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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철학.에세이.한시.기타자료/한시모음

귀거래사(歸去來辭)

by 靑野(청야) 2019. 11. 12.

귀거래사(歸去來辭)

도연명(陶淵明, 365~ 427)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내 스스로 마음을 육체의 종노릇 하게 하였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픔에 젖어 홀로 서러워만 할 수 있겠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을 탓했자 무슨 소용 있으랴?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는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게 옳다는 걸 알았도다.

實迷途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실로 인생길 잘못 접어들어 헤매었지만 그닥 멀리온 것은 아니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 생각이 옳고 지난 세월 잘못 산 걸 깨달았노라.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간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는 길손에게 고향 가는 길 물을 제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녁 희미한 빛마저 한스럽구나.

乃瞻衡宇 (내첨형우)                       
저만치 내 집 지붕과 처마가 바라다보인다.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뛰듯이 집에 당도하니

僮僕歡迎 (동복환영)                      
어린 하인들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자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안 세 갈래 오솔길엔 잡초가 무성하나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변함이 없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 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통엔 술이 가득 나를 반긴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혼자 잔 부어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 앞 나뭇가지 바라보고 미소짓노라.

倚南窗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의기 도도해지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겨우 들일 집이건만 편안키 그지없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취가 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달았건만 찾아오는 이 없어 늘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해 발길 멎는대로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고개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을 돌아나가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

景翳翳以將入 (경예예이장입)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 부여잡고 서성이노라.
 
歸去來兮 (귀거래혜)                        
나 돌아왔도다!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의 사귐도 속세와의 어울림도 단절하리라!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 서로 인연을 멀리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나간들 무엇을 얻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 이웃들과 즐겁게 정담을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달래리.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와 봄이 왔다  알려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내일은 서쪽 밭에 나가서 밭을 갈리라.

或命巾車 (혹명건차)                        
때로는 수레 불러 몰기도 하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때로는 조각배 띄워 노를 젓는다.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진 골짝도 찾아 나서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고 가파른 언덕길도 지난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 싱싱하게 자라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흘러 내린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만나 신명남을 부러워할 제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내 생도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서라!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 세상에 머물 날 얼마나 되리오!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무는 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 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영화 내 바라던 바 아니요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내 죽어 신선나라 태어나기도 바라지 않을지니,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날씨가 좋으면 혼자 거닐기도 하고

或植杖而耘耔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두고 김매고 북돋우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 하는날 돌아갈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일소냐?

 

 

도연명- 전원을 노래한 술의 성인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중에는 술을 사랑했던 시인이 많다. 술을 좋아한다는 데서 유래한 별명도 부지기수다. 이백(李白)은 술의 신선(神仙), 소식(蘇軾)은 술의 친구, 육방옹(陸放翁)은 술 미치광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유령(劉伶)은 술의 귀신으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술로 평가된 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의 대표적 시인 도연명으로, 그는 술의 성인(聖人)으로 표현된다. 그는 술을 열렬히 칭송했는데 그가 남긴 약 130여 수의 시 중 절반 정도에는 술에 관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도연명은 중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은둔자, 전원시인의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다.

 

365년 강서성 심양(潯陽)에서 태어난 그는 본명이 잠(), 자가 원량(元亮) 또는 연명(淵明)이다. 그의 선조 도간(陶侃)은 동진 시대 초기 공신이었지만, 문벌귀족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귀족 계급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부친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방의 하급 관리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도연명이 열두 살 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도연명은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며 학문을 익혔다.

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던 도연명은 집안과 노모를 돌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출사했고, 강주 제주(祭酒), 진군참군, 건위참군 등의 지방 하급 관리를 지냈다. 하지만 그의 관직 생활은 대부분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의 자유로운 성품이 관리 생활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관리 사회의 혼탁함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관직 생활을 꾸준히 하지 못한 덕에 도연명의 가난은 계속되었다. 그의 곤궁한 생활을 보다 못한 친척이 그를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추천했고, 405년 그는 팽택령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팽택령에서의 관직 생활도 약 80여 일 만으로 끝을 맺었다. 송서(宋書)도연명 전기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전한다. 도연명이 팽택령으로 부임한 그해 겨울에 상급 기관의 감찰관 독우(督郵)가 팽택현을 시찰하러 나왔다. 현사(縣史)가 급히 달려와 의관을 갖추고 맞이할 것을 재촉하자 문득 도연명은 그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도연명은 내 어찌 다섯 말의 쌀 때문에 시골뜨기 아이에게 허리를 굽힌단 말인가!”라고 탄식하며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은거에 대한 염원을 밝혔다. 그는 작품 서문에서 시집간 여동생의 죽음으로 관직을 버린다고 했지만,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고 하는데 어찌 아니 돌아갈쏘냐(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라는 문구로 은둔을 선언했다.

귀거래사는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관직 생활을 그만두고 귀향하게 된 동기와 상황이 서술되어 있다. 두 번째 장에는 집으로 돌아온 후 비록 비좁은 공간이지만 벼슬살이를 할 때처럼 마음 쓸 일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술도 마시고 정원도 산책하는 등의 생활이 그려져 있다.

