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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思考놀음

by 靑野(청야) 2013. 11. 4.

      우리 동기들에게,  玄學的인 취미가 있는 이들이 유달리 많은 것 같다.

      굳이 취미라고 하는 것은, 그 일이 본업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주(학문, 먹고사는, 즐기는)분야에서 고도의 성취를 이루는 데도 벅찬 현실에서

      주 분야가 아닌 분야에 까지, 눈을 돌리고, 죽을 둥살 둥(?) 에너지를 쏟는 것은

       

      주 분야에서 성취를 넘어, 통섭과 융합을 지향하는 고도화 프로세스상의 과정일 수도 있겠고,

      주 분야를 더 뾰족하게  심화시키기 위한 기반다지기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내 처럼,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어영부영 설쳐대는 것은,  

      자기분야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은 부질없는 욕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는, 아예 관심없는 듯 하던가, 

      아니면, 나름대로, 해답을 구한 듯, 아니면, 포기한 듯  묵묵부답! 혹은,

      요즈음처럼 먹고사는 일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 대부분의 소시민들의 심중으로,

       

      '새삼스레 무슨 그런.... 정신나간 사람 봤나?'

      '인생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하며, 이런 물음자체를 배부른자 소리 취급하며, 거부감이 앞설 지도 모르겠다.

       

      철학이 어떻고, 과학이 어떻고... 

      그것이, 전문가에게는 전문가대로, 소시민에게는 소시민대로,

      어설픈, 지적유희에 다름아닌 것인가? 

       

      어떤 분야를 주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주변인사들의 어설픈 思考놀음이, 영 마땅찮거나, 가소롭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철부지들의 노는 꼴처럼, 한편으론  귀엽게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시간은 제까제깍 흘러가고, 머리에는 회색털이 늘어만가도,

      자기 인생, 대신해줄 이 없으니,

      누가 뭐라해도, 내꼴리는대로, 제멋에 사는 것인가?

       

      그러니....

       

      이왕 사고놀음하는 김에,

      여기에 더하여, 한가지 더 제안하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만유가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다 

      과연 그런가?

       

      '시간' 에 대해, 뜻이 있으면, 깊이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심득한 내용이 있으면, 공유했으면 한다.

       

      근본에 대한 고민없이 이삭이나, 줄기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는 일들이,

      더욱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이야기다. 

       

      도덕경 해설판은 도서고금에 수천가지가 넘고, 간단간단한 의견피력수준의 가짓수는 셀 수도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라는 그 '道'를 두고, 수많은 신비로운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중국의 근대철학자 양계초(梁啓超]의 노자철학'에서

       

      '도는 원래 말하지 않는 것이며, 입박으로 나온도는 원래의 도가 아니다"

       

       

      청나라 관리이자 학자인 魏源(위원) 이 저술한 '老子本義'에서,

       

      "지극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위와 이름이 없으니, 진리를 품고 행적을 감추며, 남에게 이야기 하는 바가 없다. 비밀도 아닌다 말하지 않는 것은 도를 말로 나타내어 명예를 좇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령 윤희의 청에 못이겨, 책을 썼지만, 서두에서 밝히건데, 도란 말하기 어려우니, 대강 뜻을 헤아리는 것으로 일정한 의미가 있으며, 어디에든, 다 불변의 것은 아니다" 하였다.

       

      魏源(위원) 의  '老子本義'처럼,  本義 의 반열에 오르는 도덕경 집석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깨달을 수 있을 뿐 말로 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중국 전통 사상사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다. '敎外別傳'이라는 선불교의 깨달음도 이런 문화풍토에서 깨달음을 전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완전하게 깨달음을 얻었다면, 말할 수 없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 과 '말로 표현하는 것' 은 다르다. 완전하게 깨달았다고 해서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언어의 문제도 있고, 표현의 시간이나 받아드리는 자의 자각에 따라 달라 질 것이다.

       

      어쨋거나, 깨달았다는 것이 실은 '깨달음의 부스러기일 뿐' 이거나,  '비록 완한한  깨달음이라해도, '문자나 표현수단의 문제나, 받아드리는 자의 수준에 따라 표현되지 않는 전함' 있다면,  남의 깨달음이라는 게, 받아드리는 자가, 눈치채지 못할 지언정, 이 또한 깨달음의 부스러기 일 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전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 도의 부스러기를 전한다'는 생각으로 '감히 전한다'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다만 심득한 내용이 이런 것이다 말할 뿐'

       

       

       

       

      2013년 11월 4일, 경기도 화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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