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위기
남한강 자전거길이면서 북한강을 지나는 폐철교를 건너, 양수리 추어탕집에서, 출출하던 배를 채우고, 다소 과한 낮술로 취기가 오른 상태로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초딩들의 소풍모드다. 여전히 낄낄대며, 발걸음도 가볍다. 아마도 이즈음부터, 평소 걷기운동에 소홀한 친구들은 발목이나 장단지등에 뻐근한 증세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내색않는다. 가야할 길이 아직은 구만리인데 벌써?...모르긴 몰라도 모두가, 호호탕탕 출발하던 기세에 행여,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저어하고 있을 터이다.
중앙선 폐철로를 복원하여 자전차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양수역을 지나면 줄줄이 터널들이 나온다. 용담, 부용1,2,3,4터널, 도복터널, 원복터널, 마지막으로 가곡터널이 나온다. 驛舍로는 양수역, 신원역, 국수역, 아신역, 오빈역, 양평역으로 이어진다.
이즈음 양평군의 역사에 대해도, 민부교수 설명이 이어진다. 지리교수인지, 역사교수인지, 아마도 지리적 관점으로 접근하다 본 역사에 대한 지식이리라.
'양평군(楊平郡)은 1908년 9월 당시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을 합병하여 양평군(楊平郡)이라고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 요지였다,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이랬는데, 당장은 필기도구가 없으니, 대충기억을 더듬어,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충하면,
[양근군(楊根郡)은 고구려시대에 항양군(恒楊郡), 신라시대에 빈양(濱陽)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시대 초기에 다시 양근(楊根) 으로 개칭하여 광주(廣州)에 속하게 되었고, 고려 고종때 에 영화(永化) 라 칭해오다가 고려 공민왕 5년에 군으로 부활되면서 양근군(楊根郡) 으로 개칭 (1356년)하였다.
지평군(砥平郡)은 고구려시대에 지현현(砥峴懸), 신라시대에는 지평(砥平), 고종 32년에는 지평군(砥平郡,1895년)으로 칭하였었다. 이후 1910년 3월에는 본군 관할 남종면(南終面)이 광주군(廣州郡)에 이속되었고, 1942년 4월 에는 본 군 관할 설악면(雪岳面)이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되었으며, 1963년 1월에는 여주군(驪州郡) 관할 개군면(介軍面)이 본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7월에는 서종면(西宗面)의 삼회리(三會里)와 노문리(盧門里) 일부가 가평군(加平郡)으로 이속되었으며, 1979년 5월에는 양평면(楊平面)이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원래, 남한강 자전거길을 기획하게 된 의도는 풍광이 수려한 강변을 유유자적 구경하면서, 걷기운동을 통해 신체단련, 동기들간의 유대강화, 남한강유역의 4대강 공사감사(?)의 목적도 있었지만, 내 같은 경우, 준비한 화두를 붙들고, 걸어면서 사유(思維)를 통해 지나온 인생을 반추하며, 인생의 시간도 떼워보자 하는 것도 주요한 요인이였다.
'화살과 바람과 인생', '무소유', '산을 을 물로 보지마라','우주에 대한 작은 사유'등 그동안 동기홈페이지에 올린 수백여종류의 글처럼, 나름대로의 명상과 사유를 통해, 평소 생각과 의견을 글로 정리해 오는 것에 많은 즐거움을 느껴왔고, 그것이 내식으로 사는 한 방식이기도 했다.
