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로 번역된 노자(LAO TSE) 도덕경
저자: Wolpin, Samuel,
출판사 :Editorial Kier
출판일: 2007.07.16>
大道廢(대도폐), 큰 도가 폐하게 되면
有仁義,(유인의) 인의가 나타나고,
智慧出(지혜출), 지혜가 설치면,
有大僞,(유대위) 위선이 만연하게 된다
六親不和(육친불화), 육친이 불화하면,
有孝慈,(유효자) 효니 자애이니 하는 것이 나타나고.
國家昏亂(국가혼란),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有忠臣(유충신) 충신이 생겨난다.
주) * 廢 : 폐할 폐, 버릴폐->폐하다,못 쓰게 되다, 버리다 ,그치다, 부서지다
* 僞 : 거짓 위, 잘못될 와 -> 거짓, 사투리, 잘못, 작위, 속이다. 그릇 되게 바뀌다
* 慈 : 사랑 자-> 사랑, 어머니, 자비(慈悲), 인정(人情), 동정, 사랑하다
[큰 도가 부서지고 무너지면, 필연적으로 인의라는 게 나타나고,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고, 지혜로움이 각광받는 세상이면, 위선이 만연하게 된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형제간에 다툼이 일고, 부모공경이 무너지면, 孝니 자애니 하는 것이 나타나고,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전략에 골머리를 싸며는 충신이 생겨난다.]
상기는, 도덕경 18장으로, 동행본인 왕필본에 따른 것이다, 왕필본은 17장과, 18장을 독립된 장으로 파악하고 있고, 17장내에서 결론 부분을 서술하고 있으나, 1993년 2,300년 된, 초나라의 무덤에서 나온 이른바, '郭店楚墓竹簡' 에서는 17장 전체는 18장에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한 상황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18장은 앞장인 17장의 결론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본 귀절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앞장인 17장과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
왕필본에 기초한, 앞서의 17장과 위의 18장의 해석도, 초간본의 구성대로 해석을 바로잡아야 겠지만, 일단 왕필본에 기초한 해석자체도 나름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단 해석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해설에서 부연설명한다. 다른 이(도올)의 해석을 예로서 보자,
[큰 도가 없어지니, 인의가 있게 되었다
큰 지혜가 생겨나니, 큰 위선이 있게 되었다.
육친이 불화하니,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것이 있게 되었다.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라는 것이 있게 되었다.]
이 역시, 추가적인 해설이 따르지 않으면, 무슨 말인 지, 기승전결의 문맥상 논리적 부조화가 확연하다. 상세한 해설의 배경을 밝히지 않으면, 상기 문장만으로는 누구의 해석이든, 논리적 부조화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보다 상세한 배경을 추적하기 위해선, 초기본인 '郭店楚墓竹簡本'을 살펴보자. 郭店楚墓竹簡本은 죽간본, 또는 초간본(이하 '초간본)이라고 하는 데, 17장과 18장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앞장인 왕필본 17장을 되새겨보면,
초간본 17장은,
[太上(태상),不知有之(부지유지), 其次(기차), 親譽之(친예지), 其次(기차), 畏之(외지), 其次(기차), 侮之(모지), 信不足(신부족), 焉有不信(언유불신), 猷乎(유호), 其貴言也(기귀언야, 成事遂功(성사수공), 而百姓曰我自然也(이백성왈아자연야)]
17장의 해석은 왕필본이나 초간본이 대동소이 하나, 다만, 왕필본에서처럼, 17장내의 '故信不足焉' 이후의 해석이 앞선 귀절의 결론처럼 귀절이 구성된 반면, 초간본의 17장에서는 '故' 가 빠져있고, 18장 첫귀절의 서두에 '故'가 있어, 이는 17장의 상황 설명을 18장에서 마무리하기 위한 의도로 봐야 하는 것이다.
故大道廢(고대도폐) 安有仁義(안유인의) 그러므로, 대도가 무너지면 인의가 있겠는가?
六親不和(육친불화) 安有孝慈(안유효자) 육친이 불화하면 어떻게 효,자가 있겠는가?
