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그린 내 연필그림, 늦둥이와 내 아내,
그 때는 돋보기 엄씨 맨 눈으로 그렸는데...>
MBN방송에, '황금알' 이라는 프로가 있다. 황금알에 나오는 출연자들을 '고수'라 칭한다. 대한민국에서, 분야별로 내노라하는 경륜과 말재주와 실력이 一當百의 전문가들이다.
얼마전 그 프로에, 황수관 교수의 돌아가신 1주기 회고 방송이 있었다. 황금알 출연자 고수들과 방청석을 대상으로, 황수관 교수가 '어머니' 에 대해 회고하는 강연을 한 어느 회 방송 분량을 다시 틀어준 것이다. 나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 재방송을 봤다.
황교수가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에 대해 회고 하는 이야기를 거의 울다시피 열강하는 것이였다. 내노라 하는 달변의 고수들도, 대부분 눈가에 맻히는 눈물방울을 주체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감정의 배경을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못다한 효에 대한 후회인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인지.
'어머니'
나는, 프로를 시청하다, 어느 듯, 3년전에 돌아가신, 아내에 대한 내 감정보다는, 어머니를 잃은 딸애와 늦둥이의 입장이 되어, 되어 그 프로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9월21일
3년전 이날이 아내가 돌아간 날이니, 2013년 이날로, 아내가 돌아간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음력으로 치면, 한가위 전날인 9월14일이지만, 양력으로 추억하기로 했으니, 올해는 한가위를 며칠 지난 그날이 기일이었던 것이다. 굳이 상주가 되어 여막 [廬幕]을 짓고 3년상을 지키고자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우찌되었던, 결과론적으로 홀로 지낸지 3년, 거짓말 좀 보태서, 한시도 아내를 잊은 적이 없으니, 내심으로는 이른바 3년상(喪)을 치른 것이고, 결과적으로 마침내 탈상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3년전에, 아내가 결국 우리 가족 곁을 떠날 때, 나만을 두고는 쉽게 눈을 감았을 지 모르지만, 딸과,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어찌 편히 떠나갔으리요? 아내를 묻고,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겉으로 진정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계기가 있으면, 저 깊은 곳에서 부터 측정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도져온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늦둥이 녀석은 이제 중학교 1학년, 한참 사춘기다. 엄마도 없는 어려운 시기를 지 누나를 괴롭히며 근근히 보내고 있음을 안다. 등.하교시의 허전함을 지 누나한테 투정으로 쏟아 놓는다. 지 누나가 말이 아닌 것이다.
나로서는, 버릇없다 생각하면서도 그 녀석을 나무라질 못하고 있다. 늦둥이 녀석이 표현하지 않은 마음속 깊은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픈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는 것은, 방법이 없다기 보다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어짜피, 녀석들이, 극복하여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라 변명하며,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낸다.
학원다니는 것을 굳이 싫다, 가정교사도 싫다하여, 포기하고 난 이후, 방과후에는, 집안에 들어와서, 누가 가이드해주는 이도 없으니, 스스로 스케쥴링을 하여 하루하루 시간관리를 잘해나가야 할터인 데,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고, 보나마나, 녀석은 스마트 폰, PC게임이나 TV시청 등으로 홀로 썰렁한 분위기를 이겨내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포기하고 있거나, 나름대로, 극복하고 있을 지 모른다. 내가 마땅히, 적절한 대안을 찾아주어야 하는 데 그러질 못해왔으니, 내 눈에 비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은, 언제나 내 가슴을 아려오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그런 어린 아들에 대한 내 가슴앓이는 녀석이 성인이 될때까지, 어쩌면, 영원히 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한 때, 저조한 성적을 탓하여 매를 들기도 했지만, 매를 맞는 녀석보다는 때리는 내가슴이 더욱 아프다는 것을 녀석이 알기나 할까? . 종아리를 때리던 날, 强.溫 전략을 구사하여, 매로서 강하게 다스리고, 한참을 틈을 들여 매맞은 아픔이 사그라들 즈음, 녀석을 불러 앉히고서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말로, 타이렀다. 그러자, 녀석은 매맞은 아픔이 가라았고, 저조한 성적을 아빠에게 알려야 하나, 아빠가 알면 어쩌나 내심, 고민하던 걱정과 스트레스가 차라리 매를 맞고 풀렸다고 생각하는 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아빠, 내 이때까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엄마는 무슨 병으로 돌아갔어? 궁금해!"
