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교수들이 '아줌마 운동원'으로 나선 이유
마산 창신대 교수 출신 조형래 후보, '교육비리 척결' 외치며 선거운동출처:
2010.05.25 10:13l최종 업데이트 10.05.25 12:06l
사립대학 비리와 싸우다 해직된 교수들이 '교육비리 척결'을 외치며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마산 창신대학에서 강의하던 조형래·황창규·박창섭·김강호·박영구·이병희 해직교수들이다. 조 교수는 경남도 교육의원(제1선거구, 창원·밀양·창녕) 후보이고, 나머지 5명은 선거운동원이다.
변호사는 선거사무실 대고, 교수들은 선거운동 하고
이들은 매일 아침 경남 창원시 상남동 소재 선거사무소에 모여 '작전회의'를 연 뒤 창원·밀양·창녕을 돌고 있다. 차량을 운전하기도 하고, 선거홍보물과 명함을 잔뜩 들고 가서 나눠주며 지지를 호소한다.
선거사무소는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 박훈 변호사 사무실을 쓰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들의 각종 소송을 맡고 있다. 박 변호사가 조형래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이며, 김종하 사무장이 선거대책위 사무업무를 맡고 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0일 새벽 이들은 누구보다 바빴다. 박훈 변호사는 새벽 3시까지 택시를 타고 돌며 펼침막이 내걸렸는지 확인했다. 교수들은 홍보벽보를 들고 선거구 내 45개 동사무소를 찾아다니며 배포했다. 차량과 기름값도 교수들이 스스로 마련해 충당했다. 순전히 자원봉사다.
이들의 아침 '작전회의'를 들어보았다. 서서 회의를 했다. 김종하 사무장이 "차량에 기름을 넣거나 식사를 한 뒤 꼭 영수증 챙겨 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교수들이 자기 일처럼 돈을 쓰고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 나중에 선거비용 회계처리에 애로사항이 발생할 수 있어 신신당부하고 나선 것.
차량 기름값 영수증 이야기가 나오자 "창원은 기름값이 비싸다. 마산이나 창녕이 더 싸다"는 말도 나왔다. 옆에서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니까 기름도 싼데 가서 넣어야지"라는 말도 들린다. "점심도 싼 거 먹자"는 말도 나왔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형래 교수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들면서 웃는다. 이병희 교수는 "우리는 아줌마들 동원해서 선거운동할 수 없으니 우리가 아줌마 10명 몫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개 선거운동'이란 말이 나왔다. 특정 지점을 포인트로 정해놓고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선거운동원들이 흩어져 운동을 벌인 뒤 모여 다시 다른 장소로 이동해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작전회의'를 마치고 난 뒤 모두 한 꾸러미 선거홍보물을 겨드랑이에 찼다. 그 다음에 주먹을 불끈 쥐며 '화이팅'을 외쳤다.
이병희 교수는 "당선시켜야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황창규 교수는 후보가 탄 승용차를 운전했다. 후보도 길을 잘못 들까 싶어 불안한 것 같다.
조형래 후보는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에 대형 펼침막을 내걸었는데, 건물 주인이 하던 말이 재미있다. '이 건물에 선거 사무소 써서 떨어진 후보가 없다'며 '전통 깨지 말라'고 하더라"며 "다른 사무실 사람들도 힘을 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창원 안민동 일대를 돌았다. 차량에 포스터를 붙인 뒤 선거운동에 나섰다. 조형래 후보는 지나가는 사람이거나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기에 바빴다. 선거운동원 교수들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2004년 '교수협의회' 만들어 교육민주화 투쟁
창신대학 교수들의 '교육민주화 투쟁'은 2004년 4월 '교수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 7월 교수노조 창신대지회가 결성되었다.
이 대학에서는 2004년부터 2009년 12월까지 모두 8명의 교수들이 재임용 거부되었다. 마지막으로 조형래 교수가 지난해 12월 성탄절 하루 전날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던 것. 재임용 탈락 교수들은 모두 교수노조(교수협의회) 소속이었는데, 2명이 생활고 등의 이유로 대학 측과 체불임금 보상 등에 합의하면서 교수노조를 탈퇴했다.
