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생명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체라. 신비, 괴기, 신화적인 허구의 이바구가 아니다.
2012년 2월 마지막 날, '불멸의 생명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각 신문에, 눈이 번쩍 띄는 기사가 실렸다. 다음은 코리아헤랄드(2012년 2월29일)에 실린 기사이다
[영국 노팅엄대 아지즈 아부베커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편형동물의 일종인 플라나리아가 유전자를 끊 임없이 복제하면서 노화를 극복해나가 결국 죽지 않는다는 사 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27일(현지시간)자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 덕분에 노화와 관련한 인간 세포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노화를 늦추려는 연구에 청신호가 켜졌다.
........(중략)
이 연구의 비용 일부를 댄 '생명공학•생물학 연구 회의'의 더글러스 켈 전무는 연구 결과에 대해 "흥미진진하다"며 "노화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크 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연구 결과가 인간등 여러 개체가 오래 살게 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초를 다질 것이라고 켈 전무는 덧붙였다.(연합뉴스) ]
오래 전에부터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최대 12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들어 왔다. 요즈음은, 소득수준이 높아 잘먹고, 의학,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이 100세를 넘겨사는 것이 대수로 여겨지면서, 이제 인간의 한계수명이 150살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아마도, 순전히 짐작이지만, 120살이라는 것은 인체가 인공의 처치없이 살 수있는 자연수명으로서의 한계치 아닌가 짐작이 된다. 요즈음은 '150살도 가능하다'하는 것은 인공의 처치 즉 장기의 교환이나, 의학적 처치를 통해 연장이 가능한 생명활동의 기한이지 싶다.
불멸의 생명체 기사를 보고, 믿거나 말거나, 동서고금의 몇몇 장수 인간들의 기록을 들쳐봤다.
티벳의 聖母라 불렸던, 예서초겔은 4세기초인,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 , 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 투쟁과 고통의 땅 티벳에서 살다 211세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의 이충윤이라는 사람은 1680년에 태어나 1933년에 253살로 죽었다 하니, 사실이라면, 아마도 신격화 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최장수 인간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프랑스의 잔 칼맹이라는 할머니는 122년 6개월이나 살다가 지난 97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손자보다도 무려 34년을 더 살았다.
최근까지 생존했던 인물로는 월터브루닝으로 2011년 4월14일사망햇는 데, 114세 였다.
오늘날, 100세 정도를 살고 있는 사람은 장수하는 축에도 못낄 정도로 흔한 생존나이가 되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不死鳥이야기를 들어 본 이후, '불사(不死)에 관한 이바구는 처음이다. 기사에 의하면, '불멸의 생명체'라 불리는 플라라니아 라는 편형돌물은 유전자를 끊임없이 복제하면서 노화를 극복해나간다는 데, 생명공학, 의학자들에게 노화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생명의 신비', '노화연구에 많은 힌트를 주는 모양이다.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더욱 늘어나게 될 터인 데,
그 와중에서도,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는 사람들의 기사가 비일비재하게 실리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는 '불멸의 생명체' 소식이라는 게 바람결에 지니가는 개짖는 소리보다 낳을 게 없을 것 같다.
한국사회의 자살율이 세계최고라는 불명예스런 1위를 고수한지 오래되었다.
어릴 때, 교육과정에서부터, 경쟁에만 내몰리고, 정치.사회전반에, 비정상적인 수단마저 서슴지 않는 사회, 이웃과 주변을 돌아본은 데 인색한 개인주의적 풍토, 핵가족화,독신급증,대화의 단절등이 만연하여, 병리적 자살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성장일변도, 물질적 풍요의 추구속에 그 반대급부로,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의 파괴가 도를 넘고 있어, 성장을 하드라도, 정신의 빈곤이 심화되고, 공급과 수요, 욕망과 절제, 물질과 정신, 나와 이웃,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의 심화가 그 원인이지 싶다.
조화와 균형이 결여된 발전이라는면, 세상은 각박해지고,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얼마지 않아, '살아도 사는게 사는 게 아닌 그런 세상' 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되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도,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고, 지옥이 되지 싶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연금으로 연명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수명연장이 축복이아니라 미래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기사들이 심심찮게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생명체' 기사를 읽으면서, 이 기사가 인간의 수명연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로 다가와야 할 터인데, 어째,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우려일까?
불멸의 세상보다, 조화로운 세상!
9988!, 120세, 150세, 그 이상 숨쉬기도 좋지만, 그보다는, '욕망과 절제', '물질과 정신', '나와 이웃',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더욱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편안함이 넉넉한 세상, 하루를 살아도 사는 맛이 나는 사회으로 가는 길이지 싶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체라. 신비, 괴기, 신화적인 허구의 이바구가 아니다.
