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대강당,
영화한편이 상영된다.
'Vertical Limit' 라는 산악등반모험영화다.
영화도입, 초반부, 황량한 암벽들들 사이로 Eagle이 배회하고, 어디선가 1975년 그레미상 수상작 Eagles의 'Take it to the Limit'노래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이글의 날개짓과 Eagles가 부른 노래의 묘한 대비속에 아찔한 암벽이 클로즈업되고...
세계 최고의 산악인 로이스는 어느날 아들 피터(크리스 오도넬 분)와 딸 애니(로빈 튜니 분), 자기의 등산대원들과 암벽등반을 하고 있다, 전문 등산대원들이 앞서고 다음이 아버지, 그 다음 아들, 마지막이 딸 애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딸애니를 내려다 보며, 오빠는 아버지 보고 '동생이 몸무게가 무거우니, 캠을 하나더 주라' 고 농담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 애니보고 캠을 설치하라고 진정으로 타이른다.
"캠이 둘이면 좋고, 셋이면 더욱 좋아"
"백전노장이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무장해야 현명한 산악인이다".
그 직후, 깎아지른 절벽에서 매달린 주인공 피터는 갑자기 배낭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어 동시다발적으로 위에서 등반중이던 클라이머 두 명이 추락해 등반하던 피터 일행을 덮친다. 그 충격에 아버지, 피터, 여동생가 떨어지며, 순서가 뒤바뀌어 애니(딸), 피터(오빠), 로이스(아버지) 순으로 크랙에 끼인 캠에 매달린 상태가 된다.
셋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캠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마지막 캠이 빠지면 셋이다 몰사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방법은 없다,
아버지 로이스는 아들 피터에게 자일을 자르라고 한다.
"그래야만 니 동생 애니를 살릴 수 있다. 동생을 죽일 것이냐'"하고 아들 피터에게 강권한다. 애니는 절대로 자르지 말라고 울부짖는다.
딸, 아들, 아버지의 울부짓는 모습,캠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크랙에서 빠져나올려고 요동치는 모습등이 순간적으로 긴박하게 클로즈업된다.
마침내, 아들은 자신과 아버지사이의 자일을 끊는다. 동생과 자신이 살기 위해, 아버지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천둥같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쿵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한다. 관객의 숨도 멈추고, 음악도, 화면도 멈추고 정적만이 흐른다.
수분의 그런 상태가 흐른후, 강당에 희미하게 조명이 들어오고, 강연자가 등장한다,
"여러분은 이 상황에 직면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입니까?"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입니까?"
강연자가 등장하면서 관객(?)들에 게 던지는 첫번째 화두다.
2009년 3월 30일,
자동차 부품산업진흥재단주최 '2009년 자동차부품산업 발전전략세미나'가 있었다. 회사 CEO몇 분과 그곳에 갔다가 연세대 철학과 김** 교수 강연을 접했다.
앞서는 세미나에 초빙되어, 한국의 자동차 부품산업CEO들에게 '창조경영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김**교수의 강연중 도입부를 묘사한 것이다.
"사람은 평생을 후회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진정한 리더는 조직원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을 내려야 하고, 자기 희생을 각오한다"라고 설명한다.
'마치, 너희(회사)가 극단의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가? 그랬는 데도 불행히, 도망갈 구멍도 없는 극단의 상황에 몰리면은 너희는 어떤 결정을 내리릴 것인가'
모인 사람들이 명색이 CEO들이니, 이들에게 어려운 이 시기, '회사경영 리더들의 자세가 어째야 하는지, 준엄하게 추궁'하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준비한 강의 material이고, 연출된 강연였다. 신선한 충격이다.
이어지는 김교수의 강연,
동서고금의 여러 철학자의 가르침, 고사성어, CEO의 경영사례뿐 만이 아니라, 이 시대 CEO, 리더의 자세, 마음가짐, 리더쉽에 대해서,
참석한 CEO들에게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주옥같은 말씀들이었다.