창신대에서 2004~2009년 사이 재임용 심사 대상은 60~70명이었다. 그런데 8명만 탈락되었는데 모두 교수협의회 소속이었다. 해직교수들은 교육과학기술부에 소청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내 이기기도 했다. 황창규·박창섭·김강호 교수 등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대학 측에서 불복해 항소하는 바람에 계속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
조형래 교수는 재임용심사 때 연구점수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70점 만점인 산학협력활동에서 1점만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재임용 심사 결과가 부당하다며 교과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신청을 냈고, 지난 4월 교과부 소청심사위원회는 '재임용거부 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대학 측은 조 교수는 복직시키지 않았다. 최근 창신대는 조 교수한테 내용증명으로 재임용 심사를 다시 받으라고 통보했다. 이에 조 교수는 다시 내용증명을 보내 재임용심사를 다시 받으라고 할 것이 아니라 복직부터 시킬 것을 요구했다.
해직 교수들은 '대학 민주화'를 위해 온갖 활동을 벌여 왔다. 이들은 학교 안에서 1인시위와 집회를 400회 가까이 했고, 법원에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교문 밖으로 옮겨 계속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1인시위․노숙투쟁를 벌이기도 했고, '교과부 감사 촉구 400km 국토대장정'도 벌였다.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가 나서 대책위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교과부는 2007년 종합감사를 벌여 입시부정과 공금횡령, 문서위조 등의 사실을 밝혀내고 학장(총장)에 대해 중징계하기도 했다.
강병도(73) 전 총장은 지난 3월 사퇴했다. '업무횡령'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사표를 냈던 것. 강 전 총장은 지난 2002년 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다른 회계로 전출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는 교비회계 자금 8억8000여만 원을 교직원 수당 등으로 지급한 뒤 다시 모금하는 수법으로 법인회계로 돌려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좋은 교육의원 후보' 추대... "'교육비리 척결' 내세우니 관심 보여"
조형래(43) 교수는 지역 99개 시민사회단체가 추대한 '좋은 교육의원 후보'다. 그는 부산대를 나왔고, 현재 경남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과 '교육시장화 저지를 위한 경남교육연대' 집행위원으로 있다.
그는 "교육평등'과 '무상급식' '교육비리척결'을 내걸었다. 그가 내세운 공약 중에서도 교육비리척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건축학을 전공했던 그가 누구보다 교육청의 관급 발주공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고 있다.
"교육비리 신고 1억원 포상제 실시, 관급 발주 공사 철저 감시하여 교육예산절감으로 무상급식, 무상유아교육 재원 마련에 일조하고 촌지와 납품비리·공사비리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
그는 "사학비리를 들추어내고 대학민주화를 위해 싸우다가 해직까지 되었다"면서 "지금도 교육계에 보면 학교잔디 공사며 급식 등에 있어 비리가 발생하고 있는데, 학교비리 척결에 앞장섰던 경험이 있다보니 교육의원이 되면 특별히 관심을 갖고 교육계를 맑게 만드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교육연대 활동을 하면서 교육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면서 "출마의사를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칠순이 지난 부모님들은 예비후보일 때 학교나 시장에 가서 저를 도와 활동하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동료 해직교수들의 활동에 대해, 그는 "연세도 많으신데 나와서 도와주시고, 다들 자기 차량을 갖고 와서 뛰고 있다. 교수들이 후보인 것처럼 뛰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후보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적다"면서 "얼마전에 관공서에 가서 공무원들을 만났더니 공무원들조차 교육의원도 뽑느냐고 하더라"면서 "교육비리 척결에 관심이 많고 경험을 살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다들 관심을 보이더라"고 말했다.
본격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 교수노조 소속인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가 창원을 방문해 조형래 후보와 정책간담회를 열기도 했고, 김석준 부산대 교수 등 부산과 울산, 경남, 경북지역 교수노조 소속 교수들도 지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창신대학은 이 교수들을 재임용 심사에서 '거부'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지 벌써부터 교육계 안팎에서 관심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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