2012년 2월 마지막 날, '불멸의 생명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각 신문에, 눈이 번쩍 띄는 기사가 실렸다. 다음은 코리아헤랄드(2012년 2월29일)에 실린 기사이다
[영국 노팅엄대 아지즈 아부베커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편형동물의 일종인 플라나리아가 유전자를 끊 임없이 복제하면서 노화를 극복해나가 결국 죽지 않는다는 사 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27일(현지시간)자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 덕분에 노화와 관련한 인간 세포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노화를 늦추려는 연구에 청신호가 켜졌다.
........(중략)
이 연구의 비용 일부를 댄 '생명공학•생물학 연구 회의'의 더글러스 켈 전무는 연구 결과에 대해 "흥미진진하다"며 "노화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크 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연구 결과가 인간등 여러 개체가 오래 살게 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 기초를 다질 것이라고 켈 전무는 덧붙였다.(연합뉴스) ]
오래 전에부터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최대 12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들어 왔다. 요즈음은, 소득수준이 높아 잘먹고, 의학,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이 100세를 넘겨사는 것이 대수로 여겨지면서, 이제 인간의 한계수명이 150살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아마도, 순전히 짐작이지만, 120살이라는 것은 인체가 인공의 처치없이 살 수있는 자연수명으로서의 한계치 아닌가 짐작이 된다. 요즈음은 '150살도 가능하다'하는 것은 인공의 처치 즉 장기의 교환이나, 의학적 처치를 통해 연장이 가능한 생명활동의 기한이지 싶다.
불멸의 생명체 기사를 보고, 믿거나 말거나, 동서고금의 몇몇 장수 인간들의 기록을 들쳐봤다.
티벳의 聖母라 불렸던, 예서초겔은 4세기초인, 지금으로부터 1700년 전 , 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 투쟁과 고통의 땅 티벳에서 살다 211세로 생을 마감했다.
중국의 이충윤이라는 사람은 1680년에 태어나 1933년에 253살로 죽었다 하니, 사실이라면, 아마도 신격화 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는 최장수 인간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프랑스의 잔 칼맹이라는 할머니는 122년 6개월이나 살다가 지난 97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손자보다도 무려 34년을 더 살았다.
최근까지 생존했던 인물로는 월터브루닝으로 2011년 4월14일사망햇는 데, 114세 였다.
오늘날, 100세 정도를 살고 있는 사람은 장수하는 축에도 못낄 정도로 흔한 생존나이가 되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不死鳥이야기를 들어 본 이후, '불사(不死)에 관한 이바구는 처음이다. 기사에 의하면, '불멸의 생명체'라 불리는 플라라니아 라는 편형돌물은 유전자를 끊임없이 복제하면서 노화를 극복해나간다는 데, 생명공학, 의학자들에게 노화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고 '생명의 신비', '노화연구에 많은 힌트를 주는 모양이다.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더욱 늘어나게 될 터인 데,
그 와중에서도,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는 사람들의 기사가 비일비재하게 실리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는 '불멸의 생명체' 소식이라는 게 바람결에 지니가는 개짖는 소리보다 낳을 게 없을 것 같다.
한국사회의 자살율이 세계최고라는 불명예스런 1위를 고수한지 오래되었다.
어릴 때, 교육과정에서부터, 경쟁에만 내몰리고, 정치.사회전반에, 비정상적인 수단마저 서슴지 않는 사회, 이웃과 주변을 돌아본은 데 인색한 개인주의적 풍토, 핵가족화,독신급증,대화의 단절등이 만연하여, 병리적 자살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성장일변도, 물질적 풍요의 추구속에 그 반대급부로,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의 파괴가 도를 넘고 있어, 성장을 하드라도, 정신의 빈곤이 심화되고, 공급과 수요, 욕망과 절제, 물질과 정신, 나와 이웃,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의 심화가 그 원인이지 싶다.
조화와 균형이 결여된 발전이라는면, 세상은 각박해지고,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얼마지 않아, '살아도 사는게 사는 게 아닌 그런 세상' 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되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에게도,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고, 지옥이 되지 싶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구의 급증으로, 연금으로 연명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재정파탄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수명연장이 축복이아니라 미래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기사들이 심심찮게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생명체' 기사를 읽으면서, 이 기사가 인간의 수명연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로 다가와야 할 터인데, 어째,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우려일까?
불멸의 세상보다, 조화로운 세상!
9988!, 120세, 150세, 그 이상 숨쉬기도 좋지만, 그보다는, '욕망과 절제', '물질과 정신', '나와 이웃',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더욱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편안함이 넉넉한 세상, 하루를 살아도 사는 맛이 나는 사회으로 가는 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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