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림들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앞의 것은 저의 회사 앞건물 뜰에 서있는 조형물입니다.
아마 동판을 말고 브레이징 용접을 하면서,
공간상에 구조물을 형성해 나간다고 꽤나 고생했겠지요?
아래 것은, 내집에 가는 길에 있는 어떤 건물앞에 서 있는 조형물인데,
아마도 질긴 스테인레스를 가공하고 용접하여 구조물을 형성해 나간다는 것,
역시 대단한 인내가 필요했을 겁니다
굳이 작품의 제목은 소개 않할랍니다.
굳이 얼마나 들었느냐고 알 필요도, 알수도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굳이 누구도 저게 뭔지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굳이 누구도 조형물의 의미를 찾지 않습니다.
혹자는, 그냥 그자리에 저렇게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구나,
혹은, 그냥 그자리에 저렇게 무슨 의미를 가진 조형물이 있구나.
내처럼, 그저 저렇게 배배 꼬인 조형물이 있구나 그 뿐,
지나는 길에 눈가에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풍경의 한 컷일뿐
바쁜 걸음걸이는, 겨우 2~3m를 길을 벗어나 있는 조형물앞에 서보질 않습니다.
'김***부사장, 저 꽈배기 조형물을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
(배배 꼬인 모습이 무슨 일이나 한두번 꼬고보는 당신의 심보을 닮았다)
언젠가, 회사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서, 저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내가 선수를 쳤습니다.
배배꼬는 데 일가견이 있는 또래의 동료 임원한테 선수를 친거지요.
왜냐하면, 내가 먼저 내뱉지 않으면, 그치가 선수치고 내뱉았을 테지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치도 200%나 더 잘 압니다.
내가 엄청 점잖게 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말이지요.
20여년을 같은 회사에서 지내다보니,
서로 간에 마음의 작동메카니즘을 대충 압니다.
아무래도 순발력은 내 쪽 아니겠습니까? 해서 선수를 칠 수 있었던 거지요.
김모부사장 입장에서 보면, 선수치는 내가 어쩌면 저 조형물보다 더욱 배배 꼬인사람일테지요.
'당신 이러이러해서, 기분 나빠!' 하면
죽이 되든, 밥이되든, 코피가 터지든 끝날 일인데,
사람을 다정하고도 은근하게도 불러놓고, 속삭이듯, 한다는 소리에,
'뭐, 내가 저 조형물을 닮았다고? '
'뭐, 내가 저 조형물을 닮았다고오? '
(아차, 내가 선수를 놓쳤구나, 이런 이히이히...) 분기탱천,
눈가에 억울해 하는 김모부사장 모습이 역역합니다.
다정하게, 무언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할 듯, 천기라도 누설할 듯, 주변을 의식하며
귀를 잡아당기면서, 기대에 엄청 부풀게 해놓고, 은근히 귓속말로 한다는 소리가
'귀를 잡아 미안타!"
그렇게 장군멍군식으로 2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커(?) 온 동료지요.
속으로야 이를 갈겠지요?
듣기에 따라서는 엄청 기분나뿐 발언일 겝니다.
하지만, 속으로 '갈아봤자 자기 이빨만 상하지 않겠어?'
그러고는 그때문에, 틈틈히 복수를 당합니다.
나 역시, 그러고는 틈틈히 복수를 하곤합니다.
그러면서 그냥 웃고 맙니다.
우리는 그런 사이이지요.
........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나름대로의 집착과 집념의 눈금으로 된 자(Rule)를 가지고 있습니다.
눈금의 중심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 있겠지요.
내 마음에서 얼마나 머냐, 가깝냐? 내 중심으로 잽니다.
때문에, 누군가는 누군가의 자로 나를 재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잼을 당하는 나는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남의 자로 나를 잰다 생각해봅시다.
비슷하게 어울리는 잣대도 있을 것입니다.
비슷하게 제대로 재단해내는 촌철살인의 잣대가 번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난데없고 뜬금없는 황당한 칭찬, 황당한 오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아마 잘못잰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녹슨 자일 것이라 애써 외면하고 싶을 겁니다.
내 자는 새 자고, 내중심은 세상의 중심인양,
내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헣지 않으면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겠습니까?
무슨 일에나 보편적인 자, 누구나 수긍하는 그런 자가 어디있겠습니까?
있다면, 세상이 너무 단조로워지고,
얼마 못가 싫증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인간의 역사는 지난 역사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끝없이, 정.반.합이 반복되겠지요?
갈등과 충돌의 계절이 지나면, 다시 화해와 공존의 계절이 오고,
그러다 다시....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자유와 즐거움이 클 것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른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나름대로의 자유와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굳이 내만의 잣대를 고집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굳이 내만의 딱딱한 잣대를 칼처럼 휘둘르지 않드라도,
굳이 내가 나서 세상을 재단하지 않드라도
서로의 마음은 공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이 공명을 일으키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남의 즐거움이 내 즐거움이 되겠지요?
나의 즐거움이 남의 즐거움이 되어야겠지요?
그게 동료고, 동기고, 친목사회아닙니까?
세상을 돌아다녀보고, 강남거리를 거닐다보면,
사람사는 세상 별 것이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기도 하지요
4~5분간만 숨쉬지 않으면,
1,5m눈 아래 영원히 편히 잠들 곳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사는 세상이 별 것이면 불편한 분들이 있고,
사람사는 세상이 별것아니라도 불편한 분들이 있을 겝니다.
그러니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겠지요.
.........
한뼘도 되지 않을 凡事에 만족하고 기쁘한다면,
굳이 '마음의 자'마저 불필요할 것입니다.
라푼젤(3D)영화를 보셨나요? 하늘에 가득한 노란등불,
서스킨드의 '우주풍경'에 나오는 우주들,
10의 500승개의 우주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한줌도 되지 않는 내마음을 중심으로,
내 시야로 뚤린 구멍만으로,
미래를 재단하거나,
하늘을 재단하는 짓이야말로
정말로 부질없고, 가치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마음을, 작은 등불하나에 붙잡아 두지 말고
훨훨 자유롭게 해줍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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