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초순 어느 날, 내게, 충격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동안, 전혀 챙기지 않았던, 중학교 1학년 늦둥이 녀석의 통지표를 본 것이었다. 헉!, 이럴 수가!, 수학, '가', 영어, '가', 국어 '양',....등 성적표가 '가'와 '양'으로 도배를 한 것을 보고 망연자실한 한 것이다. 이른바, '수','우', 하다못해 '미'라도 받은 과목이 없다.
한 동안 낙담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발끝에 걸리는 이불을 보고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여기가 어디야? 놀란 정신을 추스러 보니, 평소에 깨던 때보다 조금 이른 새벽, 아직, 침대 위로구나,
그렇다면, 꿈 아닌가?
그렇게 생생히 보여지던 늦둥이의 성적표가 꿈이라니, 그러면 그렇지!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순간, 아차, 나도 무심도 했지, 녀석이 중학교에 들어가서 한 학기가 지나고, 방학도 끝내고, 2학기로 접어 들었는데, 학교생활을 전혀 챙기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엄습한다. 녀석이 본격적인 사춘기라, 말붙이기도 뭣하고, 녀석의 생활 모든 것을 녀석이 지 누나와 상의하든, 찌지고 복던 자율적으로 하라고 내버려 두고 지내 왔다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난데없이, 평소에는 거의, 일년에 몇 손가락 꼽을까말까 할 정도로 안 꾸었는 데, 꿈이라니, 그리도 선명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다니!. 대부분 꿈에 본 잔상은 희미하게 잠시 남아 있다가 곧 기억속에서 사라지는데. 이 놈의 꿈은 얼마나 선명한지 하루가 거진 다 지나도록, 바로 현물을 본 것처럼 생생하다.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어서는, 자기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지금의 내가, 현실의 나비의 꿈속의 모습인지 모르겠다]던 '莊子의 호접몽(胡蝶夢)' 이 얼떨결에, 뇌리를 스쳐간다.
꿈이 다른 세상의 현실이고, 지금의 현실이 실제론 또 어떤 세상의 꿈이 아닐까?
그날 저녁을 먹고, 녀석을 조용히 불러, '왜 그런거(성적표) 나오면, 아빠에게 알려주지 않느냐?' 고 가벼운 질책과 함께. '1학기 성적통지표를 가져오라' 고 했다.
어디에 꼬깃꼬깃 숨겨두었던지, 한 참을 걸려,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내앞에 내미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펼치는 순간, 내가, 또 다시, 기겁을 했다는 것 아닌가!
세상에, 성적도 성적이려니와, 우찌 그리 꿈에서 본 성적과 똑 같은 지... 성적이, 가, 양..등의 옛날 성적표시가 아니라, 100분율로 환산한 점수표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50점대, 60점대, 70점대는 간혹 있다. 심지어 수학같은 것은 25점짜리도 있다. 영락없이, 대부분 보편적 기준으로는 낙제점수인 60점부근이라, 수, 우,미,양,가로 치면, '양'과 '가' 다.
꼬맹이가 평소 공부하는 집중도나, 시간등을 눈여겨 보며, 속으로 '중','하' 수준이라 평가하는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잠재의식으로 또와리를 틀고 있다가, 꿈으로 나타난 것인지, 이렇게 적나라 하게, 현실과 똑같은 현몽이 있을 줄이야. 7~8년, 당시, 유치원 다니는 녀석이, 어른들을 앉혀놓고, '세계를 움직일 위대한 전략'등 차원높은 주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주제마다, 시간반이나 썰을 풀어 째끼던 그 총기(?)는 어디로 가고, 그 모양이라니
'기말 시험전후로 장염이 걸려 통...',
통 공부를 못했다는 말이겠지? 딸래미가 지 동생을 대변해준다.
'빈이는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다.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녀석이 학원에 안가겠다 떼를 쓰는 바람에, 대신, 간혹 동생공부를 챙겨보던, 딸래미가, 며칠을 지나, 아빠의 노화가 가라앉은 것을 아는지, 지나가는 길에,알려준 나름대로의 진단이다. 하지만, 딸애는 지 동생의 성적수준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안하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下校하면 어느 누가 반겨주고, 챙겨주지 않으니, 엄마없이 자란다는 애처로운 마음에, 말썽없이 잘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며, 나는 나대로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녀석관리를 소홀히 하고, 녀석이 하고 싶은 데로 하도록, 놀고 싶은 데로 놀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나 보다.
