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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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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양육/늦둥이養育記

43.늦둥이에게 들려준 아빠이야기

by 靑野(청야) 2017. 10. 1.
'빈아, 커서 뭐될래?' 우리 부부가 녀석에게 심심하면 물어보는 습관적이 되었다. 녀석의 대답은 커가면서 변해왔는 데,

4살 때는 "간호사 될거야!" . 제복입은 예쁜 간호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겠지. 5살어름에는 "소방서 아저씨 될래" 어린이집에서, 소방서 견학을 다녀 오더니 감명을 받은 모양.

언제부턴가는 "자가용 운전사 될래", '비행기 운전사 될래"로 바꿨다. 아빠차 앞자리에서 노상 운전하는 것을 신기해하고 우짜던지 지도 뭔가 조작해보고 싶어 안달이 난녀석, 급기야 시동을 자기가 걸고, 사이드브레이크는 자기가 내린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몇번을 그러라고 하였더니, 장래 희망이 자가용운전사되는 거란다. 여름휴가 때, 비행기타고 놀러를 갔다와서는 이번에는 비행기 운전사(조종사)로 미래의 희망사항이 자꾸 바뀌어 간다.

7살이 되면서, "과학자 될래" 하더니, 최근에는 조건이 붙는 과학자가 되겠단다. "자가용 자동차하고, 비행기 운전도하는 과학자 될래"
...............
아빠가 울산에 근무하면서 장생포 고래고기집에 종종 다녀올 때가 있는 데, 그 때마다 정박된 경비정에서, 아빠가 처음 회사라고 다닐 때, 어렵사리 수행한 첫째번 R&D 프로젝트 결과물이 버졋이 아직까지 장착되어 있는 것을 보고 소회가 있을 수 없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 해경의 경비정인지 해군의 함정인지에 탑재된 무기의 그림을 빌려서, 늦둥이 녀석에게 아빠의 개발역사 한페이지를 기록해 들려주고 싶어지네. 너무 오래된 세월이나 기억을 더듬어 보다보니 정량적 기록의 정확상에는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아빠가 1978년말 모업체에 입사를 했다. 특례보충역으로 군대를 면제받고 대신 방산업체에서 5년을 근무하는 조건이였지.

당시, 육군용 20mm발칸포를 처음으로 대량생산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자마자, 상급사원들이 사직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입사 7개월만에 20mm발칸포 개발책임자로 나서게 되었다.
미국식 도면표기법 익히랴, 미국식 규격번역하여 프로세스를 확립하랴, 내뿐만아니라, 선배들이 이미 현장에 뿌려놓은 공정설계도의 오류에 일일히 수정하고 현장의 문의. 질문등에 대응해주랴......기억으로는 한 1년을 죽을 고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당시 관련 주요 미국방규격번호 대부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양산화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 20mm발칸포를 장갑차에 탑재화(이를 自走化 발칸포)개발과 함정화 발칸포의 개발을 착수하게 되는 데,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책임자를 맡았지. 입사 1년만에. 한국군의 무기체계중 3체계를 1~3년동안 완수한 셈이였다네.

아래 그림에 나오는 잠자리 눈처럼 생긴 무기체계가 20mm 발칸포를 함정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 유명한 5.18 사태시 주요한 개발중의 하나로, 주요 개발사항을 보면, 20mm발칸포의 저장통인 탄통의 증량(약 50%)개발이 이루어졌지. 당시 특례훈련 직후라 까까머리에 시커멓게 햇빛에 그을린 얼굴로 설계자랍시고 광주시내에 있는 탄통을 만드는 업체에 그 원리 설명차 출장가기로 되었던 계획이 그 사태로 인하여 한 3개월이상 지연되었던 걸로 기억하는 데...

어쨋튼, 분당 3000발을 발사하는 속도이니, 20mm포를 Feeding시켜주고, Feeding시 마찰이나 출렁거림등으로 포신에서 포탄(엄밀히 총알)를 까발리는 타이밍이 늦어 지거나 포탄을 연결한 링크가 늘어지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이송중에 끼임(Jamming)발생하고 심하면 포가 폭발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하고, 함정에 탑재되어 탄통교환이 어려운 환경하에서 탄통용량의 증량 50%는 나름대로 대단한 도전(?)이였지. 그뿐만아니라, 포열의 회전운동(Rotation)과 포열뭉치즉 포신의 상하운동(Elevation), 포탑의 회전운동(Azimuth)등을 달성하면서 파도나 해수및 빗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Sealing기능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니, 관계기관의 리드도 있었지만, 그 설계부터 최종양산까지 업체개발책임을 맡은 입사 1년내외의 병아리사원에게는......




그때까지, 함정화 프로젝트는 몇년전부터, 그러니까 육상용 발칸포가 국산화개발이 시작되면서 곧이어 함정화도 추진되었는 데, 몇번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네. 오죽했으면, 일본의 '국방과 기술'이라는 잡지에 한국에서 20mm발칸포의 함정화가 실패했다고 기사가 실렸을 까? 골을 싸매고 설계하는 와중에 그런 기사를 접했으니, 엔지니어 경력이 일천한 그 어린(?) 심정이 어땠을까?

이후, 아빠는 공작기계,항공산업,광학산업,전자산업,자동차부품산업을 거쳐오면서, 많은 연구개발을 수행해왔었지만, 그 때처럼 고도의 열정과 집중력으로 일에 몰두한 경우가 없었네. 그 때 체득한 프로젝트 수행방법이나 지식, 일하는 자세등이 기초가 되어 오늘날까지의 경험이 그 토대위에 쌓여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네, 아직도 당시의 그 기초가 든든히 날 떠받혀주고 있다네.
무기체계를 만든다고 같이 고생한 현장의 친구들이 아직도 많이 그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데, 간혹 만나게되면, 당시의 그 열정과 성과와 자부심을 나누지.

위 사진속에 나오는 무기체계는, 그 이후 무수히 개량되었겠지만, 겉모습이야 당시, 나의 생각, 나의 손끝에서 그려진 그형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보이네. 마치 나의 자식을 보는 기분인 데, 다가갈 수없이 멀리서만 바라보는 수밖에.

언젠가 우리 빈이가 크면, 군엘갈련지, 연노한 부모를 둔 외동아들이라고 면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해군에 가거들랑 자식같은 저무기, 저 무기체계에 담겨있는 이 아빠의 자취를 더듬어 주었으면 하고, 바래보지만....

그 때까지 저 무기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 대한민국 해경이나, 해군입장에서는 큰일 날일이라, 그리 기대해서는 안될 것같고... 그 보단, 늦둥이 녀석이, 지 바람대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 우주선이나 날으는 자동차 맹근다고 수십년된 그런 고리타분(?) 엔지니어링은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을 지도. 뭐, 그리되면, 이 아빠는 더 바랄나위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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