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밤중 잠을 설치고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데, 늦둥이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에 살며서 들어가 봤더니, 녀석이 이불을 덮어쓰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울음이 새나가지 않도록 조심한 행적이 역역하다.
"빈이 왜 울어?"
그 녀석의 아픈 마음을 왜 내가 모르겠는가? 나자신에게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짐짓 모른 체, 물어보니, 그 녀석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절대로 울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말이야. 흑흑"
"그런데 엄마 보고 싶어 못참겠어! 어~엉 엉엉~!!"
아마도, 지 엄마가 병상에서 마지막을 예감하고, 녀석을 불러, 신신당부한 모양이다.
'빈이, 엄마 없어도 절대 울면 안돼, 그리고, 다른 애들에게 기죽지 말고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야 한다. 엄마와 울지 않는 다고 약속해'
'응, 나 울지 않을 께 대신에 엄마는...'
아마도 '엄마 돌아가시지 마라', 이런 정도의 다짐이 모자간에 있었으리라. 그래서, 녀석과 종종 부산의 추모공원으로 지 엄마를 찾아갈 때에도 , 상념에 젖다보면, 내 가슴에는 가득 슬픔이 차올라오는데, 그 어린 녀석은 지 엄마가 왜 미치도록 그립지 않겠는가마는, 얼굴이 벌개지기는 하지만 그냥 조용히 몇줄의 눈물만 뿌릴 뿐이였다.
헌데, 그날 저녁. 학교생활을 체크하다, 내가 약간 언성을 높인 모양이다. 그게 녀석에게는 너무나 서러웠던 것이다. 엄마가 있었으면, 대변해주었을 터인데? 엄마의 꾸중하는 목소리마저 녀석에게는 너무나 그립고, 듣고 싶은 것인 데....이런 심정에, 그동안 참았던, 울음, 지 엄마를 묻을 때도 터뜨리지 않았던 그런 울음을 터뜨린 것이리라.
이후 다시는 녀석에게 이전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려고 다짐을 했다. 아니될 것이라면, 녀석이 수긍할 때까지 녀석에게 의향과 의견을 물어서 결정을 내릴려고 한 것이다. 많은 인내가 필요한 다짐이다. 하지만....
어제도 녀석을 데리고 부산추모공원을 다녀왔다. 그저께 서울서부터 차를 몰고 내려간 것이다. 원래는 지난 주말에 녀석과 다녀오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부산친구들에게 '같이 놀자' 하고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헌데, 내가 펑크내 약속을 어기게 된 것이다. 저녁을 먹고 한참 지나, 녀석이 자기방에서 친구들과 전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야, 내 못내려간다.우리 아빠가 사정이 있대, 5월7일가께!'
그 말을 흘러 듣다, 얼마나 가슴이 뭉클하고 아린지, 더구나, 오죽 가고 싶었으면, 날짜도 지 멋대로 5월7일로 정했다. 등교하지 않은 토요일중 가장 까까운 날인 것이다. 하지만, 5월7일은 내가 서울서 다른 볼일이 있다. 그대로 두었다간, 그렇게 가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어하는 고향친구들과의 만남이 또 펑크다 해서 부랴부랴 한 주를 댕긴 것이다. 학교는 체험학습신청으로 하루를 걸러면 될 것이다.
녀석은 부산에 살때부터 유달리 부산에 대한 집착이 깊다. 녀석이 우연히 주민등록등본의 본적란을 본 일이 있다. '니 본적도 아빠 본적 따라 간다'는 말에 노발대발, '나는 그런 촌 본적 안한다. 내본적은 부산이다' 고 선언한 녀석이다. 서울가서도 롯데 유니폼을 입고, Giant의 'G"가 붙어있는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 대수다. 하지만, 최근에 롯데가 빌빌그리니, 서울 반 친구들에게 좀 쪽팔리는 지, 롯데가 못하면, 중게방송을 중간에 끄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전례없는 사건이다.
부산의 고향친구 '누구누구는 여기서 사귀는 친구들이랑은 차원이 틀린 친구' 란다. 아마도 아직은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이동네 친구들이 녀석이 주장하는 고향인 부산동네만큼, 고향의 친구들만큼 깊은 정이 들지 않아서 하는 소리일 것이다. 녀석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평소에 아빠앞에서 우는 모습, 엄마가 보고싶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녀석의 말대로 고향인 부산동네, 엄마와 같이 살았던 동네의 친구들이기에 더욱 못잊어 하는 것일 것이다.
돌이켜보니, 녀석의 엄마가 돌아가신지 7개월이 넘었다.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 겨울, 녀석의 잠든 모습을 혼자 내버려두고, 새벽길을 나서는 마음이 그리도 아리더니, 제법 낮이 길어지고, 날씨가 포근한 봄날이 오면 나아질련가 했지만, 마음속에 슬픔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런 심리가 이번 주말 부산행을 재촉한 한 계기이기도 할 것이다.
녀석을 그리도 만나고 싶어하던 그 차원이 틀린 친구집앞에 내려놓고, 웹지기 문병을 다녀왔다. 수술이 잘 끝나고, 건강을 회복중이더라 조만간에 건강한 모습으로 보지 싶다. 저녁에는 김교수, 권교수등 오랜 동기친구내외분들과 식사대접을 받고, 김교수집에서 잠라리 폐를 끼쳤다. 황사주의보가 내린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 아침부터 친구들과 놀기에 바쁜 녀석, 조금이라도 더 놀고싶다는 녀석을 겨우 설득하여, 서울로 출발하기전에, 아내를 찾은 것이다. 내가 한 다발의 하얀 국화를 사고, 녀석은 용돈으로 한송이의 하얀 국화를 사게 하여 지 엄마가 묻힌 곳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이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나는지, 녀석을 부둥켜 안고, 녀석과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아마도, 속깊은 녀석, 보고싶은 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가득할 터인데, 평소에 내색않는 녀석의 울음보를 터뜨려,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자 싶기도 한 이 아빠의 심모원려도 있었다.
7개월이나 지난 이시점에도, 내마음속에 가득한 슬픔이 사그라들때도 되었건만, 겨우 7개월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전혀 그럴기미가 전혀 안보인다. 끝없는 슬픔, Endless Sorrow 라고나 할까? 'Ace of Sorrow' 라고나 할까?
내가슴속에 차오르는 것은 반쪽을 잃은 불편함, 반쪽의 애절한 마감을 막지 못한 아픔, 세월이 흐를 수록 더해가는 반쪽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다. 저 어린 녀석과, 딸아이가 앞길이 창창한 평생을 가슴속에 묻고 가야할 슬픔을 내가 들어내어 대신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하여, 끝없이 슬픔을 달래며, 슬픔을 동반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은 자라면서, 엄마잃은 슬픔이 점차 잊혀져 가겠지? 이미, 개네들은, 슬픔을 털고 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아내, 정신을 잃어가면서는, 말이 아닌 눈빛으로 '애들을 내게 맡긴다' 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지경에 이를 때까지 아내가 가슴속에서 고스란히 안았을 그 절망과 고통의 심정을 내 어찌 있을 수가 있겠는가?, 평소에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아내, 이제야 사무치는 이 어리석음을 또 어찌 해야 하는가?
아마도 내 아내가 뭍힌 곳에 내 몸을 뉘일때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내 가슴속에 'Ace of Sorrow'의슬픈 멜로디가 되어 끊이질 않고 울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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