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으면 어둠이 사라지고,
밝음이 사라지면 어둠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어둠과 밝음은 늘 함께 공존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옳다면, 옳고 그름의 분별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그르다면 옳고 그름의 분별 역시 무의미하다.
옮음은 그른 것이 있어 성립하는 것이다.
그른 것 역시 옮음이 있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옮음만이 존재하는 세상은 없다.
또한, 그름만이 존재하는 세상 역시 없다.
'불교에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라는 말이 있다
번뇌가 없다면, 벗어나야 할 일도 없는 것이다.
보리는 번뇌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옮고 그름은 공존하는 것이고.
어둠과 밝음,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 도리를 깨닫는 것을 진정한 깨달음이라 하겠는가?
하지만. 이 도리에 집착함은
역시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 것이다
성인은 깨달음을 크게 얻지만
그것에 집착함이 없다.
'번뇌가 곧 보리' 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 깨달음에 집착하지 않는다
육조 혜능은 말했다.
'진정한 부처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일어나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물며, 범인은 집착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으면서
번뇌를 벗어나려 한다.
진정으로 깨달은 자는
비록 깨달음을 얻을지라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걸림이 없는 바람같이,
생각이 머물지 않고 생각에 걸림이 없어지는 것이다.
깨달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껍데기 일 뿐이다.
그러니 깨달은 자는 깨달음을 말하지 않는다.
염화시중의 미소만이 있는 듯 없는 듯
입가에 맴돌 뿐이다.
2015년 10월3일
초가을어스름에
山內에서
白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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