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매체. 생명공학, 공상과학, 환경, 연구결과, 과학역사를 제공하는 라이브사이언스 닷컴(www.livescience.com/)은 2018년 6월15일, 양자의 상호속도는 빛보다 1만배이상 빠르다는 사실이 실험에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2015년 10월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그것이 실재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보여주는 실험결과가 알려졌다. 양자얽힘’이라는 요술같은 현상은 아인슈타인도 "불가사의한 원격 상호작용"이라 불렀다.
'양자얽힘’
한 번 짝을 이룬 두 입자들은 아무리 서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어느 한 쪽이 변동하면 그에 따라 ‘즉각’ 다른 한 쪽이 반응을 보이는 불가사의한 특성을 가지는 데, 양자이론에서는 이 두 입자가 서로 ‘얽혀있다’고 하며 이를 일컬어 '양자얽힘'이라 한다고 한다.
그 즉각의 반응이 빛의 속도보다 1만배이상 빠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달과 지구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 1초 조금 넘는 데, 달과 지구와의 거리로 떨어져 있는 짝을 이룬 광자같은 양자들은 1초의 만분지 일도 안되는 시간에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양자란 무엇인가
‘양자(量子, quantum)란 에너지의 덩어리를 뜻하며, 양자론이란 에너지가 덩어리 또는 알갱이로 존재한다는 개념을 기본으로 하는 이론으로. 일반적으로 자연 현상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 차원에서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다. 미시 세계에서 입자들은 파동처럼 움직이며 이때 입자의 에너지는 어떤 진동수의 정수배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에너지의 양자화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정의고, 해석이다. 소립자 차원의 입자라면, 전자나 중성미자같은 소립자를 뜻한다. 10-19승 m 내외 또는 그 이하의 크기.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미시세게이다.
진공이란?
양자론에서는 진공은 입자(양자)와 반입자(반양자)가 에너지를 방출하며 쌍소멸된 것으로, 겉으로는 無이지만, 실상은 입자(양자)와 반입자(반양자)가 쌍소멸된 현장이라 한다. 에너지의 근원은 여기서 생겨난 것이다. 다시 진공의 한 점에 에너지를 주사하면 입자와 반입자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를 쌍생성이라 한다. 물질이 생기는 요술 같은 세상이다.
만물은 이런 쌍생성과 쌍소멸을 반복하는 미시세계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생물, 인간 역시 그런 미시세계가 중첩되고, 누적되어, 원자와 분자를 거쳐 가시적 형체를 구성하고 생명현상까지 이어지고 있어, 그 깊숙한 바탕에는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얽힘과 요동이 바다물의 포말거품이 일어나고 스러지는 양자의 바다가 존재한다니. 어찌 양자와 우리 몸과 의식에 무관하다 할 수 있겠는가?
양자요동과 양자도약
양자 요동은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로 부터 일어나는, 우주의 한 지점에서 에너지의 양의 일시적 변화이다. 전자는 원자핵의 둘레를 돌고 있다. 그런데 그 도는 전자의 존재위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확률로 존재하고, 관측을 시작하면, 그 존재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했다. 하나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하나가 변화하기 때문에,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단지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불확정성 원리는 측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측정하고자 하는 입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성질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양자에 대한 가설과 이론을 정리 하였다. 다세계해석, 코펜하겐 해석등이 그것이다. 다음은 코펜하게 해석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연구소의 정기적 과학모임에서 소개된 하이델베르그등 한 많은 과학자들의 이론을 통칭하는 것이다
1)양자 단위의 물질(미시세계)에는 일반(거시세게) 물리법칙과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2)양자는 일반적인 경우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기도 하고 관측하기 전까지는 하나의 위치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만 넓은 공간에 퍼져 있으며,관측을 하는 순간 이 상태가 깨지면서 하나의 위치에 양자가 입자의 상태로 존재한다.(즉 관찰 전까지 양자의 상태는 정해지지 않는다)
3)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양자의 위치와 운동을 동시에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양자의 실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양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 상태는 불연속적이고 즉 에너지의 상태가 중간 단계 없이 변하는 게('양자 도약) 가능하다.
