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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by 靑野(청야) 2018. 11. 1.

생 애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시조. 중국사상사에서 나타난 인물 중 가장 신비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 노자다. 그의 생존연대, 출생, 그리고 성명, 그의 사상을 담은 [도덕경]에 관한 문제들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학자들에 의해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그의 생존연대와 [도덕경]의 저술연대 및 그 내용에 관한 사실여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문제삼은 학자들을 살펴본다면 크게 두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는데, 하나는 노자라는 인물이 전혀 가공인물이라는 것이고 한편은 노자가 역사적 실존인물임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어 어느 한쪽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도덕경]의 성립연대가 오르내리고 노자 한 사람의 유작(遺作)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도덕경]에 담긴 사상적 성격 내지 그 철학적 근간에 있어서는 변함없이 그 특성을 보유하면서 일관되게 읽혀져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자의 인물 내지 [도덕경]에 관한 이러한 많은 문제점들은 노자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는 [사기]의 [노자열전]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 춘추시대에 초나라 왕실의 도서관리인을 지냈다고 한다.
공자가 방문하여 그를 찾아가 '예(禮)'에 관해 물으니, “그대가 옛 성현이라고 숭배하는 이들은 그 육체와 뼈가 썩어버리고 남은 것은 공허한 말뿐이다. 또한 군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때를 만나면 영화를 누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뿐이다. 참된 군자는 덕이 있으나 외모는 마치 어리석은 것 같다. 그대는 교만과 욕심, 그리고 꾸미는 빛과 잡념을 버려라. 이런 것은 그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처소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달리는 놈은 덫을 놓아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놈은 그물로 잡을 수 있으며 나는 새는 활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오르며 변화가 심하여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오늘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용과 같은 사람이더라”라고 말했다 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정치적 이상실현을 위해 분주했던 공자와는 달리 노자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무위(無爲)의 도(道)'에 힘쓰며 지내다가, 얼마 후에 주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은거를 위해 서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주나라를 떠나 관문에 이르렀을 때 노자의 명망을 알고 있던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노자를 알아보고 “선생께서 세상을 은둔하려 하시니 몇 글자를 남겨주십시오” 하고 강권하니, 이에 노자가 도포와 덕(德)의 뜻이 담긴 ‘도덕(道德)’에 관한 글, 상 · 하 2편으로 된 5천여 자의 문장을 남기고 흘연히 떠났는데, 그후로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도덕경(道德經)]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는 의문시되는 점이 많고 그것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사료 [사기(史記)]의 [노자전]에서도 의문을 표명하고 있어, 공자의 선배로서 BC 6세기에 활약한 인물이라는 실재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의 학설로서는 BC 479년에 죽은 공자보다 100년 정도 후배라는 설과, 가공의 인물로서 실재를 부정하는 설이 있다. 그의 무위자연 사상은 그후로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 의해 계승되었다.

노자의 사상과 그 성격
1. 사상적 성격
중국사상사에서 오늘날까지 도도히 흘러 내려오는 세 가지 사상의 물결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그리고 불가(佛家)사상이다. 불가사상은 한대에 멀리 인도에서 들어와 뒤늦게 중국사상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유가와 도가사상은 중국 자체 내에서 발생하여 고대로부터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어온 사상이다.
이 두 사상은 끝까지 서로를 용납하지 아니한 채 나름대로의 특질을 더욱 뚜렷이 하면서 발전해왔다. 하나는 ‘인성론(人性論)’의 입장에서, 다른 하나는 ‘자연론(自然論)’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사상적 전개의 과정은 서로 대조적인, 때로는 전연 반대의 평행선적인 사유과정을 밟으면서 내려왔다. 물론 이러한 두 사상의 입장이 지양, 극복되는 속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교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후대 송학(宋學)에 와서 그렇게 된 것이요, 그러는 속에서도 두 사상은 자기상실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확보의 길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입장을 동시에 마련하면서 내려왔다고 할 수 있다.
