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작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우주 시작의 순간을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측 가능한 가장 오래된 우주의 모습은 우주배경복사에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주배경복사가 빛과 물질이 분리된 후 최초로 나온 빛이기 때문이다.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는 팽창과 함께 온도가 내려가는데 우주의 온도가 3000 K 정도가 되며 빛을 가두어두던 전자가 양성자와 재결합하여 중성 수소가 되기 때문에 전자의 산란이 사라지고 빛이 자유롭게 빠져나오게 될 때 나온 빛이 우주배경복사로서 우주의 가장 먼 과거 정보를 담고 있다. 양성자와 전자의 재결합이 일어날 때 우주의 나이는 380,000년으로 아직 별 이나 은하와 같은 천체는 생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우주는 우주 자체가 방출하는 복사, 즉, 우주배경복사를 제외하곤 빛이 없다. 우주배경복사는 그 당시 우주의 온도에 해당하는 흑체가 내는 복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오늘날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는 재결합 시기에 방출된 빛이 우주의 팽창으로 파장이 길어져 2.7 K인 흑체가 방출하는 복사로 관측된다. 즉, 오늘날 우주의 온도는 2.7 K인 셈이다. 이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자체가 내는 복사이므로 우주의 어디를 보더러도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우주배경복사는 대폭발 우주론에서는 일찍부터 예견된 것이었으나 최초의 관측은 1964년 미국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에 의해 우연히 이루어졌다. 펜지아스와 윌슨은 전파망원경을 제작하여 시험 관측을 하는데 아무리 회로의 잡음을 잡아도 없어지지 않는 잡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잡음이 특정 천체에서 발생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다른 방향으로 안테나를 향해도 잡음은 항상 같은 세기로 나타났다. 이들이 이 잡음이 우주배경복사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은 이웃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의 우주론 세미나를 참석한 친구가 이들을 찾아와서 이들이 고민하고 있는 잡음이 우주배경복사 같다는 얘기를 듣고 프린스턴 대학을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고 나서다. 펜지아스와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발견은 이들에게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주었다. 우주배경복사는 우리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데 우리가 TV 채널을 돌릴 때 나는 잡음이 바로 이 우주배경복사다.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대폭발 우주론이 경쟁하던 우주론인 정상우주론을 누르고 표준 우주론으로 자리 잡게 하였을 뿐 아니라 우주의 거대 구조나 은하의 생성 등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펜지아스와 윌슨에 의해 발견된 우주배경복사는 모든 방향에서 같은 세기로 관측되었으나 러시아의 젤도비치나 미국의 피블 등은 우주배경복사가 대폭발의 잔재라면 미세한 비등방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왜냐하면 대폭발 우주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우주가 양자 요동에 의해 생기고 이 양자 요동이 급팽창으로 확대되면 우주배경복사에도 이 확대된 요동의 흔적이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양자 요동의 잔재로 인한 비등방 정도가 십만 분의 일 정도로 작아 지상의 관측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다가 우주배경복사 탐사선인 COBE(Cosmic Background Explore)에서 최초로 비등방성이 관측되었으나 관측의 정밀도가 떨어져 자세한 분석은 어려웠다. 곧이어 이 비등방성을 관측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사된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에서 보다 자세한 관측이 이루어져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우주배경복사의 비등방성 관측은 우주의 가속 팽창 관측과 결부되어 허블상수, 우주상수 등을 보다 정확하게 구할 수 있게 되고, 정밀 우주론 시대를 열게 되었다. 최근에 발사된 Planck 탐사선의 결과는 우주 나이를 (138 ± 4) 억년으로 측정하여 나이 오차를 3% 이내로 줄였다. 이러한 정밀도는 우주배경복사의 비등성이 관측되기 전인 20세기 말에만 하더라도 우주의 나이를 (150 ± 30) 억년 구할 수 있었던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우주배경복사에서 관측된 비등방성은 우리 존재의 기원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주배경복사에 남은 온도 분포의 비등방성 흔적은 밀도 분포의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고 밀도가 높은 곳을 중심으로 물질들이 뭉쳐 은하나 은하단 등 우주 거대 구조를 이루는 천체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은하에서 별이 만들어지고 별 주변에 행성이 생겨 지구 위에서와 같이 생명체가 발현되었으니 결국 관측 기능한 우리의 뿌리는 우주배경복사에 남겨진 밀도가 높은 영역인 셈이다. 언젠가 무한한 계산이 가능해지면 정말 우주배경복사에서 우리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출처] 존재의 근원: 양자요동|작성자 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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