 것,  자연스러운으로 본느 관점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설령 온전하게, 바르게 펴지고, 파인 곳이 가득 충만하다하드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움 중의 한 형태(Mode)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도

도가도 비상도나 무명지박에서 말하고자 하는 개념이 내포되어있다.

그 내포된 의미가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내포의 개념과 본질을 깨닫는다면

도덕경 전편을 읽어나가는 데

단어하나하나의 해석에 어려움은 있을지라도

본디 뜻과 개념을 알아채는데

어려움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도덕경1편에

제일 먼저 의미심장함이 등장하지만,

그 의미심장함을 눈치챌라면

어떤 이는 전편을 다 읽어야 하거나

다 읽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먹먹할 수도 있다

 

어떤이는

'도가도 비상도'를 이해함으로서

도덕경 전편의 개념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世'

 

석가모니가 연꽃을 따서 들고 대중들에게 보이니

가섭이 미소한다는 뜻이다

가섭이 석가모니가 말하지 않더라도

행동을 보이니 이를보고  알아차렸다는 뜻일게다

不立文子,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경지는

노자나 석가같은 성인의 경지인 것이다

 

불교의 8만대장경중 육조단경외는

전부 석가모니 말씀이라 하나

통상적인 사리판단으로 볼때

많은 말씀이, 좋은 말씀이라하더라도

모두 나를 낮추고

세존의 말씀으로 헌정한 글들이 모여

8만대장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독노자(讀老子)에서

노자를 은근히 야유하던 그 논리라면,

'世'에 대해서도

시 한수 읊었어야지!!!

 

이런 정도는

백할배가 이를 모르리 없었을 것 같고

서토거사가 괜시리 내한테

빙빙꼬듯 하는 것처럼

아마도, 웃자고 하는 詩놀음아니겠는가?

싶으네

 

 

'철학.에세이.한시.기타자료 > 한시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시가  (0) 2021.03.01
不賣香  (0) 2020.11.05
산중에서 제자들에게  (0) 2020.03.10
혼자말 放言(방언)   (0) 2020.03.04
산장의 밤 비 (고조기)  (0) 2020.03.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