"쓸모있는 것을 애써 구하기 보다는 무엇이 쓸모없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하라( 장자의 無用之用) "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면 학습할 생각을 않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친구를 가까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적을 가까이하는 것이다.(영화 대부의 대사)"
"우물안의 개구리(井中之蛙}가 쓴 선글라스이야기"
우물안의 개구리주제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어찌 세상을 제대로 바라본다하겠는가? 세상을 제대로 볼려면, 제대로 된 세상을 찾을 게 아니라, 우선 선그라스부터 벗는 일부터 할 일이다.
"빨리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같이가라(아프리카속담)"
"궁즉통은 '궁즉변변즉통...' 주역에 나오는 이야기니, '궁'이라하는 것은 '더 할 나위없이 궁하다' 할 때의 궁이 아니라 '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하다'의 궁이니, 모든 노력을 다해서 혁신을 하면 오래간다는 의미이다"
"'창조'란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연결방식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다"
....
강연라기 보다는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김교수 강연에 몰입하다보면, 당연히 그러겠지만, 당연히 그래야 겠지만 김교수의 내공의 깊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CEO를 상대로한 '창조적 경영의 지혜' 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그 제목에 걸맞게, 많은 공부, 사색을 통해, 많은 수련과 수양을 통해 그정도의 경지에 올랐지 않겠는가?
가히 이시대의 멘토라 할만하다.
그를 일러,'哲子' 라 부를 만하다..
哲學이라!
실제 인간의 행동양식, 사고활동이 哲學的이지 않음이 없을지라도, 굳이 '哲學'이라고 정색을 하면, '鐵學'이나 '雜學(?)' 은 가깝고, 雜氣는 드세게 내세울 자신은 쬐금 있어도, '현기(玄機)'앞에서는, '공자앞에 문자쓰다 머쓱해지는 기분' 같이 다소 주눅드는 심정이고, 근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의 그릇이 쓸데없이(?) 세심하다할까? 소심하다할까 아니면 내 주제를 너무 잘 안다할까? 이런 저런 감정들의 상승작용으로, 鐵學이 아닌 哲學에 굳이 애써 눈길을 주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전차로, '김**'이름석자가 생소할 수밖에.
헌데, 한창 강연이 진행되는 중에, 불현듯, 김교수의 이름이 어디서 듣긴 듣고, 보긴 봤는데...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나 싶어, 수강자로서 불성실하게시리 강의중, 문자로 웹지기한테 보냈다
'...김**교수가 동문이가 동창이가?'
강연 시작전에 매너모드로 전환해둔 휴대폰으로, 즉시, 회신이 왔다. "경고27회동문이다" 그 유명한 김교수가 동문인 것도 모르고 자빠졌었나? 하는 투다.
(지송, 지송, 웹지기 한테도 지송, 김교수한테도 더욱 지송)
ㅋㅋㅋ
내가 그렇다, 요즈음 우리 아들녀석이, 나를 얼마나 불쌍하고, 수준 낮게 봤으면, '엄마와 누나는 귀족', 자기는 '평민, '아빠는 노예'라고 떠든 적이 있었다. 운전못하는 지엄마, 지 눈에 띄는 누나는 잠만자는 게으름뱅이, 대신해서, 아빠는 집안청소다, 운전기사다. 그러고는 새벽 일찍 직장간다고 지놈도 일이나기도 전에 일나가버리지 않나, 지 눈에 뜨일 때마다. 雜使역활을 하는 아빠는 책에서 본 그야말로 노예처럼 비친 것이렸다.
그말을 들은 지엄마가 깜작놀라, " 아빠는 가족을 위해서 돈도 벌어오고, 니 공부하고, 먹고사는 것이 모두....' 아빠의 희생(?)과 아빠의 역활의 중차대함(?)을 역설했다.
"그러니까, 노예지" 그 녀석의 명쾌한 논리다.
그러고 며칠후, 우리 집에는, 세로운 신분제도가 도입되었다. 인도의 카 뭔가하는 신분제도를 어디서 봣는지, 들었는지, 엄마, 누나는 '브라만', 지는 '크샤트리아', 아빠는 '수드라'라한다. 바이샤인가 뭔가 수드라보다 높은 신분으로 될 자격도 없다한다. 이유는 앞서와 같다.