평소, '문명의 미래 위기' 운운 주책을 떨며, 미래를 위해, 미래세대를 위해 어떤 준비로 임해야 하나?, 나름대로 그 해결책에 골몰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해온 나로서, 정작 우리 꼬맹이한테는, 지 맘대로 놀도록 방치하는 것외는 다른 방도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해왔다고 볼 수 있다. 말이 안통하니, 대화도 어렵고, 학원도 안다니겠다 하니, 학원도 못보내고, 그렇다고, 등하교를 지켜보며, 학습을 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철이들 때까지 지켜만 보고왔다는 것이 솔직한 변명이다.
아직 한 학기 성적결과로 벌써 호들갑 떤다 혀를 차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쨌튼, 이대로, 이런수준으로 지속하다가는, 자신감을 잃게 되고, 친구들도 외면할 것이고, 그리되면 결국, 내 관점으로는 장돌뱅이 되지 않을까?.
이대로는 안되겠다. 녀석이 그동안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는 계기를 마련해야겠다. 싶어 짐짓 성을 내듯, 아니, 진짜로 성이나서, 매를 들었다.
'씨끄럽다....이 따위로 공부하면서, 학원은 안다닐라 카고, 학교공부 따라가기 힘드니, 필리핀이고 오데로 유학(?) 가 볼 생각이나 하고....이 상태로는 아무데도 보낼 수 엄따. 꾸준히, 그리고 열씸히 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라고, 2학기는 이러저러한 성과를 달성하도록....'
그 성과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다짐을 받고는, 이 다짐이 뇌리에 박히도록, 종아리 2대를 갈겼다.
평소 따로 매를 준비해둔 것은 없으니, 얼떨결의 생각으로, 등긁개를 가져오라 해서, 가슴속부터 뭉클 목까지 차 올라오는 그 무엇을 애써 참으며, 그렇지만, 있는 힘을 다해서 녀석의 종아리를 내려쳤다. 여태까지 자란 13년동안, 두번째로 매를 들었던 것이다.
내가 耳順에 접어드니, 이른바 '明道'가 다 되어 가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순간에, 그리도 선명한 現夢이 없었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녀석의 성적은 아득히 내 관심밖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와중에, 천지신명은 우찌알았을 꼬?
'이노마, 씰데엄시 주역이고 老子고만 파고들지 말고, 이제, 아들놈 좀 챙겨라. 험한 세상 니가 다 책임져 줄거야?. 늙어가면서, 바쁜 체 고만하고, 아들놈에게 신경 바짝 써야 할 때가 되었느니라' ,
마치, 꿈을 통해 깨우치듯, 계시하는 것 같지 않는가? '꿈의 계시'를 믿는 부류들이라면, 난리가 났을 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얼마나 우둔하면, '꿈을 꾸고서야 사태를 깨닫다니!'
.....
몇 달전, 대장내시경 준비사고 후, 오늘, 결근을 하고 집에서, 다시 재검사 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에 검사준비를 하고, 밤 늦게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아침에 검사받으려 하다, 저승문턱을 갔다온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에는 패턴을 바꿔, 아침에 검사 준비를 하고 오후에 검사 받기로 한 것이다.
마침, 어제부터 꼬맹이 녀석이 중간고사를 치르는 기간이다. 공부한다고 잔뜩 찌들린 표정으로 등교길로 나서는 꼬맹이를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아파트문을 나서는 녀석을 보니, 얼마전의 '現夢'이 떠오른다.
녀석이 나에게 혼이나고 나서, 나름대로 열씸한다고 애써는 것을 퇴근해서 눈여겨 봐 왔지만, 내 눈에 어찌 성이 차겠는가? 다들 이해하겠지만, '이 동네부근애들, 다른 애들은 학원이다, 어디다 난리일 터인데, 쯔쯔. 그래 가지고...'
얼마전, 늦둥이 녀석이, 내가 목표로 준 그 '중간고사 목표성적을 달성하면, 아빠에게 할말이 있다' 고 한 적이 있다. 그 때가 온 것이다. 어떤 성과를 내게 내밀지, 기대는 안하지만, 할말은 무었일지 은근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정말, 별일 아닌 일, 지나고 보면, 쓰잘데기 없는 일에, 이런 일에도, 전전긍긍하는 것,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요즈음 내 삶의 수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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