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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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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양육/늦둥이養育記

45, 하루를 못넘긴 늦둥이의 효도

by 靑野(청야) 2017. 10. 1.

녀석은 며칠전 새벽부터, "아빠가 불쌍하다"고 울부짖으면서,하루종일, 아빠를 보살핀다고 부산을' 떨었다. 저녁먹고, 물컵에 차디찬 냉수를 챙겨주기도 했다. 지 엄마에게는 온수와 냉수의 중간급인 '정수'를 지누나와 아빠에게는 '냉수' 한컵씩을 서비스하면서 부산을 떨고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공손하게 잠자리에 든다고 인사도하고는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났다.


나 자신 너무 흐뭇한 마음으로, 요녀석이 언제까지 이런 효도(?)를 지속할려나 초미의 관심이였는 데....
새벽녁에 또 난리가 났다. 전날 새벽에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다음날 새벽에는 녀석이 먹은 것 다 토하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열이 풀풀나는 것이, 열 땜에 벌개진 얼굴로 새벽부터 녀석이 또 왠 난리냐 싶어 덜깬 잠에 부스스한 눈으로 찾은 아빠에게 때뜸 어리광이다

"아빠, 나 한숨도 못잤다. 나 먹은 것 다 토해냈다"

이번에는 지 녀석땜에 또 밤을 설친 모양. 엄마와 둘이서 몇번을 화장실로 갔다오기도하고, 이부자리에 토하기도 하고...

그날은 일요일이라, 우리 부부는 하루종일, 애 옆에 붙어서, 발만동동구르며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수단이 없었는 데, 공교롭게, "아빠가 불쌍하다"고 하면서 극진히 효도하고자하는 자세로 돌아선 그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이 모양이라니. 해서, 그 아파서 축 늘어진 그 와중에서도, 녀석보고,

"빈아,아빠가 불쌍하다며? ", 넌즈시 어제의 그 자세를 다짐삼아 떠보니, '응, 아빠가 불쌍하다. 아빠가 에버랜드에가서 아팠다." 고 아직도 기억을 생생히 하고 있다. 전날처럼, 울먹이는 톤은 사라지고, 대신 만사가 귀찮은 듯이, 힘없이 찌꺼린다.

지금, 지녀석 입장에, 어제 꿈속의 감정이 유지되겠어? 사실관계, 꿈꾼사실관계만이 소록소록할 뿐이 겠지? 언젠가는 그 사실관계마저도 희미해지겠지?

그날은 한번씩 토하기 전후로 몸이 불덩이 같아지는 것을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했지만, 그럭저럭,조마조마 그냥 보냈다.조금 낫다가 열이 불덩이처럼 오르고, 반복하여 열탕냉탕을 갔다오는 통에 유달리 차거진 손발을 계속 주물러 주면서 마음조리며....

다음날 노동절로 쉬는 날이다. 새벽녁까지 불덩이같은 몸상태를 계속한 녀석을 데리고 서둘러, 소아과로 갔더니, 요새 애들이 이런 증세로 자주 찾는다면서, 생각보단 간단히 처방한다.아닌게 아니라 처방해준대로 약을 먹이니, 씻은 듯이 나았다. 약을 먹이고 오후 느즈막이 녀석의 몸에 열도 내리고 생기가 돈다.
지 엄마는 이통에 얼머나 걱정을 들고, 안심을 했던지, 아니면 긴장이 풀렸던지, 평소의 엄격한 자세답지 않게,
조용히 귀속말로,

"사주자!" 한다.
"뭘?" 얼떨결에 반문할 수밖에,
"어린이날 사주기로 했던 거 말야!"

어린이날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기로 한게 있다. 로보트도 되고 경찰차도 되고, 무기도 발사하는 그런 조립 및 변신로보트인데, '제이데커'라는 것 같기도 한 뭔가인데, 녀석이 얼마전부터 근처에 있는 할인마트인 이마트에 가기만하면, 장난감가게로 우릴 끌고가서 사달라고 조르기에, 결국 항복하고, 대신에 "어린이날 선물"로 사주겠다고 꼬셔서, 그날그날 넘어가고 있었는 데,

애가 낫는 기미를 보이자 긴장이 풀어진 지 엄마, 어린이 날이 며칠 남았는 데도 지금,당장 그 선물을 사주잔다.

그래서 녀석을 구석으로 불러서 "빈아, 어린이날 선물있제? 오늘 사주께.대신에, 아빠가 또 사주기로 햇던 것은 어린이날 우리 둘이가서 사자. 엄마한테 비밀로 해라"

녀석하고 둘이서 비밀 약속한 게 있다. 지 엄마 모르게, 지 엄마가 사주기로 한 공식적인 약속외에 단둘이서 아빠가 또 사주기로 한 게 있는 데, 녀석과 "엄마에게 비밀로 하자" 해놓고,

"어짜피, 엄마 알게 될 건데, 엄마에게 이야기하자" 며칠 전에도 공개하자고 조르는 녀석을
"안돼, 니 엄마 알면 못산다. 아빠랑 살째기 가서 사와야지, 물리지 않지, 지금 말하면 안돼!" 그렇게 단속을 한 비밀약속을 단단히 주지시킨거다.

지 엄마의 사전 훼방이나 잔소리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아빠의 속셈을 녀석이 평소에는 잘 이해하고 협조하드더니, 장난감 사는 데와서는 자꾸 그 비밀약속을 깨뜨릴려고 호시탐탐한다. 장난감을 사고 싶은 유혹이 그 만큼 강한가 보다.

결국은 녀석에게 어린이날 선물하기로 한 장난감을 사줬다.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약을 써서 그런지, 저녁무렵부터는 녀석의 병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루반만에, 녀석의 병이 그렇게 빨리 씻은듯이 사라진 것은 다행이나, 덩달아 그 전날의 그 환상적인 '핑그무드'도 녀석의 병마와 같이 씼었듯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저녁상을 물리면서, "좋다 말았네, 안됐수!" 녀석의 돌발적인 행동에 '너무 핑크무드' 라고, '언제까지 지속될까?'라고,반 질투성 처신을 보이던 마누라가 놀린다. 안타깝다는 듯이, 그러면서 안도하는 듯이 말하는 모양새, 억양에 웬지 느끼한 기름이 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녀석이 아팠던 이틀을 보내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녀석의 새록새록 잠든 모습을 보니, 요며칠 사이에 녀석이 부쩍 큰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리와 몸을 만져보니, 어제 새벽에 불덩이같은 몸도 정상으로 차분하고....
봄날처럼 수시로 돌변하는 녀석의 성장모습이 이 봄날의 날씨처럼 종잡을 수가없네. 아무쪼록 그러면서, 그런 환경속에서 쑥쑥자라는 나무들처럼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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