"세상에 아빠가 수드라면 니는 수드라 아들아이가? , " 야 이 무식한 놈아" 해도
"그래, 나 무식하다 어쩔래?" 막무가네.
"이자슥이, 어디 아빠보고 대들고..." 하지만, 그정도 말을, 아무리 정색을 해도, 녀석은 아빠의 목소리에 실린 氣나 감정의 스펙트럼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죽을래?" 건방이 끝간데 없는 한마디, 차라리, 내가 입을 다문다.
WBC준우승을 한후, 녀석이 지엄마를 졸라서 오른손 글러브를 사 달랬다. 이미, 베이징올림픽이후 왼손글러브를 포함한 야구도구세트를 구비한 바 있다. 어느날, 오른손, 왼손 글러브, 야구방망이, 공을 들고 나갔다가 늦게 집에 오더니 "나 동네야구팀에 가입했다" 한다. 야구의 광이 된 것이다.
그 주의 일요일 오후, 녀석이 야구놀이가자고 한다. 친구들이 없다나? 그러니 대타로 좀 상대해주라해서 '둘이서 하는 야구'(이전에 내가 개발했다)를 하고 돌아온 날 저녁, 난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다.
"아빠는 오늘저녁, 지금부터 크샤트리아(계급)"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녀석의 기분대로, 녀석의 횡포대로 바이샤,수드라로 전락할 수 있는 불안정한 신분이지만.
녀석은 작은 폭군에 다름아니다.
덕분에 나는 심야우등고속으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그러니, 김교수! 나는 다른 잡기는 대충 흉내라도 내겠는데, , 요놈을 혼내고 제대로 가르칠 지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집안에서 수드라대접받는 이 불쌍한 동문을 위해 녀석을 제압할 제대로 된 지혜한 한 두주머니 구해야겠는 데 안될까?. 세상만사 형통 하는 그런 지혜라면, 요런 녀석에게도 좋은 약이 되지 싶운데.
ㅎㅎㅎ
세상에 좀 많은, 휼륭한 CEO들이 있으며, 휼륭한 지도자들이 모래알 처럼 많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무식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나름대로 리더쉽이라고, 사고치는 CEO들, 배째라식 CEO도 비일비재다. 요즈음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박모 회장이 그런 부류 아닐까?
'모르는 것이 약이다'. '무식한 것이 수단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류들.
'너 자신을 알라'하면, '나자신을 알면 오래 몬산다.'
'세상을 색안경 끼고 보지 말라' 하면, '색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더러워서 끼고 살란다. 눈버린다'는 부류
이 인간들을 어찌 할 것인가?
오바마대통령이 'GM과 크라이슬러를 파산시키기로 결정' 했다고 기사가 떴다. 이랬다 저랬다 기사가 많아서 반신반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네 결론도 GM/크라이슬러는 파산하고 새로 출발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해왔는 데,
국가 사정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냐 마는, 강연에 동원된 영화 버티칼리미트 영화의 장면처럼, 아버지를 버리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진즉에 파산시키고, 새로 출발시켰어야 했다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대로 가면되는 것이고 방법이 없다면, 그순간 미적미적거릴 것 아니라 결단이 필요하는 것이, 전체가 공멸하는 그런 상황을 그나마 비껴가는 길일 것이다.
GM의 개개CEO들이 그걸 왜 몰랐겠냐? 경직된 노사관계, 경영체제?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프로세스?
대단한 기업의 유식한 CEO들도, 어떤 상황에 몰리다보니, 무식한 사람 배째라식으로 된 것인지?
이런 사태는 이번의 경우로 끝나고, 어떤 방식이든, 사태가 수습된 이후엔, 다시는 이런 류의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까?
흠흠~
낮에 강연을 듣고, 일이 있어 울산을 거쳐, 부산의 집에 온 날 저녁, 우리 늦둥이 녀석을 불렀다.
'빈이 이리와봐, , 영화보여주께'
녀석에게 이 아빠의 역활에 대해 충분히 각인시켜 신분상승을 꾀할 음흉한(?) 목적으로 오늘 세미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버티칼리미트'를 인터넷을 뒤져, PC에 올려놓고, 영화를 틀었다.
