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死境)을 헤메다
자전거도로중 팔당역에서, 양평역까지는 폐철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 차도 보다 수m높은 지대에서 강변따라 강변이 생긴 굴곡대로 지나가는 풍경이 아름답기 거지없고, 다양하기 때문에 지루한 줄 모른다. 양평역부터, 개군면 양덕리 마을회관까지는 강변따라 그런대로 아기자기한 자전거길로 이어졌다. 양덕리에서 여주군에 들어서는 곳은, 차도를 이용한다고 이미 앞선글에서 소개올린 바 있다,
여주군으로 접어들면, 시야가 탁트인 지대로 나오고 부터는, 끝없이 조성된, 단조로운 물막이 둑길을 걸어야 한다. 자전거도로 분위기도 확 달라진다. 이포보로 가는 길은 강바닥에서 준설되었을 거대한 모래나 흙더미로 저류지(홍수가 날 때 강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물을 가두는 곳)를 인위적으로 형성하면서 생기는 둑길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포보를 지나서 여주보까지 길은 전부 이런 길이다. 흙더미위에, 자전거길만, 또는 자동차 길과 자전거길이 나란히 나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을 하여 난 이길은 수십km로 뻗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선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이포보 인근에서 낮술을 대작하고,점심을 배불리 먹은 후에 다시 출발했다. 봉진막국수에서 아랫도리를 좀 쉬고 나니 한결 편하다. 아마도 낮술에 취한 탓이리라,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못했던, 이영수교수의 특기가 이런 대낮에도 드러난다. 모두들 막걸리나 맥주를 선호하는 데, 이교수만은 대낮부터 소주다. 소주가 좋단다.
술기운에 또 다시 나선 길, 술기운이 아니면 나설수 없는 길. 이번의 쉼은 제대로 된 쉼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잠시 통증을 가라앉히는 마취정도일 것이다. 특히, 욱조, 민부가 이포보에 접근할 때부터, 치질수술받고 나오는 사람처럼, 어기적 어기적 거리는 모습을 보건데, 잠시 쉬었다고는 하나, 어쩌나... 아무도 오후에 걸어야 할 길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 속으로 걱정을 하지만, 내코도 석자이니, 어째튼, 가보자, 끝가지.....
봉진막구수집 낮술의 마취효과가 아직은 유효한 것 같다. 보무가 당당한 것 같지만, 연속동작이면.....
여주 저류지입구, 대홍수시 범람을 막기위해 강옆으로 난 저류지로 물길을 유도하는 제방, 주변제방보다 낮다. 멀리 흥재, 민부, 욱조가 보인다
앞으로 가야할 여주보는 시야에도 나타나지 도 않는데. 이포보는 뒤로 멀어져 가야하는 데 통 멀어지질 않는다. 여주보가 쉽게 다가올질 않는 것이다. 얼마나 먼지, 여주보로가는 길이 단축되지 않는 것이다. 간혹, 차거운 냉기가 몰아치더니 눈발을 뿌리기도 한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걸어니, 멀리 아주 멀리멀리 어렴풋이 신기루 처럼 여주보가 보일듯 말듯한다.
여주보의 실제모습.
이그림은, 우리가 가까이 갔을 때는 이미 저녁이라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인터넷에서 가져왔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여주보에는 찻길이 없고 자전차도로만 있다. 이포보에 비해 폭이 작은 편이다.
뒤돌아보니, 영수가 가까이 있고, 나머지 일행은 몇안되는 일행마저 갈라져, 저 만치 오고 있다. 민부와 욱조, 흥재다. 흥재는 달리기등을 통해, 운동근육이 발달했을 터이니, 아마도 욱조와 민부와 보조를 맞춰주고 있을 터이다. 종윤이는 며칠전에 벌려놓은 사업장일 때문에, 이포보 끝, 봉진막국수에서 점심을 먹고, 매우 미안해하며 (사업잘되면) 거하게 한턱낸다하고 귀경했다. 이 때, 민부,욱조도 돌아가자 하지 않은 것이 정말 가상하고 희안한 일인셈이다.
