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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늦둥이양육/늦둥이養育記

93_참 어렵네요

by 靑野(청야) 2018. 11. 7.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 더럽게 안되네ㅠ'

 
우리 꼬맹이, 카톡의 프로필에 나오는 상태메세지이다.
오늘 아침에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도약을 하기 위함이다'
 
해서, 어느날, 녀석에게 어디서 '그런 좋은 말을....? ' 하고 물으니,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비록 만화에 나오는 글귀라지만,
녀석이 나름대로 느낌이 있으니 프로필상태 메세지로 남겼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녀석은 상태메세지를 자꾸 바꾸는 데,
내가 봐도  의미심장(?)한 메세지가 자주 등장한다. 
 
엇그제 금요일 저녁에는,
지 누나가 일이 있다며, 부산서 녀석이 혼자 상경했다.
서울 친구들과 토요일날 어올릴 것을 약속한 모양이다.
녀석은 부산친구들이 학원이다 과외다 정신이 없는 대신,
오히려 이전 살던 서울동네친구들이 같이 더 잘 놀아주는 것이 반가운가 보다.
 
마침 손님과 저녁을 같이 하고, 평소에 하기  드물은  2차, 3차를 하느라,
사전에 '이러저러하니 혼자서 챙겨먹어라' 하고
12시가 넘어 귀가하여 내가 취중에 정신이 없어
녀석이 어찌 저녁과 밤을 보냈는지 기억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니, 녀석이  TV보다 그냥 잤는 지, 바닥에 쓰러져 잔다.
酒毒에 정신이 없다가, 정신이 번쩍든다. 
녀석의 자는 모습을 보고,
숙취속에서도, 안스러움이 홀연히, 내 정신을 깨운 것이다.
 
우리 꼬맹이 녀석이 재작년부터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요즈음은 더욱 행동이 예측불허로 치닫는다.
녀석이 현재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다.
 
그런 녀석임을 알기에,
내가 녀석에게 어설프게 훈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녀석은 사춘기 이래 우리 집 대장(?)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그 녀석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다보니
집안의 의사결정시에는 본의 아니게 그 녀석이 대장이 된 것이다.
다수결로 하드라도, 녀석의 누나가 그녀석 편이기 때문에 내가 항상 양보하여야 했다. 
 
몇 주전에 부산집을 파는 건에 대해서는  어렵사리 대장의 승인을 받았다.
 
"그 집에 안 살 것이면, 내가 부산에 왜 왔노?"
 
하며 완강하게 부산집에 들어가 살 것 주장하는 녀석을 수 개월에 걸쳐 설득했다.
 
"니는 아빠랑 살기 싫다하면서, 누나는 시집보내야 하니,
 누나 시집보내고 나면, 니혼자 그집에서 살거야? 아니면, 아빠혼자 살아야 돼?
 
논리에 궁해서인지, 매일매일 철이 조금드는 징조인지,
 
"알았다, 집을 팔던지 말던지..."
 
불과 일주일전에사, 아주 짜증은 섞인 투였지만, 
결국 녀석의 승인을 얻어낸 것이다.
녀석이 심경의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일까?
 
카톡 프로필  상태메세지를 지켜보노라면
뭔가 그놈 몸속에서 용트림하는 것이 있나보다 짐작이 된다.
 
녀석이 올라온 다음날, 그날은 토요일이라  어지러운 정신속에서 아침겸 점심을 해먹였더니,
 
"아빠,  친구들 많이 놀러 오는 데 좀 나가 줄래?" 한다
 
해서, 그 길로, 장지천-탄천변을 지나
포스코 사거 리부근에 있는 '안동댁 보신탕집(그 집 주인이 40대 처녀다)'까지 
점심도 해결할 겸 걸어서 왔다. 걸은 거리는 10여km는 족히 넘으리라

돌아가는 길에 삼성역 인근 버스정류소까지 다시걸어, 버스를 탓다가
버스가 장지동 차고지를 돌아 다시 삼성역 부근 반대편 버스정류소에 도착할 때까지,
깜박 졸았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허둥댄 것은 물론이다.
다행한 것은 그와중에 정신줄을 놓친 것외는 잃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요일이라 시간이 난다.
녀석이 나를 기피하기 때문에 제대로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햇는데,
찬스다 싶어, 조심조심, TV에 열중하고 있는 녀석에게 접근했다.
 
이런저런 사람사는 이야기 끝에 혹시나 싶어,
자나가는 말로 

'학교 공부는 따라 가제?' 하고 물었더니,
 
"아니..!!" 하고 바로 대답이 튀어 나온다.
 
일전에 학교선생님하고 대화했던 생각이 난다.
 
