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들고부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우리집에는 6년전에 늦둥이가 태어났을 때, 산 에어컨이 있는 데, 당시는 심하게 더우면, 하루에 너댓시간씩 틀곤 하더니, 숫제 올해 들어서는 아무리 삼복더위라도, '틀지 말자' 는 마누라의 엄명(?) 땜에 거실 구석에 조용히 모셔두고 있다. '시운전이라도 해 봐야 할거 아이가'하고 꼬셔도 울마누라 요지부동.
덕분에 내 침대자리를 늦둥이에게 뺐겼다. 유난히 땀을 뻘뻘흘리는 녀석, 흙침대 바닥이 차겁고 시원한 모양인지, 얼마전부터 남의 침대자리를 넘보더니, 올 여름은 내내 날 녀석의 장난감방으로 몰아내고 지녀석이 의기양양 대주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전,토요일 쉬는 날이라, 나로서는 좀 늦게, 녀석입장에서는 좀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녀석이 잠들고 있는 침대로 갔다. 녀석을 집쩍거려 깨우고는 아침식사때까지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둘이서 이리 딩굴고 저리 딩굴고 하는 데, 갑자기, 녀석이 건방시럽게, 나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더니,
"아빠, 흰 탈나지마 ! 나 아빠 할아버지 되는 거 싫어!" 한다.
머리카락을 녀석은 '털'이라 표현한다. 녀석이 오늘 왠 감상이 들엇는 지, 철이 들려는 지, 진지하게(?) 몇 번을 반복해서 이 말을 조잘거린다.평소에, 부자지간에, 다소 엉뚱한 대화가 많다.
"나 장가 갈 때, 아빠 할아버지 되면 안된다. 똑바로 앉아라!"
늘도 안하는 바둑둔다고 비스듬하게 모니터앞에 앉아 궁상을 뜰면, 내가 하는 소릴 그대로 횽내내어, 역공을 취한다. 아마 지 엄마의 보이지 않는 사주를 받았으리라.
"그럼 니 장가는 언제 갈 낀데" 짖굳게 물어보면,
"한참 있다가" 한다. 커서 가겠다 그말이겄지. 다시,
"유치원에 니 좋아하는 여자 어린이 있나? 정**, 이**, 공**가 니좋아하제?"
장가가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 데, 녀석이 알기나 알고 씨부리는 지, 확인겸 겸사겸사 짖굳은 장난기 발동, 얼마전에 세 어린이가 커면 '빈이랑 결혼하할거다' 라고 하는 여자애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나서, 넌즈시 물어보니,
"아니, 인제는 아무도 안좋아한다." 그러는 녀석인 데,
오늘은 녀석의 순진무구한 표정과 할 하는 어감이 어째 좀 이상하다 싶었다.
"아빠, 흰 탈나지마 !" 제삼 반복이다.
오늘 아침에는 저 개구장이에게 무슨 심사가 들어 아빠의 흰머라카락에 집착하는지! 어디서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난다'는 사실을 듣거나 인지 한 모양인데, 녀석이 자기가 늦둥인줄은 아나봐. 그래서 지녀석이 크면 '아빠가 상당히 늙어 있으리라'고 어렴풋한 자각이 생기는 겐가?
"알았다. 흰털 안날께"
녀석의 걱정에 저으기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열심히 염색해야겠네 다짐을 했다. 휴가 뒷끝에 게으름 피우다, 녀석에게 들통이 난거다. 그래서, 녀석에게 약속아닌 약속을 뱉을 수밖에.그러고 조금있다, 아침을 먹는 데, 평소 언제나 식욕왕성하던 녀석, 갑자기 식사를 멈추고, 침울해지더니 훌쩍훌쩍 서럽게 울먹인다. 녀석이 어디 아프나 싶어서,
"빈아, 왜그래? 배가 아파?" 어디 아파?" 녀석의 울먹이는 이유가 궁금하여 법석인데,다른 물음에는 고개를 살래살래 젖드니만,
"(응~응~훌쩍~훌쩍) 내~가~ 아~빠를 많~이 괴롭혀서 아~빠가 흰~머리가 생겼다~아~"
이러는 기라.
(속으로)흐미!! 기특도 하지~, 기특도 하지~~ 하면서도, 녀석의 울먹이면서 하는 그 소리에 내 마음도 영...., 내 눈시울도 시큰하데.
녀석이 어린 마음에, 순수한 마음에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떠오르는 진정한 감상일지?, 평소의 녀석답게 연극을 하는 겐지? 종잡을 수 없네? 녀석이 말이 어린 애지, 언제, '나 그런 적 없다' 감정이 사그러 들면, 그리할 녀석임을 아는 나로서는.....
우쨋던, 아침을 먹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염색하러 가는 수 밖에..
며칠이 지나, 녀석이 날 패는 흉내를 내면서 장난을 걸어와서, 넌즈시 물었다.
"니 아빠 때리지만, 아빠 괴롭혀서 아빠 흰털이 많이 생긴다며? 니가 그랬잖아!"
아니나 다를까?
"나 그런말 한적 없다" 딱 잡아때네.
또 며칠이 흘러, 이 때 사실을 꺼집어 내어 지 엄마랑 Review를 했다..
"연극이야 연극, "녀석이 즉홍적이고 임기응변이 얼마나 능한데..." 당시는 암 말 안하던 지엄마는, 대번에 간파(?)하고 있었단다. 노상 녀석에게 시달리다 보니, 그려려니 싶기도 하고.....
하지만,
(속으로) '아닌 것 같은 데... 뒤에 말은 녀석이 쬐금부끄러워 둘러댔다 쳐도, 당시는 정말 날 눈물이 찔금이게 했다구. 헌데, 녀석이 왜 그 시점에 그런 말을 했을까? 장난감을 사야 한다던지, 유치원을 빼먹는다던지, 오락프로를 봐야 한다던지 하는 목적이 전혀 개입될 그런 상황이 아니였는 데...연극이 아니라구!. 혹시 지 엄마를 위해 울먹여 주지 않으니까, 질투?'
그리고 연극이면 어때, 꼬맹이 녀석이 벌써 그정도로 이 아빠를 생각해준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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