그 소리를 듣고, 한참을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왜 그런 질문을 ?' 당황하기도 하고, 갑자기 당시 정황이 되새겨지며, 대답을 하려 하면, 뭔가 쏟아질 것 같았기도 하고 해서다. 녀석이 그동안, 지 아빠와 누나의 아픔을 헤아려(?), 지 엄마가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 궁금함을 가슴속에 품고 왔다는 말이 된다. 생각보다 사려깊은 녀석일까? '그동안 엄마생각으로 공부를 잘 못했으니, 그리 이해해주라' 는 무언의 시위인가? 어쩌면, 엄마의 병명을 원한 것이 아니라, 녀석 나름대로의 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식으로 물어본 것이리라. 아마도 그랬으리라. 한참있다, 조용히 물음에 답을 주었다.
"빈아, 스티브 잡스 잘 알지?, 그 아저씨 엄마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잖아? 헌데, 그 아저씨, 돈이 엄써 못 고쳤겠나? 엄마도..."
얼마전 그 프로에, 황수관 교수의 돌아가신 1주기 회고 방송이 있었다. 황금알 출연자 고수들과 방청석을 대상으로, 황수관 교수가 '어머니' 에 대해 회고하는 강연을 한 어느 회 방송 분량을 다시 틀어준 것이다. 나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 재방송을 봤다.
황교수가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어머니의 사랑과 어머니에 대해 회고 하는 이야기를 거의 울다시피 열강하는 것이였다. 내노라 하는 달변의 고수들도, 대부분 눈가에 맻히는 눈물방울을 주체하지 못했다. 개개인의 감정의 배경을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못다한 효에 대한 후회인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인지.
'어머니'
나는, 프로를 시청하다, 어느 듯, 3년전에 돌아가신, 아내에 대한 내 감정보다는, 어머니를 잃은 딸애와 늦둥이의 입장이 되어, 되어 그 프로에 빠져 들었던 것이다.
9월21일
3년전 이날이 아내가 돌아간 날이니, 2013년 이날로, 아내가 돌아간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음력으로 치면, 한가위 전날인 9월14일이지만, 양력으로 추억하기로 했으니, 올해는 한가위를 며칠 지난 그날이 기일이었던 것이다. 굳이 상주가 되어 여막 [廬幕]을 짓고 3년상을 지키고자 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우찌되었던, 결과론적으로 홀로 지낸지 3년, 거짓말 좀 보태서, 한시도 아내를 잊은 적이 없으니, 내심으로는 이른바 3년상(喪)을 치른 것이고, 결과적으로 마침내 탈상을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3년전에, 아내가 결국 우리 가족 곁을 떠날 때, 나만을 두고는 쉽게 눈을 감았을 지 모르지만, 딸과,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어찌 편히 떠나갔으리요? 아내를 묻고,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겉으로 진정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어떤 계기가 있으면, 저 깊은 곳에서 부터 측정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도져온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늦둥이 녀석은 이제 중학교 1학년, 한참 사춘기다. 엄마도 없는 어려운 시기를 지 누나를 괴롭히며 근근히 보내고 있음을 안다. 등.하교시의 허전함을 지 누나한테 투정으로 쏟아 놓는다. 지 누나가 말이 아닌 것이다.
나로서는, 버릇없다 생각하면서도 그 녀석을 나무라질 못하고 있다. 늦둥이 녀석이 표현하지 않은 마음속 깊은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 아픈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는 것은, 방법이 없다기 보다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어짜피, 녀석들이, 극복하여야 할 현실이기 때문이라 변명하며,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낸다.
학원다니는 것을 굳이 싫다, 가정교사도 싫다하여, 포기하고 난 이후, 방과후에는, 집안에 들어와서, 누가 가이드해주는 이도 없으니, 스스로 스케쥴링을 하여 하루하루 시간관리를 잘해나가야 할터인 데,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고, 보나마나, 녀석은 스마트 폰, PC게임이나 TV시청 등으로 홀로 썰렁한 분위기를 이겨내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포기하고 있거나, 나름대로, 극복하고 있을 지 모른다. 내가 마땅히, 적절한 대안을 찾아주어야 하는 데 그러질 못해왔으니, 내 눈에 비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은, 언제나 내 가슴을 아려오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그런 어린 아들에 대한 내 가슴앓이는 녀석이 성인이 될때까지, 어쩌면, 영원히 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한 때, 저조한 성적을 탓하여 매를 들기도 했지만, 매를 맞는 녀석보다는 때리는 내가슴이 더욱 아프다는 것을 녀석이 알기나 할까? . 종아리를 때리던 날, 强.溫 전략을 구사하여, 매로서 강하게 다스리고, 한참을 틈을 들여 매맞은 아픔이 사그라들 즈음, 녀석을 불러 앉히고서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말로, 타이렀다. 그러자, 녀석은 매맞은 아픔이 가라았고, 저조한 성적을 아빠에게 알려야 하나, 아빠가 알면 어쩌나 내심, 고민하던 걱정과 스트레스가 차라리 매를 맞고 풀렸다고 생각하는 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아빠, 내 이때까지, 한번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엄마는 무슨 병으로 돌아갔어? 궁금해!"
