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와 우주의 시간적(時間的)인 생성과 전개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의 경과(經過)가 어떠할지를 궁금해 한다. 뿐만 아니라 공간적(空間的)인 규모(規模)와 구성(構成) 및 그 유한(有限)함과 무한(無限)함에 대해서도 알고자 한다. 이러한 관심(關心)에 대해 대부분의 종교는 답(答)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타종교처럼 우주(宇宙)에 관한 자료가 없으며 특히 우주론의 핵심(核心)이 되고 있는 천지창조(天地創造)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미 부처님께서는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유한, 무한에 대해서는 무기(無記)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불교(佛敎)는 우주(宇宙)가 무(無)로 부터 창조(創造)되는 그런 성격(性格)의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인도인들이 일반적으로 간직한 사유형태(思惟形態)이다. 즉 인도인들은 완전한 무(無)로부터 유(有)가 존재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有)는 오직 유에서 나온다는 것은 논리법칙 중에서 일종의 동일률(同一律)을 충족하는 것이다. 또한 유(有)는 무(無)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법칙 중 모순율(矛盾律)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無)에서 유(有)가 나온다는 것은 동일률(同一律)과 모순율(矛盾律)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인도인들은 합리적(合理的)이고 불교는 더욱더 합리적인 종교다. 따라서 논리적 법칙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無)로부터의 유(有)의 창조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인도의 유신론인 바라문교에서도 우주는 유(有, sat)로 부터 나오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처럼 인도적 사유(思惟)를 바탕에 두는 불교에서는 무(無)로 부터의 우주창조(宇宙創造)는 부정(否定)되고 있다.
밀교(密敎)에서는 본초(本初, adi)라고 하여 우주의 최초를 의미하는 시간개념이 있으나 일반적인 불교의 입장은 그러한 절대적인 시초(始初)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태초(太初)라는 시간 설정에 대해서도 부정적(否定的)이다. 불교의 시초(始初)라는 말은 인도인들의 시간관념을 바탕에 두고 있는데 시작(始作) 또는 시초를 뜻하는 보편적인 인도 말은 아디(adi)로 이 말은 잡는다(取)는 어원적(語源的)인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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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간(時間)은 아무런 의식(意識)이 없이 그냥 덧없이 흘러갈 뿐이다. 단지 우리 인간이 무한한 우주(宇宙)의 어느 한 점을 잡을 때 그때가 시작일 뿐임을 뜻한다. 이것은 시간(時間)이나 그 시간의 시작(始作)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서 결정되는 주관적(主觀的)이고 상대적(相對的)인 것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태초(太初)에서의 우주창조(宇宙創造)와 같은 것을 살펴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주(宇宙)의 구조(構造)와 생성(生成)과 소멸(消滅)에 관련된 가르침이 태초(太初)라는 절대적인 시작(始作)을 전제하지 않고, 신(神)에 의한 무(無)로부터의 창조(創造)를 전제(前提)하지 않는 한은 오히려 풍부하게 설(說)해져 있는 불교의 우주론(宇宙論)을 만날 수 있다.
: 초기불교 자료에 속하는 세기경(世起經)과 초기불교 자료에 대한 대표적인 논서(論書)인 구사론(俱舍論) 등에 입각해 그 요점을 정리하면, 한 우주가 시작될 때는 중생들의 공업(共業)에 의해 허공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풍륜(風輪)이 발생한다. 여기서 이 우주(宇宙)는 절대적인 한 우주가 아니고 시간(時間)상의 여러 우주들 중에 한 우주이고 신(神)이 아닌 중생(衆生)의 업력(業力)이 우주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한 중생들의 공업(共業)에 의해 다시 풍륜(風輪)위에 구름이 일어나수륜(水輪)이 발생하고, 공업에 의해 다시 수륜 위에 바람이 일어나 수면을 때리고 응결시켜 금륜(金輪)이 발생한다.
금륜(金輪)위에 수미산(須彌山)이 솟고, 이것을 중심으로 주위에 일곱 산이 발생하고 그 가장자리에 철위산(鐵圍山)이 둘러앉는다. 그 각(各) 산 사이에 물이 고여 8바다가 발생하는데 수미산 부근의 7산 사이에 생긴 바다를 내해(內海)라고 하고 그들과 철위산 사이에 나타난 바다를 외해(外海)라고 한다.
이 외해 속에 사대주(四大洲)가 있어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수미산 남쪽의 섬부주(贍部洲)다.
이 밑에 염마왕국(閻摩王國)이 있고 그 아래 다시 팔대지옥이 차례로 위치한다. 그리고 해와 달, 별들은 수미산을 싸고 공중에서 돌아간다.
이것이 중생들이 몸담게 될 물질적 우주(器世間)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최초의 풍륜(風輪)에서 이러한 세계가 형성되는데 1소겁(小劫)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세계가 성립되어(成) 지속되고(住) 파괴되어(壞) 사라진 후(空), 또 다른 하나의 세계가 성립(成立)되고, 지속(持續)되고, 파괴(破壞)되고 사라지는 과정을 성(成), 주(住), 괴(壞), 공(空)이라는 네 시기(4時期)로 나눈 4겁(劫)으로써 우주의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시간(時間)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또한 우주가 얼마나 큰가 하는 공간(空間)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때는 삼천 대천세계를 들어 설명하며, 유정(有情) 중생(衆生)이 생사윤회(生死輪回)하는 측면으로 설명할 때는 삼계(三界) 28천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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