헌데 요즈음, 그런 즐거움이 박탈당하는 위기에 처했다. 어영부영 동기홈페이지 개발을 떠맡고 부터다. 비유와 은유가 허용되는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글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글을 쓴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움이다. 더구나 시장에 내놓을 글, 호구지책의 글이 아닌 바에야, 그 글이 내식일 수록, 더 만족스럽고, 나를 더욱 즐겁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이것은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 끝없이 글을 쓰고 싶어하는 병적현상) 중증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은 개발비용이나 사용자의 개발 목표와 범위가 결정되어 기 때문에, 내식의 자유로움과 사유(思維), 인간적 융통성이 존재할 턱이 없는 그야말로 형이하학적 중노동이다. 내 경우는 주간에 시달리는 업무 중노동에 경직되어가는 뇌를 Release시키는 것이, 명상과 사유이고, 글쓰기인데,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할 시간대에, 팔자에 없는 중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더구나 한정된 비용을 지키고, 기능은 최대한 편리하고 많이 확보하려는 필요와 당위때문에, 속되게 말해서 잘해야 본전인 일 땜에, 컴퓨터에 앉으나 잠자리에 들면 뇌리를 지배하는 것이 홈페이지 개발관련 생각이다. 다행이 이즈음, 홈페이지 개발관련 신경 쓸 일이 거의 마무리 되어간다만, 어쨋튼, 내용의 호불호를 떠나서 글쓰기가 점차 소원해질 수밖에. 이를 극복하는 방편으로 이번에 다소 무리하다 싶은 도보여행길에서 화두를 붙들고, 명상과 사유에 젖어보자 한 것이였다.
'시간이란 무었인가?'
스티븐 호킹이 고뇌한 것처럼, '시간은 항상 미래로만 흐르는가'
시간은 1차원만 존재하는 가? 공간은 다차원인데 시간은 다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간이 다차원이라면, 그 모습은 어떻게 그려볼 것인가
우주속에서, 존재와 비존재, 유와 무의 개념에서 시간이 주는 의미란 무었인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일 수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머리속 한 귀퉁이에 맴도는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려니와. 언젠가 시간에 대해 글을 쓰리라 하며 진작에 이번 미친여행중에 붙들 화두로 점찍어 온 바다.
요즈음, 글쓰기가 드물어지는 진정한 이유는 아마도, 홈페이지 개발은 핑계일 것이고, 여러 관련 서적을 읽어 보지만, 최근에 몰입해 보는 '시간에 대한 화두'가 생각만큼 정리가 되지 않아서인 것을 나는 안다. 이번 여행목적에, 그런 내 머리속 분위기를 일신해 보고자 하는 욕심이 끼였을 것이다.
때문에, 여러 준비물중에 '화두(예를 들면 '인생이란 무엇인가' 같은 것) 를 하나씩 준비해 오시오' 한 것은 이런 심리상태의 나에 대한 다짐이였을 지도 모른다 . 하지만, 화두란 겉으로 들어날 리 없고, 각자가 심중에 품고 있을 터,
나 뿐만아니라, 웃고 떠드는 통에 진지한 명상의 시간은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언젠가 시골에 거처를 정하고, 딸아이 시집가면 이른바 딸래집이 떨어져 있기로, 백리가 되던 천리가 되던, 며칠이 되던, 몇달이 되던, 걸어서 다녀 보리라. 딸아이에게 넌즈시 '시집가라' 하면서 이런 마음을 내비치면, '좋치' 맞장구다. 아빠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이번 여행은 아마도 그런 내 심중의 일단이 내 육신을 이끈 동인이 아니였을까? 어쨋튼, 풍광이 수려한 강변의 구경, 걷기운동을 통해 신체단련, 남한강유역의 4대강 공사감사(?), 무엇보다도 동기들간의 유대강화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될 것이다. 각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충분히 그런 친구들이다.
앞으로 남은 여정동안, 어떤 난관이 닥치드라도 그 목적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의미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맑은 공기 듬뿍 마시고, 웃고 떠들어, 엔돌핀이 각자의 가슴팍으로 팍팍 솟아올랐을 터이다.
