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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동양철학/老子別義(上)

老子別義(上)_21장_孔德之容(공덕지용)

by 靑野(청야) 2013. 10. 2.
Tao Te Ching (Penguin Great Ideas)
<출판사 Penguin Books>
<출판일 2011.09.20>

 

 

[도덕경 21장]


孔德之容(공덕지용), 매우 큰 덕의 모습은
唯道是從(유도시종), 오로지 도를 따르는 것이다

道之爲物(도지위물), 도라는 것은 만물을 위한 것으로
惟恍惟惚(유황유홀),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하고 으슴프레할 뿐이다.
惚兮恍兮(홀혜황혜),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하고 으슴프레하지만,
其中有象(기중유상), 그 안에 형상이 있다.
恍兮惚兮(황혜홀혜), (있는 듯 없는 듯) 으슴프레하고 흐릿하지만
其中有物(기중요물), 그 안에 만물이 있다.
窈兮冥兮(요혜명혜), 그윽하고 아득해보이지만,
其中有精(기중요정), 그 안에 오묘함이 있다
其精甚眞(기정심진), 그 오묘함은 지극히 참된 것으로
其中有信(기중유신), 그 안에 진실함이 있다.

自古及今(자고급금), 옛부터 지금까지
其名不去(기명불거), 그 이름이 사라지지 없으니,
以閱衆甫(이열중보), 이로서 만물의 태초를 가려 볼 수 있다.
吾何以知衆甫之狀哉(오하이지중보지상재), 내가 어찌, 만물의 태초가 이러함을 알 수 있겠는가?
以此(이차).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다.

주) * 孔 : 구멍 공->구멍, 굴, 성(姓)의 하나, 매우, 심히, 비다, 깊다, 크다
     * 惚 : 황홀할 홀-> 황홀하다, 흐릿하다, 마음을 빼앗겨 멍한 모양(笏)
     * 恍 : 황홀할 황->황홀하다, 멍하다, 어슴푸레하다, 마음을 빼앗겨 멍한 모양(慌)
     * 窈 : 고요할 요->고요하다, 그윽하다, 심원하다, 어둡다, 희미하다,아리땁다
     * 冥 : 어두울 명-> (날이)어둡다,어리석다,그윽하다, 아득하다,(생각에)잠기다
     * 精 : 정할 정-> 정하다. 깨끗하다, 오묘하다. 뛰어나다, 훌륭하다.
             백서본에서는 請으로, 情의 뜻. 고어에서는 言변이, 心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 甚 : 심할 심-> 심하다, 지나치다, 깊고 두텁다, 초과하다, 사납다, 많다, 탓하다
     * 閱 : 볼 열, 셀 열-> 보다, 검열하다, 가리다, 분간하다, 읽다, 살피다
     * 衆 : 무리, 군신, 백관(百官), 백성(百姓), 많은 물건(物件), 많은 일
     * 甫 : 클 보-> 크다, 많다, 이름 아래에 붙이던 미칭(美稱),(아무개)씨,겨우, 비로소
     * 哉 :어조사 재->어조사(語助辭),비롯하다, 처음, 재난(災難), 재앙(災殃)

     * 孔德 : 매우 큰 덕(왕필)
     * 衆甫 : 많은 물건, 만물, 사물의 시작(왕필)
     * 爲物 : 만물, 物件된 모습. 즉 天地의 道가 作用하는 양상.

[매우 큰 덕의 모습은, 오로지 도를 따르는 것이다. 도라는 것은 만물을 위한 것으로, 있는 듯 없는 듯 흐릿(慌)하고 으슴프레(笏)할 뿐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다. 으슴프레하고 흐릿하지만, 그 안에 만물이 있다. 그윽하고 아득해 보이지만, 그 안에 오묘함이 있다. 그 오묘함은 지극히 참된 것으로 그 안에 진실함이 있다. 옛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으니, 이로서 만물의 태초를 알수 있다.

내가 어찌, 만물의 태초가 이러함을 알 수 있겠는가?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다.]

 

2007년 중국정부의 지원아래, 홍콩에서 '도덕경문물전시회'를 개최했다. 동년 5월 18일에서 6월 5일까지 진행되는 초간본, 둔황본등 희귀한 자료 및 30종의 외국어판 도덕경이 포함되었다고 전한다.

전시회에 참석한 관련 책임자들은 한결 같이 도덕경을 중국 문화사상 불후의 걸작임을 인정했고, 도덕경에서 밝힌 ‘도’라는 개념은 중국인이 마음 속으로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개념이며. 수천 년 동안 도덕경에 주석을 단 학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전한다.

 

도덕경 21장은 왕필본과 백서본에는 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초간본에는 없다. 그래서, <도덕경>은 언제 누구에 의해 개작, 증편되는지 다시한 번 정리한다.

