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山內面의 계곡에서 부산오는 길가 곳곳에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오토캠핑장이나 펜션들이 즐비하다보니, 오랜 연휴의 뒷끝이라 손님들이 제법 다녀간 모양이다. 여기 뿐만아니라 사람사는 동네들에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참 지독하게도 쓰레기를 많이 생산한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쓰레기는 더욱 다양하게 생산된다.현대문명은 쓰레기 생산문명, 쓰레기문명이라 할만하다.
'쓰레기'
'비로 쓸어 낸 먼지나 티끌, 또는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
네이버 사전에서 쓰레기에 대한 정의이다.
사전대로라면, 쓰레기는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효용가치가 없는, 못쓰게 되어 내다버릴 물건이라 하지만, 한때는 효용가치가 있고 쓸모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말이다. 요즈음의 인간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처음부터 쓸모없는 물건을 만들리 없지 않는가? 이를테면, 식재료를 싼 포장용기는 식재료를 싸고 있는 동안에는 중요한 물건이다. 식재료가 포장용기를 떠나는 순간 포장용지는 가치없는 버릴 물건으로 변하여 이른바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음식물쓰레기 역시 마찬가지다, 먹고 남은 찌거기가 음식물 쓰레기다.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여 재활용자원으로 활용한다지만, 재활용율이 얼마나 될지? 퇴비나 사료등으로 재활용되지 싶은 데, 山川에 지천으로 버릴 수 없으니 울며겨자먹기로 수거하여 재활용하는 것이지, 재활용의 經濟性이야 따질 게제가 아니지 싶다. 재활용해서 얻는 이득보다는 투입되는 비용이 훨씬 크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명절때나 매일매일 시간이 지나면 음식 쓰레기나, 식재료가 담겼던 포장지 쓰레기, 가지가지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나와서 분리수거하기가 꽤 번거롭다.
쓰레기는 가치있는 물건을 위한 봉사의 임무를 끝내고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것이다. 어떤 쓰레기는 쓰레기가 될 운명으로 태어나지만, 어떤 쓰레기들이 처음부터 쓰레기였던 것이 아니였다. 쓰레기가 아닌 당당한 신분(?)이였다가, 세월이 흘러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멀리하고자 애쓰지만, 세상은 쓰레기 없이는 굴러갈 수가 없다.
인간의 세계에서는 쓰레기가 없다면, 쓰레기 아닌 것도 있을 수 없다. 쓰레기가 남지 않는, 쓰레기의 용도가 없는 그런 완벽한 세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있다는 것은 쓰레기 아닌 것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쓰레기 메이커'
생활쓰레기, 산업쓰레기, 음식쓰레기...인간과 사회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적으나, 많으나.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쓰레기 메이커'들이다.
가정집에 냉장고나, 창고에서 그냥 내버려두면 사용가능한 지, 사용할 수 없는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 언젠가는 대량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올 터이지만, 당분간은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잠재적 쓰레기인 것이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냉장고에 무언가 채우지 않으면, 채우지 않을 수록 음식물쓰레기가 생길 가능성은 적어진다. 대신에 음식물쓰레기 아닌 먹을 수 있는 음식물도 적어질 수 밖에.
인간이 생활을 하면, 생활을 할려면,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생기니, 쓰레기의 양은 어쩌면 인간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인간이라면 누구가 쓰레기 메이커이지만, 어쩌면 인간자신도 쓰레기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自然은 不仁'하다. 자연은 인간이라 해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인간 역시 언젠가는 폐기처분되고 쓰레기로 돌아갈 운명인 것이다.
쓰레기는 인간 세상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짐승의 세계, 식물의 세계, 자연에는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자연이다. 짐승의 분비물이나 死體는 토양에 미생물이 생존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미생물은 식물이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양분을 만든다. 식물은 그 토양에서 양분을 취하여 성장하고 동물에게 풍부한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동물은 다시 분비물을 만들거나 스스로 死體가 되어 자연에 제공한다. 자연생태계의 절묘한 순환고리이다.
