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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동양철학/老子別義(上)

老子別義(上)_28장_知雄,守雌(지웅수자)

by 靑野(청야) 2013. 10. 2.

Lao-Tzu's Taoteching: With Selected Commentaries of the Past 2000 Years 

<저자:  Lao-Tzu, Pine, Red (TRN), Pine, Red>

<출판사:Mercury House>

<출판일:1996.08.01>

 

도덕경 28장

知其雄, 守其雌(지기웅 수기자), 남성다움을 알고, 여성다음을 다스려라
爲天下谿(위천하계), 세상의 물줄기가 될 것이다
爲天下谿(위천하계), 세상의 물줄기가 되면,
常德不離(상덕불리), 항상 덕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復歸於嬰兒(복귀어영아), 간난아이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知其白, 守其黑(지기백,수지흑) 희다는 것을 알고, 검다는 것을 다스려라
爲天下式(위천하식), 세상의 모범이 될 것이다.
爲天下式(위천하식), 세상의 모범이 되면,
常德不忒(상덕불특), 항상 덕은 어긋남이 없이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 무극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知其榮, 守其辱(지기영,수기욕), 영화로움을 알고, 오욕을 다스려라
爲天下谷(위천하곡), 천하의 골짜기가 될 것이다
爲天下谷(위천하고),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常德乃足(상덕내족), 항상 덕이 풍족할 것이고,
復歸於樸(복귀어박), 다듬지 않은 통나무로 돌아갈 것이다.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다듬지 않은 통나무는 쪼개면, 그릇이 되지만,
聖人用之(성인용지), 성인이 이를 써서
則爲官長(즉위관장), 관청의 우두머리정도로 밖에 쓰지 않는다.
故大制不割(고대제불활) 고로 크게 이루어지게 하려거든 통나무를 자르지 말라

 

주) * 谿 : 시내 계, 다룰 혜-> 시내, 시냇물, 산골짜기, 텅 비다, 헛되다
     * 谷 : 골 곡 ->골, 골짜기, 깊은 굴, 경혈, 경맥에 속해 있는 혈
     * 乃 : 이에 내-> 이에, ,이와같다.
     * 天下式 :세상(世上)의 모범(模範)
     * 谿谷 :골짜기, 물이 흐르는 골짜기
     * 忒 :틀릴 특-> 틀리다, 어긋나다, 의심하다, 변하다, 새롭게 고쳐지다

 
[남성다움을 알고, 여성다움을 다스려라. 세상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물줄기가 될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물줄기가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간난아이 처럼 원초적으로 순진무구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희다는 것을 알고, 검다는 것을 다스리면, 세상만사를 꽤뚫어 볼 수 있어 세상의 모범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범이 되면, 항상 덕은 어긋남이 없이 태초의 무극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영화로움을 알고, 오욕을 받아드리면, 세상만물을 포용할 수 있는 골짜기가 될 것이다. 세상만물을 받아드리는 골짜기가 되면, 항상 덕이 넘쳐날 것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 처럼 질박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는 쪼개면, 그릇이 되듯이, 사람을 성인은 이를 써서 관청의 우두머리정도로 삼는다.

고로 큰 재목으로 쓸려 하려거든 통나무를 쪼개려 하지 말라]

본장 역시 26장, 27장과 마찬가지로, 곽점초묘죽간본, 즉 초간본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참으로 심오막측한 귀절이다. 22장의 '曲則全(곡즉전) 즉, '곧은 것이 온전한 것이다' 라는 귀절의 심오함을 떠올리게 한다. 즉, 반듯한 것이 온전 한 것이 아니다. 반듯한 것은 언제나 구부러지고, 요염되고,울퉁불퉁한 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구부러지고, 요염되고, 울퉁불퉁한 것이 자연스럽고, 이런 자연스러움에 기반한 것이 온전하다 할 것이다.


도덕경 모든 장의 귀절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22장에 이어, 28장 역시, 22장 못지 않게, 고도의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사물의 본질과 양면성을 두루 꽤뚫러 보고, 원초적인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라. 그리되면, 간난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세상만사를 꽤뚫러 보는 지혜가 충만하고 세상의 모범이 되며, 태초의 무극 상태처럼, 모든 것 비우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통나무처럼될 것이다. 그것이 도를 터득한 모습, 道者, 성인의 모습이다.

<왕필본>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 聖人用,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백서본>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溪. 爲天下溪,德不離. 德不離,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辱, 爲天下谷. 爲天下谷,恒得. 恒得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爲器,聖人用則爲官長.
大制无割


周易의 繫辭傳(계사전)에 만물이 성립하는 근본은 태극으로 보고, 이것이 兩儀를 낳고 양의가 다시 四象을 낳는다고 하였다.