좌측이 자동차도로이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자전거도로이다. 이포보에서 여주보까지는 두 도로가 평행하게 인접해 있다. 가도가도 끝이 안보인다
이포보부근에서 본 선전문구가 생각난다. '이포보는 전국 4대강 물막이 보 중에서 제일 크고, 아름답다. 이포보에서 여주보에 이르는 길은 자전차길로서도 전국최고의 길이다' 하지만, 도보로 그길을 간다?
지금 우리눈에는, 우리 심정에는 다큐멘터리에나 나옴직한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길이 이정도일까? 남극이나 북극의 탐험길이 이정도 일까? 언제부터인가 여기로는 인적이 끊어졌다. 우리 일행 다섯이 뿐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길 ...'
노래도 불러보고, 별 생각을 다하며 앞으로 앞으로, 모두들도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 것이다. 아픈 다리 옮기는 데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면서 후회하는 마음도 없다 못할 것이다
뒤처진 민부와 욱조. 석양이 지는 쪽이 서울 방향이다
곧, 어두어 질 것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반경, 아침 9시30분경에 양평숙소에서 나왔으니, 7~8시간째 어기적거리며 걸어 온 것이다. 드디어 코앞에 여주보가 보인다. 코앞이라지만, 어기적거리는 속도로는 1~2시간은 더 걸어여 할 것이다.
이제 모두들 체력에 한계가 온 것 같다. 몇걸음을 걸어도 피가 다리로만 몰리는지, 통증이 심하다. 특히 민부교수의 상태가 안좋다. 욱조 역시 몸짱만으로는 연습없이 이 먼길이 무리인 것 같다. 조심스레 119이야기가 나온다. 다행히, 이포보에서 여주보까지는 자동차도로와 자전거도로가 병행하여 뚤려 있어 천만다행이다. 119를 부르면, 자동차도로로 한달음에 올것이다.
여기는 강변이라, 뒤에 안 사실이지만, 보는 개통되었지만, 도로로 차량접근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간혹, 가물에 콩나듯 지나다니는 차량이 있다 불법 통행차량일 터이다. 아마도 운전수도 그 사실을 모를 지도 모른다, 알았다한들, 이 황량한 벌판에 단속하러 나올리도 없으니...
119를 부를까, 지나가는 차량에 구조요청을 할 까?. 5명을 너끈히 태울 수 있는 지나가는 SUV차량에 구조요청을 할까말까 망설이다 그만, 놓쳐버렸다.
'크, 5섯명은 너끈히 탈 수 있겠는데" 누군가의 탄식소리다. 말은 안해도, 특히, 민부교수의 실망이 커보인다. 얼굴색이 말이 아니다.
나로서는 걷는 것보다 뛰는 게 다리통증을 줄여주는 관계로 앞쪽으로 뛰어 나가고, 흥재와 영수가 그 다음, 한참을 쳐저 민부와 욱조가 따로고 있다. 욱조는 민부와 말동무 하며, 통증을 잊어라고 말동무겸, 진통제역활를 고군분투하다, 스스로 지쳐 민부와 보조를 맞추는 꼴이 되어 버렸을 게다.
드디어, 이영수교수가 결단을 내렸다. 우짜다가 지나가는 차량한대, 이걸 놓치면 큰일이다 싶어,두손을 번쩍들고, 이 차량을 불러세운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한 소리를 듣미 못했지만, '여차저차 사경(?)을 헤메는 환자가 있어, 시내까지 태워주시라' 애원(?)했다는 걸로 기억된다. 의사이기 때문에 민부, 욱조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 의사의 안목이 이때처럼 요긴하게 발휘된 때가 없었을 것이다. 영수교수가 아니였으면, 어찌되었을 지?
바라보니, 두사람을 태우고 내앞으로 온다. 내가 차를 불러 세웠다.
'타세요', 당연히 타려고 차를 세운 것으로 알고, 민부도, 조수석에 앉은 예쁘장한 아주머니도 권한다. 운전사와 아주머니,그리고 민부와 욱조, 그리고 한 자리가 비었다. 그러니 타라 한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손사래를 치며, '두사람을 잘 부탁한다' 꾸벅절을 하고 차를 보냈다.