변화가 무한히 존재하는 양자의 바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다. 어쨌든 그런 일이 일어나서 우주는 그런 양자의 밀집과 에너지의 축적으로 폭발하였고 우주가 탄생하였다.
‘無'에 대하여
일반적인 '무'는 빛도 물질도 시간이나 공간조차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엄밀하게는 무는 ‘진공’과 대치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진공은 텅빈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양자쌍소멸이 쌍생성으로 부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이 우주는 그런 진공같은 '무' 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절대 ‘무’란 존재할 수 없다. ‘절대 무’ 라면, 영원히 절대무에 다가 갈 수 없어야 한다. 우주자체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반경 1000조 광년의 공간에 소립자 몇 개정도의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절대무에 가깝지만, ‘절대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백조년이나 수천조년이 흘러 그 공간이 어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사유할 수 있는 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무’의 개념이다.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세상 모두 아름다움을 아름답다라고 아는 것,
斯惡已(사오이) 이것(斯)은 이미(已)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 모두 착한 것을 착한 것으로 아는 것,
斯不善已(사불선이) 이것은 이미 착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 그러므로, 있고 없고는 상대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석가나 노자, 장자가 이야기 하는 ‘무’역시 상대 ‘무’ 이야기다. 물질적인 상대개념뿐만 아니라, 사유적으로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무것도 없음(무)’ 이 참이라 하여도 ‘아무것도 없음(무)이 존재’하는 것이고, '텅빈 공간'이라 정의하는 순간, '텅빈 공간'이 그 텅빈 공간을 채울 것이다. 그러므로, 無, 空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은 사유적으로 무와 공을 정의할 수 없음을 뜻한다.
도는 대자연, 대우주와 같은 개념이다. 도를 '도'라 이름 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도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도덕경 1장은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로 시작한다. 도덕경 5천여자의 출발이 도가도비상도로 시작하는 것이다.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이름을 지어 명할 수 있으면 그 이름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하늘과 땅, 세상의 시작은 이름을 붙일 수 없다.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만물의 어미라 한다.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고로, 항상 욕심을 버리면, 그 오묘함을 관조할 수 있으며, 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욕심을 내면, 그 변죽(껍데기 현상) 만을 볼 뿐이다.’
노자가 이런 개념을 깨우쳤다면, '道可道非常道’라 할 정도로‘도’라는 개념은 사유하고, 직접설명하기가 지난했다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 아닐까? 대신에 노자는 도덕경 全篇 2,000여자를 통해 이 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유무상생, 무명지박, 천지불인, 곡신불사…그러니, 노자의 사유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도덕경이 5,400여자로 늘어나는 것은 초기 도덕경의 함유적, 비유적 개념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설을 붙인 것이 세월이 흘러 도덕경 자체로 둔갑한다.
이는 어느 경전에서나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불교나 흰두교는 ‘옴(AUM)’ 한 단어로 그들이 추구하는 진리를 압축하여 전한다. 이것이 불교에서 모든 경전의 진리를 커버한다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제행무상(諸行無常)’ 4단어와 나아가서 이것이 확장되고,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에 더하여 열반적정(涅槃寂靜) 16자로 확장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멸 · 변화한다는 한순간도 고정됨이 없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는 이 세상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상대적이고 임시적인 것이어서 실체적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즉,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부정하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열반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모든 무상함과 고통 등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는 열반적정을 추가하여 종교적 의미로 확장된 것이다,
석가의 말씀은 5,200여만자의 8만대장경으로 더 해진다. 5,200만 여 글자중, 육조단경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의 준말이다 이것만이 석가이외의 말씀일 뿐, 나머지는 석가의 말씀으로 받들어진다.
