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칠현 은거지 하남성의 윈타이산(雲太山)>
[도덕경 26장]
重爲輕根(중위경근),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이고,
靜爲躁君(정위조군), 고요한 것은 소란스로움을 다스리는 주인이다.
是以聖人終日行(시이성인종일행), 그러므로 성인은 종일 가드라도,
不離輜重(불리치중), 짐수레를 떠나지 않고,
雖有榮觀(수유영관), 비록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고 하나,
燕處超然(연처초연), 한가롭게 머물며 초연하다.
奈何萬乘之主(내하만승지주), 어찌 만승지주의 몸이 된다하여도
而以身輕天下(이이신경천하)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겠는가?
輕則失本(경즉실본) 가벼우면 그 근본을 잃을 것이요.
躁則失君(조즉실군) 소란스러우면, 그 주인을 잃을 것이다
주) * 躁 : 조급할 조->조급하다, 떠들다, 성급하다, 시끄럽다.
* 輜 : 짐수레 치->짐수레,관을 싣는 수레. 수레의 범칭,바퀴살 끝,고요함
* 雖 : 비록 수 -> 비록,아무리 ~하여도, 그러나, 도마뱀붙이, 벌레 이름.
* 燕 : 제비 연->제비, 잔치, 향연,나라이름, 예쁘다, 아름답다, 얌전하다
* 奈 : 어찌 내, 어찌나->어찌, 능금나무, 대처하다, 대응하다,견디어 내다
* 輜重 : 말이나 수레 따위에 실은 짐
* 燕處 : 내집처럼 편안한곳, 한가롭게 머무는 곳
* 奈何 : 어찌 ~ 오
* 萬乘之主: 만대의 수레의 주인, 天子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이고, 고요한 것은 소란스러움을 다스리는 주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종일 가드라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고, 무겁게 처신하며, 비록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고 하나, 한가롭게 머물며 초연하다.
어찌 만승지주의 몸이 된다하여도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겠는가? 가볍게 처신하면 그 근본인 무거움을 잃을 것이요, 소란스럽게 처신하면, 그 주인인 고요함을 잃을 것이다 ]
앞장에서 만물의 생성과 태초를 이야기 하다, 본장에서는, 聖人과 天子 즉, 인간지도자의 처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본 장역시 초간본에 없는 내용이다. 백서본과는 대동소이하나 백서본에서는 聖人을 君子로, 主를 王으로 표현했다.
성인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완성됨으로 평가할 때 최고봉의 경지이다. 인간등급 10등급에 해당되지 않을까? 萬乘之主인 天子(천자)의 크기는 성인에 못지 않다. 萬乘은 글자 그대로 만대의 수레에 짐을 채우고 떠나는 위세를 가진 자는 당시에는 天子밖에 없었다 한다. 하지만, 근대 중국의 玄學者였던 양계초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若何萬乘之王,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躁則失君.
몇대의 수레를 끄는 사람이라면, 이리저리 가볍게 옮겨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백성들이야 홀가분하게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 이리저리 발길을 옮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성인과 만승지주가 처신해야 할 바가 아닌 것이다. 성인이나 만승지주가 무게중심을 잡고 무겁게 행동하면 그 것을 뿌리로, 일반백성들은 가벼워도 된다. 그 가벼운 만백성들이 안정하게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즉, 가벼움은 무거움의 바탕위에서 안정되게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인은 종일 가드라도, 짐수레를 떠나지 않고, 무겁게 처신하며, 비록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고 하나, 한가롭게 머물며 초연하라. 비록 만승지주의 몸이 된다하여도,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면 안된다. 성인과 만승지주가 무겁게 움직이고 고요함을 잃지 않야야 할 것이다. 만약, 성인과 만승지주가 가볍게 처신하여, 그 근본인 무거움을 잃고, 소란스럽고, 조급하게 처신하여, 그(소란스러움의) 주인인 고요함을 잃는 다면, 그러면 일반 백성과 무었이 다르겠는가? 일반백성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겠는가?
'萬乘之主'에서 문제 제기가 많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인 '승'을 만대나 거느릴 수 있는 나라가 없었으므로 춘추시대에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양계초)
주) * 양계초(梁啓超, 1873 ~1929 )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남단의 섬에서 태어났다. 6세에 할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사서(四書)와 '시경'(詩經)을 배웠으며 8살 전에 오경을 독파했으며, 12세에 수재(秀才) 시험에 합격했고 17세에는 거인(擧人)이 되었으며, 신동이라 불릴 만큼 명민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왕'은 주나라 천자만이 쓸 수 있는 말로, 그 후 만승의 전차를 낼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제후가 왕으로 참칭(僭稱)하는 것은 전국시대의 일이였다고 한다.
위 비교 소개한 백서본에서는 왕필본의 '萬乘之主'가 '萬乘之王'으로 되어있다. 백서본에서는 천자의 의미로 '王'이라 칭하던 것이 왕필본에서 '主'로 바뀐 것은, 왕필의 그 시대에는 이미 힘을 가진 제후들이 '왕'을 칭하던 것이 일반화 되었으므로, 만승의 주인을 구별하고, 천자의 격을 높이느라 '主'로 칭하고, '萬乘之主'로 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계초가 왕필본의 '만승지주'에 대해. '춘추전국시대에는 '만승을 거느릴만한 나라가 없었다'고 의문을 표하였고, 백서본에서는 '萬乘之王으로 표현되어 있고, 당시에는 '天子' 만이 '왕'이라 할 수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하니, 양계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장이 초간노자에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 장은 적어도 전국시대이후에 개작 추가된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26장은 백서본이 적어도 춘추전국시대이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추론 할 수 있는 단서를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양계초는 백서본을 보지 못하고 왕필본만 보았을 개연성이 크나, 어쨋튼, 양계초는 해박한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이미 도덕경 왕필본의 26장의 문제를 꽤뚫어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묘하다. 양계초가 17세에 신동으로 불렸고, 왕필이 천재소년으로, 그 나이에 왕필본 주해를 했다하니, 고금에 걸쳐, 중국에는 현학(玄學)분야에 천재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老軀(?)를 이끌고 천재들의 생각을 더듬어, 노자에 가까이 가고자 하니 어찌 버겁지 아니하겠는가?
현학은 인간인식을 초월한 우주생성의 근원으로서 도의 현묘함에 대해 연구하고 사유하는 철학인데, '도덕경', '장자', 주역'을 기반으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덕경', '장자', 주역'을 3현(玄)이라 하는 데, 왕필이나 양계초 모두 현학자들인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老子別義' 공부방에 모인 이들은 현대판 현학도들이로구나!
중국 위(魏)·진(晉)의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권력에는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 명의 선비들이 있었다. 이른바 유명한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이름이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 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학의 대표적 사상가들로,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입장을 당시 지식인들이였던 것이다.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 하지만, 이후 현학은 현실세계와 동떨어저 지나치게 사색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어쩐지 도덕경에 빠져 들수록, 사색은 깊어지고(?), 속세를 초월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지더라니...
이러다 죽림칠현 흉내내고 정말로 속세를 버릴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과거 주나라 망할 때 꼴이 보기싫어 숙세를 버렸다는 노자 생각이 난다. 나 역시 그 길을 따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세상, 이놈의 나라다. 아마도 멀지 않아, 나도, 그래야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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