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으로부터의 독립'
엄밀하게는 먹거리 문제와 에너지의 독립이고, 경쟁에서의 독립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경쟁하고 부댓기며, 세상의 좋은 모습도 무수히 보아왔지만, 세상의 험한 꼴, 이 문명의 한계와 결과적으로 세상의 자원을 아작내는 문명의 산물들의 횡포(?)를 지켜보고, 혹은 겪어오면서. 내머리 속에 맴도는 화두로 자리 잡았다. 이 문명의 방식은 후손,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환골탈퇴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이 문명의 족쇄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니이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서문에서,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스스로 더러워지지 않을려면, 모름지기 스스로 바다가 되라'고 하는 말씀을 떠올리며,
'이 문명은 더러운 강물이다, 스스로 더러워지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이 문명으로부터 독립하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에 내 가족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실현해야할 의무이고 꿈이 되어 왔던 것이다.
길어야 30년 餘生, 최대 946,080천 초(sec), 즉 길어야, 9억초 남짓 남은, 홀로 된 이 生을 어디에 쓰랴? 먹고, 마시며, 잘살기 위해 고민하고, 죽어가기 위해? 인생은 일초, 일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일 뿐인가?
한 두세대를 넘길 수 없다는 자원의 고갈, 이상기온과 에너지 위기, 성장위주의 문명에 내 가족과 내 이웃, 이 사회를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전 인류가 문명사적으로 접근해도 될뚱말뚱할 문제를 일 개인이? 누군들, 허황하고, 쓸데없는 고민과 고집이라 하지 않겠는가?
남이사 그라든말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수준' 으로라도 그런 꿈을 실현하여야 한다. 어쩌면 그 실현을 모색을 하면서, 일초일초를 소모하며,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꿈일지도 모른다.
우선, 개개인이 사회, 경제적 성장과 상관없이, 하루 하루 먹을거리 걱정없고, 여유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거리로 내몰리고, 세상을 등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험악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내가족, 이웃들이, 세상에 대한 회의, 인생에 대한 의문, 나아가 절망감을 가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전기(電氣)는 사시사철, 먹거리를 만들고, 냉.난방을 돌려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인간다운 삶을 하기 위한 기본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전력 수급비상에 가슴졸이는 일이 없도록, 전기를 자급하여, 일상의 생활은 물론이고, 냉난방도 해결하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는 생활을 구현해보고 싶은 것이다.
또, 경쟁에서의 탈피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경쟁과 성장의 순기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대 문명은 경쟁과 성장만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없는 사회, 성장이 없는 사회가 바람직하고, 좋은 사회, 여유있는 사회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도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2~3세대에 걸쳐, 역기능은 세월 따라 사그라들고, 순기능이 늘어나는 그런 패러다임으로의 문명의 전환이 이루어 져야 한다.
나는 내방식대로, 내수준으로, 그 단초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 實證을 우리애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그네들이 직접 그런 생활에 나서든, Back up 삶이 될지라도, 최소한 그 가능성 만이라도 남겨두고 가는 것이 나의 의무요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 변해는 가지만, 영원히 변할거리가 이어지는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자원이 고갈하고, 에너지 문제로 성장이 더뎌지고, 변화의 동력이 고갈되면, 사회 불안에 떠는 그런 사회를 벗어나는 길을 實證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무리이고, 욕심이라면, 나는 기꺼이 무리하고, 욕심을 부리고 싶다.
길어야, 여생이 30년 내외로 확실히 좁혀지는 60세를 고비를 넘어서자, 인생이 서글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70고개가 보인다. 여기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70대로 그냥 바람처럼, 내달릴 것이다. 공자가, 나이 70이면,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慾不踰矩 ]'라 '마음먹은대로 행해도, 법도에 벗어남이 없다' 는 나이라 했다지만, 그 나이가 되면, 뭐라도 새롭고 이미있는 도전을 시작하기는 힘들 것이고,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최상의 처신일 수 밖에 없는 나이이다. 그러니, 나이 60에 접어 들었으니, 인생에서 꿈꾸왔던 뭔가 모색해보는 마지막 때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꿈꿔왔던 그 길이라면, 그대로 꿋꿋이 가는대로 가면 될 것이다. 그런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꿈꿔왔던 길과 다른 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제 마지막 선택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선택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다행히 행복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선택의 길이 막혀있다면, 더 없이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 자체가 없다면,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면 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여생의 진로를 선택할 것이냐? 60고개를 막 넘은 이 시점에 내 인생길에 마지막 갈림길이 다가온 것이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갈 것이냐 어떤 길로 나설 것이냐'
이제, 아내를 잃고, 홀로 지낸지 3년, 이른바 3년상(喪)을 탈상할 때를 앞두고 있다.