그러니,짐승의 세계, 식물의 세계, 자연에는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의 원리에 따라 자기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짐승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쓰레기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처처에 널려 있다고 생각하는 쓰레기 , 쓰레기가 널려 있는 세상,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인간세상의 현실일 뿐이다
'적폐청산'
정권이 바뀌면 어느 정권이든지, 새정권이 항상들고 나오는 '개혁아젠다'이다. 정치, 사회에 쓰레기 쌓이듯 쌓인 적폐, 쌓인 폐단을 없애자는 것이다. 적폐는 인간세상이라면 생길 수 밖에 없는 쓰레기 더미인 것이다.
국가를 경영하다보면, 시행착오나, 실수등이 나와서 폐단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불편부당하게, 관습적으로, 불법, 탈법 행위등이 저질러져서, 우리사회가 공정한 경쟁과 성장을 이루고, 정의롭고 희망과 보람있는 사회를 이루는 데, 크나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간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적폐청산', 개혁, 혁신,개선등의 아젠다는 언제나 명분을 등에 업고, 무수히 반복하고 무수히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무수히 반복하고 무수히 외쳐댈 수 밖에 없는 아젠다인 것이다.
'적폐청산'하자며 진정으로 쓰레기 없는 세상을 원하는 것인가? 적폐청산의 명분으로 또다른 쓰레기 생산을 반복할 것인가? 쓰레기 생산을 반복하기 위해, 적폐청산의 생색을 내는 것인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치.사회 적폐, 쌓인 쓰레기 청산은, 이대로는 정권마다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아젠다이다.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폐가 생기지 않는 정권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상이 짐승의 세상이 아닌 이상, 쓰레기는 생기기 마련이다. 적폐청산만으로, 자연의 원리에 충실한 짐승의 세계, 자연의 세계처럼 쓰레기 없는 세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貧益貧, 富益富의 심화, 성장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騎虎之勢의 현대문명에서는 자연에서와 같은 생태계의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것은 욕망이요 욕심, 그것들만이, 포기할 수 없는 크나큰 사는 보람이고, 사는 목표가 되어버린, 현대인간의 숙명이다. 현대인간의 욕심과 욕망은 끝이 없다, 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부당한 노력들, 희생하는 측과 희생의 과실을 차지하는 측의 부조화는, 정당하게 노력하는 인간들을 허탈하게 하고, 지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를 줄이겠다면서 더욱 쓰레기를 양산하는 형태를 반복한다. 어느 정권이나 쓰레기 치우기를 명분으로 내걸지만, 언제나, 쓰레기 치우다, 쓰레기에 치여 제 할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청산의 과정이, 대부분 쓰레기 메이커로 전락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마침내는 스스로 쓰레기로 전락한다.
인간들은 똑똑하지만, 지나치게 교만하여, '인간과 자연'을 애써 구분할려한다. 자연에 대등하게 맞설려고 하고, 나아가서 자연에 군림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결코 자연과 맞설수도 없고. 자연위에 군림할 수 없다. 다만 자연의 허락(?)하에 자연을 이용할 뿐이다. 자연은 인간이 하고자 한다면, 인간이 하고자 하는 만큼 허락한다. 자연을 활용하고 이용하고 하는 것, 자연을 활용하고 이용한 결과도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적폐청산한다지만, 이 도리를 망각하면, 사람사는 세상만을 추구하여서는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인류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오라'
적폐청산이 성공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균형있고, 욕심과 욕망이 절제된 생활의 복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연의 원리, 자연생태계의 순환고리를 이해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자연과 완전한 조화는 이룰 수 없다하더라도, 자연을 파괴하고 , 자연위에 군림하다는 방식을 버리고, 재생정책, 친환경적 정책이 요구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마저도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눈에, 인간의 목적에 反하도록 보일 뿐이다
이대로 이 세상에서 살다보면, 騎虎之勢의 현대문명의 끄터머리에서 미적거리다가는 쓰레기 더미에 치여 살거나 마침내 쓰레기로 운명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길이 없다
인간이 과학기술의 진전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던,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던, 언젠가 이야기 하였듯이 제4차산업혁명에 이어 5차산업혁명이 요구될 시대부터는 '자연화'가 필연이다.
자연에는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듯이. 개개인간이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고, 미리 자연으로 돌아오는 것,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연에의 귀의는 이제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혜로운 삶이 되지 싶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만으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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