 

최재목이 지은 '초간노자에 의하면. 1973년 호남성 장사(長沙) 지방에서 발견된, 비단 위에 쓴 백서노자(帛書老子) >인 백서본과 1993년, 2,300년된 초나라 무덤에서 '곽점초묘죽간본'이라 불리는 노자의 진본으로 보이는 도덕경이 여러 초기 유가, 도가의 자료들가 함께 발굴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현재도 도덕경의 개작, 증편시기나 배경이 중국의 '출토문헌연구소'를 중심으로, 관련 세계적 哲人(?)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이미소개한 바가 있다.

곽점초묘죽간본은, 노담(노자, BC 571~?) 사후 100년 내외이기 때문에, 이 글이 노자와 가장 까까운 시대  자료로, 이를 진본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후, 노자 사후 150년내외, 공자사후 100년~130년경에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인물인 태사담(太師儋, BC 384혹은 BC374~)이, 1차 개작을 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태사담은 도력이 노자 못지 않아, 태사담을 노자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래서 노자가 150세, 200세를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것이고, 당시 사람들이 태사담의 1차개작을  대부분, 노자도덕경으로 알고 있었다 것이다. 

 

'초간노자'에 의하면, 태사담은  노자가 쓴 <도경>을 개작, 증편하여 만든 책이,  <백서본 도덕경>이거나, 그 원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장자보다, 약 30년~40년 앞선시대 사람으로,  장자나, 동시대의  한비자가 본 것은 이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도덕경으로 보는 것이다. 장자의 도덕경 인용에는 백서본에는 나오지만, 초간노자에서는 나오지 않는 글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태사담이 활동한 시기는 유가의 덕목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말들이 많은 데, 초간본에 없는 이런 내용이  이후 판본에는 많이 나온다. 또, 앞서 소개 했듯이 그후 진시황제시대에 2차개작이 있었다.

현재의 통행본인 AD 240년경, 위나라 출신 왕필이 남긴 것으로, 노자이후, 약 700년이상이 흐르는 동안, 첨삭되면서 백서본등으로 전해오는 도덕경을 마지막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경의 성립 과정을 다시 정리하면,

노자가 함곡관 관령 윤희에게 남김(BC500년경)->초간노자(BC450년경)->태사담이 개작한 백서본 또는 백서본의 원본(BC350~BC300년경)->(백서본)->진시황제시대에 이사 등에 의해 2차개작( BC200년경)-> 왕필본(통행본, AD 240년경)] 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이 총 700~800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문맥의 이상이나 뜻이 통하지 않는 글자등이 다수 나와 아마추어 뿐만아니라 전문가도 골탕을 먹는 수가 많은 데,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곽점 초간본의 문자는 문자 통일 이전 초나라 지역에서 사용하던 문자로서,  중국에서 문자의 통일이 이루어진 것은 진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이기 때문에, 문자수도 당시 3,300여자로 적고,  문자 통일 이전에는 각 나라에서 저마다 다른 문자를 사용기 때문에, 사본을 만들면서 자기나라에서 쓰는 글자로 대치(가차자)하여 기록하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기 때문이란다.  

즉, 백서나 초간본의 시대(진나라의 통일전)에는  잘못된 글자나 음을 빌려쓴 것이  많은 것이 그 시대의 상례라는 것이다. 더우기, 인쇄가 아니고 필사인 경우에는 잘못된 글자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1993년 초간본이 출토되어 어느정도 내용이 알려지자, 동양철학, 중국 철학 분야에 멘붕을 일으킬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의 해석은 새로 써야할 형편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자하나하나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잘못 쓴글 자, 음만 빌려온 글자에 매달려, 전체의 맥락을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기견해에 따르면, 백서본도, 문자통일 이전이므로 고문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 데, 본 21장은, 몇 단어를 제외하고는 백서본과 기존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과 대동소이한 것이 눈에 띈다. 그렇다고, 백서본이, 진시황 때의 2차개작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주목해 볼 부분이다.

 

초간본이 없는 , 다시말하면, 노자가 말하지 않은 21장의 백서본과 왕필본의 다음과 같다.


