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禮老聃(문례노담)-공자가 노자에게 '禮'를 묻다.
작자 미상, 1742년작,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도덕경14장 ]
視之不見(시지불견) 보려해도 보이지 않은 것
名曰夷(명왈이) 이를 이름하여 '夷'라하고
聽之不聞(청지불문) 들으려도 들리지 않은 것
名曰希(명왈희) 이를 이름하여 '希(희)'라 하고
搏之不得(박지부득)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名曰微(명왈미) 이를 이름하여 '微' 라 한다.
此三者(차삼자) 이 셋을
不可致詰(불가치힐) 따져 볼 수가 없다.
故混而爲一(고혼이위일) 그 까닭은 하나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其上不皦(기상불교) 그 위로 밝은 것이 아니고,
其下不昧(기하불매) 그 아래로 어두운 것도 아니다
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으며,
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아무 물질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是謂 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無象之象(무상지상) 이것을 일러 '형상없는 형상'이라 하고,
是謂 惚恍(시위홀황) 이를 일컬어 '홀황(=황홀)' 이라 한다.
迎之不見其首(영지불견기수) 맞이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隨之不見其後(수지불견기후) 따라 다녀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다.
執 古之道(집고지도) 옛날의 도를 지켜서,
以御 今之有(이어금지유) 현재의 존재를 다스림으로써
能知古始(능지고시) 능히 태초를 알 수 있다
是謂道紀(시위도기) 이를 일러 도의 근본 줄기요 뼈대라 한다.
주) * 夷 : 오랑캐 이-> 오랑캐, 동방(東方), 종족(種族),평평할, 온화할, 클, 멸할, 무리..
* 希 : 바랄 희->드물, 성길..
* 微 : 작을 미->작을, 정교할, 천할, 희미할...
* 詰 : 물을 힐-> 꾸짖을 힐 ->묻다, 따지다, 못하게하다, 경계하다, 벌하다
* 故 : 연고 고-> 연고,사유,까닭, 이유,도리
* 皦 : 옥돌 흴 교-> 새하얗다, 희다, 눈부시다, 빤짝이다
* 昧 : 어두울 매-> 어둡다, 찢다, 탐하다, 무릅쓰다, 어둑 새벽
* 繩 : 노끈 승-> 노끈, 줄, 먹줄, 법, 바로잡다
* 繩繩 : 승승, 대(代)가 끊어지지 아니함
* 無物 : 아무 물건(物件)도 없음
* 惚恍 : (=恍惚) ①광채(光彩)가 어른어른하여 눈이 부심 ②사물(事物)에 마음이 팔려 멍하니 서
있는 모양(模樣
* 御 : 거느릴 어, 막을 어->거느리다, 통솔하다 , 다스리다, 통치하다, 임금이 나들이하다
* 紀 : 벼리 기->벼리(그물코를 꿘 굵은 줄,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해, 세월
그 위로 밝게 들어 나지도 않고. 그 아래로 어두워 묻혀버리는 것도 아니다.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으며, 아무 물질이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일러 '형상없는 형상'이라 한다. 이것을 일컬어 '홀황(=황홀)' 이라 한다.
이것은 맞이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이것을 뒤쫓아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다. 옛날의 도를 붙잡고, 현재의 존재를 다스림으로써, 능히 태초를 알 수 있다. 이를 일러 도의 근본 줄기요 뼈대라 한다.]
