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Waley, Arthur, Wilkinson, Robert>
<출판사 : Lb May & Assoc Inc >
<출판일 : 2007.03.02>
[도덕경 23장]
希言自然(희언자연), 자연은 거의 말이 없다.
故飄風不終朝(고 표풍불종조), 그러하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내내 불지 않고,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孰爲此者(숙위차자), 天地(천지), 누가 이렇게 하는가? (바로) 하늘과 땅, 천지이다
天地尙不能久(천지상불능구) 하늘과 땅도 오히려 능히 오래하지 못하는 데,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 하물며, 사람이 그렇게 하겠는가?
故從事於道者(고종사어도자),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道者, 同於道(도자, 동어도), 도를 닦는 사람은, 도와 함께하게 하고,
德者, 同於德(덕자, 동어덕), 덕을 닦는 사람은, 덕과 함께하게 한다.
失者, 同於失(실자, 동어실), 잃어버림이 있는 자는, 그 잃어버림과 함께 한다.
同於道者(동어도자),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道亦樂得之(도역락득지), 도(에서) 또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同於德者(동어덕자), 덕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德亦樂得之(덕역락득지), 덕(에서) 역시, 즐거음을 얻 것이다
同於失者(동어실자), 잃어버림이 있는 자와 함께하면,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 그 잃어버림이(에서) 또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信不足焉(신부족언), 신뢰가 부족하면
有不信焉(유불신언). 불신이 생겨난다.
주) *飄 : 나부낄 표-> 나부끼다 ,빠르다,방랑하다,떨어지다, 회오리바람, 질풍, 바람
*驟 : 달릴 취->(말이) 달리다,아주 빠르다,갑자기. 돌연히. 홀연히.
*同 : 한가지 동-> 한가지, 무리, 함께, 같다, 같이 하다, 합치다
*尚 : 오히려 상-> 오히려,더욱이,또한,아직,풍습, 풍조,숭상하다
*焉 : 어찌 언 ->어찌, 어떻게,어디, 어디에,보다, ~보다 더, 이에, 이(지시 대명사)...
*於 : 어조사 어, 탄식할 오-> 어조사(~에, ~에서), 기대다, 따르다 ,탄식하다, 아아
*乎 : 어조사 호->~느냐?, ~지?, ~겠지?, ~도다, ~에, ~보다, 아!, 감탄사(=呼)
*從事 : 섬기다, 다르다. 어떤 일에 매달리다
*驟雨 :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而況 : 하물며
[자연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 천지이다. 하늘과 땅도 능히 오래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사람이 그렇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도와 함께하게 되어, 도와 같아지고, 덕을 닦는 사람은 덕과 함께하게 되어, 덕과 같아진다. 도와 덕을 닦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림을 함께 하게 된다.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도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덕을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덕 에서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도와 덕을) 잃어버림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잃어버림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신뢰가 부족하면, 불신이 생겨난다.]
왕필본의 23장도 초간본에는 없다고 앞서 밝힌 바가 있다. 이 역시 태사담이나 그 후 개작자의 작품이지 싶다. 해서 그런지, 일견 쉬운 글자들로 구성되었지만, 여느 장 못지않게,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 도덕경 전체에서 제일 난해한 귀절이라 할 만하다. 그 이유는 노자의 저작은 아닌 것이고, 개작자의 추가, 재 개작시의 부적절한 처리결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다.
*驟雨 :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而況 : 하물며
[자연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 천지이다. 하늘과 땅도 능히 오래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사람이 그렇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도와 함께하게 되어, 도와 같아지고, 덕을 닦는 사람은 덕과 함께하게 되어, 덕과 같아진다. 도와 덕을 닦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림을 함께 하게 된다.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도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덕을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덕 에서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도와 덕을) 잃어버림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잃어버림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신뢰가 부족하면, 불신이 생겨난다.]
왕필본의 23장도 초간본에는 없다고 앞서 밝힌 바가 있다. 이 역시 태사담이나 그 후 개작자의 작품이지 싶다. 해서 그런지, 일견 쉬운 글자들로 구성되었지만, 여느 장 못지않게, 해석하기 매우 어렵다. 도덕경 전체에서 제일 난해한 귀절이라 할 만하다. 그 이유는 노자의 저작은 아닌 것이고, 개작자의 추가, 재 개작시의 부적절한 처리결과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오래도록 思惟해도, 단순한 해석으로는 문장에서 의미하는 바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23장의 해석을 홈페이지에 올리는데 시간을 오래 끈 이유이다.
기본 기조는 왕필본에 두고 있되, 나름대로, 해석이 매끄럽지 못한 원인을 찾기 위해, 백서본과 비교하였고, 백서본도 마땅하지 않아, 문장구성을 수정하여 보았다.
또, 도덕경 23장을 독립된 주제를 가진 세개의 연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있는 이도 있다(인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세계의 연이 의미상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내 관점도 소개한다.