<왕필본>
孔德之容, 唯道是從, 道之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백서본>
孔德之容, 唯道是從. 道之物, 唯恍唯忽. 忽呵恍呵, 中有象呵. 恍呵忽呵, 中有物呵. 幽呵冥呵, 中有情呵. 其情甚眞, 其中有信. 自今及古, 其名不去, 以順衆父, 吾何以知衆父之然. 以此

본장은 도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글인데, 도덕경 15장에서, "도를 닦는 사람의 자세를 설명한,  '깊이를 알 수 없으므로, 억지로 묘사하자면, 겨울 내를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럼, 엄격하고, 얼음이 녹아 풀려 흐트러지듯 하고, 통나무처럼 투박하고, 골짜기처럼 텅비어 있는 듯하고, 탁한 물처럼 흐리다' "와 맥락이 닿아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요컨데, '도' 라는 것은 형체를 알 수 없어나, 우주의 근원이기에 미묘하며, 만물의 근본이고, 만물에 깃들어 언제나 존재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무위자연하다. 그런 도를 딲는 사람의 처신도 흐리멍텅해보이고, 소박하고 질박하다는 것인데,

 

거의 노자 수준이상으로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인(아마도 태사담)이, 경전에, 이 21장을 첨가한 것이라 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孔德之容(공덕지용), 唯道是從(유도시종)

'매우 큰 덕의 모습은, 오로지 도를 따르는 것이다'

큰 덕은 도를 따르는 것이다. 큰 덕을 설명하는 듯 하면서, 도에 대한 설명이다. 도를 설명하여 큰 덕을 짐작하게 한다. 도덕경 전편을 통해, 노자가 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道之爲物(도지위물),惟恍惟惚(유황유홀), 惚兮恍兮(홀혜황혜), 其中有象(기중유상), 恍兮惚兮(황혜홀혜), 其中有物(기중요물), 窈兮冥兮(요혜명혜), 其中有精(기중요정), 其精甚眞(기정심진), 其中有信(기중유신),

'도라는 것은 만물을 위한 것으로,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하고 으슴프레할 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하고 으슴프레하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으슴프레하고 흐릿하지 없지만, 그 안에 만물이 있다. 그윽하고 아득해보이지만, 그 안에 오묘함이 있다. 그 오묘함은 지극히 참된 것으로 그 안에 진실함이 있다.

왕필본의 道之爲物에서, 백서본에서는 위가 빠진 道之物 로 되어 있다. 전자는 '도라는 것은 만물을 위한 것'의 의미이고, 후자는 ' 도라는 것은 만물'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 귀절 때문에, 중국에서, 유물론이 성행했던 한때, 『노자』의 도를 물질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로 삼았고, [노자사상]이 중국의 관심사였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인민내부모순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며, [일정한 조건 아래서, 나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좋은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노자는 2000여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화는 복에 의한 것이고, 복은 화에 숨어있다.” ] 고 노자를 인용했다고 소개했고,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제창한 화해사회 이념이 ‘도’와 통한다고 선전했다. 지금도, 중국정부까지 나서, 도덕경 이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듯이,  진시황 시대에, 19장의 絶聖棄智(절성기지), 絶仁棄義(절인기의) 니 하는 구절들이, 반유가적인 것으로 유가탄압의 빌미로 사용되었다는 고사가 떠오른다. 그 때문인지,오랬동안 정치권력을 잡은 儒家들의 견제를 받고, 반목해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노자사상은 반어적이고 부정을 통해 긍정을 유도하는 방식이며, 비유와 함의를  깊이 사유하다보면, 유물사상이나 반유가적 사상이니 하는 것은 너무 겉보기해석이고 이해이며, 의도적으로 그 귀절들을  이용한다는, 좀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은 가고 말이 없으나, 말씀이 이처럼, 남아 있거늘, 예나 지금이나, 아전인수는 정치분야에서건, 학문에서건 있어왔나 보다.

본문을 나름대로 해설하면,

 

중인들에게 도의 실체 설명해야 겠는데, 이것이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닌 것(道可道 非常道)이니, 惚恍(홀황)할 수밖에. 惚恍(홀황)은  笏慌(홀황)의 뜻으로, 있는 듯 없는 듯, 흐릿하고 으슴프레하지만, 그 안에 형상이 있고, 만물이 깃들어 있다. 그윽하고 아득해보이지만, 그 안에 진실로 참된 오묘함이 있다.

 

自古及今(자고급금), 其名不去(기명불거),以閱衆甫(이열중보),吾何以知衆甫之狀哉(오하이지중보지상재), 以此(이차).

'옛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으니, 그에 따라 만물의 태초를 가려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찌, 만물의 태초가 이러함을 알 수 있겠는가? 다름 아닌 이것 때문이다' 