뒤따라 오던 흥재와 영수, 순간적으로 내가 민부랑, 욱조랑 같이 가는 줄알고 황당했다한다. 지들 말로는 나 때문에, 욱조, 민부만 먼저보냈는 데, 앞서가던 내가 차를 세우고 저들과 같이 끼리 먼저 가버리면...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상황을 두고 많이도 웃었다. 아무리 다리가 무너져 내려도 내 어찌 그럴 수 있나? '여주군청부근에 가거들랑, 연락해라, 뒤따라가마' 그말 전할려고 한 것인데...'
뒤에 들은 바로는, 태워준 분들의 집은 여주에 있고, 남편이 이천군청에 다니는 공무원으로 내외분이 어딘가 다녀가는 길이였다한다. 얼떨결에 타서, 이제 꺼꾸로 뒤쳐진 우리보다 먼저 여주보를 둘러고, 여주군청에 내려, 이곳 음식점이나 적당한 숙소추천까지 받은 모양이다. 그 아줌마 얼굴도 예쁘고 마음 씀씀이도 그럴 수 없었다고, 다음날 저녁 때까지 민부, 욱조 입에 거품을 문다. 지금도 거품을 무는지 그 후로 못만나 확인이 안된다.
이제 뒤쳐진 둘이 없으니, 코앞에 보이는 여주보를 속도를 내었다.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한 두시간을 더 걸어서 드디어 여주보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은 저녁 7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날은 이미 캄캄해졌다 . 눈발도 내리고, 강바람이 밤이 되지 더욱 매서워지고, 찬기운이 뼈속까지 스며든다. 몸살이 오나보다 수년째 없던 증세가 도질려나?.
가까이서본 여주보의 야경
멀리서 본 여주보의 야경
여주보는 시내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다 하니, 시내로 걸어갈 엄두가 안난다. 목표는 초과달성 했으니, 이구동성으로 이제 택시를 부르자. 민부, 욱조가 기다릴 것이다. 그리하여, 114에 물어 이곳 콜택시를 불렀다.
'여기 여주보 입구, 팔각정앞인데 요 앞으로 와주세요"
헌데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가 오질 않는다. 해가 떨어지고 부터 찬바람이 엄청 불어제껴 몸서리를 쳐진다.
덜덜덜 떨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안와요?"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반 옥타브 올라갔다.
"어, 여기 여주보 입구, 팔각정인데 어딨어요?" 기사양반 되려 묻는다.
"어, 우리도 팔각정앞에 있는 데, 차 불 빛이 안보이는 데요"
그후로,
'여주보입구 천남공원 팔각정 앞이다'
'그럼, (개방안했으니 여기안와봐서 처음들어보는 기사양반)이포보인 모양이다. (되려 우리 있는 곳을 의심하며) 거기 이포보 아니요?'
'무슨 소리하는 교, 강천보로 갈려면 이포보쪽에서 와서 여주보를 건너야 할 것 아니요?, 그때 그 여주보입구쪽이라니까...'
.......
한참을 기사양반, 콜센터아가씨와 실랭이를 벌이다, 열받아서, 콜택시가오던말던, 차라리 걸어가자, 걸어가면 큰 길이 나오겠지 하며, 걸어 나오는데, 여주보 입구가 다시 나온다. 여주보 입구의 천남동산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나온 것이다. 어두운 시골이 헷갈리기 그지없다. 동산중앙에 우뚝선 팔각정이 우릴 비웃듯 서 있다.
'무지한 넘들 같으니라구!' 이러는 것 같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지만, 대책없어 난감해 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인근에 마침 외딴 집에 거주인이 있어 물었다, 세상에, 택시를 탈려거든, 여주보를 건너가서 타란다. 이곳으로는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오다 걸리면 벌금이란다. 이런 제기럴, 실랑이 전에 이 사실을 알았으면, 초장에 다리 입구로 사진 찍어려 갔을 때 바로 건널껄. 인근 주민소릴 듣는 순간, 온 몸에 김이 빠지면서, 모두, 탈진...그동안 버터왔던 체력이 일 순간에 무너져내린다. 아까 민부에게 왔던 그 증세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심한 증세일지도.