각 장마다 노자할배, 독특한 단어와 귀절들을 구사하여 여러사람들의 골을 썪게 한다. 당시 용례와 배경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석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의 용례와 배경을 어찌 이 싯점에 명확히 하리요? 더구나 단순한 글귀도 아니고, 聖人이 작심하고(?) 골라 쓴 단어와 글귀를. 先仁들의 註釋本을 참고한다고 하나, 그 註釋本 역시 古語로 되어 있어니, 어쩌는 수 없이, 대부분의 주석이 창작적이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창작적이라 하여도, 전체적인 맥락으로, 일정한 흐름과 노자할배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파악하여야 되지 싶은데, 이마저도 창작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러사람의 해석을 비교하여 보면, 그런 경향을 확연히 느낀다. 하기사, 一意的 解釋이 용이하다면, 어찌 그리 오랜 세월, 무수한 사람들이 그 글귀를 해석하는 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해석이, 자신이 이해하는 만큼수준으로 창작을 하고 있다 보는 것이다. 이 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장에서 네게 골머리를 썩히게 한 단어는 夷,希,微이다
視之不見(시지불견) 名曰夷(명왈이), 聽之不聞(청지불문) 名曰希(명왈 희), 搏之不得(박지부득) 名曰微(명왈 미)
도덕경 14장은, 지금까지 설명한 道, 앞으로 설명할 道를, 다른 각도에서 또 설명하는 章中의 하나이다. 즉, 夷希微(이희미), 惚恍(홀황)과 道紀 (도기)의 개념으로서 도를 설명한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夷' 하는 데, '夷' 가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있으며, '들을려고 들리지 않는 것'을 '希' 하는 데, '希' 가 '들을려고 들리지 않는 것'을 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또,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微' 하는 데, '微' 가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夷希微(이희미)의 夷는 ,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 즉 색채가 없음(無色), 希는 듣자 해도 들리지 않는 것, 즉, 소리가 없음(無聲), 微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즉 형체가 없음(無形)으로 도(道)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 단어이다,
夷希微(이희미)의 夷는 ,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 즉 색채가 없음(無色), 希는 듣자 해도 들리지 않는 것, 즉, 소리가 없음(無聲), 微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즉 형체가 없음(無形)으로 도(道)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 단어이다,
결국, 이(夷)는 무색(無色), 희(希)는 무성(無聲), 미(微)는 무형(無形)을 뜻한다. 중국의 東漢 시대 許愼이 쓴, 절대 권위로 인정받고 있는 한자사전인, 設文解字(설문해자)에서 夷(이)는 '크게 어질다'란 뜻이라 한다. 그 이후의 사전에서는 '大+ 弓으로 큰 활을 쓰는 ...'의 뜻으로 쓰인다. 夷가 무색(無色)을 뜻하는 징조를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 希가 무성을 나타낸다는 징조 역시 찾을 길이 없다. 극소한 형상을 의미하는 미(微)만이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것' 즉 무형(無形)의 설명에 연관을 가진다. 이, 희(夷, 希)가 왜 그런 의미를 나타내는 지는 알길이 없는 것이다(별도의 추적이 필요하다).
此三者(차삼자) 不可致詰(불가치힐) 故混而爲一(고혼이위일)
夷希微 이 셋은 하나씩 구분하여 따져 볼 수가 없다. 이 셋은 하나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道는 이 세가지즉, 즉, 무색(無色), 무성(無聲), 무형(無形)이 하나의 混原之體(혼원지체) 즉 세가지로 분화되기 전의 혼합된상태로, 恍惚(황홀)하고, 원만하여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圓融玄通(원융현통)한 세계를 이룬다. '그것이 道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其上不皦(기상불교) 其下不昧(기하불매), 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是謂 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無象之象(무상지상) 是謂 惚恍(시위홀황)
도는 원래 비어 있어(道沖), 大와 小, 遠과 近, 上과 下의 구별과 形狀과 形態가 없는, 무색(無色), 무성(無聲), 무형(無形)이 하나의 混原之體(혼원지체) 로 되어 있어, 그속에서 色과 聲과 形이 생겨나기도 한다(無中生有), 그러니, 그 위로 밝게 들어나지 않고, 그 아래로 어두워 묻혀버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져, 이에 이름을 붙힐 수 없다. 생겨난 것은 다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無物)로 되돌아간다.
이를 일러, 형상없는 형상이라하고, 이를 일컬어, 홀황 즉, 황홀이라 한다.
迎之不見其首(영지불견기수) 隨之不見其後(수지불견기후)
도는 無狀之狀, 無象之象이고, 홀황하니, 이를 맞이한다해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이를 뒤쫓아도 그 꼬리를 볼 수 없다. 즉, 도는 형상이 없고, 시작과 끝이 없이, 원륭현통할 뿐이다.
執古之道(집고지도) 以御 今之有(이어금지유) 能知古始(능지고시) 是謂道紀(시위도기)
왕필본에서 執古之道(집고지도), 能知古始(능지고시)로 쓴 것은 백서본에서는 執今之道(집금지도), 以知古始(이지고시)로 되어 있다. 즉,
왕필본은 ' 옛날의 도를 붙잡고, (현재의 존재를 다스림으로써), 능히 태초를 알 수 있다. 이를 일러 도의 근본이라 한다'. 백서본은 '지금의 도를 붙잡고, (현재의 존재를 다스림으로써), 그로써, 태초를 알 수 있다. 이를 일러 도의 근본이라 한다'
왕필본대로 해석한다면, '옛날의 도를 붙잡고, 현재의 존재를 다스림으로써, 능히 태초를 알 수 있다' 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도를 기반으로, 현재의 현상을 유추하고 추적해보면, 현재의 현상이 시작한 시초를 알 수 있다. 물질도 그와 같고, 천지만물도 그와 같아서, 도를 기반으로 현재의 물질과 천지만물의 생성을 더듬어 올라가면, 능히 태초의 시작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러 도의 근본 줄기요 뼈대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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