세 번째 장은 혼탁한 관직 생활에 다시는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고 거문고와 독서를 즐기는 외에, 농사도 지으며 가끔 수레를 타고 산길을 달리거나 배를 저어 깊은 계곡을 찾아가는 등 전원생활에 대한 감흥을 담았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벼슬을 하거나 그만두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어차피 신선이 되지 못할 바에는 가끔 밭에 나가 김매고, 언덕에 올라 크게 노래 부르고, 맑은 물가에 나가 시를 읊는 등 자연에 순응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도연명은 다시 저작랑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도연명은 이후 20여 년간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산수와 시와 술을 벗 삼아 전원생활을 했다. 은거는 개인적인 성향과 현실에 대한 소극적 도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진 왕조에 대한 충성심과 송 왕조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도연명이 은둔 생활을 시작할 무렵 동진 왕조는 멸망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진 시대의 혼란은 훨씬 전인 4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 347년에는 명제의 사위인 환온(桓溫)이 반란을 일으켰고, 402년에는 손은이 오두미도 교단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환온의 아들 환현(桓玄)이 반란 진압을 핑계로 제위에 올랐으나 장군 유유가 이 두 난을 진압하고 420년에 남조 송나라를 세웠다. 도연명이 은둔한 지 15년이 지난 해였다.

 

421년 도연명은 송나라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농사에만 전념했다. 한때 그는 생활이 궁핍하다 못해 걸식 행각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생활은 그의 사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도연명은 백성들이 빈곤한 원인을 세상의 혼란스러움에서 찾았고, 더 나아가 수탈과 억압이 없는 이상 세계를 꿈꾸게 되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原記)는 이런 사상적 변화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도화원기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내용은 한 어부가 길을 잃고 헤매다 도화원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도화원에서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흥망성쇠를 모른 채 유유자적하고 태평한 나날을 보낸다. 어부는 도화원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아쉬운 이별을 하고 돌아왔다. 그 후 태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도화원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아내는 사람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도화원기는 도피하고 싶다는 도연명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유의 왕권 교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현실에 실망할 때마다 술로 자신을 위로하고, 국화를 기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국화를 읊은 시들이 많은데, 음주중 특히 다섯 수가 뛰어나다.

 

초막집 짓고 사람들 속에 살아도

結廬在人境

시끄러운 말과 수레 소리 없어라

而無車馬喧.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問君何能爾

마음이 세상에서 멀어지니 절로 그렇다오

心遠地自偏.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采菊東籬下

한가로운 마음으로 남산을 바라보네

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해질녘에 아름다운데

山氣日夕佳

날던 새는 짝 지어 돌아오는구나

飛鳥相與還.

이 가운데 진정한 뜻이 있거늘

此中有眞意

말하려니 이미 말을 잊었구나

欲辨已忘言.

 

 

 

 

나의 감상

나는 젊어서부터 함석헌 선생을 좋아해 선생의 전집 30권을 다 읽었는데 그 중 씨알의 옛글풀이라는 책에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발견하고 그 시가 마음에 들어 큰 종이에 시전문을 한자로 쓰며 홀로 미소지은 적이 여러번 있었다. 도연명처럼 일찍이 41세에 귀향 한 것은 아니지만 60에 강화로 이사와 십여년을 귀거래사에 나오는 그대로 자연과 술과 벗과 책을 즐기며 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죽어서 더 좋은 세상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는 숲속의 새처럼 산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쪼그라들고 비루해본 적은 없다.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과 숲과 벌판이 있어 어디든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천국으로 소풍나온 듯 한데 마음 통하는 귀한 벗들까지 있어 술과 풍류를 즐길 수 있고 시와 책과 학문을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수시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어찌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나는 특히 무엇이든 억지로 하지 말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라는 노장 사상이 좋아 노자의 도덕경을 수없이 읽고 도덕경 81장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쓴 적도 있다. 여기 도연명의 시에는 자연과 술과 거문고와 시를 즐기며 소박하게 사는 도인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삶이 우리 동양인들이 마음 속 깊히 동경해온 삶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넉넉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

 

내가 가까운 지인들과 강화도 이웃사촌을 만든 이유는 이런 삶을 살자고 그런 것이다. 은퇴하고도 세상이 머리 속에 가득하면 언제 인생이 한가로울 수 있겠는가? 나라와 세상을 위해 뜻을 세우고 자기의 삶을 돌보지 않고 희생적으로 사는 지사들도 더러 있어 나는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 앞에 서면 늘 부끄럽기도 하지만, 젊은 날 나도 그런 삶을 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냥 이웃과 더불어 정을 나누며 도연명이 노래한 귀거래사의 삶을 살고 싶을뿐이다.

 

귀거래사를 소리 높혀 읽다보면 아, 이것이 삶의 기쁨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 누구에 대해서도 원망도 미움도 없고 삶에 대해 더 바랄 것이 없다. 바람처럼 시원하고 하늘처럼 뻥 뚤렸다. 이백의 시귀처럼 왜 산골에 사느냐 물으면 미소만 지을뿐 대답이 없다. 그저 마음이 스스로 한없이 한가할뿐이다.

 

세상이 시끄럽고 덩달아 마음도 시끄러워질 때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읽으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며 노래가 나온다. 이것이 에머슨이 노래한 소박한 삶, 고상한 생각이다(SIMPLE LIFE HIGH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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