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본 영화라는 게. 냇가 자갈밭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상영되는 심파조 흑백영화다, 그것도 온전히 본게 아니고, 일시에 쏟아저 나오는 관객들을 좁은 출구로는 사고 나기 십상이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쯤 천막을 걷어 올리는 데, 이 순간 잠깐 보기 위해 가설무대 주변을 호시탐탐 서성인 기억이 새롭다. 운이 좋아 경비원의 눈초리를 피해 잽싸게 천막을 들추고 안쪽 손님들 틈바구니로 섞여들어가는 데 성공하면, 그날 영화는 공차로 보는 거고, 우짜가다가 붙잡히면 경을 치는 데, 난 한번도 붙잡히진 않고, 심심찮게 영화를 도둑질(?)해서 봤다.
그런 경험밖에 없는 내가, 그 후, 어느 날, 컬러로 된 스펙타클 한 영화를 첫상면한 감동을 상상해 보시라. 더구나 "벤허'같은 대작을!
'벤허'를 보고 받은 감동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었는 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오직 한가지, '거기에 나오는 엘리자베드 테일러의 그 영롱하다할 까, 초롱하다고나 할까?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받은 감명이 깊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후 많은 컬러대작영화를 경험하였으니, 지금 그런 영화를 처음 보면, 어떤 감동을 받을 지 모르지만, 지금도 '미인을 볼 때, 그런 눈동자? 하면서 마음속에 어렴풋이 자리잡고 있는 테일러의 눈동자와 대비해보는 보는 습관이 될정도 당시에 받은 충경이 컸던 모양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연필소묘를 시작하면서, '마릴린 먼로의 섹시미?', '오드리 햅번의 청순미?', 그리고 '엘리자베드 테일러의 눈동자'를 나름대로 재현해보고 싶다했었는 데,
오늘 그러니까 2006. 5.25일 저녁밥을 먹고, 쭈그리고 앉아서, 미리 준비해둔 엘리자베드 테일러의 사진을 옆에두고 그 눈동자를 재현한답시고 몇시간을 낑낑댔다.
우리 늦둥이녀석이 자기와는 놀아주지 않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주저앉아 뭔가 끌적거리는 게, 영 마특잖게 여겼던지, 방해도 많이 했는 데, 언제부턴가, 살그며니 등뒤에서 아빠의 그림을 보고는 '와, 잘그린다. 똑같다' 하면서 지 엄마 흉내를 내기도 한다. 훼방도 덜하고, 이제 포기하는 건지, 지녀석은 지녀석대로 동화책을 붙잡고 날 해방시켜주는 횟수가 늘어나는 데, 그림판을 붙잡고 늘어지는 지는 주목적이, 저녁밥을 먹고 어김없이 녀석을 책임지고 놀아주던지, 재워주던지 하던 의무감에서 벋어나고자 했던 소기의 성과가 가시화 되는 기분이다. 더구나 덤으로 사랑하는 늦둥이에겟 '화가?'소릴 듣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화가다." 또래 친구한테 떠벌린다. 거의 테일러 그림이 모습을 갖춰나가는 데, 엄마끼리 전화하던 말미에 녀석의 친구끼리 전화가 연결된 모양이다.
녀석이 그저께부터, 그러니까 오드리 햅번을 그릴 때부터, '아빠는 화가다', '아빠 잘그린다' 라고 감동을 시작하더니, 드디어, 지 친구한테, 한참을 떠든다. '우리 아빠는 화가다. 우리아빠는 그림 되게 잘그린다....등등"
좀 허풍이 심한 녀석의 성향으로 봐서, '유치원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교회사람들, 구문선생님,...등등 지가 만나는 사람들마다에 '우리 아빠는 화가다'라고 떠버릴 게 뻔하다.
ㅎㅎㅎ 졸지에 늦둥이 녀석땜에, 노랑신문에 '화가'로 등단하게 생겼다.
주) 노랑신문: 주변에 떠도는 소문을 퍼뜨린다고 수단으로 가정하는 우스개 소리, 거제도 사투리?
'우리 늦둥이만 인정하는 화가' 그러면 천배만배 족하지, 또 무엇을 바라랴?
우리 마누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는 어느정도 인정하는 눈치다. 코와 턱에 약간의 지적이 있었지만, '눈동자는 정말 똑같다' 라고 인정했다.
"괜찮은 사진을를 준비해두거라"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면,
'한두장 그려보고 건방을 떤다" 하면서, 농담으로 받아 주더니, 이번에는 "지금은 살이쪄서 안된다. 살 쫌 빼고..." 하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다.
빈아야,
엄마와 누나와 빈이를 그리면 액자를 만들어 주께. 그 때가 가까워져 온다?
(리즈 테일러 원본>
<늦둥이가 보고 '우리 아빠는 화가다' 라고 떠벌리는 단초가 된 리즈 테일러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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