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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마음의 눈

by 靑野(청야) 2011. 7. 17.

"세상에서 무한한 것은 오직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사실,전자의 경우에는 사실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앨버트 아인시타인)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태어나, 알 수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그 사이의 시간이 우리의 인생이다."
(오쇼 라즈니시)

아인시타인의 말처럼
세상에 무한한 것이 두종류 있다면,  

사람에게 두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

이 時空間에 사는 모든 고등한 생물은,
나름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육체적 눈'을 가지고 있지요.

그중, 인간에겐 '마음의 눈' 이 따로 있다 할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마음으로 보고, 읽는 눈, 이른바 심안(心眼)!이지요.

3차원공간을 보는 것은. 육체의 눈입니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고, 세상 만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육신에 달려 있는 눈,
얼굴을 이루는 두 눈을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인간은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는 또다른 세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세계를 보는 눈이  마음의 눈이겠지요.

인간이, 육체의 눈을 닫았다 하여도,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듯이,

인간이, 아무것도 볼 수 없다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읍니다.

인간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여
인간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인간에겐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의 생각, 그것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눈!

인간이 가진 마음의 눈은
겉으로 드러나는 만물, 만물의 변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만물의 변화를 느끼는 눈,
변화되는 현상의 겉모습이 아닌,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입니다.

깨달음과 감성은 인간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고, 수준차이가 있듯이,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모숩은
마음이 깨닫고 느끼는 수준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보일 터입니다.
어떤 이들이 보는 세상은, 불평과 불만의 대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지고한 깨달음으로 세상을 보기도 하고,
어떤이는  높은 수준의 감성과 이성으로 세상을 보기도 하겠지요

어찌보면, 세상의 본질하고는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눈, 나름대로의 깨달음으로 세상을 보지요.

'제눈에 안경'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눈의 안경에 맞는 세상만 보이는 것이지요.
안경에 맞지 않는 세상이라면, 어찌 편히 보일리가 있겠습니까?
어떤 이는 굳이 안경에 색을 입혀,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 편한 이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삐딱하게 보여야만  편한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이 편하지 않다면,
세상을 탓하기 전에, 편한 안경으로 바꾸던지,
삐딱한 시각의 눈을 교정하여야 할 일,
무엇보다는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하겠지요?

흔히들,

'쟤는 눈이 없다' 혹은 '한치앞도 못보는 멍충이' 라거나
'눈이 높다' 또는 '보는 눈이 있다.' 라고들 하곤 합니다.

멀쩡하게 두눈을 뜨고 있는 사람보고 보는 눈이 있네 없네하는 것은
육체적인 눈이 아니라는 것, 그 사람의 마음의 눈을 말함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들어나는 그사람의 마음의 크기,
인간의 그릇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눈먼 인간들!
눈 뜬 봉사!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도
돌아서자 마자 밝혀질 사안들에 대해
애써 부정하고, 위장하기를, 죽먹듯이 하는 인간들이 득실거립니다
우리사회에도,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길로 폐가 망신하는 인간들이 동서고금에 무릇 기하입니까? 

'뛰어난 인간이 되는 어렵다' 는 노회한 프로타고라스에 맞서,
삼십대 초반의  소크라테스는 입에 거품을 뭅니다.

'뛰어난 인간으로 있기가 더 어렵다' 

성도 없이 이름만으로 살았다는 2,500년전 고대시절에도 
인간의 속성을 꽤뚤러 본 선각지명, 선견지명의 젊은 지성! 

권력자, 지도잡네하는 자들속에서 마음의 눈이 먼 인간들이 많음을 봅니다.
권력자, 지도자에게 더 많은 유혹이 더욱 가깝겠지요? 

그러니,  역대의 왕조말에 어김없이 등장해온 탐관오리,
최근세의 정부들의 말기마다 들어나는 나으리들의 부정부패
언젠가는 이 나라를 다시 말아먹을  우리사회의 병폐,
그릇이 시원찮은 인간들이, 권력과 명예를 얻고 부마저 탐한 결과이겠지요?

'생각이 부족했다. 생각이 짧았다'

사후에 마음의 눈이 뜨이는 경우도 있고,

'내가 잘 못한게 뭐 있어?,,,"

여전히, 이핑게저핑게 대며 버터보지만
결국 패가망신에 이르는 경우를 자주보지요
 
권력과 부와 명예는 가까이 보이고, 잘보이나
그 과정의 정당성에,눈먼 봉사들. 마음의 눈이 먼 인간들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하다?'  

무수히 명멸해가는 생명들을 담아내는 세상의 크기,
광대무변하다고 알려진 우주마저, 무한한지 아리송하다하면서,
굳이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하다?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아리송하기는 하다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하다면
인간의 깨달음이 유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유한하다'면, 인간의 깨달음은 무한할 것입니다.
인간의 깨달음이 무한하다면, 시간의 심연은 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시간의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깨달음은 유한하다' 는

라즈니시의 나름대로의 깨달음?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는' 시간의 심연속으로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 하는군요.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세월의 어느 시점에 나타나서,
끝을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사라지는,
잠시 유한한 현상이 인생이라 하는 군요.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는 유한한 세계,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세상을 쪼개어 우리 인생이 왔다가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세상이 終을 칠 때가 되겠지요?
지금이라도 '땡'하고 鍾이 아닌 終을 칠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인간세상을 그 만큼 불안하고, 미래는 그 만큼 불확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어리석음이 무한하다' 는 것이, 
'인간의 깨달음은 유한하다' 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하지만,

 

유한한 육신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삶은 계란이겠습니까?
광대무변한 세상만물속에서.
우리의 육체적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얼마이겠습니까?
마음의 눈이 닫히면, 육체의 눈만으로 보는 좁은 세상에서 살다가겠지요
유한한 육신, 그 육체의 눈마저 닫히면?

'씨끄!" 
'마음'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는 이대로 내꼴리는 대로 보고, 즐기고 살다 죽을껴!....'

어짜피  
우리 인생은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이슬같이,
때가되면, 시간의 심연으로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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