하지만. 종교적 사유와 일반적 사유, 물리적 사유의 결론은 그것이 진리라면, 한가지로 지향하여야 하는 데, 아직은 일반적으로 그런 사유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구나 개인의 사유야 말해 무엇하리요? 통일을 이루고자 노력을 하되 결코 통일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사유의 궁극적인 통일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된 사유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유의 과정은 사유하는 개인을 무한히 자유롭게 하고 의미있게 할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존재와 운동을 理와 氣라는 서로 다른 두가지 근본 원리에 의해 설명한다. 이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면서 기를 낳는다거나 이는 기 바깥에 독립해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고 주장과 이는 기에 내재하는 원리나 법칙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 등, 이와 기의 관계에 따라 세계의 근원적 존재로 인정하며, 그 이와 기의 상호관계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유의 차이에서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이 존재하게 된다
이외도 석가, 유가, 도가에서 여러가지 이론이 존재하고 다툼을 이어오고 있지만, 모든 이론이 현대물리학적 관점이나 양자론적 관점과 접목한다면, 사유의 도약이 일어나지 싶다. 반대로, 양자물리학자들은 철학적 사유에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반면에, 이런 일부 철학자들이나 종교는 과학적 결과를 무시하거나 왜곡하여 양자론적 관점이 그들이 주장하는 사유의 결과물을 정당화하는 데 비중을 둔다.
과학적 결과라는 것은 증명된 결과가 존재하여야 이론을 탈피해서 존재가 인정된다. 이론이나 가설만으로 그친다 해서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과학의 영역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수학적 논리적으로 허점이 없어야 하고 과학계과 인정하여야 한다.
초끈이론, 다중우주론등은 증명된 결과가 없어, 과학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론의 수학적 완벽성등으로 과학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경우이다. 다중우주론중, 평행현실, 홀로그램우주, 등 아직 증명되지 않고, 과학적 아이디어와 논의단계에 있는 개념이나 사유가 사실인양 왜곡하여 이용당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유사종교단체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교리를 내세우고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학의 증명되지 않은 개념을 먼저 절묘하게 이용한다.
이는 주로 심리적, 철학적 사유의 대상 이여야지 싶은 데, 언제부턴가 과학적 이론이나 사유가 그 현실가능성을 언급하고 그것에 기반한 자체 종교이론을 확장하고 합리화하는 데 발 빠르게 이용되는 사례이다. 마치 증명된 과학이론인양 위장한다. 그 진위를 떠나서 일반인들이 믿게 될 수밖에 없다.
평행우주, 평행현실!!
미시세계인 양자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원리를 기반으로 거대 우주의 기원과 현상까지 아우르는 법칙을 탐구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1957년 휴 애버렛이 주장한 다세계 해석에 의하면, 우주는 무한한 양자역학적 가능성에 의해 매순간 분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현행 우주와 별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주장을 다중우주론이라고 하며, 평행우주는 이 다중우주의 한 모델이 된다. 이를 보충하는 것이 끈 이론(string theory)으로, 이 우주들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가 끈처럼 존재한다고 본다. 물론 아직 현 우주가 분화된 다중우주의 실증적, 실험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시간여행 이후 상상의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상상적 공간의 차원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주의 탄생인 빅뱅에 관한 최신 이론에서부터 아원자입자의 성질에 이르기까지 평행 우주 이론은 과학계에서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하자, 상상력은 현실에 대한 해석의 폭을 넓혀 평행현실이라는 개념으로 둔갑한다. 삶은 나란히 흐른다. 하나만 흐르지 않는다. 나란하다(평행)’고 말한다. 이 삶만 있지 않고, 저 삶만 있지 않다. 나는 끝없이 있는 수많은 삶 가운데 날마다 어느 한 가지를 골라서 겪거나 느끼거나 누리려 한다. 이것이 평행현실의 요지이다.
양자론의 이론이 아직 증명되지 않은 다중우주, 평행우주등으로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평행현실'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여 일반인들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은 ‘Angelic Guides.’라는 요상(?)한 단체에서 ‘평행현실’이라는 다중우주론의 개념을 차용하여 풀어내는 글이다. 이를 보면, 최근에 코로나19바이러스 전파 때문에 알려진 사이비라고 지탄받는 신천지 교회 생각이 난다. 육체적 구속이나 겁박이 아니라면, 그 많은 신도들이 어떻게 그런 교리에 빠지는 지…
Today we would like to focus your attention on the topic of parallel realities and the impact they have on your reality. It may be a shock to some of you to learn that there are parallel realities; however there are some of you who are on some level already aware that they exist. What we would like to touch upon today is how you can use them to your benefit. This topic is a very large one and we will be just scratching the surface of the many realities that exist right alongside of you at any given moment.
