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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자연으로돌아오라

말벌의 인사

by 靑野(청야) 2017. 6. 13.

오늘은 지극히 감동적인 날이다.

평소 쓸쓸, 한적하고 고즈넉하던 시골,.
텃밭에서 새벽부터 모처럼, 종일 잡초를 제거하였다 .
.
잡초란 초식생명체를 인간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인간의 건방진(?) 독선적인 사고의 결과 아닌가?.
인간은,,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에 방해가 되는 풀들을 잡초라 하는 것이다..
'벼논에 피는 잡초' 이지만 '피를 키우는 논에 벼는 역시 잡초'인 것이다..
.
이른바 잡초중, 내는 이름이 '쑥', '넝쿨잡초(?)' 인 것밖에 모르는 데,
어쨋튼 이들을 여러 이름모를 풀들을 잡초라하자..
그놈의 잡초는 어려운 환경에 자라고, .
이놈들이 제거한다고, 자주 뜯기다보면,.
영양이 뿌리로 간 탓인지, 짜리몽탕해진 놈이 뿌리를 얼마나 단단히 박는 지,
.
고추, 열무나 상추밭에 자라는 잡초를, 골마다. 두둑마다 제거하는데.
몇골. 몇두둑 뽑지 안해도 이 나이에 허리며 팔이며 손가락에 무리가 온다..
.
잡초는 뿌리채 뽑아아지, 줄기만 쳐서는 오히려 뿌리를 키워서 뒷날 제거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봄. 초여름 걸쳐서 대충 줄기만 제거한 잡초들이 뿌리를 키워, 반항하니, 제거에 예사 고통이 아니다..
이대로 지내다간 7,8월 지나면 잡초밭이 아니라 잡초나무숲이 될게 뻔하다..
그때는 제초제를 사용하거나 장비로 갈아 엎기전에는 제거가 불가능하다..
5월말, 6월초, 지금이 텃밭잡초를 손으로 제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20170614_070741[1].jpg

<잡초를 제거하고 난 뒤 텃밭>

'쑥대밭' 이리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정말 실감난다..
.
어지간한 풀들은 넝쿨잡초(?)가 덮혀버리면 쭉을 못펴고 비실비실하다..
이를 테면. 코스모스밭에 넝쿨잡초가 자라면 주변 코스모스 꼭대기를 그물 덮듯이 덮어,.
코스모스들이 더 이상 크지 못하고 비실비실 거리거나 죽어버린다..
이처럼. 대부분의 식물은 넝쿨잡초의 침공이 있으면 이를 이기지 못해. 제풀에 말라 죽는 데..
쑥만은 넝쿨잡초가 엉겨붙는 것을 뿌리치고 그야말로 쑥쑥 커버리면,

20170614_070813[1].jpg
<넝쿨잡초(?) 가 덮혀있는 잡초밭>


그 지독한 넝쿨잡초도 맥을 못추네. .
오히려 넝쿨잡초는 커버린 쑥대그늘에서 노랗게 잎이 물들며, 비실거린다.

역시 '쑥'은 이름그대로 잡초의 대장이다. 이름하여. 쑥대장!!!.
.
요새 가뭄이 심하다..
오늘 오전 내내 텃밭에 허드레물용 지하수로 연결된 물을 호스로 연결하여 틀어 놓고 지켜보며,.
텃밭주변에 쑥과 넝쿨잡초를 포함한 무성한, 이른바 잡초를 제거하는 데,.
.
오늘 따라, 유달리, 까마귀, 두견새, 까치. 종달새....
모든 산새들이, 전기줄이나, 정원수에 앉거나, 바로 뒤산 숲으로 나서.
나를 반기는 것 같다.아니 반긴다..
.
구름도 내가 반갑다고.
뙤악볕 하늘을 덮곤하며. 텃밭에서 땀흘리는 나를 위로한다..
그때마다 태양이 시샘하듯, 안타까운 듯, 구름을 비집고, 애써 틈을 만들며..
해맑게 웃고는 부끄러운 듯 구름뒤로 숨어버리곤 한다. .
맑은 날 볼 수 없었던 햇님의 모습이다.
.
'안녕'.
'잘 지내니?'.
'반갑다',.
..
..
..
반기는 인사겸..
.
'더러븐 인간세상 잊고사니 우떤노?'.
.
하고 따지는 것 같기도 하다..
.
새들이고, 구름이고 햇님이고,.
방안에 있으면, 조용한(?) 놈들이.
방만 나서면 우찌 그리 반기는 지!!!.
.
벌들도 나를 반긴다..
너댓 달 가물어 마을공동수도가 제한 급수한지 며칠되었다..
이래 안되겠다싶어, 식수용 지하수를 파고자 업체를 불렀다..
.
오래간만에 데크위 의자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데,.
갑자기 반바지를 입은 장단지가.
.
'따, 따금', .
"아악".
.
혼비백산!!, 원인을 찾아보니. 세상에.....
데크위에 얹어 놓은 탁자밑에 말벌이 제법 큰집을 집을 짓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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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위의 무단 침입자 말벌통>