그 소리를 듣고, 한참을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왜 그런 질문을 ?' 당황하기도 하고, 갑자기 당시 정황이 되새겨지며, 대답을 하려 하면, 뭔가 쏟아질 것 같았기도 하고 해서다. 녀석이 그동안, 지 아빠와 누나의 아픔을 헤아려(?), 지 엄마가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는지, 궁금함을 가슴속에 품고 왔다는 말이 된다. 생각보다 사려깊은 녀석일까? '그동안 엄마생각으로 공부를 잘 못했으니, 그리 이해해주라' 는 무언의 시위인가? 어쩌면, 엄마의 병명을 원한 것이 아니라, 녀석 나름대로의 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식으로 물어본 것이리라. 아마도 그랬으리라. 한참있다, 조용히 물음에 답을 주었다.
"빈아, 스티브 잡스 잘 알지?, 그 아저씨 엄마와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잖아? 헌데, 그 아저씨, 돈이 엄써 못 고쳤겠나? 엄마도..."
말을 해 놓고, 아차 했다. 내 어린 시절이 불현듯 생각 났기 때문이다. 당시도 세상정세가 씨끄러웠던지, 형들이 마구 떠드는 소릴 흘러 듣고, 한 동안 세상의 종말이 올 것같은 불안감에 떨었던 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지 엄마의 병력을 알고, 걱정할 수 있겠다 싶어,
"그런 병도 조만간에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니희들 세상일 때는 참 좋겠다..."
한마디 위로겸, 설명을 덧붙였지만, 궁색할 수밖에 없다.
딸애 역시 아들 못지 않는 나의 가슴앓이 대상이다. 딸에게는 아빠와 동생이 애처롭겠지만, 나에게는 딸애 역시 아들 못지 않게 이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지 엄마 역활을 대신해, 동생과 이 아비를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 또래들이 즐기는 삶의 기쁨과 자유를 마음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딸애라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없겠는가마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여지껏 일체 내색않는다. 아빠나, 동생을 생각해서, 스스로의 아픈 감정은 속으로 갈무리하고 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것을 알기에 딸애 앞에서 애써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다. 간혹, 지나가는 길에 '시집 가야지'?' 하면, '뒤에 가도 된다'며 애써 비켜가는 딸애의 사려깊은(?) 모습이 오히려, 무책임하게 한마디 던진 아빠를 더욱 민망하게 하고,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이다.
애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 3년의 세월이 넘게 흘러, 이제, 애들은, 어머니가 안계신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는 감정을 조절하고, 자립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만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나는 더욱 아내가 그리워진다. 딱히, 아내와의 이별의 상처가 도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아내를 잃은 상처는 아물어 지겠지만, 인생의 황혼녁이 가까워질 수록, 평소 인생자체에 대한 무상한 감정이, 아내에 대한 감상의 틈에 편성하여, 더욱 자주 고개를 내밀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그러니, 애들을 핑계대며, 홀로, 세월을 어영부영 보내온 것이라 하지만, 어쩌면, 나자신, 근본적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극복하지 못한 때문이리라
하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나는 더욱 아내가 그리워진다. 딱히, 아내와의 이별의 상처가 도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월이 흐를 수록, 아내를 잃은 상처는 아물어 지겠지만, 인생의 황혼녁이 가까워질 수록, 평소 인생자체에 대한 무상한 감정이, 아내에 대한 감상의 틈에 편성하여, 더욱 자주 고개를 내밀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그러니, 애들을 핑계대며, 홀로, 세월을 어영부영 보내온 것이라 하지만, 어쩌면, 나자신, 근본적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극복하지 못한 때문이리라
그래서, 佛家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를 벗어나 '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르는 길에 52백만자가 넘는 글의 대장경이 필요한 것이였을까?
일찌기, 老子曰,
'致虛極 守靜篤(치허극 수정독) 비움을 지극히 실천하고, 고요함에 깊이 이른다'하면,'沒身不殆(몰신불태) 몸이 없어진다해도 두려움이 없게 된다' 라 했으니,.
지극히 마음을 비우고, 속세의 어지러움을 벗어나, 고요함에 머물 때가 가까워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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