ㄱ
신원역부근 도로에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간이 쉼터
지나가는 자전차도로길 주변에는 제대로 된 상점이 드물다. 개발이 일천하여, 아직 상권이 들어서지 않은 것인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상권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인지, 간혹 가다 동네 부녀회에서 지나가는 과객들을 호객(?) 하는 간이 쉼터만이 간간히 눈에 띈다. 아마도 뜨뜻한 커피나 차종류, 음료나, 국수같은 가벼운 간이 음식을 팔 것이다. 하지만, 한번도 들러보지를 않았다.(믿거나 말거나)
윗 그림처럼, 신원역 인근에도 신원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쉼터를 지나쳤다. 예쁘장한 주모(?)가 빠꼼히 얼굴을 내밀고 놀다 가세요(?) 꼬셔 보지만, 모두들 서로 눈치만 볼 뿐, '부녀회' 한 접시 맛이나 볼까 농으로 받아넘기고, 몰래 카메라가 두려운 것인지, 아직은 견딜만한 지, 들어가서 언 몸도 녹이고, 쉬어볼 생각을 않는다. 수차 '뭐 짐이나 덜자' 하며 길거리에서 지고 온 보온병을 꺼집어 내어 다방커피를 즐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양수역에서 양평역사이 무수한 터널 중하나 아마도 아신역 1km지점부근이니 가곡터널이지 쉽다
ㄴ
요즈음 주말연속극 광개토태왕에 백제 장수 아신이 나온다. 관련은 없겠지만,지나는 길에.
걷기 시작한지 예닐곱시간 째, 다리근육 여러곳이 '쉬어주라', '씨팔 고만 걸어라' 경고음을 발한다. 점심때가 한참을 지나서 그런지, 배도 고프다.
오래전부터 욱조의 옥천인근의 냉면집 광고가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배가 고파 왔다는 이바구다. 예까지 왔으면 옥천냉면인지, 국수인지를 먹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 와보고 맛에 취했는가 보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일지, 국수역 부근인지, 아신역 부근인지, 알길이 없다. 대충의 짐작으로, 그리 안해도 한계에 다다른 다리를 이끌고,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날 용기가 없다. 조금이라도 덜 걷고, 숙소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죽을 고생이다. 사정은 오십보 백보 모두가 그랬다.
날은 어둑어둑하고, 배는 고프고, 다리는 물론이고 온 몸이 단체로 걷기를 포기하라 아우성이다. 급기야 욱조, 민부, 농담반, 진담반으로 숙소까지 차타고 가자 한다. '포기의향이다' 아마도 진심일지도 모른다. 진심이고 싶은 심정일 게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아신역을 지나 오는데, 바로 그때, 앞쪽길 옆에 '옥천냉면' 간판이 보인다. 예까지 욱조가 광고한 그집인지 알길이 없다만, 옥천의 냉면집은 분명하다.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정말 다행이다.
어쨋튼, 프로젝트의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1차 위기이다.
30여Km 가까이를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평소 꾸준히 다리근육을 단련했으면 모르니와, 날도 추운데, 이정도 거리를 예닐곱시간 걸었으니, 아무리 건장하다 해도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쨋튼, 먹으면서 생각하자고, 옥천냉면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러 온돌 아랫목에 자리를 잡았다. 신발끈을 풀고, 발과 다리에 휴식을 주고자 함이다. 어둑어둑하기전에 들어간 옥천냉면, 욱조의 추천으로 냉면과 옥천 냉면의 명물 '동그랑 땡'과 편육 을 시켰다. 막걸리, 소주 맥주, 하이브릿드주는 여전하다. 얼큰하게 걸치고 나올때는 완전히 날이 저물었네.
'양평 쉐그린 호텔 까지 차타고 가라. 나는 걸어 갈란다' 나역시 죽을 지경이면서, 호기를 부렸다. 냉면집에 들어가기전에 거의 포기직전이던 욱조와 민부, 어느정도 피로가 풀리고, 기력을 회복이 되었는지, 묵묵히 끌려(?) 나온다. 이래저래, 1차위기는 그럭저럭 넘겼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고....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대단한 것이다. 욱조왈 군대구보이래 이정도 도보는 없었다 했는지, 군대훈련구보도 이정도는 아니라 했는지?. 이제부터는 숙소까지 마지막 10Km 가까이 밤길을 더 걸어가야 한다.