노자가 주창하고 장자가 발전시킨 도가사상은 공자의 유가사상과는 달리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랐다. 노자는 춘추시대의 어지러운 세태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여 무위자연 사상을 내걸고 현실을 외면한 은둔과 도피의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유교의 인위적인 도덕윤리를 비판하며, 전제군주의 절대권에 대한 일반백성의 저항권을 포함시키고 개인의 독립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런데 제자백가사상 가운데서도 도가만은 현실성을 부정하고 자연주의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사상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 때문에 도가사상은 본래 중국사상이 아니라 인도의 요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남방의 양자강 유역에서 발견한 초나라의 이질적 문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주의 사상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도가의 주장은 인간의 생활을 자연에 순응시키려는 자연관과 만물의 생성에 대한 숭배, 자연과 인간의 중개자로서의 군주의 역할 둥에 관하여 초기 중국인의 관심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 사상 내용
(1) ‘도’ : 노자가 말하는 도(道)란 우주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이요, 우주를 우주일 수 있도록 하는 궁극적인 원리이자 본체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모든 사물과 모든 가치의 배후에 있는 참된 자연의 원리를 '도'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으로 하여금 그것일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의 근원을 도라고 본 것이다.
도는 형이상학의 원리이기 때문에 보고자 해도 볼 수가 없고 듣고자 해도 들을 수 없으며 잡고자 해도 잡히지 않는다. 인간의 5관으로서는 지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무명의 것이지만, 설명을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이 ‘도’라는 것이다.

(2) ‘덕’ : 노자에 의하면 도는 만물의 생성의 근원으로서 만물의 생성과 과정에서 사람이나 사물은 근원적인 도에서 얻어지는 것(得也)이 있는데 이것을 ‘덕’이라고 했다. 도가 만물생성의 본원이라면 그 도에 따라 자라고 성숙하고 변화하는 성능, 즉 도에서 부여받은 어떤 자연스런 능력과 힘을 뜻한다. 즉, 덕이란 보편적인 도가 개별적인 사람이나 사물에게 깃들인 각 개체의 원리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도를 따르고 도를 지키는 것이 덕이다. 따라서 덕은 도처럼 ‘무위(無爲)’여야만 한다. 아무리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도 일단 ‘유위(有爲)’하기만 하면 그것은 이미 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무위자연’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인간중심적인 논리가 아니라 우주 대자연의 실상과 도리다. 그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속에서 자기의 고유한 본성(道)에 따라 자유스럽게 지낼 때(德을 지닐 때) 가장 행복하며 그때 비로소 참된 질서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을 노자는 무위자연이라 불렀다. 즉,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自) 그러한 대로(然) 사는 삶으로 보았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다름 아닌 무위자연이다.
무위자연은 자기 멋대로 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서로의 생명과 자유를 존중해주고 남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 소박한 공동체의 삶을 뜻한다. 노자는 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물과 모든 가치의 배후에 있는 참된 자연의 원리인 도에 따른 삶으로 보았다.

(4) ‘윤리사상’ :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이나 규범, 그리고 그 규범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국가권력 자체에 혼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강제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즉, 인위적인 윤리규범의 체계를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은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은 그러한 가치판단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선악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고 또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가장 진실하게 드러낸 것은 [도덕경] 총 81장 중 1장인 [체도(體道)]장으로, [도덕경] 전체의 총론이자 결론이라 할 수 있어, 제1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그것은 [도덕경]의 전체내용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도덕경]의 형성과 내용
[도덕경](또는 ‘老子’)은 전체가 81장으로 되어 있는데, 상편 (1-37장)에서는 ‘道’에 관한 내용이고(道經), 하편(38-81장)에는 ‘德’에 관한 내용(德經)이다. 그러나 이는 후세의 사람이 편집할 때 그렇게 나눈 것이지, 본래는 도와 덕을 나누어 말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도덕경]의 내용을 그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도와 덕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도덕경]의 구성체제에 대해서는 한 사람이 한꺼번에 저술했다는 관점과, 도가학파의 손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당시의 여러 사상을 융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이있다.
한 사람의 전작물임을 주장하는 관점은 노자를 공자와 같은 시대의 실존인물로 보아 [도덕경]을 그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이고, 부정하는 관점은 노자가 가공인물이며 설사 실존인물이라 해도 [도덕경]과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내용을 이루는 기본사상은 변함없이 ‘무위자연’의 사상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내용은 약 5천여 자로 문장 서술방식은 대화체나 서술체인 일반적인 중국고전과는 달리 간결하고 격언적 표현이 많고, 대구와 각운을 많이 썼으며, 의표를 찌르는 역설적인 말이 특색이다. 민간에 널리 구전되어온 속담과 격언을 모은 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세속적인 이야기와 함께 비유적인 난해한 어구도 많고 고대의 해석에도 이설(異說)이 많다.
