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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산을 물로보지마라3

1. 삶의 채움과 비움

by 靑野(청야) 2020. 11. 5.

1. 삶의 채움과 비움

 

與一利不若除一害(여일리불약제일해),

生一事不若滅一事(생일사불약멸일사)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칭기스칸의 책사 야율초재의 말입니다

 

스티브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 났다가 복귀한 뒤

맨 처음 시도한 것은 새로운 제품을 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제거 하는 일이였습니다.

 

"나는 돌 속에 갇혀 있는 다비드만 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했을 뿐입니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하던 날

수 많은 사람들이 다비드상을 보고,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완벽한 조각상에 압도된 대중들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으며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사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대리석은 돌의 결이 하도 특이하여

당대 내노라 하는 조각가들이

조각하다 모두 포기하여 수 십년동안 방치된 돌이였습니다.

이 위대한 조각상 역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 결과물입니다.

 

누군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에 앞서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려 하기보다

욕심을 제거하는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입니다.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비우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이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습니다.

 

'쾌락은 보태는 것이고 고통은 제거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보탬을 추구하기 보다 제거함을 추구합니다. '

 

동방의 현인 야율초재의 말이나,

서방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나

그 말의 의미는 모두 일맥상통합니다.

 

무엇을 채울까"를 생각하기 앞서 "무엇을 비울까를 생각하고,

어떤 장점을 갖출까를 생각하기에 앞서 어떤 단점을 없앨까부터 궁리해보십시요.

 

큰 가르침은 시대를 관통함은 물론이고

삶의 많은 영역을 두루두루 섭렵합니다.(이상 펌)

 

 

삶은 비우는 것'

 

이라고, 누군가 말한다

비운다는 것은 채움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채움이 없다면 애써 비울 일도 없습니다.

 

이 나이 때까지 삶에 채움만 있다면,

그 무게를 어찌 감당하리오?

이 나이 때까지 삶에 비움만 있다면,

어찌 살아 있음이라 할 것인가?

 

그러니 삶은

살아 가면서,

알게 모르게 채우는 과정이고 비우는 과정입니다

살아가면서,

그리 채울 것이면서 애써 또 비워야 합니다.

그리 비울 것이면서 애써 또 채워야 합니다.

 

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입니다

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입니다

 

'삶은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삶은 비우는 것'만이 아니라

'삶은 비우면서 채우고, 채우면서 비우는 것'

그런 것이 삶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얼마를 채우고, 얼마를 비워야 하겠느냐?

어떻게 채우고, 어떻게 비워야 하겠느냐?

 

세상에 높은 곳만 있다면,

세상에 낮은 곳만 있다면,

어찌 물이 흐르겠느냐?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들판을 구비구비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겠느냐?

물이 흘러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물이 흐르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물이 흐르는 세상처럼

굴곡이 있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와서

누구나 채우고자 기를 쓰지만

비움을 애써 기피하지만,

결국은 비우게 마련입니다.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를 채웠던, 어떻게 채웠던

채움이 있는 만큼, 비움이 있는 삶,

 

어쩔 수 없는 비움이 아니라

스스로 비움이 있는 삶,

 

그런 삶이 제대로의 삶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그런 삶을 살 때가 있겠지!

 

언제부터인가,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20150830

靑野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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