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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우리 마누라!

by 靑野(청야) 2007. 3. 22.
오래간만에, 연필을 잡았다.
 
작년 초여름부터 한 3개월을 연필습작한 이후로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요며칠 사이 다시 연필을 잡은 거다. 작년의 연필습작들은 가족그리기를 위한 워밍업이였는 데,  정작 가족그리기는 노상 생각은 하면서도 이런저런 핑계아닌 핑계로  해를 넘겼다. 당연히, 게으른 내 주제에, 미술확원을 다녀서 정식으로 배워볼까하는 희망사항도 생각만으로 끝나고...
 
몇 달전에 이사한 집의 벽이 허전하여, 이리저리 여백을 메꿀꺼리로 고심하다가 애초에 가족을 그려 붙이기로 한 생각대로 재추진하기로 했다. 우선은 마누라를 대상으로... 젊은 날, 한 십수년전이라 생각되는데, 당연히 늦둥이는 생각도 못한 시절의 모습이 마침 남아 있어서 이걸 우선 그리기로 한 것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었는데, 세밀한 윤곽부분이 세월이 흘러 바랬는지, 희미하여, 참으로 그리기에 고심스럽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쉽지않겠다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엉뚱한 부문에서 태클이 들어온다.. 보통의 연습그림은 원본하고 같지 않아도, 대충 연습이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하는 데, 이번의 그리기 대상의 주인님이 옆에서 퍼렇게 눈뜨고 지켜보면서 꼬치꼬치 간섭을 해싸으니...
 
내가 그리기로 밥먹고사는 전문화가(?)라면, '흐헴, 모르는 소리, 어쩌구저쩌구...' 예술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어 그렇다는둥 하면서, 말씀에 권위가 붙어, 이런저런 핑게로 마누라의 잔소리를 잠재울 터이고,  그보다는 감히 예술가(?)가 손을 놀린다는 데, 이렇쿵저렇쿵 잔소리할 엄두가 나겠어? 그냥 그리는 데로 그저 감지덕지 하지싶운데....
 
허나, 아무리 마누라라 하드라도, 어디까지나 공돌이 주제에 그린다(?)고 주접을 떠니, 사사건건 대놓고 시비다. 시시비비를 걸어도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기에 "그래, 그래 이렇게 저렇게 수정해주지..." 울며겨자먹기로 이중삼중 사서 고생을 감수하는 수 밖에. 특히 자신의 그림이 비록 집안구석이리자라도 벽에 걸린다니 생각이 달라지나보이. 그동안 다른 그리기일 때 원본사진보고, 이런저런 비평적 발언을 즐기더니, 자신을 그린 작품(?)을 보고는 한술 떠 뜬다.
 
'코가 너무 뭉퉁하다', 눈에 독기가 ....'.'입매가 삐뚜러졌다.'.....심지어 8살짜리 늦둥이녀석도 한마디씩이다. 오로지 딸애만이, 어릴 때, 그림그리기 때문에, 이후의 진로가 바뀔정도로 진저리가 났었다면서, 대충보고는 무조건, '똑같다, 똑같애!"
 
벽에 장식품(?)으로 걸어 볼려니, 좀 크게 그려야 되지 싶어 A2사이즈 정도에 며칠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대로 기초를 그렸는데, 웬걸, 이 넓은 공간에 가느다란 연필심으로 Shading을 할려니....이게 장난이 아니다.
 
와중에, 초등학교에 들어 간 늦둥이 녀석, 유치원 때부터 친하던, 아파트 앞동에 사는 친구와 같은 반, 단짝이 되어설랑, 하교길에 집으로 바로 오질 않고 둘이서 아파트단지 모험을 떠난다고 종일 쏘아다니곤 하더니, 내가 이런저런 용도로 쓰고 있는  서재겸 다용도 가족실(?) 한 구석에서 주접을 떨고 있는 데, 그날은 토요일이라, 녀석들이 PC게임을 본다고 그방으로 들여 닥쳤다.
 
"니네 아빠 화가야?"
 
그 늦둥이 친구녀석, 들어서자마자, 내 궁상떠는 모습을 보더니, 소근소근 늦둥이에게 속삭이다.
 
"응, 화가도 되고..... 자동차부품기술자도 되고.... " 
 
ㅎㅎㅎ, 귓가로 흘러들어면서, 고소를 짓고 있는 데,
 
" 하지만, 진짜 화가는 아니고!....."
 
끄응!. ('그림흉내낸답시고, 노상 엄마에게서 쫑크나 먹는 엉터리다. 내 다안다' 그 말이겄제?) 
 
눈매를 그리고, 얼굴의 윤곽들은 다 그려놓고는, 연필로는 안되겠고, 목탄을 사서 우째봐야 될 것 같애서, 목탄사려 화방에 가자한 지가 며칠을 지나는 동안 쉬엄쉬엄 연필로 대충 채워버렸다. 아직도 대상의 주인공인 우리 마누라, 젊은날의 모습을 크게 재현해줘도, 고마움(?)에 앞서서 더욱 욕심을 부리기에.
 
"일단, 이걸로 마무리하자. 정 마음에 안들면, 목탄을 사면 좀 더 부드럽게 면처리를 하던지,눈매고, 코매고, 뒤에 다시 그려주면 될 거 아이가" 겨우 달래듯이 잔소리를 잠재웠다.
 
하지만, 요놈의 잔소리는 언제 다시 도질 지 모르니, 두고두고 시비거릴 벽에 걸어두는게 아닌지?
(내 생각으론 실물보다 그림이 낫지 싶운 데, 아니라하니!!...)
 
<A2사이즈로 스캐닝이 안돼어 카메라로..>
 
 

<원본: 십수년전의 우리 마누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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