나에겐, 여주보 입구로 뛰어 올 때만해도, 피곤과 통증은 견디기 힘들어도, 몸살증세는 없었는 데, 이 실랭이 도중, 몸살 증세가 덮친다, 여기 주저 않기에도 너무 춥고, 걸어가기 에는 더더욱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경험상, 이대로 한두시간내에, 몸을 풀어주지 않으면, 상당히 오래 들어 눞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요 앞에 보이는 다리마저 걸어 건널 기력이 정말 없다. 겨울 강바람에 날려, 강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죽어나 사나 콜택시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나도 기력이 완전히 바닥 났다
어쩌나!, 참으로 난감해 있는데, 민부는 기사회생해서 목소리가 살아, '왜 빨리 안오냐? 사우나에서 기다리기 지쳤다. 배고프다 밥 빨리 묵자' 독촉이 빗발친다. 시간은 밤8시를 향해가고 았다. 몸살증세는 도를 더해간다.
정말 119에 전화하는 기분으로, 다시 그 콜택시에 전화를 했다. 옥신각신 할 때, 옥타브이상 올라갔던, 목소리가, 이제 완전히 잦아들었다. 다행히, 걸어간다 오지말라 안해기 망정이지, 그 기사양반 나름대로 물어물어 여기를 찾아 오고 있는 중이란다. 갑자기 그 기사양반이 얼마나 고마운지...
드디어, 밤 여덟시를 넘겨, 택시가 도착 했다. 우리가 발을 동동구른 그 여주보 입구다.
기사양반왈, 반대쪽 여주보입구에도 팔각정이 있다하네. 그리고, 여기는 우리가 있는 곳은 미 개통이라, 차가 못 온단다. 당연히, NAVI에서도 이쪽 입구는 등록이 안되어 있고, 여주보 입구 팔각정은 건너쪽 팔각정이 있는 부근이 찍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택시기사가 이곳을 당연히 여길 모를 수밖에.
정말 고맙게스리, 그 기사양반, 여기들어오면 벌금이라는 데, 그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지 이곳 이장댁에 가서, 물어물어 옛구도로를 더듬어 외진 이곳까지 와 주었다네.
여주읍 중심가모습
위는 여주군청인근 번화가다. 두어시간전에 먼저온 욱조 민부, 사우나탕에서 다시 조우했다. 숙소보다, 저녁을 하기전에 우선하여 뜨거운 물에 몸부터 풀어야 할 일이였던 것이다.
숙소를 정하고, 인근 이름을 까먹은 '솥두껑 삼결살' 전문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솥뚜껑 삼겹살' 을 시켜 놓고 또, 술판이다. 막걸리가 안보이네? 모두들, 언제 그랬나냐느듯이, 겉으론 태연하다. 아마도 아랫도리는 거진 허물어져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때 살짝 맛이 간 상태다. 낫이나 칼을 갈 때, 한 순간 날이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내 체력이 그 꼴이 낫다. 버티다 버티다 그놈의 여주보입구소동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점을 살짝 넘어선 것이다. 술도, 밥도 다 귀찮아 진 것이다. 아마, 내가 청하지 않으니 막걸리가 초청받지 못한 모양이다.
이후 잘 때까지 시간을 거진 혼수상태(?)로 보낸 것 같다. 기억마저 혼미하다. 기억이 날 정도로 주변에 신경을 못쓴 탓일 것이다. 몸살이 들기 시작하면, 그동안 무리와 약화된 체력때문에, 몸의 컨디션이 급전직하 할까 그게 두려운 것이다. 내일 아침 거뜬히 일어나야 할 터인데....
1월1일 저녁 죽을 고생을 하고 여천군청부근 삼겹살집에서 이틀간 연일곱식째 연거푸 술판째 술판이다
정신없이 자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엄청난 도보운동이 되려 회생력을 키운 것일까? 어제밤의 그 증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밝은 아침에 보니, 옛 시골읍내 풍이 물씬 풍긴다. 경험상, 이런 곳이면, 맛잇는 해장국 집이 한두집 잇을 터,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홍문 해장국'이다.