살은 지 제법되는 모양인데. 쥔이 아는 체를 안하다고 .
오늘 드디어 나름대로 기회를 포착(?)한 모양이다..
.
모처럼 공사상담으로 데크 위 탁자밑 바로 저거집 앞에.
장단지를 들어 내놓았으니. 이놈들이 찬스다 인사할 수 밖에.....
모처럼 인사치고는 경악스럽기까지하다..
.
"아악".
.
어찌나 놀라고 아픈 지 손을 가져가 벌놈들을 떼리려했더니 손가락에도 인사를 해뿐다..
.
살펴보니 그곳에 제법 오래전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데크를 얼마나 이용안했던지? 말벌이 집짓고 사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다가.
오늘 호된 신고식을 받았던 것이다..

어릴 때, 땡벌한테 쏘인 기억은 있어도 말벌에쏘인 기억은 없다..
말벌은 왕벌다음으로 무서운 놈이다. .
.
보통은 시골 골목이나 산속, 들판에서 봉변을 당하기 마련인데..
오늘 나는 바로 집앞 데크에서 호된 인사를 받았던 것이다..
호된 신고가 아니라 호된 인사라....
.
오늘 따라. 새라는 새는 다 나서고, 구름과 햇님, 말벌마져 나서.
나에게 인사를 하니 앞으로도 자주 내보고 나서 달란 모양이다.기특한 놈들이다..
하지만 종달새. 두견새에 비해, 말벌의 인사는 인사치고 당차다..
장단지가 매우 따갑고 부어오른다. 또 언놈이 갑자기 인사하러 올지?.
그동안 문을 닫아놓고 살았더니 영 대화가 안되었던 것이다?.
.
'인제 여름에 접어 들었으니 문 좀열고 자연과 대화하면서 살아라'.
.
하는 자연의 충고겸 경고인 것같다..
앞으로 오늘 처럼 장시간 바캍공기 마시며 자연과 대화 시간을 늘릴 일이다..
.
말벌의 인사가 아프기는 하지만 많은 느낌을 가져다 주는 따끔한 인사였다..
덕분에 응급으로 앞집으로 뛰어가 막걸리를 사다가 물린 데 바르고,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불현듯, 어릴 때,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6~7세 때.
어느날 6살위 형하고 소꼴을 베려 갔다.
시골 논뚝에서 형은 풀을 베고 나는 말상대, 심심풀이 상대로 뒤따라 가는 데,.
형이 갑자기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 나가면서 나를 빨리 오라한다..
무슨 일인가 나도 급하게 달려갔더니.
.
'악, 아악!!!'.
.
벌떼가 내머리에 달라붙어 침을 쏘아 댄다..
형이 풀을 베다, 논둑에 있는 벌집을 건드린 모양이다..
엉급결에 소리치며 저쪽으로 도망가라 하는 숨가쁜 손짓이,.
내가 보는 순간에는 이리로 오라는 숨가쁜 손짓으로 알고 달려가다,.
내 머리에 벌떼가 왕창 달라 붙어 마구 쏘았던 것이다..
땡벌(땅벌)이였다..

아버지가 땡벌떼에 쏘인 내머리에, 술을 붓고, 어린 나에게 술까지 먹여셨 데,.
오늘 말벌에 쏘인자리에 갑자기 생각나는 술,.막걸리!
그리고 땡벌에 쏘였을 때 술로 처방하시던, 아버지,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몇년 전부터 장조카보고,

"벌초도 하지말고 제사도 지내지마라.
시골 심신산골에 묻힌 너거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언제까지.일꾼사서 벌초할 것이냐?,
그자리에서 그냥 자연속으로 묻혀지고, 자연화 되게 하는 길이다.그길이, 가장 돌아가신 이를 위한 길이다".

카면서...하지만, 오늘 말벌의 인사를 받고는 생각을 바꾸어야겠다..

말벌이 깨우쳐준다..
.
'아버지. 어머니를 잊지말라'.

내가 살아 생전에는 아버지 묘소를 다시 찾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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