일몰직전 옥천냉면으로 간식겸 잠시 쉬러간다.
옥천냉면에서 휴식을 끝내고
양평문화원을 지나쳐, 드디어 양평역에 도착했다 이 때가 밤 8시경, 팔당역을 출발한 시각이 오전10시정각이니, 장장 10시간을 걸어온 것이다. 경달모 회원인 흥재, 종윤에게는 이 정도거리는 별거 아니다 싶을 것이라 생각했는 데, 아니란다, 흥재, 종윤, 이구동성왈, 걷을 때, 근육과 달리기 할때 사용하는 근육이 틀리고, 오히려 달리기 보다 걷는 것이 더 힘들다나? 그러면 뭐냐? 나나, 욱조, 민부니까 죽을 지경이다 싶었는 데, 달리기 선수들도? 그것도 풀코스를 완주한 친구들이? 뭐 다같이 힘들어 하니까, 빈말이겠지, 긴가민가하며, 저녁을 먹으러 인근에서 유명하다는 '대포항 ' 이라는 횟집으로 발길을 했다. 누구가 이곳을 추천했을 터인네, 기억이 없다. (하기사, 요 주변 몇줄은 내 스마트폰에 담지 않주어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욱조가 댓글로 Remaind시켜 주어 기억을 다시 더듬었다)
저녁을 먹은 양평읍 양근리의 횟집, 속초항에 잇는 대포항이 아니다
두어시간전 옥천냉면집에서의 간식은 아랑곳없이, 대포항에서, '대포항Special'이라는 회와 여러종류 술을 취향대로 시켜 원없이 먹고 마셨다. 배는 부르고, 술이 들어가니, 언 몸이 풀리며 붉어진 얼굴이 불콰하며, 그리 안해도, 영수, 종윤, 흥재, 민부, 욱조 하나같이 일당백의 재담간데, 이야기가 쉬이 끝났겠는가?. 나 역시 엄청 Noise Generaing 을 하였을 터이다.
대포항Special이 바닥이 나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택시를 잡아탓다. 여기서는
숙소로 가는 길을 모를 뿐만아니라 약40Km, 목표거리는 완주했으니, 어렵사리 맑은 공기 마시며 고생고생 예까지 왔는 데, 시내공기로 코안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아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우며...
드디어 미리 예약해두었던 1차 종착지인 양평 쉐그린 호텔에 도착 했다. 밤 10시 경. 너댓시간전, 옥천냉면에서 간식을 먹고, 대포항에서 그렇게나 먹고 마셔놓고,왠 치킨과 맥주? 치킨과 맥주를 시켜, 호텔방에서 판을 또 벌였다.
옥천냉면 부근에서 거의 포기 직전(?)까지 갔던, 비실비실하던, 욱조와 민부 교수, 대포항Special효과인지 술기운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 되살아 났다. 특유의 임담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근 12시간이 넘도록 둘이서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 지, 임담에 빠져 보이는 종윤, 영수, 흥재의 자세가 자못 진지하지 않는가?
마침내 민부와 욱조의 上口運動이 끝난 모양이다. 점심때부터 짜린 얼굴, 잘 때에도 거나하다. 이곳이 온천관광호텔이니, 아침, 일찍 온천탕이 문을 열 것이다, 들어오면서 택시기사 양반으로 부터 주변에 해장국집도 알아 두었다. 적어도 첫날은, 여기까지는, 아찔한 위기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사투(死鬪)였다. 지나고 보니, 정말로 2011년 12월31일 마지막 날 밤이란 의식을 전혀 못한 째, 지나간 것이다. 그만큼, 오늘 10시간의 사투(?)와 그 사투중에 일어났던 기억들이 몸과 마음을 가득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친여행의 첫날밤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모두가 그랬다.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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