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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수상록.에세이

반푼이의 역설

by 靑野(청야) 2016. 11. 1.


2016년 10월30일,
부산센텀시티 부근 고딩친구 딸래미, 결혼식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전철탈려고 센텀역입구에서 서서는
선택을 바꾸어 수영천변으로 걸어서 왔다.
때문에 순간의 선택영향을 톡톡히 봤다
센텀에서 구서까지 핸드폰 네비로는 13.2km, 차량길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수영천변, 온천천변을 걷는다면 이보다 훨씬 먼거리일 게다.

하지만, 바보처럼, 중간에 길을 잘못들어 수영천 상류마을 회동동, 회동저수지 입구까지 갔다.
덕계이남, 철마계곡물들이 흘러들어 회동저수지를 이루고 수영천으로 쏟아내는 곳.
그곳의 버스종점부근까지 갔다가 온천천으로 돌아오는 무리를 범하여, 몸살이 났다.
몇날며칠, 서울로 어디로 좇아다니다가 갑자기 걷기라...
피로해진 몸의 근육을 푼다고, 여느 때처럼,
부산 집 인근 목욕탕의 열탕에서 몸을 푼 것이 무리였던 모양이다.

자고 난, 어제 새벽부터심한 몸살이 났다.
자고 났다지만, 새벽1시경 눈을 떠서 아침까지 뒤척이다 맞았다.
제법 심한 몸살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랬었나? 기억이 없다. 나이 탓일까?

하지만, 온몸이 아픈 것을 무릅쓰고,
꼬맹이 등교하는 월요일, 아침밥을 해서 먹이고,
운전대를 잡고 한시간 넘게 신경을 바짝쓰며,

멀리 가덕도에 있는 학교에 등교시켰더니, 죽을 맛이였다.
돌아오는 길에 온몸이 차거워지며, 근육이 우리하게 아프고 점점 심해졌다.
눈앞이 노래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대현국왕이라 허세(?)를 부렸더니,
어느새, 우리 꼬맹이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나가 집사같은 힘없는 황제로, 아니 집사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우리집에서는 황제같은 꼬맹이 일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내 주제에 남 나무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맴돈다.

돌아오는 길에 장유에 사는 지인한테 들렀다.
죽을 상을 해가지고 들어서는 나로부터

이런저런 사연듣고, 꾸중디게 들었다.

'몸관리를 그따위(?)로 하는 반푼이'
'아들바보'다, ' 짓짓이 칠푼이 보다 못한 반푼이'란다.

욕들어도 싸지. 천지도 모르고 몸관리를 그따위(?)로 했으니,

'팔푼이 정도만 되도...'

하지만, 지인의 바램은 안타깝고 애처롭다
어찌 내가 반푼이를 벗어나겠는가?

반푼이 소리 들을 때는
정말 내가 허리멍텅한 반푼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반푼이 소리들어 그런지, 원래 반푼이라서 그런지
지금도 몸살끼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차라리 행복하기만 하다.
하루종일 침대에 딩굴어도 명분이 든든하다.

나는 정말 반푼인가? 나는 반푼이, 바보가 되고 싶은 것인가?

'손에 굳은 살이 배기지 않은 자는
식탁에서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19세기말 톨스토이가 '바보 이반'이라는 동화를 쓰고
주인공 바보이반을 통해 부르짖었다.
무위도식하며, 농민들 착취나 일삼는 귀족과 권력층을 향한 경고였다.
결국 타락한 제정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을 맞이하고 사라진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상황은 재현되어 왔다.

요즈음 우리나라 꼬라지가 제정 러시아 말년의 타락을 연상케 한다.
왜그런가? 탐욕과 이기심은 언제나 모든 것에 앞서왔다.
심지어 종교마저도 탐욕과 이기심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동안 들어난 정황중에는
부당하게 혹세무민으로 거머쥔 실세권력자의
새파란 자식이, 손에 물도 안묻히고,
'돈도, 권력도, 사기도 실력' 이라 한다.
가정교육이라고는 혹세무민을 경험밖에 못한 것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이고, 어디에 존재하는가,
새파란 어린 것부터 그 모양이라면,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이 있기나 했던 것인가?

그들 뿐인가?

정치, 사회에,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부류들이 늘어만 가니 그 끝은 무엇이겠는가?

채우면 넘친다. 넘쳐나지 않을려 하지만, 절제되지 않는다.
그릇을 적당히 비울 줄을 모르고 절제할 줄 모른다.
아니면 그릇을 키우던가?
고만고만한 그릇에 채우기만 할려니 넘쳐날 수밖에 없다.

바보이반은 뒤에 황제가 되었다던데,
누구는 , 황제가 되는 과정에 어줍잖은 바보짓을 한 것인지?
어줍잖은 바보짓으로 황제가 되었다면,
황제가 되어서는 어줍잖은 바보짓을 버렸어야지.

하기사 정말 바보라면, 어찌 그런 지혜가 있으리요?

원래 반푼이는 부족함이 없다.
채우지도 채울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텅비고 가난하니 욕심과 욕망이 없다.
욕심과 욕망이 없으니 그저 세상일들이 스치거나 머물다 갈 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독(孤獨)은 고독을 아는 자만이 느낀다.
고독하고자 하는 욕심, 고독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자만이
고독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을 텅비우고 산다면
고독도 모르는 반푼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반푼이는 행복한 것이다

이반에게는 욕심도, 탐욕도, 권력도, 명예도
교만도, 아첨도 없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해서 살아가는 그는 바보였다

누군가는
인류문명은 바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발전하여 왔다고 한다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권력자들, 일부 성직자들 입장에서는
석가나, 예수, 공자, 노자 모두 바보들일 게다
권력도, 미색도, 향락도, 금전도 다 버리고 설산 수도의 길을 택한 석가,
모든 사람의 눈에서 괴로움과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던 예수,
부귀영화를 쫒지 않고 힘들고 정의와 진리만을 추구한
소크라테스, 공자, 노자나 그들 모두 '큰 바보','진정한 바보' 였다

탐욕자들은
겉으로는 인류의 스승? 속으로는 웃기고 있네,
내가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해? 할지 모른다.
그럴만한 인간들이다.

아반의 형제들이나 이웃이
이반을 모두 반푼이, 바보라꼬 손가락질했다지만,
모든 형제, 이웃들은 이루지 못한 황제가 된다는
톨스토이의 '바보, 반푼이의 역설',
이반이 원하지 않았던 대기만성의 해피엔딩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권력의, 주변에는 아첨꾼이나 사기꾼이 들끓는다.
이들이 부와 이익이 희생당하면
언제던지 하이에나로 돌변한한다는 교훈을 망각하다니,
YS에게서 팔푼이란 소릴들을 만했다.

주변에 끌려다닌 황제,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이미 터져 버렸으니,
애꿎은 국민들만 반푼이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인류의 스승같은 큰 바보가 아닌,
반푼이 되고 싶지 않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똑똑한
저나라 국민들의 분노가 어찌 수그려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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