홍문해장국에서. 1월2일 아침을 해결하고 있다, 연 여덟식째 술판이다
홍문해장국 주인양반과
아침이면, 해장술이 빠질 수 없다. 해장국을 먹기전에 해장술은 기본. 어제의 피로는 풀렸는 듯이 보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얼마못가 다리가 아려 올 것이다. 여주보에서 시내로 들어 왔으니, 다행이 강천 보까지는 수km내외,
이제 평소 십리길도 다녀 보기 드문 사람들이 이백오십리 90km가까이를 도보로 다녔으니, 강천보까지만 갔다오자, 애초 기획했던 충주시까지 진입은 못하드라도, 강천보를 다녀와서 여주시내를 돌아다니자하고 초기 계획을 약간 수정한다. 여행을 바람잡이한 입장에서 날 포함해서 어제 탈진했던 친구들의 건강을 걱정하여, 여차하면 병원이나, 인근 쉼터로 갈 수 있는 시내로 방향을 턴 것이다. 여기에는 일부인사들이 반발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충주시내 땅은 밟아보자 하는 의욕이 아직도 넘치는 측이다.
강천보 입구에서
이민부 교수, 어제저녁의 비실가리던 모습을 겉으로는 떨친 모습이나...
강천보 통합관리센터
강천보 작동시물레이터등, 강천보 홍보관이다. 민부교수 덕분에 이곳에서 친절한 안내도 받고, 구석구석 시찰(?)도 할 수 있었다.
돗단배를 형상화 했다는 강천보상에선, 당당한 욱조, 어제의 어기적거리던 모습 역시 겉으로는 온데간데 없어 보인다
강천보는 회전식보로 필요에 따라 보를 회전시켜 물을 흘러보내기도 하고, 물을 가두기도 한다고 한다. 가장자리에는 고기가 오르내리게 하는 어도(魚道)가 있다
방문소감을 남기는 중이다.
충주시 땅은 밟아보자 하는 측이 막판 진로 수정에 반발하다, 결국 일을 저지른다. 예이 씨!
충주시 땅은 밟아보자 하는 측이 저지르는 데, 그럴입장이 아닌 측이 덩달아...
다시, 여주시내로 돌아왔다. 대도심에는 사라진지 오래된 '다방' 간판이 간간히 눈에 띈다. 점심때가 되어, 어제 이천군청 직원이 소개시켜준 음식점을 찾았다. 여주시내를 관통하는 남한강변이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여기서도 쏘가리, 빠가사리, 뭔 고기인가를 넣은 3종 잡탕 매운탕을 시켰다. 당연히 막걸리,소주,맥주는 기본이다. 도, 낮술이다. 여행 떠나온지 8식째. 이영수교수의 酒力이 진면목을 보인 자리다.
흥재는 오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부와 욱조는 완전히 되살아 났다. 강천보지(池)역활이 컷던 모양이다. 이 자리는 그동안 일어났던 에피소드등을 안주삼아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림과 글로는 표현할 길 없는 장면이다. 해서 적나라하게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다음편에 여러 동영상과 함께 올릴 것이다.
1월2일 점심을 매운탕을 들며, 2박3일을 반추하는 자리다. 연 아홉식째 술판이다
여주읍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차를 타자마자 모두가 골아 떨어진다. 그럴만하지 않는가? 나? 이한 컷을 끝으로 나도...
여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6시 10분에 동서울 오는 차를 탓다. 영수증 처리 때문에 나와 격렬한 실랑이가 있었다. x 같은 자식들, 카드로 차표를 일괄로 끊었는데. 차표 짤라서 영수증대신하란다. 그게 이곳 운행승인 약관이란다.