Eagle이 배회하고, 딸,아들,아버지가 깎아지는 절벽에서 대화하는 화면을 지나 사고가 발생하고 사태가 급박하게 진전되면서 급기야, 아빠,아들,딸의 생사가 캠하나에 의존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고, 자식만이라도 살리겠다는 아빠의 요구대로, 아들이 자일을 끊자, 잠시 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쳐박히는 아버지, 그리고 자욱한 먼지!,
김교수가 CEO들을 대상으로 그랬듯이, 그 순간 나도 화면을 정지시키고, 잠시 녀석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피며, 뜸을 들인후,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가 자식을 살릴려고 저렇게 희생했는데,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그러자,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눈가에 장난기를 머금고, 주저도 없이,
"불효막심하다. 그 방법밖에 없네, 아니면 다 죽던가!" 이 또한 명쾌히 결론을 내리고 가버린다. 씨익 웃고 나가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아빠의 음흉한 속셈을 눈치챈 듯, 그럴리가 없는 데.....
거실에는 한국-북한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답답한 공격력에 싫증이나서 내방으로 와서 버린 수작이 여지없이 실패다.
난 역시 이정도 설득력도 없나보다, 한 주먹 깜도 안되는 녀석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해 전전긍긍이니....
이 녀석을 훈육하러 들면, 이녀석은 자꾸내게서 멀어져 가고, 이 녀석의 감정에 아부(?)하면, 이녀석은 내게로 가까이 오기는 오는 데, 건방을 받아줘야 한다. 내게 가까이 오는 댓가로 녀석은 뭔가를 챙긴다. 교활하기 그지없다. 아직은 여지없이 어린이다. 하지만 엄청난(?) 악동이다. 이 녀석을 매로 다스려야 하나, 언제까지 저 건방진(?) 녀석에 아부하여 신분상승을 꾀해야 하나 ?
열씸이였던 강연자한테 미안타. 재미나고 유익한 강연은 들었다만, 난 어린 아들요리하나 못하고, 내눈에 쓴안경이 돋보긴지, 색안경인지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CEO가 될지라도, 색안경을 쓴 수 많는 개구리, 안경을 벗게 만들수 있을려나? 아니면, 한마리 한마리, 붙들고 우찌 일일이 안경을 벗기리요? 그런 엄숙한 강연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시간만 쪼개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세상일이라는 게 생각대로 마음대로 안 굴러간다. 世上萬像처럼, 방법도 가지가지, 해답도 가지가지일 터이다. 아마도 고정된 해답이 없을 지도 모른다. GM이 파산하고 새로운 GM이 새롭게 탄생한다할 지라도, 기존보다 훨씬 짧은 기업수명 그런 사태가 또 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잡초가 무성해야 그 토질이 비약해지고, 생태계가 안정을 이루는 자연현상처럼, 인간군상들 중에서, 무수한 잡초인생들이 있어야, 그러지 않는 인생이 더욱 의미를 갖게 되지 않는가? 모두가 쭉쭉뻗은 미끈한 재목만 무성한 산림에는 햇볕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속에 노니는 동식물들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지혜로운 해답이 있다한들, 많은 선각자들이 무수히 지혜를 짜내어 가르쳐도, 그 보다 훨씬 무수한 인간들이 여전히 무식하고 무능한 체로 들끓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그부류에 다름아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궁극적 수준을 얻는 다면, 얻어진 수준의 변화가 없다면, 더 이상 궁극적 진리를 탐구할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善이 판을 치고, 모두가 지혜로우면, 종교도 철학도 설땅이 있겠는가?. 善이 판을칠 수록 더 否善이나 惡도 그만큼 자라게 되어 있는 것아닐까?.
인간세상이 그런 것 아닐까?
ㅈㅈㅈ
뒤돌아 보면,
부전자전이라고,
늦둥이 우리 아들녀석이 내앞에서 철없이 건방떠는 만큼이나,
나 또한,
賢者앞에서는 건방떠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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