결국 본장은 자연스러움과 그 자연스러움을 받아드리는 자의 자세에 관련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문장인 것 같다. 이 장은 앞장인 22장의 '굽은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온전한 것이지, 네모 반듯하고, 직선으로 쭉 벋은 그런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라는 '曲則全'과 관련된 문장과 맥락이 이어져 보이기도 한다.
'希言自然(희언자연),故飄風不終朝(고 표풍불종조), 驟雨不終日(취우불종일), 孰爲此者(숙위차자), 天地(천지), 而況於人乎(이황어인호)'
<백서본>
希言自然(희언자연),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暴雨不終日(폭우부종일), 孰爲此?(숙위차)
天地而不能久(천지이불능구),又況於人乎!( 우황어인호)
'자연은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하늘과 땅, 천지이다. 하늘과 땅도 능히 오래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사람이 그렇게 하겠는가? '
이 귀절은 왕필본과 백서본이 비슷한 뜻의 상이한 몇 글자를 빼고는 동일하다. 해석 역시 차이가 없는 것 같다. 希言은 바랄 希에 말씀 言으로, '말씀을 바란다'. 즉, '말이 드물다. 말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希貴(희귀)' 하다는 것이 없다, 아니다 처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되, 드물어 貴하다는 의미처럼.
하늘이 본받는 것이 도이다. 도는 만물의 바탕이고, 만물터전이고, 만물의 근원인 자연은 요란스럽게 말함이 없이 묵묵히, 역활을 수행한다. 봄,여름, 가을, 겨울때에 따라 비바람을 휘몰아치게 하고, 태양이 떠올라 밝음과 어둠, 덥고 추움을 조절하여, 생명을 잉태시키고, 기르고, 수확하게 하지만, 말없이 한다. 그것이 希言自然(희언자연)이다.
간혹 회오리 바람이 대지를 쓸고 지나가지만, 아침나절 내내 그러질 못한다. 잠시 뿐이다. 또, 소낙비를 쏟아지게 하지만, 하루종일 내리지 않는다. 소낙비는 한차례씩 잠시 잠시 쏟아질 뿐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것이 소낙비다. 그렇게 하면서, 요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말없이 그런 자연현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곤하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는가? 바로 하늘과 땅, 천지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같은 자연도, 회오리바람을 한나절을 넘겨 오래도록 불게하기 어렵고, 소낙비를 종일 쏟아지게 하기 어렵다. 하물며,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왕필본>
'故從事於道者(고종사어도자), 道者, 同於道(도자, 동어도), 德者, 同於德(덕자, 동어덕), 失者, 同於失(실자, 동어실)'
'故從事於道者(고종사어도자), 道者, 同於道(도자, 동어도), 德者, 同於德(덕자, 동어덕), 失者, 同於失(실자, 동어실)'
<백서본>
故從事而道者(고종사이도자), 同於道(동어도), 德者, 同於德(덕자,동어덕), 失者 同於失(실자,동어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도와 함께하게 하여, 도와 같아지고, 덕을 닦는 사람은 덕과 함께하게 하여, 덕과 같아진다. (도와 덕을) 잃어버림이 사람은 잃어버림을 함께 하게 된다.'
백서본과 대비하면, 왕필본에서는 而(말이을 이)가 於(어조사 어)로 바뀌었고, 그리고 '道者'가 同於道'에서 추가되어 있다.
이는, 백서본의 '故從事而'道者'를 문장구성 그대로 붙여해석하면, 뒤의 귀절이 '同於道' '德者, 同於德', '失者 同於失'가 되어, '同於德'이나 '同於失'이 바로 앞의 '德者', '失者' 를 이어받고 있지만, '同於道'는 이어받을 대상이나 해석이 없어 애매해진다.
그래서, 왕필본에서 '故從事而道者' '而'를 '於'로바꾸고, '同於道' 앞에 '道者'를 추가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이번에는 '道者'가 반복되어 어색해진다. 왕필본도 재대로 개작한 구성이 아닌 것 같다.
어떤이는
'德'을 '失'과 댓귀를 이루도록 '得'으로 해석하여, '故從事而道者, 同於道, 得者, 同於得, 失者 同於失' 와 같이 한다는 데, 이것은 '同於' 에 대한 설명이 안되고, '道와 得, 失의 댓귀관계를 무시한 터무니 없는 해석일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은, '故從事而道者'를 '故從事'와 '道者'를 분리하여 뒤의 同於道와 연결되게, '故從事(而), 道者, 同於道, 德者, 同於德, 失者 同於失 ' 와 같이로 하여, 해석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故從事'가 '道者, 同於道', '德者, 同於德', '失者 同於失'를 다 잇는 것으로 봐야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從事而를 각각 추가하여 '故 從事而 道者, 同於道, 從事而 德者, 同於德, 從事而 失者, 同於失' 로 구성하는 것도 어떨가 쉽다.