홀로 3년을 지나고 보니 또 다른 선택의 기로가 내앞을 가로 막는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처럼, 혼자갈 것이냐, 동반자와 같이 꿈을 꾸며 갈 것이냐 '
홀로 된 내가 현실적으로 방향설정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대로 홀로 여생을 보낼지, 동반자를 구해, 같이 가야할 길인지, 아내를 떠나 보내고 한동안 차마, 마음에 그런 생각이 움트지 않더니, 이제는 언듯언듯, 생각이 많아진다. 새 동반자와 같이 갈 것 이냐? 동반자의 유무와 위상은 나의 꿈을 실현하는데, 주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동반자는 나와 꿈을 공유하고, 실현하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꿈에 동참하고 꿈을 나누어 가는 동반자를 구하고, 그런 동반자가 있을 것이냐' 하는 것도 방향설정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고자 하는 길은, 어린 아들과 딸의 인생하고도 지극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고, 내가 그녀석들의 아빠이고, 나의 선택이 그 녀석들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 혼자만이 고집으로 추진할 일방적인 프로세스가 아닌 것이다. 어린 아들, 딸은 성장하면서 내 바램과 무관하게 살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꿈을 이어받더라도, 그때까지는 어느 정도 독립경험을 할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동반자의 유무, 동반자의 뜻이 어쩌면, 나의 꿈을 실현하는 데,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고려없이, 혼자가는 길이 편해 보기기는 한다. 음식이고, 청소고 빨래고 혼자 해결하는 데 문제는 없다. 아직은 육신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육신을 움직이는 데 따르는 고통을 덜기 위해, 동반자를 구한다면, 그것은, 내 인생관, 내 철학으로는 넌센스다. 꿈을 실현하는 데, 동반자에 기대고 싶은 마음으로 동반자를 구하러 든다면, 나는 인생을 헛살은 것이다.
모름지기, 내가 육신을 위탁하게 된다면, 그것은 가족이나 동반자가 아니라, 대지가 되어야 한다. 대지는 내 코 아래 1.5m에 무한히 펼쳐져 있다, 그런 대지에 몸을 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지라면, 내가 기꺼이 내 육신을 맡길만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나에게는, 아들의 존재, 아들나이, 딸의 존재, 딸의 결혼, 동반자의 유무, 동반자의 꿈과 나이, 내 꿈, 내 나이, 일과 건강, 보람 등도 얽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어느 하나 고려를 포기 할 수 없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정과 세월의 무상함이 얽혀 있다.
이시점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애들의 삶도 고려하고, 동반자를 찾고, 동반자와 같이 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여러 요소들이 서로 영향이 걸쳐있어 관계가 참으로 복잡하다. 고차방정식의 풀이 보다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나이 60에 이르기까지, 모색해 왔지만, 내 꿈은 아직 미완성이다. 현실적으로 그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예까지 어영부영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죽기 전에 꼭 이루어하는 일이고, 이번이 마지막 선택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그냥 흘러 보내기 싫은 것이다. 주저 앉아 70세로 그냥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우스의 매듭풀기' 처럼, 일도양단식 결심이 필요할 사항이 올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지금 생활을 꿋꿋이 지켜나갈 환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은 내가 추구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장강의 뒷물결 밀려온다. 변화의 물결이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변화시킬지, 질서있게 변화시킬 지 모르지만, 나역시 그 물결에 따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그것을 안다.
설령 지금 생활을 꿋꿋이 연장할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어영부영 그런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내 인생관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그 길은 꿈이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수준' 으로라도 나의 꿈을 실현시킬 것이다 가다가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그길을 갈 수밖에 없다. 나는 그 길을 찾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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