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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의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심우주의 모습이 드러난다.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수상잡록/산을 물로보지마라3

9. 문제와 비문제(문제가 아닌 것)

by 靑野(청야) 2020. 11. 5.

 

9. 문제와 비문제(문제가 아닌 것)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티벳의 속담이란다.

 

문제란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고 없고, 문제이고 아니고를 누가 제기하고 판단하는 가?

 

'해결이 될 문제', '해결이 안될 문제' 를 미리 짐작하면 좋겠는 데,

어디 그게 인생에서 예사로 가능한 일이겠는가?

설령, 가능하다하여도, 그리되면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이겠는가?

 

이런 속담을 토해낸, 티벳인들,

하늘아래 높은 산과 그속에서 우러나는 맑은 공기속에 산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천민(天民)들의 낙천적인 인생관이라 할만하다

흔히들, '人生事(인생사) 죽고 사는 것이 문제' 라 말한다.

 

나름대로 심각하고, 이겨내지 못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까지 해야하는 인생들의 문제야말로 문제라 할 것이다,

 

반면에, 원만하게, 天壽(천수)를 다해 살다간 노인의 인생, 노인의 죽음을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인생은 오히려 축받은 인생이라 동경하고 존경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니 '문제'는 상대적이다

비문제 역시 상대적이다

 

'나에게 문제'는 상대에 따라 전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상대에게 '심각한 문제'는 나에게는 극히 자연스런 인생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 문제인데, 왜 니는 고민하지 않느냐? 왜 고민해주지 않느냐? 하고

섭섭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티벳의 속담은 '해결될 문제' '해결이 안될 문제' 이분법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이 될 문제' 가 있다면, 항상 그러 하겠는가?

'해결이 안 될 문제' 역시 항상 그러하겠는가?

 

냉장고 속의 물건은

열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신선 해보여도,

처박아두고 방치하거나 인간의 때가 묻으면,

어느 새 쉬어버린다.

 

인생사도 그와 같아서,

겉으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일도, 아무리 완벽한 인생사가 있다하여도,

그대로 방치하거나 건드리다 보면, 언젠가는 문제가 들어난다.

처음처럼 영원히 문제없이 가는 인생사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생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제 투성이 인생도

열심히 갈고 딲고, 정리하면서 성심성의껏 노력하면

어느 새 구름이 개이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듯

해맑은 모습으로 변한다.

 

티벳天民(천민)들의 하늘아래 공기는

인간의 삶을 언제나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영험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티벳이라도, 아무리 티벳인들이라도

그 인생살이 사이사이에 무수한 고뇌들이 왜 없겠는가?

그들이 세상을 받아드리는 낙천적 인생관을 한줄로 표현하였을 뿐

속담의 자귀에 얽매일 일이 아닌 것이다.

 

보통의 인생사에서 '해결이 될 문제', '해결이 안될 문제'라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인 지 아닌지, 문제가 있는 지 없는 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문제다, 혹은 아니다 ' 라고 전제하는 수많은 말씀과 경구는

'객관적 진리'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대부분 '주관적' 내지는 '주관적 진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주관이라는 것은 받아드리는 개인의 세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통적'이라 해서, 객관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공통의 문제, 공통의 비문제라는 것, 역시 주관적 인식의 공유일 뿐

'문제', '비문제'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세상을 문제투성이로 머리를 싸맬 게 아니라,

'비문제'로 가꾸어 가는 노력이 지혜로운 인생이지 않겠는가?

 

티벳의 속담은

그런 인생의 지혜,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를 희망하는 경구인 것이리라

 

 

2016 2월 어느 날

靑野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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