또, 이 귀절은 '故從事'의 '故'로서 앞서의 '希言自然(희언자연) 이하 문장에 대해 나름대로 그리 쓴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맥락으로 해석하면, 즉,
그러므로, 도를 닦고, 덕을 닦으면 도와 덕이 쌓이어 가지만, 사람이 항상 도와 덕만을 쌓을 수 없다. 때론 아침나절 불다마는 바람이 있고, 소나기가 쏟아지다가도 그치듯이, 도와 덕을 쌓고, 도와 덕을 잃게 되기도 한다.
<왕필본>
'同於道者(동어도자), 道亦樂得之(도역락득지), 同於德者(동어덕자), 德亦樂得之(덕역락득지), 同於失者(동어실자),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
<백서본>
同於德者, 道亦德之(동덕자,도역덕지), 同於失者, 道亦失之(동어실자, 도역실지)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도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덕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덕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도와 덕을) 잃어버림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잃어버림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도가 역시 즐거움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도를 닦는 사람과 함께하면, '그 도에서 즐거움, 기쁨을 얻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德亦樂得之의 해석도, '덕을 닦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 덕에서 즐거움, 기쁨을 얻는다. 즉, '덕이 기쁨을 얻는다'는 '덕을 닦는 사람이 그 덕에서 기쁨을 얻는다' 고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同於失者(동어실자)를 '(도와 덕을) 잃어버림이 있는 사람과 함께',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를, '그 잃어버림에서 역시 즐거움을 얻는다'로 앞서와 같이 해석하기에 부자연스럽다.
失(실)은 도를 닦고 덕을 행하는 일을 상실하게 됨을 말하는 것인가? 道, 德을 닦고, 행하는 사람의 경지와 즐거움을 읊다가, 난데없이 失(잃어버림)이 튀어나오니, 失이 道, 德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개념일 것인가?
왕필의 주석을 보면,
'失(실), 累多也(누다야), 累多則失(누다즉실)' 즉, 잃어버림(失)은 많이 쌓인다는 말이다(累多也). 많이 쌓이는 것이 즉 잃음이다(累多則失) 이라 했다. 하지만, 왕필의 주석도, 도덕경 본문, '同於失者(동어실자),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보다 오히려 더 헷갈린다.
'失(실), 累多也(누다야), 累多則失(누다즉실)' 즉, 잃어버림(失)은 많이 쌓인다는 말이다(累多也). 많이 쌓이는 것이 즉 잃음이다(累多則失) 이라 했다. 하지만, 왕필의 주석도, 도덕경 본문, '同於失者(동어실자), 失亦樂得之(실역락득지)'보다 오히려 더 헷갈린다.
어떤 이는 이 失을 '자아를 잃어버림' 즉 '無我의 경지'로 보는 해석도 있는 데, 이것이야말로 너무 창작적 해석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이 문장도 앞선 希言自然(희언자연) 이하 문장의 댓귀로서 해석한다. 즉, 도를 닦고, 덕을 닦으면 도와 덕이 쌓이어 가지만, 사람이 항상 도와 덕만을 쌓을 수 없다. 때론 아침나절 불다마는 바람이 있고, 소나기가 쏟아지다가도 그치듯이, 도와 덕을 쌓고, 도와 덕을 잃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도와 덕을 쌓는 사람은 도와 덕에서 즐거움을 얻지만, 도와 덕을 항상 쌓을 수 없는 일, 도와 덕을 잃을 때도 그 잃음에서마저 즐거움을 얻는다.
백서본이 이런 본인의 해석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同於德者, 道亦德之, 同於失者, 道亦失之' 라 '덕'을 쌓는 자에게는 도 역시 덕이 되고, (덕)을 잃는자에게에는 도역시 失이 된다. 도를 딲닦보면, 德이 쌓이기도(되기도) 하고, 失이 쌓이기도(되기도) 한다.
<왕필본>
'信不足焉(신부족언), 有不信焉(유불신언)'.
'신뢰가 부족하면, 불신이 생겨난다.'
백서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 앞선 내용과 동떨어진,난데없는 구절이 왕필본에 나타나는 데, 말그대로는 난데 없지만, 이귀절을 앞서의 도와 덕과 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연결하면, 왕필본에서 추가한 의미가 살아난다고 생각된다. 즉, 희언자연부터, 도와 덕과 실의 관계를 설명한 이 귀절을 논리로 따지지 말고, 선각자의 말씀이니, 마음으로 깨닫고 믿어라. 그러니, 字句마다 말로서 따지면, 불신이 생겨난다는 뜻 아닐까?
어찌보면, 23장의 앞의 귀절들이, 이 글을 改作한 사람이 봐도, 뜻을 알겠는데, 글로서 표현이 부자연스럽다고. 헷갈림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난해한 귀절이거나 개념이다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암시하는 것으로 짐작해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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