백서본 부터 추가된 21장이  태사담의 작품이라면, '태사담이 노자'라 할 정도로 노자 못지 않은 도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의 말이 곧 노자의 말이나 진배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경전의 성립과정이 그러하고, 52백만자가 넘는 글자로 구성된 불경이, 모두 석가의 말씀이 아니지만, 석가의 말씀에 비롯됨이 없이 성릴할 수가 없듯이, 노자의 오리지널 말씀에 덧붙이고 개작이 있어 왔지만, 노자의 말씀에서 비롯함이 없이 성립할 수 없었으니, 전문연구가가 아닌 사람이 봐도, 더러 엉뚱한 단어나 문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건데, 백서본, 왕필본 도덕경이 노자의 말씀으로 대접하고 따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해설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도' 라는 것은 즉, 道之物이나 道之爲物 로서, 정신적인 근원 뿐만아니라 물질계의 근원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만물의 태초가 어땠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통행본은, '以閱衆甫'로, '가리다, 알아보다(閱)', '중보(衆甫)'로 되어 있다. 왕필은 이 '衆甫'를 '物之始也 以無名 說萬物始也', 즉, 이것은 '만물의 시작으로, 이름 없음으로서 만물의 처음'이라 말한다. 백서본은 '순응한다(順)', '중보(衆父)' 로 되어 있고,  '보(甫)'는 '보(父)'와 통하는 글자로 모두 남자의 미칭(美稱)이라고, 蘇轍(소철) 해석했다고 한다.

 

북송의 문인이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고, 蘇軾(소식), 즉 소동파의 동생인, 蘇轍(소철)에 의하면 '중보'는 뭇 남자들이라는 뜻. 여기에서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만유 또는 만물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즉, 衆父->衆甫->萬物이라는 뜻이다.

이 귀절은, 뒤에 세속을 밝히다가, 파문당한,재주가 뛰어 났던,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가 공자에게 묻고, 공자가 답했던 '태초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老子別義(상)_11장 無中生有에 기 소개)

[염구가 공자에게 물었다. '천지가 생기기 전을 알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다음날 다시 공자를 찾아와 물었다. '어제 제게 '천지가 생기기 전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이에 공자가 말했다고 전한다. ' 대저 천지에는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처음도 끝도 없이 영원히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자손도 없는데 있다고 한다면 되겠느냐!'

공자가 말을 계속했다. '조물자란 사물을 낳는 작용으로 죽은 것에 삶을 주지도 않고 사물을 죽이는 작용으로 산 것에 죽음을 주지도 않는다. 죽음과 삶은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각기 독자적으로 변화되어 간다. 천지에 앞서 생겨난 것이 있다는데 과연 사물일까? 사물을 사물로 존재하게 해주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사물이란 그 사물에 앞서 무물(無物)의 상태에서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사물이 있으면 사물은 사물을 낳아 만물이 끝없이 생겨서 자란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道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정리하면,

'무물상태에서는 사물이 생겨날 수 없다'
'천지가 생기기 전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대저 천지에는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처음도 끝도 없이 영원히 변화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 사물을 낳아 만물이 끝없이 생겨서 자란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道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으로 요약된다. 몇귀절로 무리는 있겠지만, 이로 미루어 볼 때, 공자의 우주관은, 노자의 도와 유사한다. 노자와 공자와의 시대차이 만큼의 공자와 시대차이가 나는 태사담의 생각이 매우 닮았다는 데 학자들은 주목한다. 原始道家, 原始儒家의 차이가 별반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옛 성인들에게도 태초와 만물의 근원는 사유의 극한점을 공유할 정도의 수준에 있었던 모양이다.

엇그제(2013년 10월8일, 한국시간)에 '우주의 생성원리를 밝혀줄 힉스입자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입증되어 이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두 학자에게 노벨물리학상 수상 결정'의 기사가 떴다.

 

우주생성의 '표준모형'이론에 따르면, 우주구성물질의 가장 기본입자인 6종류의 쿼크인, 업(Up), 다운(Down), 참(Charm), 스트레인지(Strange), 톱(Top), 보텀(Bottom)입자와 그것과 각각 짝을 이르는 6종류의 입자로 총 12개 입자, 그리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중, 전자기력, 핵력, 강력을 매개하는 경입자인, Z-B보손, W-보손, 광자, 글루온등 4개지 입자등 16가지와, 그들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 이른바 '힉스입'자로 등 17개의 입자로 예측되었는 데, 힉스입자의 존재가 이번에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표준모형은 자연계의 4가지 힘중 중력과 그 매개입자로 가정된 '중력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도, 우주의 4%에 해당한 물질에만 적용되지, 중력 뿐만아니라, 나머지 구성물질로 알려진, 22%인 암흑물질(Dark Material)과 74%인 암흑에너지(Dark Energy)즉, 우주의 96%에 대한 설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머지 96%의 설명도 표준모형의 발전으로 설명이 될련지, 아니면 새로운 우주역학의 대두가 필요할 것인지?

노자나 공자가 되살아나 이 소식을 접하면, 어떤 말씀을 쏟아놓을 지? 2,500년에 만물의 근원을 사유한 그 지혜라면, 오늘날에는 더욱 과학자들의 고뇌를 앞서는 창조적 지혜를 발휘했지 싶다. 성인들은 가고 없지만, 그 말씀은 전해지고 있으니, 후세들은 그 思惟를 이어 발전시켜 태초전후, 'Dark'를 포함한 세상만물의 근원을 설명하여야 하는 책무가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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