오늘날 우리는 평행 현실의 주제와 그것들이 당신의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집중하고 싶다.,평행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여러분 중 일부에게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여러분 중 일부는 이미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오늘 우리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것이다.,이 주제는 매우 큰 주제이며, 우리는 주어진 순간에 여러분 바로 옆에 존재하는 많은 현실의 표면을 긁어낼 것이다.
Firstly, know that there are an infinite number of parallel realities being played out concurrently alongside your own reality. Because you live in a world that is based on a preconceived belief of linear action, you also were taught to believe that you are on just one solid timeline your whole lives. Event A is followed by Event B and so on; however this is not so. You are constantly jumping from one timeline to the next many times throughout the day. The vibration at which you choose to resonate with determines which reality you will experience. But know that every decision that you possibly could make always plays out in infinite ways. Each “you” believes that it is the “real” you and all of the others are simply just possibilities. This really makes no difference as your soul is always aware of the infinite versions of reality which you are concurrently experiencing.
첫째, 자신의 현실과 동시에 무한히 많은 평행 현실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아라.,선입견을 바탕으로 한 선형 행동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또한 당신이 당신의 인생 전체에 단 하나의 확실한 타임라인에 있다고 믿도록 배웠다.,사건 A는 사건 B 등등이 뒤따른다.,하루 종일 한 시간대에서 다음 시간대까지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있다.당신이 어떤 현실을 경험할지에 따라 당신이 어떤 진동을 선택하는가가 결정된다.,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결정은 언제나 무한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당신’은 ‘진짜’라고 믿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라고 믿는다.,영혼은 당신이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무한한 현실의 버전을 항상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정말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Some parallel realities look very similar to your current lives, and others are very different. Let us give an example to try to help you wrap your minds around just how many infinite versions of “you” exist. Let’s say that you wake up in the morning, you are supposed to meet your friend for coffee before walking to work together. You of course have many options regarding this event; for instance you can choose not to go, you can choose to meet for coffee but not attend work that day, you can also choose to do both. These are just 3 simple options among many others that you can choose from. All of these scenarios are playing out in another reality; you are the one who chooses which reality you will consciously experience. Now think about all of the decisions that you can choose to make throughout the day, where you go, who you speak to, what you do, and so on.
어떤 평행 현실은 현재의 삶과 매우 비슷하게 보이고, 어떤 것은 매우 다르다.,우리가 ‘당신’이라는 무한한 버전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당신의 마음을 감싸도록 도와주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아침에 일어나면 함께 일하러 가기 전에 친구와 커피를 마시기로 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물론 이 행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선택권이 있다. 예를 들어 가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날 수 있지만 그날은 출근하지 않을 수도 있고, 둘 다 할 수도 있다.,이 옵션들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옵션들 중에서 세 가지에 불과하다.,이 모든 시나리오는 다른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경험할 현실을 선택하는 사람이다.,이제 하루 종일, 어디로 가고, 누구와 이야기하고, 무엇을 하는지, 그 밖의 다른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모든 결정을 생각해보라.,이제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다른 선택들을 상상해보라.(중략)
이외에도 평행현실 같은 우주론적 개념이나 사유가 왜곡되어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인류문명사가 그런 왜곡이 대세가 되고, 진리가 되어 진전해왔다는 현실에 눈을 돌려보면, 그런대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부족한 존재이고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절대자를 갈구하고 기대고자 하는 심리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해못 할리도 없다. 그러면서도 그 갈구하는 심정이 극히 주관적이고 객관적 사실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세삼 느낀다.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은 아인시타인 같은 大天才나, 神급 인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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