노자의 사상에서 특이한 것은 ‘무위’와 ‘자연’이다. 노자가 산 춘추시대 말기에는 중국의 봉건질서의 중심인 주나라가 쇠하고 지방에 할거한 제후들이 각기 패권을 다투며 침략과 전쟁을 일삼던 때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전쟁과 가렴주구, 부역,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며 굶주리는 상태였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목격한 노자는 “백성들을 제발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바로 그의 무위자연의 정치사상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자는 말하기를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농부가 밭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면 그 나라의 명운이 무궁할 것(59장)”이라 하고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작은 물고기를 삶는 일에 비유했다. 즉, “뒤집지도, 조급히 서둘지도 말고 가만히 내버려두어야 한다(60장)”는 것.
또 노자는 이상적인 군주의 상을 그리되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들이 오직 임금이 있다는 것만을 알 뿐(17장)”이라고 했다. 즉, 최상의 군주는 무위로써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해도 백성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내가 저절로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요순시대의 농부들이 배불리 먹고 막대치기 놀이를 하며 부른 노래(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 파서 물 마시며, 날이 새면 들일 가고 밤이 되면 잠을 자니 임금의 공이 무엇이냐)는 무위자연의 최고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노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유가에서 주장하는 仁이나 義하는 것도 모두 천하에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며, 충신이란 것도 국가가 혼란해져서 생기는 것이요, 자애도 육친(부자 · 형제 · 부부)이 화목하지 못한 데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18장).
그러므로 사람이 지나친 재주와 지혜, 인과 의, 기교와 이익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로 늘어나고 백성들이 효도하고 자애로운 사람으로 돌아갈 것이요 도적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 했다(19장).
그러나 이 세 가지(聖智 · 仁義 · 巧利)를 아주 끊어버리면 생활이 너무 재미없어서 백성들의 마음이 귀속할 데가 없으므로, 그들의 마음이 돌아갈 수 있는 소박함을 보여주어 거기에 따르게 하면 사심과 욕망이 작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개 노자는 무(無) · 허(虛) · 정(靜) · 유약(柔弱) · 박(樸)을 높이 평가하는데, ‘무’는 천지만물의 근원으로 有도 無에서 나온다고 했다.(1장) 虛는 빈 것을 말하는데, 道는 항상 비어 있어 차는 일이 없지만 속이 깊어 거기에서 얼마든지 퍼내어 쓸 수 있다고 했다.(4장) 그는 이것을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6장)”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골짜기는 항상 비어 있어 차는 일이 없고 바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냇물이 모여드는데, 이 골짜기의 모습이야말로 도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빈(玄牝)이라고도 하는데, 현은 신비하고 오묘한 것을 뜻하고 빈은 암컷을 가리키니, 만물을 생성케 하는 도는 곧 신비하고 오묘한 암컷이란 뜻이다.
靜은 만물이 왕성하게 낳고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상태라고 했다. 소란스럽거나 야단스러운 것은 천지를 운영하고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데 해가 되지만, 도는 언제나 고요하고 안정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만물은 그 속에서 저절로 나고 자라는 길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항상 유약한 것을 찬양했다.
그러기에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에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물은 거의 도에 가깝다”(8장)라고 물을 찬양하고 암컷을 찬양했다. “물은 부드럽고 약하나 이 세상에 물보다 강한 것이 없으며, 암컷은 유약하고 조용하지만 수컷의 강함을 이긴다”고 했다. 그는 유약의 본을 바람에 휘어지는 나무와 어린아이에게서 구하기도 했다.
22장의 “휘어지는 나무는 꺾이지 않으므로 안전하다” 와 “어린이의 뼈는 약하고 살은 부드러우나 잡는 힘은 세다”(55장}라고 한 말은 다 거기서 나온 말이다. 바꿔 말하면 생명이 있는 것만이 유약하며, 생명을 잃으면 경직되므로 유약은 곧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끝으로 노자는 소박함(樸)을 도의 순수한 원형으로 보았다.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도는 樸과 같다”(32장). 樸이란 아무런 가공도 안한 순수한 원목이다. 그러므로 천지의 시원인 道를 상징한다. 사람이 소박한 마음을 지킨다면 비록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천하의 그 누구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임금이 이 소박의 도를 지킬 수만 있다면 천하의 만물은 저절로 그를 찾아 모여들 것이며, 하늘과 땅은 화합하여 감로(甘露)를 내리고 백성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저절로 균제될 것이다.