邦家昏亂(방가혼란) 安有正臣(안유정신) 나라가 혼란하면 어떻게 충신이 있겠는가?
즉, '故' 로서 앞장의 결론을 말하고 있다. 또, 초간본에서는 '智慧出(지혜출) 有大僞(유대위)' 귀절이 없고, 대신에 '大道廢'앞에 17장을 이어받는 '故'와 이어지는 대귀의 앞에 의문사 '安'이 따라 붙는다. 또 왕필본에서는 '國家'가 초간본에서는 '邦家'로 나오는데, 다같이 나라라는 뜻의 '國'과 '邦'이지만, '邦'은 춘추시대, '國'은 전국시대에 생겨난 용례라 한다.
문제는 '安'자이다. 고문장에는 의문사로 쓰이는 모양이다. 현대문에는 그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安'을 의문사로 봐서, 위와 같이 해석하면, 왕필본과 정 반대의 해석이 된다. 즉, 왕필본은, 통상적으로, '大道, 智慧, 六親, 國家등 긍정적이고 지순한 가치들이 무너지고, 혼란스러우면, 仁義, 大僞, 孝慈, 忠臣이 나타난다'는 논조인데 비하여, 초간본에서는 , '大道, 六親, 邦家가 등 지순한 가치들이 바로서야, 仁義, 孝慈, 正臣이 있게 된다'는 논조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자에 따라, '安'을 '焉' 가차자(假借子) 즉 접속부사로 보고, 왕필처럼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한다.
[上古(상고)시대에는 大道(대도)가 행하여져서 모든 사람이 淳朴(순박)하였으나 後世(후세)에 이르러 대도가 점차로 消滅(소멸)하매, 仁義(인의)라고 불리는 것이 나왔다는 말로서, 이는 老子(노자)가 儒敎(유교)의 인의의 교는 천지자연의 도가 아니라고 비방한 말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백과사전'에서 마저 이 정도면, 이런 사례들로 보건데, 노자의 사상이 反儒家的이다는 선입감 때문에, 儒家와 道家가 2천 년 넘게 불편하게 지내온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자가 동양권에서 佛敎, 儒敎에 배척당해온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고 초간본을 통상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대도가 무너지면 인의가 있겠는가?, 육친이 불화하면 어떻게 효,자가 있겠는가?, 나라가 혼란하면 어떻게 충신이 있겠는가? '라고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일견 논리적일 지 모르지만, 노자식 思惟를 제대로 꽤뚫어 보지 못한 까닭이라 생각한다.
초간본도 노자 死後 수백년사이에에 정리된 것이다. 그러니, 온전히 노자의 思儒方式을 담았다고 할 수 는 없다. 天材 玄學者였던 왕필은 이점을 이해하고, 이런 노자의 사유방식에 맞지 않는 '安'자를 빼버리고, 오히려 한 문장, '智慧出(지혜출), 有大僞,(유대위) '을 더 첨가하여 개작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로서도 그랬을 성 싶다.
이렇게 추론하는 근거는 노자의 표현은 온전히 일차원적으로 들어나지 않고 매우 고난도의 이해를 요구하는 함의를 가지기 때문이며, 초간본이라해서, 꼭 노자의 생각을 정확히 담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노자의 사유방식에 충실하려고 나름대로, 왕필의 개작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이다.
[도덕경 2장에서 ' 세상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답다라고 아는 것은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이미(已)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斯惡已,사오이), 모두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아는 것(皆知善之爲善, 개지선지위선), 이것은 이미 착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斯不善已, 사불선이) 고로 그러므로, 있고 없고는 상대적으로 생기는 것이다(故有無相生, 고유무상생) ]
[도덕경 27장에서 '고로 선인은 불선인의 스승(善人不善人之師)이고, 불선인은 선인의 자산(不善人善人之資)이다' ]
[도덕경5장에서, 천지(자연)은 인자하지 않아서(天地不仁, 천지불인),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 다루듯 한다 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 성인도 인자하지 않아서(聖人不仁, 성인불인),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 다루듯 한다( 以百姓爲芻狗, 이백성위추구)]
이는 도덕경 2장이나 5장, 27장의 일부인데, 여기에 나오는, 有無相生, 天地不仁, 不善人善人之資' 귀절등은 도덕경 18장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18장해석을 노자답게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노자는 有와 無, 善과 不善을 독립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대립 개념으로 본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있다'는 연기론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有는 無에서 생겨나고, 無는 有에서 생겨난다.즉 유가 있음으로 무의 개념도 성립하고, 무는 대립되는 유가 있음으로 성립한다'거나, '不善人은 善人의 資産이라는 것도, 선인과 불선인은 상호보완적인 대립개념이다. 善만이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不善이 있기 때문에 善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노자는 '有無相生'이라 했다.