"영어는 그런대로 따라가는 데, 수학이 그러네요"
 
수학이 엉망이다 그 말이다.
녀석은 수학 뿐만아니라 모든 과목이 흥미가 없다. 완전히 손을 놓고, 있음을 내가 안다.
서울집에 있을 때는 그나마 내가 잔소리(?) 좀 해댔으니,
그럭저럭 억지로라도 공부하는 흉내를 내다가,
사실은, 그게 싫어서 지 누나를 구어삶아서 아빠와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으니...
 
이제, 꼬치꼬치 물을 수도 없고,
혼을 낼 수도 없고, 철이들 때까지(?)  타이르는 수 밖에

"아빠가 누차 이야기하지만, 공부 잘하라는 소리 안한다. 하지만 학교공부는 따라가야 할 거 아니가? 그러니 복습을 게을리하지 말고 매밀매일 철저히 해라. 조금씩 꾸준히 하다보면, 그런대로 따라갈 것이다"

이렇게 타이르기를 수십번,

"알았다"고 녀석이 말하지만, 그게 건성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저 녀석 마음을 어떻게 잡아 주나?
 
"누나 집옆에 살던지, 아빠가 니 사는 데 걱정없도록 할 터이니, 누나를 시집보내자"

나에게는 녀석도 녀석이지만, 지 누나 걱정역시 그에 못지않다.
과년한 딸을 동생돌보게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다.

"아빠가 나이들면 누가 보살펴주나? 니가 보살펴줄래? 아빠 보살펴주고,
  니 뒷바라질 해줄분 구할까?"

대화를 튼김에, 은근히, 내문제에 대해서도 녀석의 의중을 타진해봤다.
녀석은 묵묵부답이다. 그게 뭔말인지 이해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그렁저렁 하루가 저물었다.
저녁이 되어, 부산으로 열차에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허허로울 수가 없었다.




한잔 술이 하고 싶은 것을 꾸욱 참았다.
 
밤이 지나고 다시 새벽녘이 다가왔다.

눈뜨자 마자 켜본 카톡 상태메세지에서, 앞서의 녀석의 글귀를 발견한 것이다.
녀석이 어제 내게 잔소리(?) 듣고 다시 올린게 분명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 더럽게 안되네ㅠ'
 
이 메세지에 나름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딸래미한테 메세지를 날려보냈다..

아래는 딸래미와 주고받은 카톡대화다
 
(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 더럽게 안되네ㅠ'
       "딸아, 요 글귀가 빈이 카톡의 프로필에 나오는 상태메세지인데, 
        어제 아빠한테 한소리 듣고 올린 것인지 모르지만,
        이제, 다른 사람말을 이해할려고  노력한다고 봐야겠지?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보이네. 아니면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 있던지!
 
        빈이가, 애처로워, 두고 봤더니, 너무 게을러지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네,
        니가 고생만 너무하는 것 같다.
       
        자주, 아빠랑, 빈이랑 대화하고, 아빠가 이제 적극적으로 좀 나서야겠다"
 
(딸) "이 학생의 특성을 굉장히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 그놈이 뭐가 될려고 그리 특별하노? 어중간한 재능이라면 밥 빌어먹기 십상이다.
        아무리 특별하드라도, 기본은 해야지, 기본도 못하는 특별함은 인정할 수가 없구나.
        지금부터 본격적인 탐구와 관리에 들어가자
 
        1. 우선 공휴일날,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 것 습관들이게 하자
        2. 아침은 뭐라도 꼭 챙겨먹는 습관을 들이도록하자'
            (이 점은 내부터 모범이 안되니, 사실은 말할 명분과 자격이 없지만)    
        3. 학교공부는 복습만이라도 철저히 하게 하자
 
         이것을 꼭지키게 해라. 빈이에게도 일러 두었다.
 
  (딸) "지금상황에서는 지가 스스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믿고
         맡겨보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하고 싶은 열정과 추진력은 있는 편이니, 
         일단 Positive하게 서포트 한번 해주시는 거죠"
 
  (나) 스스로 계획하는 것이 뭔데, 6월6일오면 진지하게 의논하자"
 
  (딸) "우리는 그 동안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었지만,
          2014년을 살고 있는 이 학생은 충분히 계획할 수 있고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속으로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외로움, 슬픔, 분노, 우울 이런 것들이 좀 해소가
          되고,
가라앉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상담선생님도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들 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테니까" 
 
   최근에 녀석이 하도 괴로워하니까, 청소년상담센터에 상담을 다니게 하고 있다.
 
   상담 선생님 왈 
 
   "(녀석의)마음속에는  용광로처럼 외로움, 슬픔, 분노, 우울 등이 뒤엉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러니, 아마도, 이 녀석과 수년은 더 실랭이를  치러야 할 모양이다.
   내가 그런 여유와 기력이 있을런지?
 
   어제 이어 오늘도 허허로움이 더 해간다.
 
   오늘은 진짜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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