사상적 평가 및 그 영향
이상으로 [도덕경]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말은 간략하나 뜻은 깊고 크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많고 각자의 해석이 상반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단정을 내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커서 그의 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1. 사상적 평가
아마도 노자에 대해서 정당한 평가를 하는 최선의 방법은 도교와 유교를 구분해보는 것일 것이다. 이 두 체계는 도의 역할에 반대되는 입장을 대표하고 있다.
(1) 노자에 의하면 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함으로써 하여지는 모든 관습과 제도를 부인했다. 그러므로 그는 문화와 미신을 비난하고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높였다. 그러나 유가에서는 인의예지의 덕목을 설정하여 인위적인 예교(禮敎)를 강조하며 자연에 따를 것을 가르치면서도 인간이 만든 문화의 가치를 중시했다.
(2) 이 두 체계는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유가에서 사물과 인간의 구별을 시인하고 현실적인 상쟁의 대립을 전제하여 사색한 것은 자연의 수수께끼가 아니라 인생의 수수께끼였다. 반면에 노자는 인간과 자연을 구별하지 않는 불상쟁(不相爭)의 사상을 가지고 있어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다.
(3) 이 두 체계는 하늘의 개념에서도 대조적이다. 노자에 의하면 도는 우주를 위한 포괄적 원리이기 때문에 도가 하늘에 앞선다. 그러나 공자는 하늘의 개념을 최고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늘의 명령(天命)을 인간사에 섭리하는 살아 있는 힘이라고 주장하고 항상 외경스러운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노자와 공자의 한 가지 공통점은 ‘중용’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 중용에 주요한 논거로서 어떠한 움직임이 극단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반대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자연의 불변의 법칙을 들고 있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말라”는 것이 두 사람의 금언이었다.

2. 영 향
노자의 그의 사상을 담은 [도덕경]의 사상적 영향은 매우 크다. BC 2세기 한나라 초기에는 그 무위청정(無爲淸淨)의 술(術)이 실제 정치에 이용되어 한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한무제 이후 유교가 국교화되면서 노자의 가르침은 정치보다 수신과 처세 면에서 존중받게 된다. 북위의 구겸지는 도가의 무위자연사상에 신선사상, 음양오행설, 참위설, 그리고 민간의 잡다한 신앙들을 섞어 ‘도교(道敎)’를 민간종교로 완성하고, 북위의 태무제는 유교가 이단시하는 유목민족의 중국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444년 도교를 국교(國敎)로 삼기도 했다. 도가사상이 도교로 종교화함에 따라 노자는 도교의 최고의 神이 되고 도교에서 [도덕경]은 최고의 경전이 되었다.
노자의 사상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위진남북조 시대와 같은 혼란기에는 [역경] [장자]와 함께 3현(玄)으로 존중되고 인간의 삶의 지혜를 밝혀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하면서 피지배 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했다.
한국에서도 [도덕경]에 나오는 내용이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조선시대에는 도교의 주무관청인 소격서 폐지문제로 조광조와 중종의 독대(獨對)가 새벽까지 계속된 사실만 보아도 민중의식 속에 뿌리내린 도교사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노자의 사상은 유학자들 특히 송 · 명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깊다. 이들이 주역을 해석함에 있어서 [도덕경]의 사상으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주역]에서 말하는 음양의 도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정이천(程伊天) 같은 사람은 노자를 비판하면서도 노자의 도체(道體)에 대한 통찰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우주관의 기본개념인 ‘理’와 ‘氣’도 [도덕경] 속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대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비교, 고찰하기 위해서도 [도덕경]은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데, 그 속에 함축된 풍부한 사상들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과 비교해볼 수 있고, 현대 과학철학에도 시사해주는 점이 적지 않다.
노자는 정치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그리고 인간의 오든 생활문제에 있어서 한발 물러나는 여유 속에서 인간 본연의 질서를 찾으려 했다. 이것은 오늘날 경쟁위주의 산업사회에 있어서 문제해결의 어떤 실마리를 찾게 해줄 수도 있으나, 우리에게 주는 보다 더 큰 고전적 가치는 인간의 근본적인 오류가 무엇인가를 밝힘으로써 참다운 진리파악의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주는 철학적 문제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계상황에 도달한 서양문명이 그 돌파구를 동양사상, 그 중에서도 도가사상에서 찾으려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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