5장에 '天地不仁'이라는 말도, 그대로 해석하면, '천지는 인자하지 못하다' 즉 천지는 '인간세상의 여러 인간들을 대하기를 하찮은 미물취급한다' 고 해석한다면, 인권무시적 발언이라 오해할 만하다. 하지만, 노자의 깊은 뜻은, 천지는 대자연이기 때문에, 만물을 대하는 자세가 불편부당하여야 함을, 고도한 비유나 반어적 충격으로 표현한 것이다.
天地는 有爲하거나 作意的이지 않다. 그래서, 천지는 만물을 작의적이지 않은 無心함, 無爲함으로 대한다. 즉, 천지는 事物個個의 입장에서는, '미치지 못한다(불인하다)' 고 여길지 모르지만, 천지를 의인화하여 그 입장을 더듬어 본다면, 천지 입장에서는 천지가, '특정한 개개의 사물에 仁慈하다면, 타 사물에 비해 편애하는 것이고, 모든 사물에 仁慈하다면, 그것을 굳이 '仁' 이라 말할 수 없이 모든 만물의 기본이고 바탕이고 원리'라는 뜻이다. 그 묘한 상태를 비유컨데, '天地不仁'이라 표현한 것이다. 가령, 세상에 황금이 돌처럼 깔려 있다면, 그중 한덩어리의 황금덩어리를 베푼다 한들,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큰 도가 존재하면, 세상을 지배하는 '인의' 라는 것이 불필요한 데, '그런 도가 무너져 내리니, 仁이니 義이니 하는 것이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삶, 지혜로운 처신이 요구된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삶이 많기 때문이다. 모두의 삶에 위선이 없고, 자연에 순응하는 無爲의 삶이라면, 굳이 지혜고 위선이고 내세울 까닭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들을 칭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대부분의 자식들은 불효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모두가 화기애애다면, 굳이 누가 효자라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즉, 18장 역시, 노자의 궁극적인 사상인 '무위자연'에 대해, 여러각도에서 비유적 설명을 반복하는 도덕경 여러 문장들 중의 하나이다. 비록 노자의 생각이 理想主義라 폄하할 지 모르고, 그런 인간세상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지극한 수준'을 목표로 삼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노자는 근대 이후의 과학 문명을 2500년 전 정확하게 읽어낸 단 한 명의 학자다! -유카와 히데키(노벨 물리학상 수상작)'
'노자의 ‘도’ 사상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생태학적 지혜를 제공했다. -프리초프 카프라(물리학자)'
'노자 철학은 그리스 철학을 능가하는 인류 철학의 원천이다.-헤겔(독일 근대철학자)'
'2.500년의 선인의 생각이 오늘날의 과학문명시대를 예측한 단 한명의 先人', ' 그리이스 철학을 능가하는 인류철학의 원천'이라는 찬사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다소 과장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노자 도덕경의 철학적이고, 지적인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부언하건데, 이런 찬사를 보낸 세계적 석학들에게는, 정황으로 보건데, 시기적으로(발견연대로 볼 때) 죽간본을 참고 했을리 없다. 대부분 왕필본을 참고 했을 것이다, 왕필본이 노자의 원본을 개작했느니 말들이 많지만, 셰계적 석학들에게는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無'나 '禪' 개념같은, 동양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사유의 테마가, 존재론을 확립한 하이데거 같은 현대철학자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하니,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철학의 사유의 깊이 자체가 경이로운 것이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도 표피적 해석보다는 해석이면에 흐르는 그 핵심사상의 근원이 중요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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