'목적지가 틀리면, 영수증을 어찌 모으노? 그러니 카드영수증을 주어야 한다' 는 것이 내 주장이다. 몇푼되지 않지만, 말도 안되는 불합리가 저들 편리대로 태연히 통용되니, 좀과한 낮술김에 몇번 문답이오가다가 분노가 폭발 한 것이다. 흥재가 무마한다고 고생을 했으 터이다. 덕분에, 어쨋튼, 무사히 동서울 역에 도착 했다. 어둑어둑 저녁여섯시 전후가 되었을 것이다
그냥 해여지기 섭하다 하여, 생맥주집에 해단식(?)을 대신했다. 연 10식째 술판이다. 결국 이대호 연 9번 홈런 기록보다 어려운 기록을 우리가 해냈다?
마무리 하며
년말년초는 누구에게나 정말로 귀중한 시간이다. 모든 사회각계각층은 묵은 해의 일들을 정리하고 새해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는다. 개인적으로도 연말년초는 송구영신하며, 새로운 시작이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이 때에는 가족과 함께, 지인들과 함께, 조용히 보내는 것이 상식적이고, 보다, 문명적이고 인간적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동(?)이 먹혀들어, 년말을 가족들과 함께 지내도록 가만 놔두질 못해, 가족 여러분에게 참으로 죄송스런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귀중한 시간대에, 이 나이에 거진 사경에 이르도록, 혹독한 고행길을 자청(?)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같이한 친구들이 대견하고 고맙고, 존경스럽다. 가족과 같이 했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가족과 같이 했다면, 불가능했을 큰 고행길이였다.
이 나이에 이정도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만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다. 하지만, 이백여리를 넘게 걷으면서 쉬임없이 대화하고, 한 방에서 딩굴기도 하며, 매끼 거나하게 주거니 받거니, 취중진담이 끊임없이 오갔다. 친구들의 체력도 확인했다. 9988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그동안 4대강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그 현장을 이번 기회에 철저히 확인 한 것도 큰 부수적 수확이다. 신문지상이나 방송등을 통해 남의 논리에 찬반을 강요당하고, 남의 논리에 일희일비 길들여져 온 우리 아닌가?
이번에,우리는 직접 온 몸으로 그 현장을 부딪쳐 본 것이다. 나름대로 찬반적 논리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걸어 보며, 그런 시각도 확인했다. 초기의 나름대로 생각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끼리는 지금 그런 논리가지고 알가왈부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이후 우리에게 어떤 자리가 마련되거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접 고생고생하며 체험해본 논리로, 한 발언 당당히 할 수 있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앞글에서 언급 하였듯이 2박3일 짧은 일이지만, 5인, 6인이, 먹고, 마시고, 걷고, 떠드는데,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소화하는데 용량 부족이었다. 특히나 술에 찌든 이후 발언이나 에피소드들은 뇌리에 농도짙게 기록이 되지 않는다. 해서 누락도, 착각도 많았을 것이다.
첫날밤인지, 둘쨋날인지, 이순이 내일 모레인 나이에 돌아가면서, 각자의 허심탄회한, 인생관, 인생모습을 가감없이 토로한 시간도 있었다. 이 또한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 깊은 인상으로 남지만, 글로서는 표현할 것이 아님을 안다.
동서울 역에서, 헤어진지 20시간 가까이 지난 다음날, 집으로 돌아간지 하루가 지났으니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살이라도 나서 어디 병원신세지고 있지나 않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허나, 걱정은 기우, 모두들 건강한 모습이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내가 쓴, 우리 여행기는 이것으로 마친다.
내가 선동한 죄로 먼저 여행기를 쓰는 것뿐이다.
'제목을 뭐로 할래?' 욱조가 물었다.
'생각해둔 바가 있다' 내가 말했다
'뭔데?',
'미친여행'
'.Crazy Travell이라 !!!!'
그리고, 이번 여행에 참여한 친구들이 간간히 댓글이나 별도의 소회가 올라오긴 했지만, 모두가 심중에 할 말이 더욱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어서 여러 친구들이 글들이 시간을 두고, 올라오지 싶다. 내가 쓴 이글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기억들을 재빨리 붇들어 매고 되살리는 단초를 제공하는 작은 역활밖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모든 동기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Happy New Year!
ps. 다음은 동영상 모음이 될 것이다. 동영상이 길어서 일부는 허한동기에 부탁하여 100mb이하로 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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