 

주) * 繫辭傳(계사전)은 주역64괘의 풀이, <주역> 사상의 난해한 내용을 체계적이고

       철학적으로 서술한 책

노자는. 도덕경 42장에서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으며,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 음을 등에 없고 양을 가슴에 안았다. 氣가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룬다'

고 하여 하나에 해당하는 태극 이전에 이미 도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있다. 즉, 도는 형체가 없지만,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고 했다. 또 노자가 말하는 둘은 태극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하늘과 땅인 음과 양의 兩儀이다. 다음의 셋은 음과 양 및 음양이 서로 맞물려 작용하는 沖氣(충기)의 개념이다.

주역의 계사전의 태극을 바탕으로 그 위에 도의 개념을 설정하였으니, 철학사적으로 도덕경이 주역의 계사전을 앞설 수 없다고 하는 설이 있다. 반면에, 노자의 사상은 주역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도덕경 42장은 초간본에는 없다. 그러니 42장은 백서본이후에 추가된 내용이다. 그러니, 이때는 주역의 계사전을 바탕으로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먼저 생기고 영향을 주었는지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도덕경의 성립연대가 초간본, 백서본, 왕필본에 따라 내용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교시, 어느 도덕경을 기준으로  했느냐 하는 것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어쨌거나, 원시유가나 원시도가가 태초의 상태 즉 태극을 설정하는 데는 인식을 공유한다. 다시말하면, 사상적 원류는 同類라는 것이다.

본 28장은, 문장구조상 雄,雌(웅.자->남여), 흑백(흑.백), 榮辱(영.욕)의 대립되는 개념은 마치 태극이 분화되어 양의가 되고 사상이 되고 팔괘가 된다는 주역 사상의 '兩儀' 개념을 보는 듯하다. 세상만물은 양면성이 있거나 대립되는 개념이 상호 대립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며 존재한다 것이 兩儀思相이다.

왕필본이나 백서본의 차이는 크게는 없지만, 백서본에서 知其白(지기백)과 댓귀로 守其辱(수기욕)이어지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아마 백서본에서 누락이 있었던 모양이다. 왕필본의 知其白 댓귀로 守其黑(수기흑), 그이후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로 이어지는 것이 白黑의 兩儀思想에도 부합하도록 올바른  댓글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타당해 보인다.


노자는 말한다. 남성다움을 알고, 여성다움을 다스리면, 세상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물줄기가 될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는 물줄기가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을 것이고, 간난아이 처럼 원초적으로 순진무구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희다는 것, 즉 밝음을 알고, 검다는 것죽 어둠을 다스리면, 세상만사를 꽤뚫어 볼 수 있어 세상의 모범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범이 되면, 항상 덕은 어긋남이 없고, 태초의 다함이 없는 상태 즉, 無極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영화로움을 알고, 오욕을 받아드리면, 세상만물을 포용할 수 있는 깊은 골짜기가 될 것이다. 세상만물을 받아드리는 포용력 있는 골짜기가 되면, 항상 덕이 넘쳐날 것이다

그리되면, 다듬지 않은 통나무 처럼 질박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통나무는 잘라내어 그릇을 만들 수가 있다. 그릇에는 담기는 물건에 따라 천차만별의 그릇이 있다. 그릇은 사람의 크기이다. 통나무를 잘라낸 재목으로 사람이라는 그릇을 양성한다. 하지만,  만약 통나무를 잘게 쪼개면 그만큼 쓸모는 있을지언정 그릇의 크기가 작아진다. 그렇게 양성된 인재는 소인배일 뿐이다.

'君子不器(군자불기)'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즉,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한정하여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뜻이다.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노자가 본장에서 말했다. 통나무를 깎아서 그릇을 만든다는 뜻이다. 통나무를 잘게 쪼개서 그릇을 만들면 그릇의 크기가 작아진다. 통나무를 키워서 자르면, 큰 그릇이 된다. 대기만성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그릇은 그릇일 뿐이다. 이런 인물은 '聖人用之, 則爲官長'이라, 관청의 우두머리로나 쓰일 뿐이다.

그래서, '그러지 말라, 즉, 대제불할(大制不割)'이요, '복귀어박(復歸於樸)'이라 했다. '크게 이루어지게 하려거든 함부로 자르지 말고, 통나무로 돌아가라' 는 뜻이다. 그리되면, 兩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꽤뚤러 보고, 포용하는 덕이 넘치는 공자의 군자, 노자의 道者, 나아가 성인이 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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