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世界)는 세계(3界)라 할 수 있읍니다.
불가에서 이르기를 世에는 3세(世)가 있고, 界에도 역시 3계(界)가 있다 하는군요.
세상사람들이, 3세라는 것은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로 구분하기도 하고, 3界로는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의 세계(世界)로 구분하기도 한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전자는 시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으로 보이고, 후자는 얼핏, 공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듯합니다만. 여기서 얼핏이라는 단어를 구사하는 것은 딱히 공간적이라는 단어에 한정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인계라는 것은 인간이 대표하는 생물계라는 것이 보다 보편적일 듯 싶습니다.
영어권에서도 세(世)와 계(界)를 합쳐서 세계를 ‘World’, 즉 천,지,인( Heaven, Earth, People)이라 한다 하니,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을 보는 눈은 비슷한 관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불가에서는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3계(界)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중생계는 다시 세 가지 세계 즉,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라 구분한다는군요. 여기에는 공간적, 시간적 관념이 녹아 들어 있는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천계(天界), 지계(地界)가 있다지만, 그 천계와 지계를 이어주는 인계(人界)가 있어야 3계가 완성됩니다. 이와같이 천.지.인 3계나, 불가의 3계 즉,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개념은 인간중심적 사고의 결과라 할 것입니다.
기술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한다 하면, 世나 界는 3세 3계만이 존재할 것인가? 하지만, 시간적 관점으로는 아마도,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를 벗어나는 世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물리법칙이 깨어지면, 3세의 개념도 엉클어지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극히 미시적 세계에서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뿐, 통상의 거시적, 물리세계에서는 그런 현상이라는 게 일어나서는 안되겠지요? 만약에 일어난다면, 몽환(夢幻)의 세계이거나 지옥이나 아수라세상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적 관점을 벗어나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이 세상의 만상(萬象)만큼이나 다양하니, 나름대로,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나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관점과 다른 시각으로 이 세상을 보고 싶군요.
내 관점으로는
언젠가 글 올렸듯이, 이 세상을 [물리적 世界], [생각의 世界], [사이버의 世界]로 구분하고 싶습니다
계는 Field입니다. 장이라고도 합니다. 이 3계의 장(場)은, 만물이 살아가는 터전, 3개의 큰 마당이겠지요. 사람이 이런 큰 마당에서 마음대로 뛰놀 수 있다면 얼마나 크나큰 행복이겠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3계는 상호 경계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것입니다. 상호의존적이고, 굳이 그 경계, 그 의존적 상황을 이거다 할 수 있는 성질 또한 아닐 것입니다.
생각과 그 생각을 물리적 세계에 표출하는 행동이 항상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한다 하여도 사이버로 구현되는 세상은 또 다른 세상입니다.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이 사이버세상이기도 하고, 생각의 세상이 사이버의 세상을 끌어내기도 하고, 사이버의 세상이 생각을 키우기도 합니다. 당연히 행동으로 표출하는 물리적 세상을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뛰어 넘게 하는 것이 생각의 세계이고, 사이버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의 성과는 물리적 세계에서 보다 인간적인 결과로 유도될 것입니다
물리적 세계에 충실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세계를 키우지 못하면, 그 만큼 또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大哲人, 思想家도 사이버의 세상을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본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구도 천.지.인 3계에 주류무체(周流無滯)하지 못하듯이, 누가 3계의 장(場)에 두루두루 걸림이 없겠습니까? . 물리적 세계에 충실한 행동파도, 생각이 깊은 대철인, 사상가도, [사이버의 世界]에 익숙한 사이버 전문가도, 서로 통하고 교감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절름발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절름발이 일 수밖에 없지요. 지식적으로 사상적으로, 기술적으로. 누구도 완전한 인간이 있겠습니까? 이른바 동서고금의 성현들이라 한들 이런 잣대로 성현을 평가하면, 어디 그분들이 성현이겠습니까?
한껏 상식을, 지식을, 재주를 뽑낸다 한들, 한 여름의 뙤악 볕 아래에서 한 때일 뿐, 세월이 흘러가면, 그도 낙엽이 되고 고목이 되고, , 더러는 이리저리 천하게 딩구는 낙엽으로 대지를 헤메일 것입니다, 그나마, 씨앗이 되어 땅속으로 잦아들고 봄이 되어 종속을 이어가면 그것이 소박한 보람일 것을.
천계(天界), 지계(地界), 인계(人界)의 3계이든, 불계(佛界), 중생계(衆生界), 심계(心界)의 3계이든 여기에 더하여, [물리적 世界], [생각의 世界], [사이버의 世界] 3계를 넘나드는 주류무체(周流無滯)한 사유(思惟)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의 추구는 영원히 도전하고 싶은 과제이겠지요.
며칠전 우리 꼬맹이와 우주적 스케일의 만화 같은 3D영화, ‘어벤더스’를 보았습니다. 언젠가 ‘천둥의 신 토르’ 를 본적이 있는 데, 이번 영화는 그 천둥의 신 토르의 동생이 외계인들을 불러들여 일으키는 지구침공과 이에 맞서는 지구 슈퍼영웅들의 활약상입니다. 사람들은 스토리가 뻔하다, 구성이 엉성하다, 그야 말로 만화다 말들이 많지만,
나는 이런 3D영화를 볼 때마다, 언제나, 생각의 세계와 사이버의 세계, 물리적 세계 즉 내式의 3계가 공존하는 절묘한 장(Field)을 경험합니다. 기존의 관념, 시간과 공간, 움직임의 개념으로, 구성의 논리성, 스토리의 허구성 등에 토를 달고 싶지 않은, 토를 달 수 없는 것은 마음대로의 발상과 그 '발상의 가시화의 자유로움'을 보기 때문입니다.
틱낫한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산에 머물러 있을 때 마음은 곧 산이 된다'.
'마음이 바다에 머물러 있을 때 마음은 곧 바로 바다가 된다'
마음과 산과 바다, 즉 삼라만상에 주류무체(周流無滯)한 선각자의 사유(思惟)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물리적 세계와 생각의 세계를 사이버세계에서 융합 구현하는, 만화 같은 3D영화를 통해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D기술의 발전은 3계의 경계를 허물어갑니다. 언젠가는, 오래지 않아, 물리적 세계, 생각의 세계, 사이버의 세계의 주류무체함이, 사유의 세계를 넘어서, 현실세계에서 자유롭게 구현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마음이 산에 머물면, 어느 듯, 내 몸역시 현실의 산에 머물게 되고
마음이 바다에 머물면, 어느듯 내 몸역시 현실의 바다에 머물게 되는 그런 세상...
ㅋㅋㅋ
'수상잡록 > 수상록.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말론 (0) | 2012.06.25 |
---|---|
세상의 종말 (0) | 2012.06.12 |
헐록숌즈를 아니시나요? (0) | 2012.04.16 |
불명의 생명체 기사를 읽고 (0) | 2012.03.04 |
無所有의 所有 (0) | 2012.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